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 진화론, 방향, 도약
죽음 : 불로불사의 대가 
출처 : 닉 레인, Life Ascending : The Ten Great Inventions of Evolution
- Apoptosis : 세포의 항상성, renewal, 항상성
- Apoptosis : 죽음의 발명, 존엄성의 유지
- Apoptosis : 죽음 - 가장 정교하고 적극적인 생명현상 : 세포 골격의 역할
- Sex : 다세포 복잡성의 유지를 위한 DNA filtering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고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대단히 부자였고,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리디아를 지나던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솔론은 크로이소스의 기대와는 다른 말을 했따.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닥칠 지 알수 이쓴ㄴ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다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의 크루스 2세에게 붙잡혀 산 채로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크로이소스는 마지막 순간에 신을 원망하는 대신 “솔론” 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를 궁금히 여긴 크루스 2세는 왜 솔론의 이름을 불렀는지 물었고, 크로이소스는 솔론과의 대화에 관해 말해 주었다. 자신도 한낱 재물의 꼭두각시였다는 것을 깨달은 키루스 2세는 크로이소스를 풀어주고(어떤 이야기에서는 아폴론 신이 천둥을 쳐서 크로이소스를 구했다고도 한다.) 조언자로 삼았다. 행복한 죽음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운명과 죽음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었고, 이 보이지 않는 손은 가장 복잡한 방식으로 인간사에 개입해 인간을 굴복시켰다. 그리스 연극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신탁을 통해 예견되거나 운명적으로 결정된 죽음 같은 복잡한 장치가 가득하다. 열광적인 바쿠스의 축제와 반인반수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인에게는 자연 세계에 자신을 맡기는 운명론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서구 문화의 시각에서 보면 동물들의 복잡한 죽음에도 가끔씩 그리스 연극의 망령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하루살이의 삶은 그리스 비극보다 더 슬프다. 몇 달을 애벌래의 모습으로 살다가 변태를 하여 성체가 된 하루살이의 몸에는 입과 소화관이 없다. 단 하루의 난교 파티를 위해 살아가는 소수의 동물 종에 속할 뿐 아니라 곧 대를 곯아야 할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태평양연어 Pacific salmon는 어떤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수백 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가는 태평양연어는 호르몬이 충만한 극도의 흥분상태 속에서 며칠 안에 죽음을 맞는다. 몇 년 동안 나이도 없이 살다가 마침내 정자 공급이 다 떨어지면 자신의 딸들에게 갈가리 찢기는 여왕벌은 어떨까? 12시간 동안 광란의 교미를 하고 절정의 순간에 기력을 다 소진하고 죽음을 맞는 오스트레일리아 주머니쥐marsupial mouse 의 생동은 거세를 하면 막을 수 이을까? 비극이든 희극이든. 확실히 극적이다. 이 동물들은 오이디푸스만큼이나 운명의 포로이다. 죽음은 단순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조절되며, 그 운명은 바로 생명의 구조와 함께 계획되어 있다. 이 모든 기괴한 죽음의 방식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고, 특히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죽음 이야기는 아마 트로이의 티토노스 이야기일 것이다. 티토노스를 사랑했던 한 여신이 티토노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제우스에게 청했다. 그런데 영원한 젊음도 함께 청하는 것을 깜박 잊고 말았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티토노스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노년기에 완전히 짓눌려” 끊임없이 웅얼거렸다. 또 테니슨이 묘사한 테토노스는 “죽을 능력이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집이 있는 어둑어둑한 들판과 그보다 더 행복한 죽은 자의 풀이 무성한 무덤” 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런 죽음의 형태들 간에는 어떤 긴장감이 잇다. 이 긴장감은 일부 동물들의 삶속에 예정된 급박한 죽음과 인간만이 마주하는 예기치 않게 끝없이 이어지는 티토노스의 최후 같은 자포자기한 노년 사이의 긴장감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런 형벌을 받고 있다. 의술의 발달로 생명은 연장 되었지만 건강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의학이라는 신이 수명을 1년 더 선사할 때 그 중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몇 달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시간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티토노스처럼 우리도 결국에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죽음은 잔혹하고 범 우주적인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노화는 서글프다 그러나 우리의 황혼기에는 티토노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만 할 것이다. 확실히 엄격한 물리법칙은 영원한 젊음을 영구운동처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며, 수명이 길어질수록 티토노스의 비참함을 피할 수 있는 젊음도 길어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수명이 연장된 사례는 동물들에게서 널리 볼 수 있다. 고통 없이, 다시 말해 질병에 걸리지 않은 채 환경이 변할 때 수명이 원래의 2배 3배 심지어 4배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있는 물이 차고 양분이 적은 한 호수로 돌아오는 민물 송어를 들 수 있다. 이 민물송어의 수명은 약 6년에서 24년으로, 무려 4배가 늘어났다. 수명 연장의 ‘비용’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성숙의 지연밖에 없다. 북미산 주머니쥐 같은 일부 포유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었다. 이를테면 천적이 없는 섬에서 몇 천년 동안 살게 되면 주머니쥐는 정상 수명이 2배 이상 증가하고 노화의 속도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우리 인간 역시 최대 수명이 지난 수백만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났으며, 그에 따른 불이익은 특별히 없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티토노스는 그저 신화여야 한다.
그러나 인류는 수 천년 동안 영원한 생명을 추구했으나 결코 찾지 못했다. 위생학과의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긴 했지만, 지난 120년동안 최대 수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역사시대가 막 시잘될 무렵, 우르크의 길가메시왕은 영생을 구하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다녔지만. 그의 영웅담은 거의 손에 넣다시피한 불로초를 허망하게 놓치는 것으로 끝난다. 다른 이야기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불로장생의 영약도, 성배도, 유니콘의 뿔도, 현자의 돌도, 요구르트도, 멜라토닌도 모두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소문이 났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렇지 못했다. 학자들 틈에 끼어 있는 뻔뻔한 사기꾼들이 회춘 연구의 역사를 왜곡해왔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물학자인 샤를 브라운 세카르는 1889년 파리 생물학회에서 기니피그와 개의 고환 추출물을 자신에게 주사하자 활력과 정신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심지어 그는 청중 앞에서 자신의 오줌줄기를 자랑스럽게 입증해, 보는 사람을 대경실색하게 하기도 했다. 1889년 말이 되자, 약1만2000명의 내과 의사가 브라운 세카르의 추출액을 처방했다. 세계 곳곳의 외과 의사들이 곧바로 양, 원숭이의 고환조각을 이식했다. 심지어 죄수의 고환까지도 이용되었다. 아마 가장 악명 높은 사기꾼은 미국의 존R. 브링클리일 것이다. 브링클리는 염소의 분비샘을 이식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그 후 그는 1000여 건의 불쾌한 소송의 희생자로 실의에 빠진 채 생을 마감했다 인류가 오만한 솜씨자랑을 위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날을 하루 더 늘렸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수명을 쉽게 연장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진화의 유연성과 오늘날 우리의 노력에 대해 보이는 완전히 비타협적 태도 사이의 간극이 더욱 기묘하게 느껴진다. 진화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일까? 분명 우리는 지난 수 천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 왔고, 죽음의 더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죽음은 당황스러운 ‘발명품’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은 개체 수준에서 작용한다. 어떻게 내 죽음이 내게 이득인지, 태평양연어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검은과부거미가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데는 무슨 이득이 있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죽음이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개체의 이득을 위해(또는 리처드 도킨스의 잊지 못할 표현을 빌려 이기적 유전자를 위해)생명 자체가 시작되고 그 직후부터 죽음이 진화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티토노스의 고뇌를 피해 더 나은 최후를 맞고 싶다면, 그 첫 순간부터 살펴보자.
