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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은 과연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었는가?   

지식의 융합 사례
- 이보디보 : 진화의 통합
- 잡종 hybrid, 박쥐, 짬뽕, 회색
- 진정한 융합이란 - 이덕환교수

통섭은 과연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었는가?

유영만 교수 http://kecologist.blog.me/70155984671

지나친 세분화로 점점 파편화되는 지식추구에 대한 반성. 이는 필연적으로 지난날들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지식활동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분과학문이나 전문분야의 독자적인 연구나 탐구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위기의식이 공유되는 것. 분석의 시대를 넘어 종합의 시대를 맞아,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문성을 기르는 방법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한 우물을 파되 자신이 판 우물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깊게 파되 주변 전공분야와의 다양한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깊이 있는 통찰력과 함께 폭넓은 안목과 식견을 동시에 가져야 된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전문분야별로 파편화된 지식을 융합, 다른 전공 분야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통합적인 안목을 겸비한 전문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쪼개진 협소한 지식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 말은 쉽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부터 A자형 인재, 퓨전형 인재, 멀티플레이어, T자형 인재, 통섭형 인재 등 ‘융합’을 중시하는 인재상이 우리에게 제시돼왔다. 스페셜리스트이되 제너럴리스트인 인재의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을 말하라면 열에 여덟아홉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을 것이다. 5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것 자체가 그의 천재성을 입증한다 하겠다. 우리도 노력하면 그처럼 모든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안타깝게도 부정적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인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시대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해박해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과거와는 판이하게 문제의 복잡성과 난도(難度)가 높아진 시점에서 한 사람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형 천재가 되기에는 지식이 너무나 세분화, 전문화됐고 방대해졌다.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빈치의 천재적 두뇌가 아니라, 그가 평소에 어떤 태도로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How to Think Like Leonardo da Vinci)》에서 저자인 겔브(Michael Gelb)는 천재로 다가가는 7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중에는 오늘날 전문가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되는지를 시사받을 수 있다. 다빈치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고, 가차 없는 질문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나갔다. 전문가도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물과 현상에 의문을 품고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는 해결대안을 찾아낸다. 두 번째는 ‘실험정신’이다. 실험정신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제 생활에 적용해보려는 열의와 고집, 실수에서 배우려는 의지를 지칭한다. 다빈치는 선입견과 권위를 믿어버리는 고정관념, 책에 나오는 편견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습관적 타성을 가장 경계했다. 세 번째 원칙은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이다. 〈모나리자〉는 패러독스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대립의 긴장을 감당하는 능력, 애매함과 모호함, 어중간함과 엇비슷함을 보고 끈질기게 그 의미를 탐구하려는 마음가짐과 능력은 다빈치로 하여금 천재적 기질을 발휘하게 만들었던 결정적 동인이었다. 이도저도 되지 않는 진퇴양난의 모순적 상황에서 전문가는 직면한 문제상황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가용한 자원과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모색하고 시도해본다. 네 번째 원칙은 예술과 과학, 논리와 상상 사이의 균형 잡힌 ‘조화’다. 한마디로 다빈치는 뇌 전체를 쓰는 사고방식을 의도적으로 연습했다. 마지막으로 다빈치의 천재적 특성은 ‘연관성의 원칙’에서 비롯된다. 관계성에 대한 인식과 통찰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존재하는 연결관계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적 사고에서 나온다. 창의성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를 이연연상(二連聯想)을 통해 연결하고 결합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데서 비롯된다. 전문가도 다빈치처럼 예기치 못한 문제상황에 직면하면 평소에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낯선 자원과 도구를 조합해서 기존의 틀에 박힌 방식을 탈출하려는 색다른 시도를 반복한다. 