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Mobile II
Hint Food 맛과향 Diet Health 불량지식 자연과학 My Book 유튜브 Frims 원 료 제 품 Update Site

원료감미료  ≫ 설탕

설탕은 맛의 전령사 : 정재훈

설탕 : 인체에 역할
- 목숨을 건 중독 : 달면 삼켜라
- 설탕은 역사상 최고의 감미료다
- 설탕은 만병통치약이었다
- 설탕은 약이다
- 설탕은 해피푸드
- 설탕은 권력이었다

줄 서서 먹는 ‘설탕’ 흑당 (조금 진지한 버전)

올해는 흑당음료의 인기가 대단하다. 음료에서 워낙 인기가 있자 다른 식품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설탕(흑당)하면 당뇨와 비만 그리고 심장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세계의 모든 보건기구들이 그렇게 경계하고 줄이고자 애쓰는 대상이기도 하다. 해외 건강 서적 중에는 설탕디톡스, 슈가프리를 외치며 설탕을 거의 독극물 수준으로 폄하하는 책이 수 백 종류고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흑당은 정제당(백설탕)보다 영양 측면에서 특별히 나은 점이 없다. 정제당이 아닌 원당 심지어 사탕수수 원액즙을 열처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고 해도 정제당과 건강상의 효능의 차이는 별로 없다. 실제 흑당과 백설탕이 확실히 다른 것은 색과 맛(향)인데 원래 향이라고 하는 것이 0.1%도 안 되는 미량 성분에 의한 것이고, 색도 0.1% 이하 색소 성분에 의한 것이라, 감각적 차이인 것이지 영양적 차이가 아닌 것이다. 사탕수수대신 천연 벌꿀이나 아가베시럽을 택해도 별 차이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이나 미네랄을 모두 채우려면 Kg단위로 먹어도 부족하다.
흑당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도 아마 흑당과 설탕과 영양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따지고 싶지 않고 그냥 맛과 향에 취해 그래도 흑당이면 조금 죄책감을 덜 가져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할 것이다. 그래봐야 흑당 밀크 버블티 한 잔에 한국인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72g)의 절반에 해당하는 당류가 들어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보건강국과 건강전도사들 핍박에 눌려있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단맛에 대한 욕망을 잠시 흑당의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일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실 욕망은 풍선과 같아서 누른다고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다른 쪽으로 삐져나온다.

- 포도당이 시작이다
이런 단맛의 근원적인 죄는 포도당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식품에 대한 모든 죄는 포도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설탕이고, 설탕은 우리 몸에 들어가면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되고, 과당은 다시 포도당으로 바뀐다. 설탕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포도당이나 과당 둘 중에 하나 또는 둘 다 나쁘다고 하는 셈이다. 예전에는 설탕은 나빠도 과당은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과당이 악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스티븐 R. 건드리 박사는 <플랜트 패러독스>를 통해 과일이 포도당 대신 과당을 만드는 것은 포식자를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과일에 포도당이 풍부하면 과일을 먹는 만큼 인슐린 수치가 높아지고, 인슐린 수치가 높아지면 렙틴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포만감을 느끼게 되고 그만 먹게 되는데, 과당이 풍부하면 인슐린 수치도 렙틴 수치도 높아지지 않아 포만감 즉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포식자는 계속 많이 먹게 되고, 식물은 그만큼 과일 속에 씨앗을 널리 퍼뜨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일은 과거에 칼로리가 부족하거나 1년에 1번 여름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1년 내내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지금은 과일이 당신을 아프게 하거나 살찌게 만들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건드리 박사도 틀렸다. 식물은 과일을 만들기 위해 과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설탕을 만들기 위해 과당을 만들기 때문이다. 식물의 위대한 점은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합성한다는 것이다. 이 포도당이 모든 유기물의 원천이라 모든 동물은 근본적으로는 이 포도당 덕분에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의 다른 부위에도 이 포도당을 공급받아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전분, 셀룰로스, 지방을 만들 수 있고 거기에 질소와 황 같은 몇 가지 분자를 추가하면 단백질과 다른 모든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점이 식물은 체관으로 포도당을 바로 보내지 않고 포도당을 이당류인 설탕의 형태로 바꾸어 보낸다는 것이다. 잎에서 합성한 포도당의 절반을 과당으로 바꾸고, 포도당과 과당을 합하여 설탕으로 전환하여 체관을 통해 식물의 다른 부위로 보낸다. 그러면 식물의 다른 부위는 우리가 설탕을 다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하여 사용을 하듯이 설탕을 분해하여 전분이나 셀룰로스를 만들거나 다른 수천만종의 유기물을 만들어 낸다.