죽음의 이득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으로부터 30억년 전으로 돌아가 얕은 해안가에 착륙했다고 상상해보자. 맨 먼저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하늘이 파랗지 않다는 것이다. 안개가 짙게 낀 흐릿한 붉은 하늘이 마치 화성을 연상시킨다. 잔잔한 바다는 붉은 빛이 반사된다. 안개가 너무 짙어 태양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안개 속은 기분 좋게 따스하다. 육지에는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드러난 바위에는 축축한 얼룩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극한의 육지 전초기지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세균이다. 풀도 없고, 어떤 종류의 식물도 없다. 그러나 얕은 물속을 조금 나아가다 보면 푸르스름하고 희한하게 생긴 둥근 바위들이 나타난다. 분명히 생명의 작품처럼 보이는 이 바위들 가운데 큰 것은 높이가 2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가끔씩 이와 비슷한 구조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해안가에서 발견된다.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다. 물속에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다. 물고기도 없고, 물풀도 없고, 종종거리며 도망가는 게도 없고, 물살에 흔들리는 말미잘도 없다. 산소는 거의 없는데,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가까운 곳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록색의 세균인 남조세균은 이미 공기 중에 이 위험한 기체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후 10억 년 동안 남조세균은 산소를 배출해 결국 지구를 선명한 녹색과 파란색의 행성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이 벌거벗은 행성이 우리의 고향별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희뿌연 붉은 안개 속을 꿰뚫어볼 수 있다면, 우주공간에서 본 최 지구의 보습에서 한 가지만큼은 오늘날과 비슷할 것이다. 바로 녹조현상이다. 녹조 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연관성이 있는 남조 세균이지만, 바다 위 넓은 지역을 떠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이 남조세군의 모습은 오늘날의 녹조 현상과 상당히 흡사하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해도 그 옛날에 살던 남조세균 화석의 모습은 오늘날의 남조세균인 트리코데스미움과 사실상 똑같다. 이 녹조현상은 몇 주 동안 계속되는데, 강에서 운반되어오거나 대양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해류에 딸려 올라온 무기염류가 남조세균이 급속히 성장하는 데 자극제 구실을 한다. 그러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분해되면서 사라진다. 오늘날에도 바다에서 발생한 대규모 적조현상이나 녹조 현상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우리는 최근에 들어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엄청난 세균 무리는 죽지 않는다. 이 세균 무리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스스로를 제거한다. 각각의 남조세균은 아주 오래된 효소체계인 죽음의 장치를 지니고 있는데, 이 효소 체계는 우리 몸 속에 있는 세포를 내부로부터 분해하는 장치와 상당히 비슷하다. 세균이 스스로를 제거한다는 개념은 너무나 반직관적이어서 과학자들은 그 증거를 간과해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 증거가 너무 강력하다. 세균이 ‘계획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뉴저지에 위치한 러트거스 대학의 폴 팔코프스키와 케이비들이 내놓은 유전학적 증거는 세균이 30억년 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이 수지에 맞기 때문이다. 녹조 현상 같은 세균의 대증식이 일어나면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유전적으로 비슷한 세균들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라고 해도 항상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몸은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유전적으로는 똑같다. 세포에서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미묘한 화학적 자극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분화가 일어나는데,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이 환경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가 된다. 세균의 대증식이 일어날 경우에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거나 심지어 강한 독소를 내뿜는 주위의 다른 세포가 환경으로 작용하며, 태양빛의 세기, 이용할 수 있는 양분의 양, 바이러스 감염 같은 물리적 스트레스도 환경이 된다. 따라서 이 세균들은 유전적으로는 동일할지 몰라도, 환경에 호된 시달림을 당하다 보니 결국 저마다의 길을 찾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분화의 원리다.
30억년 전으로 올라가 우리는 분화가 일어날 최초의 조짐을 목격한다. 유전적으로 똑 같은 세포들이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세포의 형태가 달라지면 생활사에 따라 그 운명도 달라진다 어떤 것은 단단한 내성 포자가 되고 어떤 것은 끈적끈적한 얇은 막(세균막)을 형성해 바다 속 바위 표면 같은 것에 달라붙는다. 어떤 것은 독립적으로 번성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어떤 것은 그냥 죽는다. 또 어떤 것은 그냥 죽지 않고, 복잡한 방식으로 죽는다. 이런 복잡한 죽음의 장치가 어떻게 처음 진화 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그럴듯한 해답은 파지 감염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파지는 세균을 감염 시키는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오늘날 바다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 입자의 수는 충격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바닷물 1밀리리터에서는 수억 개의 바이러스가 들어있는데, 이는 세균에 비해 수백 배나 많은 수치이다. 아주 옛날에도 틀림없이 이와 거의 비슷한 수의 바이러스가 있었을 것이다. 세균과 파지 사이의 부단한 전쟁은 진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 중 하나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예정된 세포 죽음도 이 전쟁 초기에 무기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많은 파지에서 사용하는 독소-항독소단위가 있다. 이런 파지에 있는 소량의 유전자에는 숙주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암호화 되어있는데 숙주 세포를 독소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항독소의 유전자도 함께 암호화되어 있다. 비열하게도 독소의 효소와 항독소를 모두 생산하므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순진한 세균이 바이러스의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면 독소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되는 것이다. 이 불쌍한 세균이 곤경에서 벗어날 가장 쉬운 방법은 항독소의 유전자를 자신의 유전체에 삽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감염이 되지 않았을 때도 방어를 할 수 있다. 이 전쟁이 지속되면서 더 복잡한 독소와 항독소가 진화하고, 전쟁 장비는 더욱 화려해졌다. 카스파제(caspase)효소가 남조세균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도 이 같은 방식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특별한’죽음’ 단백질은 세포를 안에서부터 난도질한다. 카스파제는 하나의 효소가 다음 효소를 단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는데 결국에는 집행자의 군대 전체가 세포 안에 풀려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카스파제가 저마다 억제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억제제는 카스파제의 활동을 차단할 수 있는 ‘해독제’다. 공격과 방어 작용이 여러 단계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체적인 독소-항독소 체계는 파지와 세균 사이에 지루하게 이어져온 진화 전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균과 바이러스 사이의 이런 전쟁 속에 어쩌면 죽음의 깊은 뿌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살은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았을 때조차도 의심할 여지없이 세균에게 이득이다. 여기에는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집단 전체가 사라질 위기에 대한 어떤 물리적 위협(이를 테면, 극심한 자외선 조사나 영양분 부족 따위)은 크게 번성한 남조세균 무리에서 예정된 세포 죽음을 촉발시킬 수 있다. 가장 강인한 세포는 이 위협에서 살아남을 방법으로 내구성이 강한 포자를 만들어 훗날 다시 번성하기 위한 씨앗을 마련한다. 반면 강인한 세포는 이 위협에서 살아남을 방법으로 내구성이 강한 포자를 만들어 훗날 다시 번성하기 위한 씨앗을 마련한다. 반면 강인한 세포와 유전적으로는 같지만 더 약한 사촌들은 똑 같은 위협을 받으면 죽음의 장치를 촉발시킨다. 이런 역학 관계를 자살로 보느냐, 타살로 보느냐는 취향의 문제다. 냉정한 시각으로 볼 때 결론은 간단하다. 손상된 세균이 제거되면 이 세균 유전체의 복사본은 진화 기간 동안 더 많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분화의 형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세포 하나하나의 생활사에 달렸다.