전문가가 보여주는 다빈치적인 천재성은 ‘쓸모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변화시키는 연관성에 대한 혜안과 안목이다. 진정한 전문가는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이라도 주어진 문제상황에 얼마든지 효용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유용한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우리 사회에 융합형 인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각된 것은 아마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 번역된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책이 번역되면서 한국 사회는 통섭 광풍(狂風)이 몰아칠 정도로 학계는 물론 기업 현장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주의할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통섭’이라는 말처럼 흔해진 단어도 없는 듯하다. 통섭 개념의 수사학적 아름다움에 도취돼 이것저것 아무거나 섞으면 통섭이라는 식의 착각과 오해가 횡행하고 있다. 통섭이란 큰 줄기(統)를 잡다(攝), 즉 서로 다른 것을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뜻이다. 윌슨의 본래 문제의식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을 대통합하겠다는 의도였다. 일종의 생물학적 통섭이며, 생물학으로 학문을 통합하려는 환원주의적 통섭이었다. 그러나 지식의 대통합은 이루어졌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따져 물어보면 학문적 다양성을 굳이 하나의 학문으로 통합할 필요성이 있을까?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윌슨의 『통섭(統攝, consilience): 지식의 대통합』을 비판하는 글에서 “실재는 하나지만, 그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은 여럿이고 여럿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다른 수많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피력한 바 있다. 통섭이 본래 지향했던 ‘지식의 대통합’보다는 다학문적 협동연구나 다학제적 연구로 오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이정덕(2011)의 주장처럼 윌슨이 주장한 통섭은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현실적으로 오해되고 오용되어 왔다. 또한 김동광(2011)의 주장처럼 융합이나 통합 등의 통상적 의미를 뜻하는 신조어로 인식하면서 용어 자체가 주는 신선함과 새로움에 끌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통섭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재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는 물론 실제적으로 이렇다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벽을 허물고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면서 두루 통(通)하려고 했던 통섭은 결국 서로 간에 통증(痛症)만 남기고 말았다. 다른 학문적 영역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원활한 ‘소통’(疏通)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각자 자기 전공에 대한 강한 옹호와 타분야에 대한 낮은 관심으로 서로간에 소리 높여 ‘호통’(號筒)을 치다보니 ‘불통’(不通)되고 분통(憤痛)과 울화통이 터지는 형세가 된 셈이다.
  
오히려 통섭 논쟁이 불붙은 이후 한 가지 분야만 깊이 있게 아는 전문성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이 제기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지식의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관점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통섭에 대한 학문적 논의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자기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을 기본으로 자기 분야와는 다른 분야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한 가지 전문성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을 학문적 경계 넘나들기나 지식융합을 통해 보다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려는 실제적인 접근으로 논의가 귀착되고 있다. 결국 통섭은 학문적 이상으로 제시된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 학문적 접목이나 융합을 통해 인식지평의 확대나 인식 깊이의 심화로 그 의미가 전용(轉用)되어 사용되고 있다. 결국 통섭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아있고 현실은 통섭과는 거리가 먼 융합적 안목이나 접근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이전과 다른 설명력과 이해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통섭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분야가 다른 학문간 공감과 소통, 융합과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주의해야 될 사항은 자기 학문 우월주의와 타분야에 대한 무관심이다. 인문학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과학자들, 과학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인문학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상대에게 내 지식을 가르치겠다는 교사의 태도가 아니라, 낯선 문화를 탐구하는 여행자의 태도다(홍성욱, 2009). 학문 분야간에는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인식과 관심이 다르고 수준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포섭하거나 통섭하기보다 각각의 전문성으로 상대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해주는 호혜적 관계가 존재할 뿐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너와 나, 안과 밖에 만나 생명이 태어납니다. 