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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인공산불
  
- 동물원 : 행복해지고 있다
- 소나무가 사라지는 이유, 인공산불


[중앙일보] 심영규 기자 2011.06.17

소나무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수종이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일생을 살고, 영원한 안식처가 될 관을 짤 때도 소나무를 썼다. 지금도 궁궐과 문화재를 복구하는 중요한 재료다. 마을 어귀에는 항상 서낭당이 있고 서낭목은 우람한 소나무였다. 그만큼 애틋한 한국인의 애정이 담겨 있다.
산림청이 지난해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변함없이 소나무가 1위였다. 2005년에는 정부가 특별법까지 제정해 보호에 나섰다. 단일 수종을 지키기 위해 특별법까지 만든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립산림과학원은 오는 2060년엔 남한에서, 100년 뒤엔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나무는 1970년대까지 전체 산림의 50％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23％인 150만㏊로 줄어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국내 최고의 산림 생물의 보고인 경기도 광릉숲의 소나무가 지난 100년 동안 88%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나무숲이 ‘지옥의 정원’으로 바뀐 것이다.

왜 소나무가 사라졌을까. 일각에서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고사, 산불, 무분별한 벌채가 원인이라고 한다. 물론 이 또한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산업화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와 농촌에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 배상원(57)박사는 “뜻밖에도 소나무는 사람 손을 타야 번성하는 나무”라고 말한다. 과거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번성할 때는 주로 산림에서 땔감을 얻었다. 벌목으로 따지면 이때가 더 심했다. 하지만 소나무 숲은 울창했다. 겨울이면 낙엽을 모두 긁어모아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퇴비용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석유·가스등을 이용하면서 나무를 벨 필요도 낙엽을 긁어모을 이유가 없어졌다. 집집이 연탄·석유·가스를 쓰는 보일러가 들어찼다. 그 사이 농촌의 인구도 확 줄었다. 모든 농사는 기계로 대체됐다. 낙엽을 퇴비로 쓸 필요도 없고, 산을 돌아다니며 낙엽을 긁어모을 사람도 없는 실정이 된 것이다. 소나무는 발아할 때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씨앗은 맨땅 위에 떨어져야 하고 햇볕이 잘 들어야 한다. 반면 활엽수는 낙엽 위에서도 자연 발아할 수 있다. 결국 활엽수는 싹을 틔우는데 소나무 씨앗은 낙엽 위에서 그대로 썩는 것이다. 배박사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자 활엽수에 소나무가 자리를 뺐겼다”고 말했다.



백우진님 글 :

시기를 길게 잡으면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이 아니었다. 따라서 소나무를 한국을 대표하는 수종으로 여긴 것은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다. 역사 기록이나 문화유산의 목재를 분석해보면 소나무보다 다른 수종이 더 많이 활용됐다. 물론 활용도와 대표 수종이 일치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침엽수인 소나무와 활엽수의 성장 환경을 고려하고 한반도 숲의 생태 변화를 살펴보면, 소나무가 번성하는 여건은 매우 제한적이다. 소나무 묘목은 빛이 많이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숲이 울창해질수록 소나무의 세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럼 소나무는 언제 많이 확산되나? 전란 등으로 숲이 불타 민둥산이 된 다음이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의 저자가 신문 기고(2014년)에 기고한 내용

"우리와 소나무의 인연은 꽤나 오래됐다. 3000~4000년 전 선조들이 한반도 안으로 이동해 오면서부터다. 그런데 우리의 숲은 원래 참나무를 중심으로 활엽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울창한 숲을 개간하면서 크고 작은 빈터가 생기자 소나무가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햇빛을 많이 받아야만 살아남는 것이 소나무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나무를 분석해보면 소나무의 비율이 4~6%에 불과하다. 천마총을 비롯한 임금님의 관재(棺材)로 느티나무나 참나무가 주로 쓰였다. 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하며, 잘 썩지 않아서 소나무보다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많이 쓰다 보니 이들 자원도 고갈되기 마련이다. 조선왕조가 건국될 즈음 주변 산에서 쓸 만한 나무는 소나무밖에 남지 않았다.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궁궐은 물론 관청이나 양반 집을 짓는 재료로 소나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배를 만들 때도 소나무가 있어야만 했다. 조선왕조는 소나무 보호에 안간힘을 썼다. 벌채 금지령을 내렸고 ‘봉산(封山)’이라는 소나무 특별 보호구역까지 만들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산은 광복 후까지도 헐벗은 채 남아 있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랐고 백성들은 소나무에서 얻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땔감은 물론이고 흉년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과 산불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위주로 구성되고 수십년간 입산금지와 벌채금지로 이뤄진 산림의 최종적인 운명은 산불이다. 수십년간의 노력과 인내가 그렇게 종결된다. 일반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는 30년이 지나도 목재로 가치가 없고 잡목에 불과하다. 산림에 대한 맹목적인 과보호 관념은 바닥에 수십센치의 소나무 부산물을 퇴적시킨다.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진압불가다. 물을 퍼부어도 켜켜이 쌓인 가지와 잎의 퇴적물은 완전소진될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불량림을 조기에 벌채하고 수종갱신을 해야할 이유 중 하나다. 소나무는 특유의 인화성으로 산불의 위험이 크다. 적어도 소나무(침엽수) 숲 사이 사이에 내화성이 강한 활엽수림을 조성해서 산불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특히 주요 문화재나 요양시설 등의 주변에는 활엽수림을 조성해서 산불피해를 막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안은 수십년된 불량림을 벌채하여 경제수종으로 대체 조림하는 것이다.