생명의 시작은 포도당이지만 식물의 혈관(체관)에 흐르는 것은 설탕이고 설탕이 없으면 식물도 동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단맛에 대한 욕망은 줄이지 못한 체 과거에 비하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저렴한 가격에 설탕을 무제한 공급받자, 밥만큼 많이 설탕을 먹으면서 그 죄를 먹는 자신이 아닌 설탕에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설탕이 없다면 식물도 없고 식물이 없다면 동물도 없다는 사실 뿐이다.

- 꿀맛이야!
지금이야 설탕이 너무나 저렴하고 흔해져서 과도한 사용으로 악의 축으로 꼽히지만 인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설탕은 구경조차 못했다. 과거에 엄마 젖을 제외하고 음식으로 처음 경험한 단맛이 과일과 꿀이었을 것이다. 고대 벽화를 보면 인류는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야생 벌꿀을 채취해 왔다. 꿀벌을 ‘길들여서’ 양봉업을 시작한 것도 4,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4,0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글에는 신랑은 ‘꿀같이 감미롭고’, 신부의 포옹은 ‘꿀보다 더 향기롭고’, 신방은 ‘꿀이 가득하다’고 묘사되었다. 구약성서에 약속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되어 있다. 과거에는 꿀은 가장 맛있는 최고의 감미료였고, 그것에 대한 욕망은 대단했다. 오늘날 설탕은 너무나 흔해졌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설탕을 접한 유럽인도 12세기 전까지는 설탕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유럽인이 설탕을 처음 만난 것은 십자군 원정대가 성지를 되찾기 위해 원정을 시작한 이후이다. 그리고 베네치아가 아랍에서 설탕을 가져와 판매하는 중심지가 되었고, 당시 유럽인들은 설탕을 후추나 생강처럼 향료 겸 약재로 다뤘다.
15세기에 들어서야 유럽의 부유층들은 설탕을 약이 아닌 음식의 일부로 보기 시작했다. 음식의 풍미를 높여 맛의 즐거움을 높여주는 설탕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까지도 설탕은 약국에서 취급될 만큼 귀중한 ‘약품’이었다. 따라서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설탕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신사나 귀족, 그리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은 무역상인 정도였다. 특히 당시 영국에는 엄청난 재산을 모은 상인계급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들은 자신의 능력(재력)을 뽐내기 위해 아낌없이 사치를 부렸고, 귀족 또한 상인계급에게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려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외국에서 들어온 진귀한 상품들은 모두 고가였으므로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을 나타내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다. 차, 설탕, 향신료는 처음에는 맛보다 체면을 높이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 요리에는 온갖 향료를 아낌없이 뿌렸는데 그때의 레시피를 지금 지금 재현해보면 향신료 맛이 너무 강해서 선뜻 손이 가기 힘들다 정도라고 한다. 그 때는 맛이 아니라 동일한 무게의 은과 비슷할 정도로 값비싼 향신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자신이 능력자임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 설탕은 나쁘다고요?