고학상반,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칩니다.” 신영복 교수의 2013년 서화 달력에 나오는 글의 일부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융합은 분야가 다른 전공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한 가지 틀에 갇힌 좌정관천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때로는 한 분야가 다른 분야의 밖에서 지적 자극을 주고 가르치고 또 때로는 위치가 역전되어 가르치고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줄탁동시의 융합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의미의 지식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분야가 전혀 다른 이질적 학문분야를 어느 하나의 학문분야로 통섭하려는 노력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각각의 학문분야가 추구하는 목적과 문제의식을 존중하고 주어진 현상을 보다 다양한 관점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인식관심의 차원을 달리하거나 궁합이 맞지 않는 아무거나 이것저것 섞으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지식의 원형과 큰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차원이 다른 새로운 지식이 창조되는 것이다. 전공의 틀에 갇힌 사고를 해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통찰력을 얻기가 어렵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 테두리 밖에서 나온다고 말한 게리 해멀(Garry Hamel)의 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 밖으로 나가라. 경계를 넘어야 경계 밖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수제자였던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가 제시한 지평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지평융합은 단순한 합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이 보다 고차적이고 명료화된 관점으로 종합되는 것과 같은 헤겔적인 의미의 변증법적 종합의 개념이다. 이질적이고 친숙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한 차원 고양시키는 도야의 과정인 지평융합은 분야가 다른 전문 분야간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수평적 사고방식의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융합은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가 만드는 신천지
  
동물학자 데스몬스 모리스에 따르면 “나는 내가 연구하는 동물처럼 사고한다. 그것이 어떤 종이든 구애받지 않는다. 도마뱀을 관찰할 때는 도마뱀이 되고, 물고기를 주시할 때는 물고기가 된다.” 물아일체의 공감을 해야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융합하려는 전문지식간에도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실제로 행동해봐야 상대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지사지는 바로 머리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실제로 행동해보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시인으로 눈으로 수학을 바라보라는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수학이야말로 최대한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과학이다. 영혼의 시인이 되지 않고서는 수학자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음악가라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연구해야 하며, 화가라면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공부해야 한다. 화가는 시를 그림으로 바꾸고 음악가는 그림에 음악성을 부여한다”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악은 음표로 작곡하고 그림은 화폭에 그리는 음악가와 화가는 이제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의 눈으로 내 전문 분야를 들여다봐야 이색적인 창조가 꽃을 피울 것이다. 음악은 듣고 그림을 보고 음악은 들어야 한다. 그래야 음악적 회화와 회화적 음악이 탄생한다. 화가이면서 음악가이고 음악가이면 화가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다. 수학자가 수식에 갇혀 있고, 작가가 단어에 매몰되어 있으며, 음악가가 음표 안에서만 생각해서는 전대미문의 창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물학자, 철학자, 화가인 동시에 미술사가인 C. H. 워팅턴은 자신의 저서, ‘미래의 생물학과 역사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선견지명을 내보이고 있다.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오직 '전인(whole man)'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기술자, 순수과학자, 예술가 중 하나만 되는 것을 드러내놓고 거부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박식가와 개척자가 필요하다. 그들은 상상력이 발흥하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감각적 체험이 이성과 결합하고, 환상이 실재와 연결되며, 직관이 지성과 짝을 이루고, 가슴속의 열정이 머릿속의 열정과 연합하고, 한 과목에서 획득한 지식이 다른 모든 과목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는, 그런 때를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말한 것처럼 “닮지 않은 것에서 닮은 것을 찾아내는 기쁨”을 다양한 학문분야의 지식을 융합함으로써 즐길 수 있다. 