정확히 같은 논리가 더 큰 힘이 작용하는 다세포 생물에도 적용된다. 다세포 생물에서는 세포들이 항상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헐렁한 군체나 녹조 현상에서보다는 세포들의 운명이 훨씬 더 단단하게 결속되어있다. 단순한 공 모양의 다세포생물이라도 분화는 불가피하다. 공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는 산호와 이산화탄소의 이용도 햇빛에 대한 노출, 포식자에 대한 위협에서 차이가 난다. 이 세포들은 서로 같아질 수 없다. 아무리 세포들이 서로 같아지기를 ‘바란다’해도 소용이 없다. 가장 단순한 적응도 금방 대가가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발생의 특정 단계에서, 많은 조류가 채찍저럼 생긴 일종의 추진 장치인 편모를 갖는다. 둥근 군체에서는 이렇게 편모를 갖는 세포들이 군체의 바깥쪽에 자리잡고 함께 운동하여 군체 전체를 움직인다. 반면 포자(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의 다른 발생단계) 는 군체 내부에서 보호된다. 이런 단순한 노동의 구별은 각각의 세포들이 최초의 원시적인 군체를 형성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수가 많다는 것과 분화의 장점은 최초의 농경사회에 비길 만하다. 처음 농경사회가 만들어지고, 입법과 같은 식으로 일을 전문화할 수 있었다. 이런 전문화가 불가능 했던 소규모 수렵채집 부족을 농경사회가 밀어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단순화 군체에도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세포 유형이 있다. 바로 생식세포 계열(germ line)과 ‘소마soma(몸)’을 이루는 체세포다. 이와 같은 구분을 최초로 지적한 사람은(이미 제 5장에서 소개했던)독일의 진화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이다. 바이스만은 아마 다윈 이후에 가장 영향력 있고 통찰력있는 19세기 다윈주의자일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로지 생식세포 계열만이 죽지 않고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한다. 반면 체세포들은 죽지 않은 생식세포 계열을 단순히 거들다가 버려진다. 바이스만의 개념은 프랑스의 노벨 수상자 알렉시 카렐(Alxis Carrel)의 의혹제기로 방세기 동안 신임을 받지 못했다. 훗날 카렐릉 자료 조작으로 스스로의 명성을 실추시켰지만, 바이스만은 항상 옳았다. 그의 구분은 궁극적으로 모든 다세포생물의 죽음을 설명한다. 분화는 특성상 몸을 이루는 세포 중 일부만이 생식세포 계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나머지 세포들은 생식세포 계열을 돕는 구실을 해야만 한다. 이 세포들에게 돌아가는 유일한 혜택은 자신과 똑 같은 유전자가 생식세포 계열을 통해 후대에 전해짐으로써 얻는 대리 만족 뿐이다. 체세포가 일단 생식세포 계열에 종속되는 역할을 ‘받아들이면’이 체세포들이 죽는 시점도 생식세포계열의 요구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군체와 일정한 다새포생물 사이의 차이는 분화의 정도로 가장 잘 구분된다. 볼복스 같은 조류는 집단 생활을 함으로써 이득을 보지만,’이탈’을 해서 단세포생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독립생활의 가능성을 유지하면 세포가 도달할 수 있는 분화의 정도가 줄어든다. 뉴런처럼 고도로 분화된 세포가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정한 다세포생물의 삶은 대의를 위해 하나될’준비’가 된 세포들로만 도달할 수 있다. 이 세포들이 의무를 다하는지는 철저히 관리되고, 독립생활로의 복귀를 시도하면 죽음이라는 벌을 받는다. 다른 길은 없다. 다세포생물이 생기고 10억년이 흘렀지만 오늘날에도 암이 걸리면 삶이 파괴된다. 이것만 봐도 다세포생물에는 세포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만이 다세포생물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죽음이 없으면 당연히 진화도 없다. 생존의 차이가 없으며 자연 선택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다세포생물조차도, 일탈을 꾀하는 세포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하는 데 별다른 진화적 도약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4장을 떠올려보자. 복잡한 ‘진핵’세포는 두 세포의 연합으로 만들어졌다. 숙주 세포 속으로 들어간 세균은 훗날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로 진화했다. 독립생활을 하던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은 남조세균 같은 무리로, 세포를 내부에서 난도질하는 데 필요한 카스파제 효소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세균이 카스파제를 어디서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남조세균에게서 건네 받았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는 둘 다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토콘드리아가 제대로 작동하는 완전한 죽음의 장치를 최초의 진핵세포 속에 남겼다는 것이다.
진핵생물이 세균으로부터 카스파제 효소를 물려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성공적인 다세포 생물로 멋지게 진화할 수 있었을지는 흥미를 자아내는 의문이지만. 카스파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다세포생물의 진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핵생물에서는 진정한 다세포화가 최소 5번 이상, 곧 홍조류, 녹조류, 식물, 동물, 균류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이 다섯 종류의 생명체 사이에는 구조상의 공통점이 별로 없지만, 일탈하려는 세포를 모두 죽음으로 다스렸고, 죽음의 형벌을 내릴 때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카스파제 효소를 활용했다. 흥미롭게도 거의 모든 경우에서 미토콘드리아는 여전히 주도적으로 죽음을 중재한다. 세포 내에서 충돌하는 신호를 통합하고, 잡음을 제거하고 마침내 필요하면 죽음의 장치의 방아쇠를 당긴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다세포생물이라도 세포의 죽음이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진화적 신기성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요한 장치는 미토콘드리아와 함께 최초 진핵생물 속으로 이미 들어왔고, 약간 정교해지기는 했지만 오늘날 까지도 대체로 변함없이 남아있다.
그러나 세포의 죽음과 유기체 전체의 죽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포 죽음은 다세포 생물의 노화와 죽음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모두 죽어야 한다거나 똑같이 쓰고 버릴 수 있는 다른 세포로 대체되어서는 안된다고 명시된 법칙은 없다. 민물에 사는 강장동물인 히드라hydra는 본질적으로 죽지 않는다. 세포가 죽으면 대체되지만 유기체 전체는 노화의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세포의 삶과 세포의 죽음 사이에는 장기적인 균형이 존재한다. 이는 흐르는 시냇물과 같아야만 나아가고 그 자리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내의 모습 곧 크기나 형태는 변함이 없다. 어떤 그리스 철학자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같은 시내다. 마찬가지로 세포가 시냇물처럼 바뀌는 유기체는 전체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가 바뀌어도 나는 나다.
다른 방식이기는 어렵다. 만약 세포의 삶과 죽음 사이의 균형이 바뀌면, 유기체는 더 이상 시냇물처럼 안정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죽음’ 설정이 세포가 덜 죽는 쪽으로 조정되면, 세포의 성장을 저지하지 못해 암이 발생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나 죽음이 더 잘 일어나도록 조정되면 그 결과는 쇠퇴로 나타난다. 암과 퇴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둘 다 다세포생물의 생활을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한갓 히드라도 자신의 균형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 또 인간도 하루에 수십억개 의 세포가 바뀌는 상황에서도 수 십년 동안 체중과 체형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가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 균형을 잃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동전의 양면을 모두 경험한다. 암과 퇴행성 질환은 둘다 노년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다면 왜 유기체는 늙고 죽는 것일까?
