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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파편화 : Fragmented knowledge

- 복잡계 : 분할 정복 ?,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 파편화 : 정보의 폭증, 컴퓨터가 답을 구할 수 있을까 ?
- 불량화 : 오해와 모순, 잘못된 식품 지식
- 통찰력 : 지식 생태계, 온전한 지식 Whole knowledge

- 분할 정복법 Divide & Conquer
- 환원주의
- 식품정보의 파편화로 불량지식 양산되었다

- 과학의 한계
- 원근의 법칙 : 가까우면 알 수 없어진다

● 이분법적 사유의 전통
  - 플라톤의 이원론 : 세계를 이데아 세계와 현상 세계로 구분
  - 그리스도교의 이분법 : 천국과 지옥, 내세와 현세, 영혼과 육체 등
  - 17세기 계몽주의 시대 : 이성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분리
     인간 - 자연, 남성 - 여성, 이성 - 감정, 정신 - 육체, 문명 - 야만, 진보 - 미개
  - 문제점 :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분리, 성 차별의 시각, 모든 것을 분리하는 사고

● 기계론적 환원주의
기계론 자연의 모든 운동과 변화(화학적 변화, 생명 현상까지 포함)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환원하여 설명 가능
환원주의란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의 성질을 이해하면 그 성질의 합으로 전체를 설명. (분할 정복)
오늘날 물리학을 포함해서 과학적 사상의 주류는 환원주의로 보여집니다.
- 물리학, 도구적 합리성 :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입자들의 기계적인 인과 관계로 환원시킴
-  환원주의로서의 근대 사유 구조 :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단순하고 일반적인 인과 법칙으로 환원시켜 재구성함
문제점
  - 자연 현상의 다양하고 복잡한 양태들을 무시 :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거나 파악하기에 부적합함
  - '잘못 놓여진 구성체의 오류' : 화이트헤드(Whitehead, A. N.)가 주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간의 경험보다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이론을 진리라고 여기는 오류

● 학자에서 전문가로
No one knows everything, Somone knows something, All knowledge resides in network
A specialist is one who knows everything about something and nothing anything else
전문가란 그것밖에 모르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이다

- 유영만 교수(지식생태학자 한양대 교육공학과)의 파리학과 출신들의 지식경영 추진 방법중에서

여러분이 대학의 파리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파리학사라고 가정해보자. 파리학사는 파리개론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파리 앞다리론, 파리 뒷다리론, 파리 몸통론 등 파리 각론을 배우고 졸업하기 이전에 파리를 분해조립하고 파리가 있는 현장에 가서 인턴십 등 실습을 한 다음 파리학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이제 파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고 말한다. 파리에 대해서 전문지식이 부족한 파리학사는 파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파리석사는 파리 전체를 연구하면 절대로 졸업할 수 없기 때문에 파리의 특정 부위, 예를 들면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하는 파리학과 대학원생은 파리 뒷다리를 몸통에서 분리한 다음 실험실에서 2년간 연구한 다음 ‘파리 뒷다리가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파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파리석사는 이제 무엇을 모르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에게 절대로 파리 앞다리를 물어봐서는 안 된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는 파리 앞다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파리 석사는 파리에 관한 보다 세분화된 전공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리학과 박사과정생은 파리 뒷다리를 통째로 전공해서는 절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리 뒷다리 발톱’을 전공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생은 전국추계 파리발톱 학술대회에 나가서 그 동안 연구한 파리 발톱의 특정 부위 성분이 파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부논문을 발표한다. 이런 부논문을 더욱 세분화시켜 1년생 파리 뒷다리 발톱의 성장패턴이 파리 먹이 취득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파리 박사학위는 “나만 모르는지 알았더니 남들도 다 모르는 군” 이런 깨달음이 오면 주어지는 학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리 발톱을 전공한 박사전공자간에도 발톱 부위별 전공부위가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제 파리학과 교수는 보다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해야 교수사회로 입문할 수 있다. 교수가 전공하는 파리 부위는 ‘파리 발톱에 낀 때’다. 파리 발톱에 낀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까만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리꾸리한 때를 전공하는 교수, 30년산 때나 21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 18년산이나 15년산 또는 12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로 나뉘어서 동일한 파리의 때를 전공하지만 전공영역이 달라서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끼리도 사용하는 전공용어상의 차이로 인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교수가 되면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되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파리는 파리 전체를 이해한 다음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리 특정 부위가 파리 몸통 전체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없이 파리를 이해할 수 없다.