비록 전공 분야는 닮지 않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회, 그리고 자연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닯지 않은 전공분야간 융합을 시도함으로써 닮은 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레스토랑의 회전문에서 탄생한다”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말은 서로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이 의견을 교환할 때 위대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말이다. 아이디어의 교환은 지식의 교환과 더불어 지식과 관련된 느낌의 교환이다. 무엇인가를 깨달았거나 아이디어가 오려고 할 때 머리로 안다고 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낌이 온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식에 담겨진 사람들의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느낌이 오지 않으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소통이 단절된다. 창조는 소통과 공감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창조일수록 한 개인의 외로운 생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가 집단적으로 공유되면서 서로가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생각과 아이디어가 뒤섞이면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전공 분야가 다르고 관심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면 당연히 갈등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전공분야별 지식을 융합하기 이전에 함께 공감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동일한 문제를 다각도로 접근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논리와 지성의 융합 이전에 감성과 감각의 융합이 필요하다. 공감각(synesthesia)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리스어에 어근을 두고 있는데 융합이나 결합, ‘다 같이’를 의미하는 ‘syn’과 감각을 뜻하는 ‘aisthesis’가 합쳐진 말론, ‘한꺼번에 느낀다’ 혹은 ‘감각의 융합’을 의미한다. 논리적 통합 이전에 감각의 융합이 선행되어야한다. 가슴으로 소통하지 않는데 머리로 통합한다고 되지 않는다. 이해는 가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진정한 의미의 통합도 융합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한다.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오직 양자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식이 태어난다.” ‘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칸트의 말이다. 이를 대변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조어가 다름 아닌 ‘synosia’라는 말이다. 결합이나 합성을 뜻하는 ‘syn’과 지식을 뜻하는 ‘gnosis’ 혹은 이성이나 인식의 작용을 뜻하는 ‘noesis’에서 파생시켜 만들었다. 종합적인 앎 그 이상의 수준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기도 하지만 공감하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이기도 하다. 갈등하는 사안에 대해 의견이 충돌되고 난항을 거듭하는 일도 있지만 공감하는 호모 엠파티쿠스의 본성을 발휘함으로써 결국에는 합의를 통해 화합에 이르기도 한다. '동감(同感)'은 '공감(共感)'과 다르다. 동감은 같은 마음이다. 상대의 아픈 마음과 다친 마음에 나도 같이 느낀다는 말이다. 비록 내가 네가 될 수 없지만 네 생각과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감은 다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맞장구 쳐주는 것이다. 동감은 내 느낌과 입장이 다를 때는 하기 어렵지만, 공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내 생각과 느낌이 상대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상대와 함께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 상대의 아픈 마음, 억울한 생각, 답답한 심정에 공감을 표시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누그러들었던 마음도 활짝 펴질 수 있다. 공감은 상대와 함께 연주하는 아름다운 교향곡이다. 공감은 사랑하는 마음의 출발점이자 촉진제다. 공감해야 사랑이 시작된다. 공감은 기술이다.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며, 의지이자 노력이요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고 『사랑의 기술』을 쓴 에리히 프롬이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공감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공생(共生)의 가치를 주목하는 요즘 추세를 "인류가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sis), 즉 ‘공생하는 인간'으로 진화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이제까지 생태학자들이 경쟁을 중심으로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울 연구해왔지만 지금은 생태학자들이 공생이란 새로운 분석 틀로 자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공존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의 눈으로 생태계를 다시 보니 세상은 꽃과 벌처럼 공생하며 사는 곳이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욤나무에서 감(敢)히 ‘감’이 열리게 하는 방법: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목한다!