왜 늙는 걸까 ?
가장 대중적인 노화 개념은 1880년대에 바이스만이 내놓았지만, 바이스만 자신도 금방 알아차린 것처럼 이 개념은 잘못된 개념이었다. 당초 바이스만이 내놓은 개념에 따르면, 노화와 죽음은 낡아서 못쓰게 된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을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자가 재조합된 팔팔한 신품 집단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종교적인 장엄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의를 수행하는 죽음에 일종의 숭고함과 균형을 부여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일부 세포의 죽음이 유기체 전체에 이득이 되듯이, 개체의 죽음이 종 전체에 이득이 된다. 그러나 바이스만의 비평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는 순환논법이다. 처음에 노화가 되면 늙은 개체는 단순히 ‘낡아서 못 쓰게 된다.’ 따라서 바이스만은 자신이 설명하려고 한 것을 정확하게 전체로 삼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설사 죽음이 개체군에 이득이 된다 해도, 나이가 들면 ‘낡아서 못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에서 벗어나 자신과 똑 같은 이기적 유전자를 지는 자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암은 같은 개체를 차단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체군에서 이런 암을 차단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다윈주의적 해답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피터 메더워이다. 1953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취임 연설에서 메더워가 내놓은 해답은, 노화에 관계없이 죽음이 통계적으로 있음직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불사의 존재라 해도 버스에 치이거나, 하늘에서 돌이 떨어지거나, 호랑이에 잡아 먹히거나, 병에 걸리거나 해서, 영원히 살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생의 초반기에 자신이 가진 생식자원을 집중시키는 개체는 느긋한 계획을 세우는 개체들보다 훨씬 많은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500년마다 생식을 할 계획인 개체가 있다면, 450년이 지난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른 나이에 생식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느긋한 사촌들보다 자손을 더 많이 남기게 되고, 이 자손들은 우리의 ’조기생식’ 유전자를 물려받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문제가 있다.
메더워에 따르면, 종마다 통계적인 적정 수명이 있다. 이 적정 수명은 개체의 크기, 대사율, 천적, 날개 같은 신체적 특징 따위에 의해 결정된다. 이 통계적 수명이 20년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 시기 안에 생식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개체는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것이다. ‘도박을 하는’ 유전자는 그렇지 않은 유전자보다 더 잘해낼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메더워의 결론에 따르면, 우리의 통계적 수명 이후에 심장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유전체 속에 축적된다. 인간을 예로 들면, 아무도 150세까지 살지 못한다면 150세에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자연선택을 통해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70세 넘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70세에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걸러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메더워에게 노년이란 유전자에 의한 쇠퇴다. 죽음을 유발하는 수백개의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손길을 피해 살아남아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티토노스의 비참함을 겪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치명적인 감염 질환이나 포식자 같은 죽음을 유발하는 수많은 통계적 원인을 인위적으로 제거해서 수명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무덤을 파헤쳐왔고, 유전자는 우리를 무덤까지 따라온 것이다.
메더워의 개념을 더 세련되게 다듬은 사람은 미국의 진화학자인 조지C. 윌리엄스다. 윌리엄스는 길항적 다형질 발현antagonistic pleiotropy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확실히 모든 과학을 통틀어 최악의 이름이다. 나는 이 용어는 유용하기도 하고 아주 해롭기도 한, 여러가지 효과를 지닌 유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길항적 다형질 발현의 전형적인 사례로는 헌팅턴 무도병이있다. 정신과 육체를 가차없이 망가뜨리는 이 병은 중년에 들어서야 발병하며, 처음에는 가벼운 경련과 비틀거림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결국에는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빼앗긴다. 이 ‘비틀거리는 광기’는 단 한 개의 유전자 결함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 유전자는 성적인 성숙이 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부 잠정적 증거가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헌팅턴 무도병이 진행될 사람은 초년에 성적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지만 왜 그런지는 불확실하다. 또 그 효과도 대단히 미미하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성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전자는 선택되어 유전체에 남는다는 것이다. 훗날 가장 끔찍한 퇴행성 질환을 일으킨다 해도 말이다.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노년의 질환과 연관되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 개념은 충분히 단순하고 설득력이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철분의 축적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어릴적에는 혈색소인 헤모글로빈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나이가 들어 철분이 너무 많으면 심부전의 원인이 된다. 확실히, 진화론적 개념은 현대의학과 일치하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말하면, 동성애에서 알츠하이머병까지 유전자에는 없는게 없다. 그렇다. 신문이 팔리려면 이런 말투가 제격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어있다. 특별한 유전적 변이가 특정 질환의 소인이 된다는 개념은 의학 연구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널리 알려진 예를 하나 들면, ApoE (아폴리포 단백질,E) 유전자의 세가지 변이인 ApoE2, ApoE3, ApoE4를 들 수 있다.서구 유럽에서는 인구의 약 20%가 ApoE4변이를 갖고 있었다.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이 유전자를 아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유전자를 원할 것이다. ApoE4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ApoE4 유전자 변이를 두개 갖고 있다면, 먹이는 것에 신경을 쓰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서 유전적 성향에 따른 영향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ApoE4유전자에 실제로 무슨’좋은점’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변이가 그렇게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훗날 찾아오는 불이익을 상쇄하는 어떤 이득이생의 초반부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수 백가지의 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의학 연구는 이런 유전적 변이를 색출하고 신약(하나같이 비싸다)을 이용해 해로운 영향을 상쇄하려 한다. 헌팅턴 무도병과 달리, 대부분의 노화와 관련된 질환은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병리현상이 나타난다. 심혈관계 질환을 예로 들면,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고혈압, 비만, 고지혈증, 무기력증 따위를 일으킨다. 만약 혈압이 높으면서 짜고 기름진 식사를 하고, 술 담배를 즐기고, 운동보다는 TV시청을 더 좋아한다면, 위험성을 결정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질병의 위헙성을 추정하는 것은 생색안나는 일이고, 우리의 유전적 성향에 관한 이해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노화관련 질환에 유전자의 기여가 차지하는 정도는 모두 합쳐도 대개 5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확실히 노년은 언제나 가장 큰 단일 위험요소다. 20~30대에 암에 걸리거나 뇌졸중을 겪는 불행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현대의학에서 노화 관련 질환에 대해 이해는 대체로 늦게 작용하는 유전자를 통한 메더워의 진화론적 묘사와 거의 일치한다. 수백 개의 유전자를 통한 메더워의 진화론적 묘사가 거의 일치한다. 수백 개의 유전자가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위험을 안고 있다. 저마다의 특별한 유전자 무덤을 가지고 있으며, 그 효과는 우리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자에 다라 악화될 수도 있고 개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노화에 관한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두가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여기서 내가 선택한 단어 속에 암시되어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질환, 곧 노화의 증상에 관한 것이지, 노화의 저변에 있는 원인이 아니다. 이런 유전자는 특정 질환과 연관성이 있지만. 이들 중 노화 자체를 일으키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또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비정상적인 유전자의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이런 유전자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의학에서는 노화 관련 질환을 병리학적으로(따라서 ‘치료할 수 있다’고)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화는 질병 보다는 ’상태’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 ‘노화를 ‘병적인’ 것으로 몰아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노화를 노화관련 질환과 분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 구별이 메더워에 대한 내 생각을 잘 보여준다. 메더워가 설명한 것은 노화 연관 질환에서는 유전자의 구실이지, 노화의 저변에 있는 원인이 아니었다.