▷ 전문화가 가속하면서 지식이 파편화하고 있다
전문지식이 확장되고 있지만 학문 간 교류는 줄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하고 있다. 산업과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의 지식은 더욱 전문화되어 왔다. 수백 년 전만 해도 그 당시 상당 부분의 지식을 섭렵한 사람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 모든 지식의 10%라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문화는 지식의 파편화라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고, 지식 세상의 숲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해 지고 있다. 나누어진 세상의 파편화된 지식에 익숙한 우리는 통찰을 잃어 가고 있으며,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의 부재는 인류 발전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정보부족이 아니라 정보과잉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사회. 이제 '버리는 노하우'를 익히고, 통찰력(Intuition)을 쌓아야 할 시점입니다.

▷ 전문화 추세가 가속되면서 지식이 파편화하고 있다는 것이 루트번스타인의 문제 인식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 기원과 의미, 활용 방법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고 있다. 지식의 양은 늘어나지만 종합적 이해력과 창의력은 퇴보하고 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빈곤하다. 이런 현상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는 ‘인터넷 지식’에 있다.  타라 브라바즌 교수가 16일 “요즘 대학들은 ‘구글 대학’이 됐다”고 꼬집었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학문을 탐구하기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해 답만 빠르게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대해서도 “논쟁이 배제된, 합의된 정보만 제공해 창의력을 잃은 세대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 속도와 정확성에서 구글을 따라잡을 검색엔진은 없다. 매일 6500만 명이 35개 언어로 접속해 2억5000만 건 이상을 검색한다. 구글이나 위키피디아가 지식의 확산, 정보격차의 해소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제공하는 지식은 획일적이고 파편화된 지식이다. 21세기는 창의력 있는 소수가 끌고 가는 시대다. 똑같은 지식 모자이크로 무장한 ‘구글 대학생’만으로는 새 시대를 헤쳐갈 수 없다.

▷ 방대한 생명의 지식에서 여기저기서 일부분만 떼어 와서(부분적으로는 옳다.) 전체를 만듬으로 결과적으로 과학적 사실과 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 많다. 신체를 여기저기서 떼어 와서 사람 모양을 만들어도 살아 있는 사람은 될 수 없듯이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부분을 모아 전체를 만들 때는 전체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경우가 많다. 특히 편견을 가질때는 더욱 그러하다.

▷ 다른 분야를 알아보지 않고서는 어떤 분야를 설명할 수 없고, 모든 분야를 알지 못하고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는 게 보통이다...어느 한 관점에서만 보면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함께 직조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언론계와 학계에는 무수히 쪼개진 좁은 전문 분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성향이 너무나 깊숙이 내재돼 있다. 이런 성향은 현실세계가 분명하게 작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으며 현상간의 경계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버린다

▷ 우리가 인터넷 서핑을 하며 서치하고, 스킵하고, 스캐닝하는 동안 이를 관장하는 신경회로는 강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깊이 사고하고, 분석하고, 통찰하는 능력은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 서핑의 영향력을 단순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뇌가소성이라는 뇌과학 이론을 빌어 뇌구조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하게 진단해낸다. 즉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듯 정보나 의사소통 자체를 단순화, 분절화 함으로써 깊이 생각하는 방법 자체를 잃어버린 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이 건망증, 집중력 장애를 호소하는 까닭도 모두 이런 이유에서라고 강조한다

▷ 물리과학은 19세기 중반에 이미 대학교육을 받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의 생물학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전문화와 세분화로 공중이 접근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었고, 과학의 내용에 대한 무지와 거대해져버린 과학의 힘이 개개인의 무력감을 증폭시켰으며, 과학의 영향력이 증가함으로써 일상 생활 속에서 과학의 결과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복합적인 요소 때문에 공중의 과학에 대한 반감이 급격히 증폭되었다고 분석했다 (Davis 1976).