지금은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나트륨(소금) 저감화에 이어 당류(설탕) 저감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70년대 전만 해도 구경조차 힘들었던 물건이었다. 그때는 설탕 자체가 훌륭한 선물이었고, 설탕을 단순히 물에 타서 마시는 것도 호사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미 과도한 당류 섭취가 문제가 되었다. 아니 당류보다는 비만과 심장병이 큰 문제였다. 그것의 원인으로 인류가 새롭게 섭취하기 시작한 설탕에 대한 비난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설탕소비량을 1970년부터 1985년 사이에 40%나 줄이기도 했다. 문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만율이나 질병은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그 시기에 유아 비만률만 3배 증가하였다. 설탕을 줄인 만큼 (액상)과당을 더 먹은 것이다. 설탕은 현대에 들어와 많이 먹은 것이고 과당은 원래 과일에 많은 천연당이라 좋다고 했는데 그런 설명이 완전히 무색해진 것이다. 지금은 과당에 대한 비난도 대단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설탕을 칼로리가 없는 고감미 감미료로 대체하는 노력도 별로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의 감미료 시장은 80% 정도는 설탕이 차지하고 나머지 10%는 과당 그리고 10%를 칼로리가 없는 고감미 감미료가 차지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당류저감화가 나트륨 저감화보다 훨씬 쉽다. 짠맛은 혀에 존재하는 이온(나트륨)채널 형 수용체로 감각하는 것이라 그 통로를 통과하여 짠맛을 부여할 물질은 사실상 소금(염화나트륨) 말고는 없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금 사용량을 줄이고 그것에 적응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맛의 물질은 아주 많다. 혀에서 단맛을 감각하는 수용체가 이온이 통과하는 채널형이 아니라 더듬이처럼 분자의 일부를 더듬어서(결합해서) 감각하는 GPCR형이라 유사한 구조의 여러 가지 분자와 반응한다. 혀의 단맛 수용체는 한가지지만 비슷한 형태의 분자인 포도당, 과당, 유당, 맥아당 같이 당류와 결합하여 단맛을 감각한다. 그리고 소르비톨, 자일리톨, 알룰로스처럼 칼로리는 적은 것도 있고, 심지어 설탕보다 수백배 강력하게 수용체와 결합하는 물질도 있다. 당류도 아니면서 우연히 단맛수용체와 강력하게 결합하는 물질은 소량만 사용해도 단맛을 주고 우리 몸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분자가 아니라 칼로리도 없다. 설탕 대신에 단맛은 부여하고 칼로리는 없는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당류저감화 소재인 것이다.

- 당류저감화가 힘든 진짜 이유?
감미는 높고 칼로리는 높은 고감미 감미제로 처음 발견된 것이 사카린saccharin인데 벌써 140년 전(1879년)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1885년부터 상업적인 이용이 시작되어 처음에는 당뇨 환자에게 사용되다 금방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31년에는 천연 고감미제인 스테비아가 개발되었고, 1937년 사이클라메이트, 1965년 아스파탐, 1967년 아세설팜, 1976년 수크랄로스, 1996년 네오탐이 개발되었다.
스테비아(식물추출)는 설탕의 200배, 소마틴Thaumatin(단백질)은 2,000~3,000배, 모넬린Monelin(단백질)은 3,000배의 감미를 가지면서 천연이다. 그리고 아세설팜케이는 200배, 아스파탐도 200배, 수크랄로스Sucralose는 600배의 감미를 가지면서 합성이다. 이처럼 칼로리는 없이 단맛을 내는 물질이 다양한데 왜 당류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지 무작정 설탕을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탕은 우리 몸에는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되기 때문에 설탕이 나쁘다는 말은 포도당 또는 과당이 나쁘다는 주장이거나 둘 다 나쁘다는 주장인 셈이다. 사실 당부하와 인슐린 요동을 일으키는 것은 포도당이다. 과당은 당부하가 없어서 포도당보다 좋아 보이나 포만감을 주지 못하고 어차피 포도당으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에 간에 부담을 준다. 과당이 나쁘다면 과일이나 꿀, 아가베시럽 등은 설탕보다 나쁜 음식이 되고, 포도당이 나쁘다면 모든 전분은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되기 때문에 쌀, 밀가루, 감자, 고구마 등이 나쁜 음식이 된다. 결국 문제는 결국 양이지 종류가 아닌 셈이다. 실제 당뇨는 당류의 소비량이 아니라 비만율과 관련이 되어 있다. 설탕을 적게 먹어도 비만율이 높아지면 당뇨도 증가하고, 설탕의 소비가 많아도 다른 것은 적게먹어 비만율이 낮으면 당뇨도 적다. 설탕이 빵, 파스타, 감자 등 다른 탄수화물 식품보다 혈당을 더 올리는 것도 아닌데 설탕만 비난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총 식사량을 조절하고, 적당히 운동하고, 생활태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지 특정 음식을 문제 삼아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식품회사들은 무설탕 제품과 제로칼로리 제품을 정말 많이 출시하였다. 단지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차갑게 외면을 받아 금방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그나마 좀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 다이어트 콜라인데 1982년에 발매된 이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카페인 덕분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왜 칼로리가 없이 단맛만 주는 감미료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렇게 성과가 적은 것일까? 한마디로 우리 몸이 생각보다 대단히 똑똑하기 때문이다. 감미만 주고 칼로리가 없는 감미료는 우리의 욕망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 만약 단맛이 나지만 에너지가 없는 음식과 불쾌한 맛이지만 에너지가 많은 음식을 주면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뇌는 최종적으로 후자를 선택한다. 쥐에게 설탕(단맛+칼로리)과 덱스트린(칼로리)을 녹인 물을 제공하면 당연히 설탕물을 좋아하지만 아스파탐(단맛)과 덱스트린(칼로리)을 주면 처음에는 잠시 단맛을 선호해도 이내 칼로리를 선택한다. 심지어 덱스트린에 쓴맛 물질을 추가해 넣어도 단맛이 나고 칼로리가 없는 것보다 맛은 쓰지만 칼로리가 많은 것을 선택한다.
