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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 천연 GMO, 구황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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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김치가 찰떡궁합인 이유
안종주의 사이언스 푸드(3)
저작권자 2016.01.27 ⓒ ScienceTimes

우리 옛 조상들은 고구마를 모르고 살았다. 한국인들이 고구마를 길러 먹기 시작한 것은 2백년 남짓 된다. 1600년대 중엽부터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표류해 일본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어민이나 통신사들을 통하여 고구마란 신기한 작물이 있다는 사실이 일부 조선인들에게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고구마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 들어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조인영(趙寅永)이 1868년 펴낸 시문집 운석유고(雲石遺稿)>에서는 1763년 조엄(趙曮)이 일본에 조선통신정사로 가는 길에 대마도(對馬島)에 들러 씨고구마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게 한 것이 한반도 고구마 재배의 효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남미 열대지역이 원산지인 고구마는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감저(甘藷), 남쪽(일본)에서 왔다고 해서 남감저(南甘藷), 조엄이 가지고 왔다고 해서 조저(趙藷) 등으로 불려왔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간현웃말길 46 조엄기념관에서는 2013년부터 11월이 되면 조엄을 기리는 ‘고구마의 날’ 기념행사가 해마다 벌어진다.

처음에는 남쪽 지방에서만 재배되던 고구마는 점차 북상해 1900년대 이후에는 전국에서 키워져 모든 조선 백성들이 이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 때 고구마는 구황작물로 관심을 모았다. 나중에는 국가 차원에서 고구마 재배를 장려하고 보급했다.

고구마는 수분이 68.5％이고 수분을 뺀 주성분은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의 함량은 26.4%로 매우 높다. 그밖에 조단백(粗蛋白) 1.8％, 조지방 0.6％, 조섬유 1.3％, 회분 1.1％, 그리고 소량의 비타민 A·B·C와 포도당, 자당, 과당 등을 함유하고 있다. 고구마가 쌀 등 주식 대용의 구황작물로 재배되어왔던 것도 높은 함량의 탄수화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잎자루, 즉 고구마줄기는 나물로 일반가정 식탁에 요즘도 종종 오르고 있다. 뿌리는 그대로 쪄서 먹거나 전·튀김·엿 등으로 조리·가공해서 먹는다. 고구마는 전분으로 가공돼 각종 요리에 쓰이며 잡채의 주재료인 당면의 원료이기도 하다. 또한, 알코올(주정)의 제조 원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그 찌꺼기에서 비타민 B12를 뽑아내기도 한다.

요맘때 겨울철이 되면 홈쇼핑채널에서는 군고구마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구마 판매에 열을 올린다.  ⓒ 안종주
요맘때 겨울철이 되면 홈쇼핑채널에서는 군고구마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구마 판매에 열을 올린다. ⓒ 안종주
안토시아닌의 보물창고, 자색고구마

고구마는 속 색깔이 주로 흰색, 노란색이지만 최근에는 붉은색, 자주색을 띠는 자색고구마가 건강식품으로 인기몰이중이다. 자색고구마는 일반 고구마에 비해 유리당(遊離糖)을 3분의 1 정도만 함유하고 있어 달콤한 맛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섬유질,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고 특히 항산화 작용을 하며 시력 보호,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안토시아닌 색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기능성 식품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고구마는 생으로 먹을 때보다 삶거나, 특히 구워 먹을 때 단맛이 강하게 난다. 물론 고구마의 단맛은 품종에 따라 그 강도가 차이 난다. 흔히들 밤고구마라고 하는 것에 견줘 호박고구마 품종이 훨씬 더 달다. 또 삶거나 찌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고구마를 찜통이나 냄비에 넣고 찌거나 삶으려면 15~20분 걸린다. 가정 필수품처럼 돼 있는 전자레인지에 고구마를 넣고 가열하면 단 몇 분 안에 익힌 고구마를 맛볼 수 있다. 한데 이 고구마는 별로 달지 않다. 왜 그럴까?

겨울에 먹는 군고구마가 먹고 나면 다시 그리울 정도로 달콤한 데는 나름의 과학적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효소가 관련돼 있다. 효소 가운데 아밀라아제는 소화효소가 있다. 아밀라아제는 알파(α)와 베타(β)의 2종류가 있다. 이 둘은 녹말분자의 결합을 분해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α-아밀라아제는 생물체에 널리 존재한다. 사람을 포함해 여러 포유류의 소화계에서 작용하는, 프티알린이라고 불리는 α-아밀라아제는 침샘에서 만들어진다. 프티알린은 입에서 음식물과 섞여 녹말에 작용한다. 입 안은 음식물이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다. 프티알린이 섞인 음식물은 곧바로 위로 이동한다. 여기서 프티알린은 위액에 의해 비활성화 된다. 하지만 위액이 음식물 깊숙한 곳에까지 작용할 때까지 상당 시간 동안 이 효소가 계속 작용한다.