  
고욤나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감과 같은 크기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고욤나무에 감나무가 열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接) 붙이는 것이다. 접목(椄木)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나무끼리 덧붙여서 하나의 나무로 만든다는 말이다. 고욤나무와 감나무를 접목하면 고욤나무나 감나무로 변신한다. 즉 고욤나무가 감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가지를 완전히 잘라내고 거기에 감나무가지를 덧붙이기를 해야 한다. 고욤나무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도 자신은 절대로 감나무로 변신할 수 없다. 고욤나무에 감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욤나무가 감나무로 변신, 고욤나무에서 감이 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감나무 가지를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욤나무의 가지를 버리고 감나무 가지를 새롭게 받아들여야 감나무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융합도 마찬가지다. 기존 지식으로 넘을 수 없는 한계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넘어설 수 있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너머의 세계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높은 학문적 벽을 부수고 기존의 지식에 다른 분야의 지식이 접목될 때 새로운 지식이 잉태된다. 기존 지식보다 더 의미심장한 가치를 지닌 새로운 지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에 새로운 지식이 접목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편집된 지식이다. 편집된 지식은 기존 지식에 기존 지식 또는 기존 지식에 새로운 지식이 접목되어 탄생하는 지식이다. 결국 지식의 창조는 접목과 편집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남다른 지식을 임신하기 위해서 리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흡수하거나 기존 지식을 새롭게 재탄생시켜야 한다. 고욤나무가 감나무로 변신하는 과정은 고욤나무의 뿌리와 커다란 줄기는 그대로 간직한 채 자신과 완전히 다른 감나무 가지를 내면에 심는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마치 조개 안으로 들여온 이물질인 모래가 조개의 속살에 상처를 내고 아무는 과정을 통해서 진주조개가 탄생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고욤나무 안으로 들어온 감나무 가지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는 악전고투의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야 고욤나무에서 열릴 수 없는 감이 열릴 수 있다. 고욤나무 가지를 잘라내는 과정은 성장을 넘어 성숙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탈바꿈의 과정이다. 시련과 역경에 꿈과 희망이 접목되고, 불가능과 한계에 역전과 반전이 접목될 때 생각지도 못한 기적과 신화가 창조된다. 마치 고욤나무가 감나무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겪은 상처와 고통이 마침내 감이라는 축복의 열매를 생산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분야의 한계나 약점에 다른 분야의 장점을 접목시키면 단점이 갖는 한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장점으로 변신한다. 태생적 단점이나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과가 안 좋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미리 포기하지만 몇 안 되는 사람은 이제 끝났다고 하는 순간 '반전'을 시작한다. 한 편의 드라마는 '반전'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이 접목되면 마침내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역전'의 감동은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 수없이 '반전'을 시도하면서 일어난다. 발상을 뒤집는 전대미문의 반전과 역전 속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감동 드라마가 시작된다!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의 일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두드러진 차이점 중의 한 가지는 양자택일(兩者擇一)과 동시병행 방식의 차이다. 예를 들면 미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차례대로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하지만 한국 사람은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한다. 가정부가 일을 할 때, 미국 가정부는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 다음 책을 읽고 그 다음에 밥을 한다. 반면에 한국의 가정부는 빨래를 하면서 청소를 하고 청소하면서 밥을 올려놓고 책을 읽는다. 미국의 음식이 나오는 순서는 입맛을 돋우는 식전 음식이 나오고 메인 메뉴가 나온 다음 디저트로 마무리를 한다. 한국의 음식 나오는 순서는 물론 한정식의 경우 차례대로 나오다 마지막에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한 상에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놓고 동시다발로 먹는다. 일정한 단계와 절차를 거치면서 순서대로 생각하는 선형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서구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은 동시병행적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는 면형적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서구 사람들은 양자택일적(兩者擇一的) 사고 논리(either A or B)에 익숙하지만 한국인들은 양자병합적 또는 양단불락적(兩端不落的) 사고 논리(both A and B)에 길들여져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의 논리보다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동시에 하는 멀티 플레이어적 기질이 바로 면형적 사고 또는 비선형적 사고다.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하다보면 우연히 찾아오는 영감이나 통찰력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것 저것 하다보면 우연히 찾아오는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에 ‘와!’하는 놀라움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우발적 인연이 필연적 사건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와 ~와'로 표현한다. 사람도 끊임없이 누구누구와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인연을 만들며, 인연을 뒤집어 연인사이로 우연히 발전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마침내 인생 전반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구와 언제 만날지는 사전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물론 계획적인 만남도 많지만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는 만남이 생각지도 못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물과의 우연한 접촉이 일생일대의 사건을 우연히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 어떤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나를 바꾸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책이 눈을 뜨게 만든다. 그래서 우연한 만남은 맛남이자 운명이기도 하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지식과 지식이 만나면서 지식의 운명이 바뀐다. 지식과 지식 사이에 AND가 살아간다. 전분 분야와 다른 전문 분야가 만나 경이로운 감동, 와우(wow)가 시작된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간 만남이 생각지도 못한 제3의 지식이 창조되는 것이다. 어떤 지식과 접목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지식이 생각지도 못하게 태어난다.