인간의 몸도 똑같다. 혀로 느끼는 것은 감미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것은 칼로리이다. 설탕이던 밥이던 뱃속에 들어가 분해가 되어 포도당을 공급해야 만족을 하지 입안에서 단맛만 주는 것은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한다. 우리 몸은 내장기관에 존재하는 감각세포를 통해 분해되어 흡수되는 포도당의 총량을 정확하게 감각하기 때문에 포도당을 제공하지 못하는 고감미 감미료는 최종적인 만족감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혀는 속였지만 음식을 분해하여 흡수되는 칼로리의 총량까지 정확히 감각하는 내장기관을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욕망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타협할까’의 문제이지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무작정 먹지 않고 참겠다는 것은 물속에서 숨 참기와 비슷하다 참으면 참을수록 고통은 증가하고 폭발적인 숨쉬기로 이어질 뿐이다.

- 천천히 줄여야 한다
사실 우리가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보다 감미를 30~50%만 강하게 느끼게 하면 설탕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단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감칠맛과 쓴맛 또는 후각의 수용체와 같은 구조인데, 다른 감각에 비해 유난히 둔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의 단맛수용체는 설탕(포도당, 과당)같은 당류 물질과 지금보다 강하게 결합하면 그만큼 적은 양으로 충분히 달다고 느끼기 때문에 섭취량이 적어질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영양분은 포도당이다. 과거에는 탄수화물의 섭취량이 80%가 넘기도 했는데 지금도 탄수화물의 비중이 60%가 넘는다. 그리고 탄수화물은 쌀로 먹든, 밀로 먹든, 옥수수로 먹든, 감자로 먹는 결국 전분의 형태이고 분해되면 포도당이 된다. 밥을 먹든, 국수를 먹든, 빵을 먹든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식사를 하는 먹는 것의 평균 60% 이상은 포도당인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주목적은 우리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을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칼로리를 얻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이산화탄소와 물로 완전히 분해하면서 만들어지는 ATP를 생명의 배터리로 쓰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은 비타민도 미네랄도 아닌 3대 영양소이며 그 중에 특히 포도당(탄수화물)이다.
만약에 단맛을 쓴맛처럼 소량이어도 충분히 강하게 느낀다면 우리는 소량의 단맛(포도당)물질에도 강하게 반응하여 우리는 적은 양이 탄수화물에도 만족을 할 것이다. 단맛은 약하게 느끼고 빨리 사라져야 계속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이지 만일 포도 한 알을 먹고 단맛이 입안에 꽉 차 사라지지 않는다면 누가 포도 한 송이를 다 먹으려 하겠는가. 단맛은 생존을 위해 많은 양의 당유를 섭취하도록 약하게 반응하게 설계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던 원시인에 적합한 몸과 욕망을 가지고, 전화기 버튼만 누르면 최고의 요리비법으로 튀겨진 통닭이 우리의 입안으로 날아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정도면 잘 선방하고 있는 것이다.

- 설탕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욕망이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식품과 설탕도 단순하지 않다. 설탕이 단순히 단맛만 주는 물질이면 그것을 대체하기 쉬웠을텐데 설탕은 음식의 맛뿐 아니라 물성도 변화시킨다. 수분을 끌어당겨 음식에 촉촉함을 유지시키고, 같은 원리로 세균의 수분을 빼앗아 식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주며, 단백질의 응고를 방해해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 커스터드, 크림, 일본식 달걀말이 등에 설탕이 들어가는 이유 중에는 부드러운 질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도 크다. 요즘 각광받는 마카롱도 설탕이 없으면 만들기 힘든 디저트이다. 설탕은 음료에 바디감을 더하고, 과일의 맛과 색을 강화시키며, 아이스크림의 어는 온도를 낮추어 부드럽게 한다. 이처럼 식감에도 많은 영향을 주지만 향에도 영향을 준다.