이 구별의 힘은 충격적이었다. 1988년,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프리드만과 톰 존슨은 선충류에서 최초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Age-1이라고 명명된 이 돌연변이는 선충류의 수명을 22일에서 46일로 두 배 연장시켰다. 그 다음 해, 수많은 비슷한 돌연변이가 선충류뿐 아니라 효모에서 초파리, 생쥐에 이르는 다양한 생명체에서 발견되었다. 한동안 학계는 입자 물리학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고, 온갖 종류의 새로운 생명 연장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 점차 이 돌연변이들 사이에 어떤 공통적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효모, 초파리, 생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돌연변이 유전자에 똑 같은 생화학적 경로로 들어가는 단백질이 암호화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균류와 포유류에 똑같이 적용되는 대단히 일정한 메커니즘이 있으며, 이 메커니즘이 수명을 조절했다. 이 경로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수명이 연장될 뿐 아니라, 노년기 질환도 지연되고 심지어 피해갈 수도 있다. 불쌍한 티토노스와 달리 수명의 두 배 연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기간도 두 배로 길어지는 것이다.
질병과 수명 사이의 연관성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거의 모든 포유류가 당뇨병, 뇌졸중, 심장병, 실명, 치매와 같은 노화 관련 질환을 비슷하게 겪는다. 그러나 쥐는 세살 무렵이 되면 노화가 진행되면서 암에 걸린다. 반면 인간에게는 같은 질환이 60~70세 사이에 나타난다. ‘유전적’질환 조차도 단순히 시간 경과보다는 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명과 연관된 돌연변이에서 진짜 놀라운 점은 체계 전체의 유연성이다. 단 하나의 유전자에서 단 하나의 돌연변이가 생겨도 수명이 두배로 늘어남과 동시에 노인성 질환을 ‘멈춤’ 상태로 놓을 수 있다.
이 발견이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 하나의 경로에서 간단히 치환을 통해, 암에서 심장병, 알츠하이머병에 이르는 노년의 모든 질환이 원칙적으로 지연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피할 수도 있다. 정말 충격적인 결론이지만, 우리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일이다. 노화와 모든 노화관련 질환을 단 하나의 만병통치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다르게 ‘늙는’사람들 속에서 알츠하이머병 같은 하나의 노화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노화에 관한 메더워의 설명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특별한 유전자 무덤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노화를 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유전자의 공동묘지를 모두 비켜갈 수 있다. 노화 관련 질환은 생물학적 나이로 결정 되는 것이지, 화학적 나이나 연대순의 시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노화를 치료하면 노화와 연관된 질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전학 연구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노화가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와 성
수명을 조절하는 생화학적 경로의 존재는 몇 가지 진화론적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첫 번째로는 수명이 유전자에 직접 쓰여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다. 노화와 죽음은 예정되어 있고 아마 종 전체에 이득이 되리라는 것이 바이스만의 처음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 단 한번의 돌연변이로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면, 부정행위를 하는 동물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이득을 위한 체계를 ‘이탈’한 동물들을 왜 더 많이 볼 수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할 것이다. 만약 동물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부정행위에 대한 벌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그 벌은 수명이 길어지는 장점을 넘어설 정도로 대단히 혹독할 것이다. 그리고 이 추측이 맞다면, 우리는 노화 관련 질환을 그냥 가지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불이익은 존재한다. 역시 성이었다. 만약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면, 우리와 죽음 사이에 작성된 짧은 계약서를 읽어보는 게 현명할 것이다. 노화유전자gerontogene라고 불리는 모든 생명-연장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수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연장된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본래의 위치가 항상 수명을 짧아지게 한다. 이 현상은 노화유전자에 의해 조절되는 생화학적 경로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 생화학적 경로는 노화가 아닌 성적 성숙과 연관이 있다. 한 동물이 성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런 자원과 에너지를 구할 수 없다면, 발달을 억제하고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 즉, 환경이 풍족해지는지를 잘 지켜보고 있다가 생화학적인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생화학적 흐름의 변화는 세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과 같다 “먹을 것이 많다. 번식하기 딱 좋은 때가 왔다. 짝짓기를 할 준비를 해라!” 풍족을 나타내는 생화학적 지표는 인슐린 호르몬이다. 인슐린은 장기간(몇 주나 몇 달)에 걸쳐 작용하는 같은 종류의 거대한 호르몬 집단과 함께 작용하며, 이 호르몬 집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인슐린 관련 성장인자 insuline-related growth factor(IGF)다. 이름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선충류 하나에만도 인슐린과 연관된 호르몬이 39개나 있다.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 인술린 호르몬이 행동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발달상의 변화를 일으킬 범위를 조절하고 짝짓기를 할 준비를 한다. 만약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으면 이 경로는 잠잠해지고 성적 발달은 지연된다. 그러나 이 침묵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신호가 없다는 것을 다른 장치를 통해 감지하고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류한다. 말하자면, 더 나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짝짓기를 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 사이 몸은 가능한 오랫동안 순결한 상태로 보존된다.
