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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의 기술 : Food texture   



들어가며: 식품의 가치를 바꾸는 물성의 기술

사람들은 음식의 맛과 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물성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물성이 맛과 향에 많은 영향을 주고, 맛이나 향보다는 물성이 더 중요한 제품이 많은데도 그렇다. 바삭거리는 스낵이나 부드러운 솜사탕도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녹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미리 물에 담갔다가 주면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스크림도 입에 들어가면 잘 녹아야 맛있다. 그렇다고 미리 녹인 아이스크림을 주면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를 구을 때도, 문어를 삶을 때도 식감에 집중한다. 물성이 제대로 구현되어야 맛도 제대로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물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마땅한 자료가 없다. 맛과 향에 비해 오히려 물성이 발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그렇다. 물성이 달라지면 음식과 요리에 요리와 디저트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물성의 기술이 발전하면 가공식품에서 보다 섬세하고 차별화된 제품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에 노년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음식을 씹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삼키기는 데 문제가 생기기 쉽다. 요즘은 젊은이마저 치아가 약해져 과거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진 음식이 인기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드러운 음식이 인기가 있지는 않다. 인간은 지루한 것을 정말 싫어한다. 부드럽지만 다양하고 차별적인 식감을 가진 것이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보다 오히려 섬세한 물성의 기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게 물성의 기술과 원료를 이해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물성에 관한 자료나 교육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식품은 이미 성숙산업이라 맛과 향으로는 제품을 차별화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물성이 아직 차별화와 고급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남들보다 뛰어난 물성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맛이나 향의 다양화는 비교적 쉽게 가능한 것이라 경쟁력 확보에 좋은 무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소재의 연구는 이미 많이 이루어져 점점 신소재의 등장이 어려워지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특별한 재료나 특별한 기술은 특별한 기회를 만나야 성과를 낼 수 있는데, 기본적인 소재와 기술은 남보다 섬세하게 알고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시장성도 훨씬 크다. 이처럼 평범한 재료나 방법을 비범하게 응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식품의 공부 방법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나열식이고 군더더기가 많다. 보다 넓은 분야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습득하여 다양한 분야에 자신을 가지려면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수많은 현상에서 군더더기를 제거하면 전혀 달라 보이는 현상이 사실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활용성이 훨씬 늘어나고 깊이도 깊어진다.
나는 10년 정도를 어떻게 하면 식품 현상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 봤다. 그래서 2013년 <그림으로 이해하는 식품의 원리>라는 자료를 만들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말과 그림으로 풀어서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앞서 <물성의 원리>를 통해 식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물 4가지 분자가 식품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고, 그들 분자가 왜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자식으로 알아보았다. 물성의 기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해볼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물성의 기술을 크게 수분을 붙잡고(증점), 수분을 고정하고(겔화), 물에 녹는 성분을 조화시키고(유화 및 분산), 수분을 얼리거나(동결), 줄이는(건조와 굽기)기술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모두 식품의 물성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기술들인데 통합적으로 다룬 것은 없었다. 제품 하나하나의 기술보다는 전체를 모두 한 가지 핵심원리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모든 기술은 원리로 연결되어 있고 그림으로 그 원리를 이해하면 써먹을 수 있을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서장 : 그림으로 물성을 이해하는 방법
1. 그림으로 물성을 이해하는 법
2. 물성의 기본 원리와 기술

Part 1. 증점, 물의 흐름성을 억제
1. 점도의 원리
2. 전분과 소스의 점도
3. 증점제의 개별 특성
4. 시럽과 산미료
5. 물성의 측정 및 평가

Part 2. 겔화, 물의 흐름성을 고정
1. 탄수화물 겔과 젤리의 기술
2. 단백질의 변성과 겔화
3. 육단백, 소시지와 어묵 4. 유단백, 치즈의 과학
5. 난단백, 머랭의 과학
6. 콩단백, 두부의 과학

Part 3. 유화, 녹지 않은 성분과 조화
1. 계면현상과 유화의 기술
2. 유화제의 종류와 특성
3. 음료용 유화 기술
4. 소스의 유화 기술
5. 크림과 거품의 과학
6. 유화제의 다양한 기능

Part 4. 고체화, 물을 얼리거나 줄이기
1. 건조와 결정화
2. 프리징, 아이스크림의 과학
3. 베이킹, 빵의 과학
4. 로스팅, 스테이크의 과학