▷ 지식사회의 역설
전문화를 통한 지식의 파편화로 인해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 학문간의 교류는 줄고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하고 있는 지식사회의 역설적 현실은 지식의 풍요속에서 암흑기를 맞고 있는 현대사회의 실상이다. 전문가를 통한 ‘분석과잉‘시대인 동시에 ‘통찰력부재‘의 시대인 것이다. 전문화는 단순화의 다른 모습일 뿐인 것이다. 전문의는 많지만 정작 온전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종합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인문학 교육은 이 나라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진짜 인문학 교육은 그렇죠. 우리는 인문학을 너무나도 전문화시켜 더 이상 본래처럼 폭넓은 적용범위와 시민 사회 참여의 확장된 능력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지난 100년 사이 '전문가' 개념이 '교육받은 종합지식인'의 자리를 찬탈하고 지적 성취의 유일한 모델이 됐습니다.
전문화도 물론 빛을 발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전문가 모델만이 지배하게 된 것의 대가는 엄청납니다. 주제들은 점점 더 작은 조각들로 분해되고 기술적이고 난해한 것에 보다 큰 초점이 맞춰집니다. 심지어 우리는 문학 연구조차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포스트모던 해체주의와 마주치지 전까지는요.
오늘날 대학생의 학업은 하나 빼고 모든 관심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폭을 좁힙니다. 보다 적은 것에 대해 보다 많이 배우죠. 만물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렇습니다. 제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여기 인류학의 기초 분과들이 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수록 기술적인 능력 외의 가치들은 점차 더 미심쩍게 여겨집니다. 이런 질문들-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 -은 점점 더 회의적인 대우를 받고 옆으로 치워집니다.
이로써 세속적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은 교육과 가치의 연관성을 근본주의자들에게 내주고 맙니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가치, 신정(神政)의 절대 가치를 확장하기 위해 주저없이 교육을 이용합니다. 그러는 동안 민주주의의 가치와 목소리는 침묵합니다. 우리는 그런 가치들을 잃어버렸거나, 마찬가지로 안타깝게도 그 가치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거나 가르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런 사회적 가치의 기피는 공동체 봉사 프로그램의 폭발적 증가와 모순되는 현상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이런 노력들은 전적으로 학과 외적인 것들로 남습니다. 그 결과, 시민 정신은 진지한 사유와 성숙한 목적을 지향하는 세계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간단히 말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충동이 있어도 교육 기관은 힘을 실어주기보다 학습된 무기력을 생성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런 조합, 시민 참여의 과도한 단순화, 전문가의 이상화, 지식의 파편화, 기술적 숙련에 대한 강조, 학문적 진실성의 조건으로서의 중립성은 독이 됩니다. 교육과 공공선, 지적 진실성과 인간 자유 사이의 필수적인 관계를 추구할 때에 말입니다."

 

학계를 떠나는 한 박사과정 학생의 뜨거운 질타
September 23, 2013 by veritaholic 8 Comments

이달 초,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의 한 박사과정 학생은 졸업을 몇 달 앞둔 상황에서 학교를 그만두며 학교의 모든 연구원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편지는 1000 번이 넘는 트위터의 RT와 13000 번의 페이스북 like 를 받았습니다. 아래는 그 편지의 요약입니다.

내가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나는 학계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학계는 차라리 거대한 지원금을 집어 삼키면서 무의미한 결과들만을 양산하는 진공청소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학문의 진전보다 자신의 이력만을 신경쓰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아래에 구체적인 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나는 두 가지를 먼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여러 곳의 학문적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점들입니다. 또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내가 말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특정한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학계는 더 이상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나는 오늘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실제로 무언가를 ‘배우고’ 학문에 어떤 기여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만약 당신도 그렇다면, 내가 아래에 기술한 좌절들에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닙니다. 비즈니스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의 목적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를 이해하고, 진실을 찾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나는 이 진실을 찾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단호한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학계에 들어와 가장 처음 배우는 것은 ‘너무 정직함’이 곧 ‘너무 솔직함’으로도 불리며 여러분의 단점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입니다. 또 자신의 연구를 ‘광고’해야 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며, 단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사람들은 연구의 내용보다는 화려한 발표에 신경을 쓰며, 인맥 역시 부도덕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활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학계의 모든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알고 나면 이런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연구가 가끔씩 나온다는 것에 오히려 놀라게 됩니다.

2. 젊은이여, 열심히 연구하라. 언젠가는 당신도 연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가끔 학계의 많은 연구가 나와 같은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없음을 느낍니다. 진정 학문을 전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교수들이 학문 연구에 쓰는 시간은 극히 적습니다. 많은 이들이 학생이 작성한 논문을 읽어주는 댓가로 자신을 저자에 포함시키기를 요구합니다. 학생들 역시, 자신이 연구를 하는 이유가 언젠가 자신도 직접 연구를 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인지 궁금해 합니다.