성과 장수 사이의 거래라는 개념은 영국의 노년학자 톰 커크우드가 1970년대에 내놓았다. 당시는 노화유전자가 발견되기 오래전 이었다, 커크우드는 에너지가 제한되고 모든 것에 비용이 드는 경제적 토대 위에서의 이런 ‘선택’을 정확히 묘사했다.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에서 성의 에너지 비용은 제외되어야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는 유기체는 자원을 배분하는 유기체에 비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낮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딱 한번만 번식을 하고 자손을 전혀 기르지 읺는 태평양연어 같은 동물이다. 따라서 이들의 파국적인 종말을 더 잘 설명하는 것은 예정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업에서의 자원의 전적인 투자, 즉 생식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모조리 성에 집중시키기 위해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끌어다 쓰기 때문에 며칠 만에 몸이 산산조각이 난다. 한 번이상 생식을 하는 동물은 때에 따라서 생식에 배분하는 양을 줄이고, 몸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우리 인간처럼 자손을 기르는데 1년 이상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동물은 더 멀리 내다보고 균형을 조절한다. 그러나 모두가 나름 선택을 해야하고, 동물의 경우 그 선택은 일반적으로 인슐린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
노화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침묵을 자극한다. 이들은 풍부함의 신호를 약화시키고, 대신 몸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심지어 먹을 것이 풍부할 때도, 돌연변이 노화유전자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반전들이 있다. 먼저, 인슐린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노화유전자들이 뿌리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 기이한 현상이 인슐린 내성으로 나타나는데, 인슐린 내성은 수명은 연장시키기 않으면서 성인 당뇨병을 일으킨다. 문제는 과식 그리고 부족한 자원을 저장하려는 생리학적 결정과 짝을 이루게 되면 체중증가와 당뇨병 조기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반전은 수명 연장, 곧 생식은 미뤄지는 데 따른 불이익이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불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당뇨병이 불임과 연관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뇨병과 불임은 같은 호르몬의 주기적 변화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다. 인슐린 장애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허기진 채로 있을 때만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리고 그 잠재적인 비용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수십년 동안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세번째 반전이다. 그리 달갑지 않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1920년대부터 적절한 허기가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열량제한이라고 한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서 정상보다 40퍼센트 적은 열량을 섭취하는 쥐는 마음껏 먹은 형제들보다 50퍼센트 정도 오래 산다. 또 노화 관련 질환도 무기한 연기되고 뇌졸중도 덜 일어난다. 이런 열량 제한이 인간에게도 쥐에서와 똑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쥐에서처럼 극적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난다는 증거가 있다. 생화학적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도 대체로 비슷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열량 제한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수 십년 동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작용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는 바가 없다. 심지어는 인간에게도 정말 그런지조차 확신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수명에 관해 적절한 연구를 하려면 수십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가장 부지런한 학자들마저도 맥이 빠지는 기간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오래 살면 더 느리고 더 지루하게 사는 것이라는 통념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그 점이 희망을 준다. 열량 제한의 저변에 깔린 생화학이 수많은 피드백과 그에 병행되는 회로, 그 밖의 군더더기들로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생화학은 조직마다 종마다 만화경처럼 다채롭게 변화해서 과정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중요한 것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복잡한 경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노화유전자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점이 연구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열량 제한은 노화유전자에 의해 조절되는 경로에서 적어도 부분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과 장수는 일종의 스위치로 조절된다. 열량 제한의 문제점은 이 스위치를 완전히 한쪽으로 젖혀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래 살게 되면 그만큼 유성생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화유전자에 관해서는 이것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노화유전자에서 일어나는 일부 돌연변이는 성적 성숙을 억제하지만 (이를 테면 원래 age-1돌연변이는 75%까지),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 노화유전자 돌연변이는 수명과 건강한 기간을 연장시키지만 성적 능력은 거의 억제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적 능력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살짝 연기만 하는 것이다. 다른 노화유전자들은 어린 동물의 성적 발달을 차단하지만 더 나이가 많은 성체에는 특별히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교묘한 술수를 발휘하면 성과 장수의 뒤얽힌 관계를 해결하는 것, 다시 말해서 성적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장수를 담당하는 유전자를 활성화 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열량 제한에서 중추적 구실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노화유전자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두 유전자는 SIRT-1와 TOR이다. 두 유전자 모두 효모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둘 다 단백질 집단 전체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수명에 효과를 발휘한다. 둘다 양분이나 인슐린군 같은 성장인자의 유무에 민감하며, 서로 상반된 조건에서 활동한다. TOR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자극함으로써 이 스위치의 성적인 면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TOR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자극함으로써 이 스위치의 성적인 면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TOR는 다른 단백질이 커지면서 작동하는데, 이 단백질들은 단백질 합성과 세포성장을 자극하거나 세포 구성 요소의 전환과 분해를 차단한다. 반면SIRT-1는 이와는 상당히 다른 작용을 하는데, 세포를 강화하는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전형적으로 생물학에서는 이들 작용이 일부 겹치지만, 서로 정확한 균형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백질들 사이에서 SIRT-1과 TOR는 열량 제한의 여러 이득을 조정하는 중심 ‘창구’구실을 담당한다.
SIRT-1과 TOR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확실히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약리학적으로 어떻게 표적화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약리 작용에는 보상이 걸려있으니 열띤 과학적 논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레너드 거렌티와 그르이 전임 박사후 연구원이었다가 현재는 하버드에 있는 데이비드 싱클레어에 따르면 SIRT-1은 포유류에서 열량 제한 효과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적포도주에서 발견되는 작은 분자인 레스베라트롤에 의해 활성화된다. 2003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을 필두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출판물들이 줄줄이 레스베라트롤이 효모와 지렁이와 파리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2006년 11월, 싱클레어와 그의 동료 연구진이 레스베라트롤이 비만 쥐의 사망 위험을 3분의 1로 줄인다는 것을 입증한 대단히 중요한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 논문에 관한 기사가 『뉴욕타임스』의 1면을 장식하면서 갑작스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비만 쥐에서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과체중인 포유류, 확실히 인간에게도 놀라운 효험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적포도주를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돈벌이를 늘려줬지만, 적포도주 한 잔에 들어있는 레스베라트롤의 양은 쥐에게 투여했던 1회복용량의 0.3퍼센트에 불과하다. 현재 워싱턴 대학의 브라이언 케네디와 매트 캐벌린이라는 두 학자가 그러한 개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거렌티 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SIRT-1의 초기 연구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예측에 대한 수많은 예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캐벌린과 케네디는 SIRT-1대신 TOR을 내세웠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TOR의 효과는 종 사이에 더 널리 펴져있고 지속적이다. TOR와 SIRT-1은 정확히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다기 보다는 중복되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특히 TOR를 차단하면 염증 작용과 면역 작용이 억제된다. 이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그 까닭은 여러 노화 관련 질환이 지속적인 염증성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TOR은 라파마이신의 표적이라는 뜻으로 이식의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라파마이신은 장기 이식 환자의 면역 억제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의약품으로 10년 넘게 사용되어 오고 있다. 면역 억제제로는 드물게, 라파마이신은 장기 이식 수혜자의 몸에서 암이나 뼈 손실을 일으키는 경향이 없다. 그러나 미하일 블라고스클로니는 라파마이신이 이상적인 노호방지 약품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그 주장에 설득되고 있다. 라파마이신을 투여받은 장기 이식 수혜자가 노년에 더 적은 질병을 겪는지 알아보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레스베라트롤과 라파마이신 같은 노화방지 의약품에는 둘다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두가지 모두 수십, 심지어 수백 개의 단백질과 유전자의 활성이나 비활성을 조절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필요한 작용일지 모르지만, 이런 대규모의 변화에서 어떤 부분은 불필요하거나 단기적인 식량 부족이나 스트레스 하에서만 필요할지도 모른다. 진화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런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것은 어쨌든 사실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SIRT-1의 활성이나 TOR의 억제가 인슐린 저항성, 당뇨병, 불임, 면역억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 표적을 뚜렷하게 하면 이런 맞교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적어지므로 더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생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자연선택에 의해 수명이 연장된 동물들은 맞교환으로 인한 불이익을 전혀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SIRT-1과 TOR에 의해 활성화 되는 잡다한 유전자들 중에서 수명을 연장시키고 질병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변화 중에 정확히 어떤 것이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표적화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연구자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답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연구자는 방어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강조하고, 어떤 연구자는 해독작용을 하는 효소의 민감도를 강조하는 반면, 어떤 학자는 노폐물 처리 체계를 강조한다. 모두 특정 상황에서는 충분히 중요성을 지닐 수 있지만, 이 중요성은 종에 따라 다양해 보인다. 균류에서 우리를 포함하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나타나는 유일한 변화는 세포내 에너지 생산 장치인 미토콘드리아와 연관성이 잇다. 열량 제한은 언제나 미토콘드리아의 수를 증가시킨다. 미토콘드리아에는 손상에 대한 저항성이 있는 막이 있는데, 이 막은 호흡을 하는 동안 함께 생성되는 반응성이 큰 ‘자유라디칼’의 누출을 감소시킨다. 이런 변화는 지속적일 뿐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노화에 관한 자유라디칼 연구와도 근사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유라디칼 신호
자유라디칼이 노화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나온 시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 회사에는 자유라디칼 화학을 연구한 데넘 하먼은 (전자를 얻거나 잃는)산소나 질소를 포함한 반응성이 큰 자유라디칼 조각이 DNA나 단백질 같은 중요한 생체 분자도 공격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하먼은 이 자유라디칼 조각들이 결국 세포를 파괴하고 노화과정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따. 하먼의 개념이 처음 나온 이래로 반세기가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로서는 그가 처음 내놓은 개념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그러나 더욱 정교해진 개념은 훨씬 더 그럴듯해졌다. 하먼이 몰랐던 것, 그리고 알 수 없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잇다. 하나는 자유라디칼이 단순히 반응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포 내에서 하나의 위험 신호로서 호흡을 최적화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자유라디칼은 연기가 화재경보기를 울리는 것과 대단히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단백질과 DNA를 마구잡이로 공격한다기 보다는(TOR 자체를 포함해)몇 가지 중요한 신호 단백질을 활성화시키거나 무력하게 한 다음, 수백 개의 단백질과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라디칼 신호가 세포 생리학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산화제antioxidant(자유라디칼을 깨끗이 없앤다)가 도움도 되지만 해롭기도 한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먼의 원래 예측에 따라 상한화제가 노화를 지연시키고 질병을 예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산화제가 그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임상 연구를 통해 계속 입증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항산화제를 복용하면 그냥 배설되거나 처음부터 흡수되지 않는다. 우리 몸은 항산화제 농도를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항상 경보를 울릴 채비를 하고 있다.