설탕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캐러멜’ 반응이나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온갖 풍미물질을 만든다. 여러 가지 당들은 100도(보통 16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온갖 화학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런 반응이 폭발적이고 놀라운 향을 만든다. 우리는 설탕 덕분에 삶을 즐거움도 높아지고 몸속 지방의 두께도 높아진다.
---------
설탕, 우리 몸에도 달콤할까? @정재훈
2015년 9월 15일
물은 마실 수 있었다. 허니버터칩도 괜찮았다. 그릭 요구르트는 몇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퀴노아와 렌틸콩을 넣은 즉석밥도 좋았다. 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는 매번 먼저 시식을 해보고 나서 글을 썼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눈앞에 놓인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틀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설탕을 먹는 걸 좋아한다”고 썼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은 설탕한 스푼을 입속에 털어 넣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을 찌푸린다.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맛인데, 순수한 단맛의 결정체인 설탕을 그대로 먹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맥락 때문이다. 본래 사람에게 음식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 맛이란 별 의미가 없다. 소금물 실험으로 내 입맛에 딱 맞는 냉면 육수의 짠맛을 찾기는 어렵다. 적절한 짠맛은 면과 고명과 육수가 합쳐져 만들어 진 맥락 속에서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좋아하는 단맛의 강도 역시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모넬 화학감각연구소에서 유아를 대상으로 행한 실험은 맛의 맥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아 14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는 설탕물을 정기적으로 먹인 집 아이들과 설탕물을 주지 않은 집 아이들로 나누어 생후 6개월째 설탕물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달콤한 설탕물을 여러 번 먹어본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단물을 더 좋아했고 많이 마셨다. 하나의 음식으로서 설탕물의 맛이 달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생후 2년째 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실험에서도 설탕물에 대한 이런 선호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두 집단의 과일 주스에 대한 선호도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과일 주스도 단맛이 나기는 했지만 아이들 모두에게 생소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어떤 음식이 단맛이어야 적절한가에 대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어서 자주 먹으면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나타나는 선호도는 그 음식에 한정된다. “어려서부터 강한 단맛에 익숙해지면 은은한 단맛을 즐길 수 없게 되고, 모든 음식을 달게 먹는 입맛으로 굳어진다”는 주장이 종종 들리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그런 식이라면 모유보다 달콤한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모든 음식을 더 달게 먹을테지만 앞서 소개한 실험에서 분유를 먹는 아이들이 모유를 먹는 아이들보다 설탕물을 더 좋아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정 음식(설탕물)에 대한 선호도는 그 음식(설탕물)을 자주 먹었을 때만 증가했다. 성인도 마찬가지로, 밥을 먹을 때 적당하다고 느끼는 단맛과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적당하다고 느끼는 단맛은 서로 다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밥에 설탕을 뿌려 먹지는 않는다. 이렇듯 단맛의 적절함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음식과 단맛의 조합은 문화권마다 다양하다. 달게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설렁탕에 설탕을 넣어 먹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타이 음식점에는 양념통 한가운데 남탄(설탕)이 놓여 있다. 멕시코인들이 수 백 년 동안 쓴맛 그대로 즐겼던 초콜릿이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달콤해졌다. 중국에서 그대로 마시는 홍차에 영국인들은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신다. 브리야 사바랭은 또 한 번 틀렸다. 그는 “설탕이 만능 조미료이며 어떤 음식도 망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설탕이 어떤 음식과 어울리느냐의 문제는 식문화와 조리법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나물이 달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는 홍차가 달아야 하느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문제다. 그런데 음식 자체가 생소한 것일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기준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원래 방식대로 조리한 맛을 대중이 좋아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이유로 다른 나라의 낯선 음식이 도입될 때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맛을 새로운 음식이나 식재료에 덧씌우는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바로 이때 단맛이 위력을 발휘한다. 