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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 : 원적외선

파장
- 방사선 : 살균  
- 자외선 : 살균
- 원적외선
- 전자레인지 괴담

피부에 흡수돼 열에너지 전환. 혈액순환ㆍ신진대사 원활 도움
디지털타임스 2013년 12월 30일자 15면


한동안 잠잠하던 원적외선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원적외선의 온기를 이용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온열기도 만들 수 있고, 원적외선을 이용해서 음식을 익힐 수도 있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이익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왜곡시켜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엉터리 과학에 속아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재산을 탕진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원적외선은 무지개의 붉은색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을 세 부분으로 나눌 때 파장이 긴 15마이크로미터에서 1밀리미터에 해당하는 부분에 사용하는 전문 과학용어다. 붉은색에 가까운 쪽에서부터 근적외선, 중적외선, 원적외선이라고 부른다. 무지개의 보라색 바깥에 해당하는 자외선의 경우에는 보라색에 가까운 부분에서부터 자외선 A, B, C라고 부른다.

원적외선이 조금 특별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피부에 닿으면 대부분이 반사되는 가시광선과 달리 원적외선은 상당한 부분이 반사되지 않고 피부 속으로 흡수된다. 피부에 흡수된 원적외선은 열 에너지로 변환되어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열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준다. 원적외선을 피부에 쪼여주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원적외선은 따뜻한 온기를 뜻하는 새로운 현대적 과학용어일 뿐이다.

그런 원적외선이 반가울 수 있다. 따뜻한 원적외선이 추위 때문에 위축된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주면 혈액 순환이 촉진되고, 신진대사도 원활해진다. 체온 유지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의도적으로 체온을 높여야 하는 환자에게는 원적외선을 치료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체온 유지 기능이 떨어진 노인들이 따뜻한 아랫목이나 난로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적외선이 신비의 의학적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원적외선이 언제나 반가운 것도 아니다. 무더운 날에는 아무도 원적외선을 원하지 않는다.

원적외선은 물체가 충분히 뜨거워지면 언제나 방출되는 전자기 복사(輻射)의 일부분이다. 심지어 섭씨 36.5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우리 몸에서도 상당한 양의 원적외선이 방출된다. 더운 여름날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체온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몸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 때문이다. 단열이 부실한 건물의 벽이나 창문에서도 상당한 양의 원적외선이 방출된다.

뜨거운 물체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의 양은 물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일정하다. 원적외선을 특별히 많이 방출하는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9세기 말 당시의 첨단 산업이었던 전력 산업의 세계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프러시아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비엔의 변위법칙을 비롯한 흑체(黑體) 복사의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흑체의 복사 이론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막스 플랑크 등에 의한 양자역학의 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특별한 물질을 사용한다는 주장은 현대 물리학을 부정하는 셈이다.

원적외선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주장도 황당한 억지다. 원적외선의 측정 기술은 19세기 중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얇은 금속 도선의 전기 저항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이용하는 볼로미터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원적외선에 의해 광전자가 방출되도록 만든 반도체 감광 소자를 이용하는 적외선 카메라도 개발되었다. 국제공항에서 독감 환자를 가려내기 위해 사용하는 적외선 카메라가 바로 그런 장비다.

결국 전기를 이용한 원적외선 제품은 전류에 의해 뜨겁게 가열되는 전기 열선(熱線)을 이용하는 전열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전기 열선이 바깥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원적외선이라고 문제될 일은 없다.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