일본 큐슈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주변 산림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울창한 삼나무 숲은 마치 수백만 병사가 도열한 듯. 이건 절대 자연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국토의 2/3가 산림이고, 온 산이 나무로 뒤덮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똑같지만 그 숲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느껴진다.
전에 가본 키쿠치고겐이라는 골프장의 경우에도 아소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변에 가득찬 삼나무로 인해 거의 별도의 조경비용을 들이지 않은 듯 싶었다. 일본 삼나무는 고흐 그림에 나오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매우 닮았는데 목재용으로도 쓸모가 있다고 한다. 실제 일본 임업에서 생산하는 목재의 대부분은 이 삼나무다.
산림녹화에 그치지 않고 산림에서 자원과 소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일본산림이다. 우리의 경우 숲과 환경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숲과 나무를 보전한다는 관념이다. 나무도 결국 생물에 불과하다. 각 나무는 적정한 생장주기가 있고 이 주기를 넘어서면 성장이 더뎌지거나 쇠락한다. 농부가 매년 작물을 수확하고 새로 파종을 하듯 숲도 일정기한에 도달하면 베어내고 새로 심어야한다. 그래야 자연이 우리 국토에 준 선물을 바로 쓰는 것이며 건강하고 활기찬 숲을 유지하게되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던 반달곰과 여우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황새, 삽살개, 칡소를 복원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제는 소극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野生)의 상태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말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맹목적인 자연 복원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보존하는 노력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었다. 1864년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테 협곡에서 모든 상업적 개발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1872년 옐로스톤이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링컨의 그런 노력 덕분이었다. 오늘날 요세미테와 옐로스톤은 자연 보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우리는 1968년에야 처음으로 국립공원을 지정했고, 1980년에 본격적인 자연공원법을 제정했다.
자연을 지키는 첫째 과제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손길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요세미테 협곡에서 대대손손 살아왔던 아와니치 인디언을 몰아냈고, 관광객의 출입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렇다고 요세미테를 온전하게 자연에만 맡겨둘 수는 없었다. 강한 서풍이 잦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불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요세미테의 자연을 지키겠다는 순진한 꿈을 위해서는 대규모 소방대를 조직해서 적극적으로 산불을 관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아름다웠던 요세미테 협곡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애써 지키고 싶었던 우람한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 대신 산불에 취약하고 볼품도 없는 활엽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낯선 외래 식물들도 등장했다. 동물의 생태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갈색곰과 캘리포니아 콘도르가 멸종 위기에 빠져버렸다.
산불 진화 노력이 문제였다. 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묘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산불도 자연의 일부였다. 놀랍게도 요세미테의 자이언트 세콰이어를 번성하도록 해준 것이 바로 산불이었다. 껍질은 충분히 단단하고 두꺼웠고, 인화성이 강한 송진이 배어나오지도 않는다. 더욱이 산불의 열기도 단단한 솔방울 깊숙이 들어있는 씨앗의 발아를 도와주고 있었다. 딱정벌레와 다람쥐도 자이언트 세콰이어의 번성에 도움을 준다. 결국 1970년대부터는 산불 진화 노력을 포기했다. 활엽수를 제거하기 위해 인공 산불도 이용해야만 했다.
요세미테의 교훈은 명백하다. 자연의 보호나 복원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 보호와 복원에는 우리 자신의 자의적인 의도와 욕심이 담겨있고, 자연 보호와 복원이 우리의 생각처럼 순진한 시도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서 애써 가꾸고 있는 국립공원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자연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이 요세미테의 산불 진화처럼 자칫 생태계를 더욱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진짜 야생의 자연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마존과 동남아시아의 열대 우림,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툰드라가 그런 자연이다. 아프리카, 중동, 중국 서부, 호주의 황량한 사막과 황무지도 마찬가지다. 남극 대륙, 히말라야, 티베트도 인간의 접근을 거부한다. 육지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진짜 야생의 자연은 거칠고 위협적이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야생의 다듬어지지 않은 삶은 위태롭고 고달프다. 생명의 존엄성도 그림의 떡이다. 고상한 아름다움이나 조화로운 공존은 희망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거친 야생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피나는 몸부림을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다. 우리가 자연에 엄청난 부담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야생을 그리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