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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통섭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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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처럼 과학하라. 프리초프 카프라, 강주헌, 김영사, 2011


최초의 통섭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글: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융합과 통섭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만능인’(유니버설 맨)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으로 알려진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다빈치는 농업, 의학, 물리학, 토목, 기계공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과학 분야를 넘나들었던 전형적인 르네상스인(人)이었다.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통합적 지식과 함께 생물과 무생물을 넘나드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추구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던 ‘과학자’이기도 했다. 사실 조르조 바사리를 비롯한 많은 저자들이 ‘신적 존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다빈치는 뛰어난 외모와 함께 ‘자연이 그의 몸 안에서 기적을 일으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범하고 다재다능했고, 그런 다빈치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의 과학 정신에 대한 분석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근육의 가닥이 꿈틀거리듯 보일 정도로 정교한 인체 해부도, 풍경과 정원의 설계와 식물학적 성과,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시작된 비행 물체의 설계 등에 대한 제한적인 분석이 있었을 뿐이다. 입자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절감했던 현대 기계론적 우주관의 대안으로 동양 사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신과학 운동’을 주도해왔던 프리초프 카프라가 그런 다빈치로부터 현대적 시스템적 사고와 심층 생태학 이론의 뿌리를 찾아냈다. 다빈치가 사실상 최초의 현대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다빈치의 과학, 모든 것을 경험하라

다빈치가 활동하던 15세기는 여전히 중세의 세계관이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자연의 비밀을 체계적이고 경험적으로 깨달아가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스콜라 신학자들은 기독교 교리에 집착하고 있었다. 교황청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체제 정복 행위로 받아들였고,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 대한 공격을 교황청에 대한 공격으로 여겼다.

그런 암울한 시기에 스스로를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부르던 다빈치는 경험론적 방법으로 자연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자연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수학으로 공식화하려는 노력이 그 핵심이었다. 10만 여 점의 데생과 1만 3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글이 그 결과였다. 스스로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그는 열정적인 지적 호기심, 끈질긴 인내심, 그리고 투철한 실험 정신이 결합된 과학적 창의력이 넘쳐나던 인물이었다.

다빈치의 과학은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 그리고 뛰어난 데생 실력을 기반으로 했다. 그의 ‘위대한 왼손’은 ‘요동치는 물의 복잡한 파동과 새의 신속한 날갯짓’을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날카로운 관찰력만큼이나 뛰어났던 데생 실력 덕분에 그의 그림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동시에 기하학적 도해(圖解)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빈치에게 그림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완벽한 도구였다.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분명하게 알고 있던 그에게 자연의 패턴은 본질적 속성과 근본 원리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물에 의해 결정되는 바위와 퇴적물의 패턴, 고유한 신진대사에 의해 결정되는 식물 성장의 형태, 움직이는 짐승과 사람의 해부학적 구조가 모두 예술적 영감과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패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다빈치를 선구자적인 시스템 사상가로 만들어주었다. 그에게 현상에 대한 이해는 패턴의 유사성을 통한 연계성을 찾는 것이었다. 인체의 비율을 르네상스 건축물의 비율에 연결시키고, 인체의 근육과 뼈를 톱니바퀴와 지렛대에 비교했고, 동물의 생리적 구조는 공학적 구조와 연계시켰다. 물의 파동과 공기의 흐름에서 찾아낸 공통된 패턴으로부터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빈치는 이러한 연계를 통해 자연을 ‘통일체’이면서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탁월한 인식을 확립하였다. 사실 사람 몸으로 구성된 ‘소우주’에 지구라는 ‘대우주’의 모든 요소와 힘이 집약되어 있다는 플라톤 시대의 사상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인식을 이어받은 다빈치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지구 구조의 유사성을 주목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구의 살은 흙이고, 뼈는 바위로 구성된 산이고, 연골은 구멍이 많은 바위이고, 핏줄은 물줄기로 파악했다. 심장에 고인 피의 호수는 바다이고, 맥박은 지구의 호흡에 해당하는 조석(潮汐) 현상으로 이해했다. 다빈치는 지구를 스스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파악하는 오늘날의 ‘가이아 이론’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의 회화는 자연과 생명의 패턴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다

자연의 유기적 형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나 뉴턴의 고전적 방정식으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다빈치의 입장에서는 5세기가 지난 후에야 복잡성 이론의 틀 안에서 정립되고 있는 고차원의 비선형 동력학과 현대 수학의 핵심인 위상 수학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는 ‘연속적 질량’과 ‘형태의 변화’를 비롯한 초보적 위상 수학의 개념을 활용하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였다.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적 분석의 도구였던 데생을 통해서 다빈치는 예술과 과학을 근원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 예술 행위를 위해서는 자연의 형태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고, 자연을 형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빈치는 생명을 지극히 존중하였고, 동물에게 특별히 연민을 품어서 채식을 고집하기도 했다. 복잡하고 풍요로운 자연에 대해 각별한 공경심과 경외심도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발명가였고 공학자였지만 자연의 정교함이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의 창조적 노력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려는 의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빈치의 과학은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다빈치가 무수히 많은 기계를 설계했지만 그의 과학은 결코 기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빈치는 인간과 동물의 몸에서 찾아낸 기계적 특징을 영혼이 유기체의 자기조직화를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보았다. 성장, 움직임, 변화로 나타나는 유기체의 자기조직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다빈치 과학의 핵심이었다. 다빈치의 과학은 질(質)과 비율의 과학, 내재된 과정에 의해 결정되고 변형되는 유기적 과학이고, 다빈치의 자연은 살아 움직이는 통일체이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대우주와 소우주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6천 여 점의 세밀한 데생이 바로 21세기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적 시스템적 사고와 심층 생태학의 원조다. 비록 ‘과학 탐구의 결과를 일관된 방향에서 통일된 지식 체계로 제시’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다빈치의 연구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려는 집요한 탐구욕’이 엿보인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다빈치는 ‘시스템 사상가, 생태학자, 복잡성 이론가’였다. 그런 다빈치는 모든 생명체를 지극히 공경한 과학자이자 예술가이면서 인간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카프라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