하먼이 (25년 뒤에 발견되었기 때문에)알 수 없었던 두 번째 요소는 예정된 세포죽음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세포에서 예정된 죽음 역시 미토콘드리아에 의해 조정된다. 미토콘드리아는 20억년 전에 이 죽음의 장치 일습을 진핵세포 속으로 들여왔다. 세포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명을 거두게 하는 기본적인 신호 중 하나가 미토콘드리아에서 누출되는 자유라디칼의 증가다. 이 자유라디칼 신호에 반응하여 세포는 죽음의 장치를 작동시켜 몸 전체에서 자신의 모습을 흔적도 없이 지운다. 알게 모르게 파편을 남길 것이라는 하먼의 생각과 달리, 조용한 죽음의 장치는 잔혹한 KGB처럼 능란하게 끊임없이 증거를 없앤다. 따라서 하먼의 이론에서 두 가지 중요한 예측, 곧 세포의 손상은 나이가 들수록 축적되어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 항산화제가 이런 축적을 늦춰서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것은 모두 틀렸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에서 더 다듬어진 새 이론은 대체로 옳다. 아직 자세한 부분에는 검증되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지만 말이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상 모든 종에서 자유라디칼 누출에 따라 수명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자유라디칼의 누출이 빨라질수록 수명은 더 짧아진다. 자유라디칼 누출 속도는 대체로 대사율, 다시 말해서 세포가 산소를 소비하는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몸집이 작은 동물은 대사율이 높다. 이들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있는 힘을 다해 산소를 소비하고,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맥박이 1분에 수백 번씩 뛴다. 이렇게 빠른 호흡을 하면, 자유라디칼 누출이 많아지고 수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이와 대조적으로 몸집이 큰 동물은 대사율이 낮다. 심장박동은 느리고 자유라디칼 누출도 적다. 이런 동물들은 더 오래 산다. 여기서도 정말 예외는 규칙을 잘 입증한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조류는 그들의 대사율을 토대로 ‘살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이를테면 비둘기는 약 45년을 사는데, 이는 크기와 대사율이 비슷한 쥐에 배해 놀랍게도 10배나 더 오래 사는 것이다. 스페인의 생리학자인 구스타보 바르하는 1990년대에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수행한 일련의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서 이런 차이가 자유라디칼 누출로 대부분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새들은 산소 소비량이 비슷한 포유류에 비해 자유라디칼 누출이 거의 10배나 적다. 이는 어울리지 않게 오래 사는 박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왜 그런지 이유는 분명치 않다. 나는 전작에서 그 이유가 비행능력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자유라디칼 누출이 적으면 대사율에 관계없이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자유라디칼 누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수명만이 아니다. 건강한 기간도 함께 변화한다. 앞서 우리는 노화관련 질환의 발병이 시간의 경과 아닌 생물학적 나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쥐와 인간은 같은 질병을 앓는다. 그러나 쥐가 2~3년이면 발병하는 데 반해, 우리 인간은 수십년의 시간이 걸린다. 일부 퇴행성 질환은 쥐와 인간에서 정확히 같은 돌연변이가 원인이 되어 발병하지만, 마찬가지로 수 십년의 시간 격차가 나타난다. 메더워가 노화와 연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의학연구의 중심에 있는 비정상적인 유전자들은 나이든 동물의 노화된 세포상태에 관한 뭔가를 통해 정체가 드러난다. 에든버러 대학의 앨런 라이트와 그 동료 연구진은 이 ‘뭔가’가 자유라디칼 누출 속도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만약 자유라디칼이 빠른 속도로 누출되면 퇴생성 질환이 빠르게 발병한다. 만약 자유라디칼 누출 속도가 느리면 퇴행성 질환의 발병이 늦어지거나 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새들은 대부분의 포유류에서는 일반적인(박쥐는 예외다) 노화관련 질환을 거의 겪지 않는다. 자유라디칼 누출이 궁극적으로 세포의 상태를 바꿔 ‘낡게’만들고 이렇게 변화된 상태에 의해 늦게 작용하는 유전자의 부의 효과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 합리적인 가설이다
어떻게 자유라디칼은 노화가 진행되는 동안 세포의 상태를 바꿔놓을까? 신호에 작용하는 예기치 못한 효과에 의한 것이 거의 분명하다. 자유라디칼 신호의 활용은 젊었을 때는 우리의 건강을 최적화하지만 나이가 들면(G,C 윌리엄스의 길항적 다형질 발현 같은) 해로운 효과를 나타낸다.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집단이 손상을 입기 시작하면 자유라디칼 누출이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하다가 화재경보를 울릴 한계를 넘게 되어 끊임없이 정보가 울리게 된다. 수백여개의 유전자가 활성화 되어 정상상태를 회복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면서, 비록 약하긴 하지만 만성적 염증이 일어난다. 이런 만성적인 염증은 많은 질환의 특징이다. 이런 지속적이고 가벼운 염증은 수많은 다른 단백질과 유전자의 특성을 변화시켜 세포를 더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한다. 내가 보기에는, ApoE4 같이 늦게 발현되는 유전자에서 해로운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뭔가는 바로 이런 염증이 잘 일어나는 상태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두가지다. 세포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를 잘 대처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대처 능력이 다양한데, 이런 대처 능력은 대개 세포가 하는 ‘일’에 달렸다.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예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선구적인 약리학자, 살바도르 몬카다의 연구에서 나왔다. 몬카다는 뉴런과 성상세포라고 하는 뉴런의 지지세포가 완전히 정반대의 운명을 나타낸다는 것을 입증했다. 뉴런의 운명은 그 미토콘드리아에 달려있다. 만약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면 죽음의 장치가 촉발되어 그 뉴런은 조용히 제거된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세가 나타날 즈음에는 뉴런의 4분의1이 제거되어 뇌의 위축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상세포는 미토콘드리아 없이도 꽤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성상세포는 대체 에너지원이 스위치를 켜고(해당작용스위치 glycolytic switch) 사실상 예정된 세포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결과는 왜 퇴행성 질환과 암이 노화와 나란히 가는지를 설명한다. 만약 세포가 대체 에너지의 스위치를 켜지 못하면, 세포는 죽는다. 이는 조직과 기관을 위축시켜 퇴행성 질환을 일으키고 얼마 남지 않은 다른 세포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 대체 에너지원의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세포는 스위치를 켬으로써 사실상 세포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끊임없는 염증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 세포들은 정상적인 세포주기의 제약을 벗어나 빠르게 돌연변이를 축적하고, 결국 암세포로 변한다. 뉴런에서 종양이 형성되는 일이 드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성상세포는 상대적으로 종양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젊었을 때(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기 전 중년도 괜찮다.) 열량제한을 시작하면 노화는 물론, 노화 관련 질환까지 예방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열량 제한을 하면 자유라디칼의 누출이 낮아지고, 손상을 방지하는 미토콘드리아 막을 강화하여, 미토콘드리아 수를 늘림으로써 생체 시계를 ‘젊음’으로 되돌려 ‘다시 맞추게’된다. 이렇게 하면 수백개의 염증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고 유전자는 청년의 화학적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한편, 예정된 세포 죽음에 대처해 세포를 강화한다. 암과 퇴행성 질환이 함께 억제되고, 따라서 노화의 속도도 늦춰진다. 실제로는 (TOR를 방해하는 직업적인 면역 억제 효과 같은) 수많은 다른 요소들이 연관되어 있지만, 원칙적으로 열량 제한의 가장 큰 이득은 자유라디칼 누출 감소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열량제한은 우리를 새와 한껏 비슷하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진짜 작용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증거가 있다. 1998년, 일본의 기후 국제 생명공학 연구소(Gifu International Institute of Biotechnology)에서 다나카 마사시와 그의 동료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 DNA에 공통적인(불행히도 세계 다른 곳이 아닌 일본에서 공통적인)변이가 있는 사람들을 조사했다.