3. 학계의 퇴행적 현실: 박사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선택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교수의 취향에 따라 연구 주제를 할당받게 된다는 사실과, 이 주제가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님이 밝혀졌을 때의 책임을 학생들이 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지도교수와의 알력은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결국 학생들은 현실적 이유로 스스로를 어느 정도 속이게 되고 이는 이들의 미래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4. 독창성은 곧 독이 된다: 독창적인 연구는 대체로 출판되기 힘듭니다. 또 오늘날과 같이 논문의 수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어도 10년이 걸릴 지 모르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상적인 학계라면, 이미 충분한 실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도전을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쉽게 논문을 쓸 수 있는 문제에만 도전하고 있고, 그 결과 그들의 이력서에는 하나의 분야에 있어 작은 차이들을 발표한 많은 수의 논문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5. 유행을 따르는 연구자들: 사실 유행하는 연구주제를 선택하는 것은 오늘날 연구자들에게 매우 편리한 방법입니다.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왜 이 주제를 택했는지를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당신의 연구를 사람들이 인용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인용지수의 상승은 당신의 인지도를 높이며, 당신은 당신과 비슷한 기회주의적 학자들 사이의 네트워크에 낄 수 있고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경향은 연구의 질을 낮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은 그 분야의 성장이 정체되었을 때 그 유행했던 연구방법을 적절하지 않은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려 합니다.

6. 숫자에 중독된 연구자들: 오늘날 수많은 연구자들은 인용 빈도(citations), 피인용지수(impact factors), 논문 수 등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때로 이들은 익명으로 다른 사람의 논문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논문을 인용하라는 평을 남깁니다. EPFL의 총장은 매년 우리 학교의 순위를 이야기하는 전체 메일을 보냈습니다. 나는 항상 이 순위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만약 총장이 우리 학교의 연구가 세상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했고, 어떻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는지를 말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7. 옹고집과 폭력성: 나는 종종 학계의 많은 이들이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거나, 또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한 것에 악이 받혀 늦게서야 남들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학계에서의 공격성은 다양하게 표출됩니다. 이들은 피어리뷰를 통해 다른 이를 공격하며 학회에서 직접 서로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나는 한 분야의 가장 뛰어난 학자들 조차 새로운 방법론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학계는 가장 성공적인 사기 시스템: 학계의 모든 이들은 진지하게 자신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존재들인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돈이 학계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결과로 자신이 속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해되는 결과를 내어놓고 있으며, 그 결과 이들의 작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거의 가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의 것들이 나의 관점에서 본 학계의 문제점들입니다. 아마 다른 이들은 또 다른 문제점들을 여기에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진짜 학문”은 이상적인 개념일 뿐이며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 역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것은 개인적인 결정일 뿐이며, 이것은 전혀 해결책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고, 그들이 어떤 책임감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아직 나의 동년배들 중에는 “학계”와 “학문”이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접고, 다른 방법으로 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추구할 생각입니다.
한 때 나도 내 이름 뒤에 붙을 ‘박사’라는 호칭을 꿈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꿈을 버립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난 4년간 배웠던 모든 지식이 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 점에 대해서는 나는 이 학교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울껀가, 불안을 키울껀가?
-TED강연 by Jeniffer Senior

"제가 태어났을 무렵에 아이를 키우는 법에 관한 책은 딱 한 권뿐이었습니다. 스폭 박사님이 쓴 책이었죠.(웃음) 제 농담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책을 쓴 분은 벤자민 스폭이고 책 제목은 "아기와 아동을 돌보기 위한 상식"입니다. 그 책은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5천만권이 팔렸습니다. 저는 6살짜리 아이의 엄마로서 반스 앤 노블 책방으로 들어가이것을 마주칩니다. 책장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은 놀랍기만 합니다.
친환경적인 아이 키우기, 글루텐 없이 아이 키우기, 질병 없는 아이 키우기, 좀 오싹하네요. 1개 국어밖에 쓰지 않는 집에서도 아이가 2개 국어를 말할 수 있게 키우는 안내서도 있습니다. 경제 관념이 확실한 아이 키우기, 과학적 사고를 하는 아이 키우기, 요가를 잘 하는 아이 키우기에 관한 책도 있습니다. 갓난 아기에게 핵폭탄 해체하는 법을가르치는 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방법에 관한 책이 다 있습니다.
모두 좋은 의도로 쓴 책들입니다. 이 중 많은 책들이 내용도 훌륭하겠죠. 미안한 말이지만 종합해서 이 책장을 쳐다봤을 때 '도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이 보입니다. 우리가 다함께 공황상태에 놓인 것을 기리는 화려한 색의 기념비가 보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 괴로움과 혼란을 동반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 키우기 게시판과 검증된 연구가 있기 훨씬 전 부터 몇 천년 동안 인류가 잘 해오던 일을 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일까요? 왜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부모가 되는 것을 위기로 여길까요?"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6-01-04 / 등록 2011-01-20 / 조회 : 24847 (260)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