  
개념 연애와 개념 임신: 운명을 바꾸는 개념 출산
  
색다른 전공분야가 만나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과정은 낯선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서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결혼하자고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가 모르는 전공 분야가 만나 통섭하자고 주장한 들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간 서로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로소 결혼에 골인하는 것처럼 두 분야간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공통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 상황이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다보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인 사고를 가진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면서 가치관을 공유하고 함께 이룰 공동의 목표를 정하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듯이, 이질적인 전공 분야가 만나 오랜 기간의 탐색기간을 통한 접선과 접촉을 통해 새로운 접목 가능성을 모색하고 마침내 전공분야간 융합이 이루어져 제3의 새로운 지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남녀가 만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란 가족과 가족이 만나는 것이다. 가족은 가족 공동체적 문화를 전승하면서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문화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가족마다 옳다고 믿는 신념체계가 있으며 가치판단의 기준이 있다. 이런 것은 해서는 안되며 이런 것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야 된다는 행동규범도 있다. 가족마다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적 양식도 있지만 가족에 따라서 전혀 다른 문화적 양식도 존재한다. 남녀가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그런 문화적 행동양식을 내면화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다. 결국 남녀가 만나는 과정은 남녀가 공유하고 문화적 양식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충돌이 일어나고 때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하는 가치관을 합의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공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공이 다르면 해당 전공에서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과 진리에 이르는 방법론이 다르다. 전공 분야가 다르면 진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언어도 다르다. 결국 전공 분야별 사고양식의 차이는 각각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습관화된 것이다. 이렇게 다른 이질적 문화와 언어, 진리를 판단하는 인식론적 가치가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전공 분야가 하루 아침에 어느 한 분야가 다른 분야를 통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분야가 우월적인 위치에서 다른 분야를 흡수하고 통합해서 하나의 과학으로 통일하려는 통섭보다 쌍방간의 공감과 이해를 전제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어’ 종국에는 완전한 하나가 되는 융합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높다.
  
지식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지식을 구성하는 개념간 접선과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개념간 접목이 이루어지려면 개념적 접목이 잘 될 수 있는지 개념간 궁합이 맞춰보는 것도 필요하다. 개념간 궁합은 비슷한 개념 또는 서로 다른 개념끼리 끌림이 얼마나 강도높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개념궁합은 결국 개념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려는 사람의 목적의식과 문제의식, 의도와 방향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개념궁합의 정도를 탐색하기 위해서 개념들은 오랜 기간 연애를 해야 한다. 서로의 개념이 탄생한 배경과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해당 개념을 통해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지도 알아야 한다. 개념 연애를 통해서 개념적 교감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개념결혼에 이르게 된다. 결혼식을 올린 개념은 개념 출산 계획을 수립, 어떤 개념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출산할 것인지를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살다보면 우연히 개념적 합궁을 통해 우연히 새로운 개념이 잉태되는 경우도 있다. 계획적 개념임신과 우연한 개념임신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이 출산되면 개념양육을 통해 세상에서 빛을 보기까지 개념부모들의 개념 교육이 비교적 오랫도안 이루어진다. 그렇게 서서히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개념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일상언어로 정착되면서 또 다른 개념 2세들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종족 보전이 되면서 개념 세대가 대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개념합궁을 통한 개념 교배에는 순혈개념 교배와 잡종개념 교배가 있다. 보다 강력한 개념의 탄생은 잡종교배를 통한 새로운 종자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잡종개념 교배를 통해 한 시대의 흐름을 꺾는 새로운 개념이 출현한다. 분야가 전혀 다른 학문적 접목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지식경영학과 산부인과학을 잡종 교배시켜 지식산부인과학을 탄생시킨 것처럼 관계가 없는 이질적 학문분야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학문분야가 탄생한다. 지식임신이나 지식잉태, 지식자연분만, 지식낙태수술방지법 같은 연구분야가 탄생하는 원동력도 바로 잡종개념교배의 결과다.