이 변이는 단 하나의 DNA 문자가 바뀐 것이다. 이 변이로 인해 자유라디칼 누출이 조금 감소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그 효과는 어느 한 순간에 겨우 검출될 정도로 미미하지만 일생 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그 여파는 대단하다. 다나카와 그의 동료 연구진은 병원에 온 환자 수백명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분석했다. 그 결과, 50대까지는 두 유형, 곧 이로운 돌연변이와 ‘정상’의 비율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50대가 넘어가면 두 유형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80대에 이르면 이로운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병원에 갈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그들이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사망 때문이 아니었다. 다나카의 발견에 따르면, 이로운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 확률이 두배나 더 높다. 이는 이로운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종류에 관계없이 노화 관련 질환에 걸릴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아는 의약품 중에는 이런 충격적인 효과를 지닌 것이 없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미미한 변화가 노화관련 질환으로 병원에 갈 위험을 절반으로 줄이고 100세가지 살 가능성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노년 연구가 늘어나 회색으로 변해가는 우리 지구에서 고통스럽고 비용이 많이 드는 노인건강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이는 확실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열심히 소문내자!
건강한 기간을 늘린다.
내가 이 시대의 과학적 도전을 경시하거나 혼신을 바쳐 노년의 특정 질병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을 비방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질병의 생화학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을 성공적으로 밝히지 못했다면, 더욱 폭넓은 통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학적 사고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에 관심 없는 의학 연구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진화사상가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진화를 제외하고 생물학에서 이치에 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의학은 이보다 더 심하다. 질병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고수하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하나하나에 매겨진 값은 알고 있지만. 그 안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금욕적인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라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라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지만. 이런 운명론이 점점 퇴색해갈 때 즈음이면 병에 걸리고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네 기사의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생명이 사그라진다. 언젠가는 우리가 질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암이나 알츠하이머병과 ‘싸움’ 할 때다.
그러나 죽음과 질병은 마구잡이로 오지 않는다.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이 의미를 이용해 우리 자신을 치료해야 한다. 죽음도 진화했고 노화도 진화했다. 죽음과 노화는 몇 가지 실용적인 이유에서 진화를 했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노화는 진화론적 변수가 되어 변화되어왔다. 이 변수는 생명의 부기 장부에서 성적 성숙 같은 다양한 다른 인자들에 의해 변화된다. 이런 인자들을 억지로 바꾸는 데는 대가가 따르지만, 그 대가는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사소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특별한 경로를 조금만 조절하면 우리는 더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에 관해 좀 더 강력하게 말하고자 한다. 진화론의 제안에 따르면, 우리는 단 한번의 적절한 해결책으로 노년의 질병을 뿌리 뽑을 수 있다. 노화방지 의약품은 그저 꿈이 아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의 ‘치료’는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의학 연구자들은 ‘치료cure’라는 단어보다는 좀더 신중하게 ’개선 ameliorate’ 이나 ‘완화 palliate’ 나 ’지연 delay’같은 단어를 선호한다. 우리가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해 사람들을 다른 모습으로 ‘늙게’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는 진화론적 거래 조건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이 새는 댐의 균열 몇 군데를 접착제로 때우기만 하고 한쪽에서 물이 잘 흐르기를 바랄 수는 없다. 뇌졸중과 심장 질환, 여러 종류의 암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자세히 밝혀냈다. 단백질과 단백질,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인의 몸에서 생기는 이런 질환은 오래된 내부 환경의 산물이다. 만약 우리가 서둘러 개입하면 이 내부 환경을 ‘젊게’, 최소한 ‘조금 덜 늙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대단히 많은 세부적인 계약 사항이 있고, 대단히 많은 거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노화의 근본 메커니즘에 관한 의학 연구에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다가올 20년 내에 해답을 얻지 못한다는 게 오히려 더 놀라울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해답은 노년의 모든 질환을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해답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명연장의 도덕성에 관해 염려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굳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열량 제한에 따라 수명이 연장되는 비율은 확실히 처음 수명에 반비례한다. 쥐는 거의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나지만, 붉은털원숭이 rhesus monkey는 그렇게 많이 연장되지 않는다. 붉은털원숭이의 몸에 나타난 생화학적 변화를 보면, 수명이 그렇게 많이 연장되지는 않지만 노년에 나타나는 질환은 훨씬 적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 예감에 따르면, 수명보다는 건강한 시기를 연장하는 게 더 수월한 일인 것 같다. 만약 열량 제한의 이득을 모방하면서 그 결점은 피할 수 있는 노화 방지 의약품이 개발된다면, 전반적인 건강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를 가진 운 좋은 일본 장수노인 들처럼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장수노인의 수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1000년이나, 하다못해 200년을 사는 사람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훨씬 까다로운 숙제다.
우리는 결코 영원히 살 수 없으며, 그런 소망을 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군체는 생식세포와 체세포차이라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세포가 분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대체될 수 있는 체세포는 생식세포 계열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세포가 전문화될수록 몸 전체, 특히 생식세포 계열의 이득은 커졌다. 모든 세포 중에서 가장 분화된 세포는 인간의 뇌에 있는 뉴런이다. 여느 평범한 세포들과 달리 뉴런은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하다. 뉴런 하나는 무려 1만개의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시냅스는 우리 각자의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 뇌는 대체 할 수 없다. 죽은 뉴런을 대체할 공통의 줄기세포 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언젠가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뉴런의 줄기세포 집단을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뉴런을 대체할 때 우리 자신의 경험까지 함께 얹어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의 대가는 우리 각자의 인간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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