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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평가 : 공정하기만 하여도 대부분 해결된다

공정하기만 하여도 대부분 해결된다
- 식품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
- 음식은 그저 음식일 뿐

한신대 윤평중 교수가 애용하는 ‘종합병원 접수 번호표’ 사례는 공정에 균열이 생길 때 나타나는 폭발력을 설명해준다. “접수 차례를 알려주는 번호표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직원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접수대로 몰려갔습니다. 내가 못 듣거나 직원이 순서를 착각하면 억울해지니까. 평소 1시간씩 말없이 기다리던 시민의식이 갑자기 낮아진 걸까요? 번호표는 공정을 보장해주는 제도입니다. 공정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사람들은 1시간도 기다리지만 그게 없을 때는 1분도 못 견딥니다.”

공정함을 인식하는 불공정한 마음
최초입력 2019.08.27 06:01:00

[송민령의 뇌과학 에세이-41]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언제,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직업과 결혼을 비롯한 많은 일들이 노력과 능력뿐만 아니라,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여러 요인들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었다.
누군가의 성공이나 실패에 노력, 능력, 우연이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논의되고 있는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배경 지식, 개인적인 경험(모든 사람은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평가한다), 이데올로기 등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노력, 능력, 기회, 우연이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제도나 현상이 공정한지를 두고 논쟁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에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함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노력, 능력, 기회, 우연의 상호작용을 배제하기 위해서 2인용 카드 게임이 활용되었다. 상대방이 내놓은 카드의 숫자보다 더 큰 숫자의 카드를 하나씩 내 놓아야 하며, 카드를 먼저 소진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매 회전마다 9개의 카드를 받았으며 7회전을 거쳐서 승자를 판별하였다.
연구자들은 우연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3가지 다른 카드 교환 규칙을 활용했다. '진보적인 교환(progressive exchange)' 규칙에서는 이전 회전에서 이긴 참가자의 카드에서 가장 숫자가 큰 (가장 좋은) 카드 1~2개를 꺼내서 무작위로 다른 카드로 바꾸고, 이전 회전에서 진 참가자에게서 가장 숫자가 작은 (가장 나쁜) 카드 1~2개를 꺼내서 다른 카드로 바꾼 뒤 게임을 시작했다. 이전 회전에서 이긴 사람에게 조금 더 불리하게, 이전 회전에서 이긴 사람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바꿔주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역진적인 교환(regressive exchange)' 규칙에서는, 이전 회전에서 이긴 참가자에게서 가장 나쁜 카드 1~2개를 빼서 다른 카드로 바꾸고, 이전에 진 참가자에게서 가장 좋은 카드 1~2개를 빼서 다른 카드로 바꾼 뒤 게임을 진행했다. 진보적인 교환 규칙과 달리 이전에 이긴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이전에 진 사람에게 더 불리하게 바꿔주는 셈이다.
카드 교환 자체가 주는 영향을 제어하기 위해서, 무작위 교환 규칙도 추가되었다. 이 규칙에서는 각 참가자에게서 무작위로 카드 1~2개를 뽑아서 다른 카드로 무작위로 바꾸었다. 이 규칙은 어느 한 쪽 참가자를 더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만들지 않는다.

CC BY-NC /출쳐=MD Molina, M Bucca & MW Macy (2019) It
▲ CC BY-NC /출쳐=MD Molina, M Bucca & MW Macy (2019) It's not just how the game is played, it's whether you win or lose. Science Advances.


실험결과(위 그림), 게임에서 이긴 사람들은 게임에서 진 사람보다 게임이 공정하다고 인식할 확률이 2배 더 높았다. 게임에서 이긴 사람들은 우연보다 능력이 게임의 성패에서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임에서 진 사람과 이긴 사람 사이의 인식 차이는 진보적 교환이나 역진적 교환의 정도가 클수록 (카드 1개를 교환할 때 보다는 2개를 교환할 때)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 결과는 공정함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이 공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결과를 복잡한 실제 세상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조심스럽다. 이 게임은 능력과 노력이 작용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디자인되는 등 실제 세상과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함이 수시로 논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공정함을 인식하는 우리 마음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나아가 공정함에 대한 인식이 이토록 불완전하다면, 공정함을 추구하는 방식이 어때야 할지도 돌이켜보게 해 준다. 공정함의 절대선을 기준에 두고 불완전한 인간을 비판하기 보다는, 불공정을 비판하는 정도와 방식이 공정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송민령 작가(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