  
나는 이 책에서 통섭에 대한 학문적 논쟁을 소개하거나 통섭에 대한 개념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보다 지극히 실제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대학자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통섭능력을 일반인들이 습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통섭을 주창한 에드워드 윌슨 조차도 통섭에 대한 학문적 논의의 수준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사회생물학 분야에서 다양한 비판적 도전을 받고 있다. 대학자도 범접하기 어려운 과제를 일반인들에게 통섭능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청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오목렌즈로 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이 도처에 산재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창조된 지식을 활용하여 다양한 가치를 창조하는 브리꼴뢰르(bricoleur)를 미래의 새로운 전문가상이나 인재상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브리꼴뢰르는 답이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현재 가용한 도구를 활용하여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다. 브리꼴뢰르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정보를 편집, 새로운 지식을 부단히 창조하는 지식편집의 대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근간으로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편집․가공함으로써 자신의 전문성을 깊이 있게 심화시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일정한 수준의 전문성에 이르기까지는 아래로 깊이 파고드는 한 우물파기 전략이 필요하다. 한 우물을 파면서 우물을 만나기도 전에 다른 우물을 판다면 영원히 우물을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우물을 만나려면 끝까지 파내려가야 한다. 물줄기를 만날 때까지 깊이 빠져들어야 한다.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깊이 빠져야 한다. 깊이 빠지지 않고 여기저리 집적거리면 영원히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깊이 빠지지 않으면 자빠진다. 흠뻑 빠져야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우물을 만나면 그 때부터 다른 물줄기를 만나야 한다. 다른 물줄기는 깊이 파고들어간 우물에서 옆으로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물줄기가 한 우물에 넘쳐 흐를 때 자신의 전공분야 지식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관점과 혜안을 가질 수 있다.
  
위대한 융합의 성과가 있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던지지 않았던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위대한 답은 모두 위대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고 모두가 당연하고 물론이고 원래 그렇다는 식상한 상식에 시비를 걸어야 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에 우뚝 선 과학자는 정상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고정관념과 타성에 시비를 걸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누구도 찾아 나서지 않은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위대한 질문은 위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정상적인 방법,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은 상상을 통해서 비상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융합의 성과는 위대한 질문과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위대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묻지 않으면 묻혀버린다. 색다른 질문을 던질 때 색다른 가능성이 부각된다. 자기 분야 내부에서 던지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는 질문, 다른 학문 분야 밖에서 안으로 던지는 질문일수록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질문일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질문이 새로운 통찰력을 일으킨다. 이런 점에서 색다른 지식을 융합하기 위해서는 성찰과 통찰의 변증법적 변주곡을 연주해야 한다. 성찰 없는 통찰은 찰나(刹那)의 깨달음이며, 통찰 없는 성찰은 일시적 반성이다. 성찰하지 않고 한 순간의 통찰력을 얻었다고 해도 깊고 넓은 생명력을 지닐 수 없으며, 통찰력의 축적 없이 성찰을 반복한들 천박한 반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성찰이 뒷받침 되는 통찰이라야 위대한 창조로 연결되며, 통찰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성찰이라야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지식융합은 기존의 학문적 성과와 이것이 실천현장에 적용되면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과 통찰의 변증법적 변주곡이다. 이전 지식과 그 지식이 현장에 접목되면서 나타난 다양한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기존 지식의 한계나 문제점에 대한 통찰력이 변증법적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으로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