β-아밀라아제들은 효모, 곰팡이, 세균, 식물들, 특히 씨앗에 존재한다. 고구마에는 이 베타아밀라아제(β-amylase)라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는 고구마에 들어 있는 전분을 분해한다. 녹말이라는 순수한 우리 이름으로도 불리는 전분(澱粉, starch)은 강강술래 놀이 때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듯이 포도당이 다른 포도당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베타아밀라아제는 강강술래 놀이를 하던 포도당들에게 두 포도당만 손을 잡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효소이다. 두 포도당만 손을 잡고 있는 당은 이당류이다. 맥아당이 여기에 속한다.

엿당, 엿기름 등으로도 불리는 맥아당(麦芽糖) 또는 말토스(maltose)는 이당류이다. 엿기름(Malt)은 밀, 보리 등에 물을 주어 싹을 내서 말린 것을 이용하여 만든 식용 당화 분해효소 구실을 한다. 맥주를 비롯한 술을 만들 때 사용하며, 여러 가지 구운 음식이나 당과류, 곡물식, 물엿, 유아용 식품 등에 맛이나 향기를 내는 식품으로 쓰인다. 한국인들이 흔히 접하는 음식 중에 엿기름이 들어가는 것으로 고추장과 엿, 식혜가 있다. 엿기름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엿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다.

인간이 활동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다. 인간이 몸속에서 필요한 당은 이 포도당이다. 포도당은 단당류(monosaccharide), 즉 ‘나 홀로 당’이다. 포도당이 다른 한 포도당과만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단당류가 아닌 이당류(disaccharide)가 된다. 다당류(polysaccharide)는 여러 단당류가 강강술래 참가자처럼 손에 손을 잇달아 잡고 있는 것을 말한다. 설탕이 대표적인 다당류이다.

고구마를 삶거나 찌는 과정은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과정이다. 군고구마가 단 것은 구울 때 맥아당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고구마를 삶거나 찌는 과정은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과정이다. 군고구마가 단 것은 구울 때 맥아당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군고구마가 단 것은 구울 때 맥아당이 많이 생기기 때문

고구마를 삶거나 찌는 과정은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과정이다. 이는 다시 말해 단맛을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효소의 과학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효소는 가장 활발하게 기능을 할 수 있는 온도가 있다. 적정 온도는 효소마다 다르다. 베타아밀라아제는 섭씨 55∼65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용한다. 이보다 온도가 높으면 이 효소가 기능을 잃는다. 따라서 엄청나게 뜨거운 열을 갑자기 가하는 것보다 은근한 열로 꾸준히 고구마를 뜨겁게 만들어야 단맛을 내는 맥아당이 고구마 속에서 최고조로 만들어진다.

부뚜막 아궁이에서 식어가는 숯불이나 드럼통에서 천천히 가열된 고구마가 펄펄 끓는 물에 쪄내거나 전자레인지로 빨리 익힌 고구마보다 더 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가 식품의 물 분자에 부딪히게 함으로써 생기는 열로 급속하게 가열하는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탄생한 기기이다. 따라서 베타아밀라아제가 전분을 충분히 분해해 맥아당을 많이 만들어낼 시간이 전자레인지에서는 충분치 않다. 만약 집에서 군고구마를 먹고 싶다면 오븐이나 직화냄비에서 중간불로 천천히 구워야 한다. 텔레비전 홈쇼핑에서는 고구마를 팔 때 직화냄비를 함께 파는 까닭도 맛있는 군고구마를 맛보게끔 하기 위해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맛있는 고구마를 먹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치와 고구마는 환상의 궁합이다. 고구마에는 칼륨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 이 칼륨 성분은 나트륨과 길항 작용이 있다. 고구마를 많이 먹게 되면 몸 안의 나트륨이 많이 빠져나가게 된다. 고구마를 먹을 때 적당한 소금기가 있는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김치가 고구마 섭취로 인한 나트륨 부족을 메꿔주는 것이다.

고구마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보관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고구마는 냉해를 입기 쉬운 작물이다. 섭씨 0도에서 24시간, 영하 15도에서 3시간 두면 냉해를 입는다. 고구마를 냉장고에 보관해서는 안 되는 과학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반대로 온도가 높은 곳에 두면 호흡작용이 왕성해져서 양분 소모가 많아지고 섭씨 18도 이상에서는 싹이 튼다. 신문지에 싸서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장소에 보관해야 상대적으로 오래두고 고구마를 각종 요리와 군고구마 등에 사용할 수 있다.
 


► 고구마는 천연 GMO 작물이다

-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
- 바이러스에 의한 유전자 전달

대부분의 유전자 변형 작물은 인간이 처음 만든 기술이고, 오랜 사용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최근에 뜻밖에 결과가 밝혀졌다.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고구마가 사실은 자연적으로 생긴 GM 작물이라는 것이다. 겐트대학 연구팀의 유전자 분석과 근연종 연구에 따르면 별로 쓸모없는 작물에서 박테리아(아그로박테리움으로 추정)를 통해 외래 유전자가 삽입되어, 재배하기 쉽고, 먹기 좋은 고구마가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세균에 의해 전혀 새로운 작물이 창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