단맛은 엄마 배 속의 태아 시절부터 좋아하는 본능의 맛이고, 설탕이 없던 시절에도 젖을 빨면서 느꼈던 인류 공통의 맛이다. 단맛의 친근함이 더해지면 새로운 음식에 대한 잡식 동물 특유의 저항감은 줄어든다. 바다를 건너온 음식에 종종 뜬금없이 원래의 맥락과 관계없는 단맛이 더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피자도, 파스타도, 피클도 달다. 스테이크소스와 익힌 채소와 구운 감자도 달다. 전통적 조리 방식과 양념이 무엇이든 대한민국의 식탁에 오르면 그 음식은 달아져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한국 음식을 외국인이 접할 때도 종종 원래보다 더 많은 당이 첨가된다. 해외에서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다는 한식당 음식을 먹어보면 순두부도 달고 된장찌개도 달다. 불고기와 갈비는 당연히 더 달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부터 쓴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달달한 설탕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나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우리식과 현지식을 섞은 애매한 맛에 익숙해진 뒤에야 본래대로 요리된 정통의 맛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새로운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설탕도 그렇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탕이 생산된 해가 1953년이라고 하니 이제 고작 반세기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설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단순히 단맛 조미료에 머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설탕은 단순하지 않다. 설탕은 음식의 맛뿐 아니라 물성을 변화시킨다. 수분을 끌어당겨 음식에 촉촉함을 유지시켜주고, 같은 원리로 세균의 수분을 빼앗아 식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주며, 단백질의 응고를 방해해서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 커스터드와 크림, 일본식 달걀말이에 설탕이 들어가는 이유도 부드러운 질감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설탕은 음료에 바디감을 더해주고, 통조림 과일의 맛과 색상을 강화시키며, 아이스크림에 결정이 생기는 걸 막는다. 설탕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캐러멜화’라는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당 분자들이 서로 반응하여 수백 가지의 다양한 화합물이 만들어지면 색상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단맛은 줄고 신맛과 쓴맛이 더해져 원래의 설탕과는 전혀 다른 풍미를 띠게 된다. 설탕을 고기와 우유 같은 단백질 음식과 함께 가열하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더 복잡한 풍미를 낸다. ‘요리의 과학자’ 해럴드 맥기(Harold McGee)의 말처럼 “평범한 설탕조차 비범한 음식이다”. 문제는 이처럼 비범한 설탕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데서 발생한다. 1kg의 가격이 2000원을 넘지 않는다. 마트에서 설탕과 동일한 열량을 얻으려면 생쌀로는 2배, 즉석 밥으로는 7.5배의 비용이 든다. 비용 대비 칼로리 면에서 설탕은 밀가루, 식용유와 함께 최고 수준이다. 영양 과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저렴한 칼로리를 제공하는 설탕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건 필연적이다. 그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가정용 설탕의 판매량이 줄고, 올리고당, 꿀, 메이플 시럽 등의 대체 감미료 판매량은 늘었다. 실제 대한민국의 가정용 설탕 판매량을 총인구수로 나누어 계산해보면 매년 1인당 설탕 구입량은 2kg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반 연간 9kg에 불과하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2005년 26kg을 넘어섰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수치다. 20kg짜리 쌀이면 몰라도 설탕은 매해 2kg 이상 구입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설탕을 먹고 있다는 말인가. 답은 간접 소비 때문이다. 가공식품과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을 통해 나도 모르게 섭취하는 설탕의 양이 내가 알고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가격은 평범하고 재능은 비범한 설탕은 식품 및 외식 산업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가정에서 직접 소비하는 설탕의 양은 줄고, 산업에서 소비하는 설탕의 양은 늘어났다. 그러니 2배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자일로스를 넣어 체내 흡수를 줄였다는 설탕을 사다 먹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설탕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다.
책상에 놓인 설탕 봉지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식품 회사는 담배 회사만큼 해롭다’는 일간지 칼럼이 떠오른다.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담배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분을 쾌락과 함께 제공하는 음식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니 유감이다. 음식에 맛이 없었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동시에 식음을 전폐하여 굶어 죽는 사람도 속출했을 것이다. 설탕도, 설탕을 넣은 음식도 적당히 즐기면 유익하다. 190년 전 브리야 사바랭은 “먹는 즐거움은 절도 있게 맛보면 후회할 일이 없는 유일한 쾌락”이라고 썼다. 이번에는 그의 말이 맞다.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9-09-23 / 등록 2015-09-15 / 조회 : 4611 (333)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