마치며 : 숙제를 마치며

나는 한동안 물리학 교양서를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다. 자연을 가장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였다. 물리학은 관측된 사실로부터 그것을 설명할 이론을 만든다. 그 이론에 바늘구멍만큼이라도 틈이 있으면 기어이 그것을 해결할 좀 더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것을 꿈꾼다. 그런 노력 덕분에 우리는 감각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원과 원자를 구성하는 양자의 세상에 초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식품에는 식품을 가장 간결명료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있었을까? 식품 전체를 우아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고사하고, 개별 현상에 대한 설명마자 빈약하기 그지없다. 아이스크림에서 유화제를 쓴다고 하면 물과 기름을 섞기 위해서라 설명한다. 실제 목적은 유화를 적당히 깨기 위해서 인데도 그렇다. 계란을 삶으면 굳는 이유가 단백질이 변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단백질이 어떻게 형태가 변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휘핑과 유화와 거품과 반죽과 응고를 전혀 다른 것으로 알고 따로따로 배운다. 그래서 식품은 시행착오가 유일한 해법인양 그저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아무도 진짜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복잡하다고 하고 해봐야 안다고 한다.
경험이 없는 이론은 공허하고, 이론이 없는 경험은 위태롭다. 자신이 없이 마구 흔들리거나 괜한 아집에 빠지기 쉽다. 나의 오랜 꿈이 분자의 구조로 식품의 물성현상을 모두 설명해보는 것이었다. 만물은 원자(분자)로 되어있고, 식품은 다양한 유기화합물의 합이다. 분자에는 어떠한 의도나 의지도 없이, 그저 각각의 분자가 가지고 있는 크기와 형태의 특성에 따라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일 뿐이다. 그게 분해와 합성, 용해와 결정화, 부드러움과 단단함, 흐름성과 응고성 등의 현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분자 구조식으로 분자의 특성을 이해하는 안목만 생기면 식품의 모든 물성 현상이 결국  ‘길이가 공간을 지배하고, 가지가 특성을 부여한다.’, ‘분자는 맹렬이 진동하고 ‘끼리끼리 모이려 한다.’ 와 같은 몇 가지 특성으로 설명이 된다.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한 방송에서 가공식품과 첨가물에 대한 무도한 매도 때문이었다. 오해와 편견으로 파편화된 지식을 제 입맛에 대로 짜깁기를 하면 얼마나 괴물 같은 지식이 되는 지를 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썼는데 GMO에 대한 책까지 썼으니 그것으로 내 할 일은 한 것 같다.
그리고 향료회사에 다니는데 합성향(조합향)에 대한 오해가 너무 심해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를 쓰게 되었는데, 그 책 때문에 맛에 대한 책도 몇 권 쓰고 맛에 대한 인지기작에 대해 ‘감각 착각 환각’ 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연구소에서 직접 하던 업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식품회사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하던 업무는 증점, 유화, 동결 등 물성에 관련된 업무였다. 몇 권 책을 쓰면서도 그런 물성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물성의 원리>를 썼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정리하여 책을 써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감은 있었지만 참고할 만한 책도 없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먼저 식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물의 물리적 특성에 대해서 썼다. 이들 4가지 분자는 식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자이자 생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자이기도 하다. 이들만 제대로 이해하면 식품과 식품의 물성뿐 아니라 생명 현상의 이해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식품에 대한 나름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바로 식품의 제조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런 천재가 식품회사에서 일하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물성의 원리가 실제 제품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좀 더 구체적인 제품 사례를 이해해야 식품에도 원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책을 쓴 것이다. 증점, 겔화, 유화, 고체화 기술을 소스, 젤리, 유가공, 육가공, 두부, 제빵, 아이스크림을 통해 알아보았다.  
지금까지 식품에는 경험은 풍부했지만 그것을 통합하는 이론은 부족했다. 세상에 넘치고 넘치는 것이 정보와 지식이다. 아무리 좋은 경험, 지식, 이론도 그것을 포용할 구조가 없으면 이내 힘없이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경험과 지식을 포용할 제대로 된 틀이 있으면 개별적인 지식이 제 자리를 찾아가 연결되고 쌓여서 힘이 되고 의미가 된다. 지식들에서 군더더기는 사라지고 핵심이 서로 연결되어 현상은 명료해지고 힘이 생긴다. 그 힘은 강한 흡착력을 발휘하여 굴릴 때 마다 지식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하고, 공부가 흥미로워진다.
나는 물성에 대한 생각의 정리를 끝으로 내가 식품에서 해야 할 숙제는 대략 마친 것 같다. 드디어 홀가분해졌다.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9-07-20 / 등록 2018-07-30 / 조회 : 1178 (166)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