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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 파킨스병, 헌팅턴 무도병

보상 : 보상의 반란
- 쾌락 매커니즘 : 도파민
- 초정상자극, 불가사의한 쾌감 How pleasur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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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구진, 뇌 시상하부 안 쪽 ‘복측피개영역’의 도파민 분비기능 규명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빈약한 뇌 속 ‘보상시스템’
동아사이언스 | 입력 2016년 09월 05일 15:47 | 최종편집 2016년 09월 06일 00:00페이스북트위터네이버밴드구글플러스이메일보내기프린트하기
GIB 제공
GIB 제공
평소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도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즐거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루이스 레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팀은 사람이 아침에 잘 일어나는 이유가 뇌의 보상회로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5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뇌 중심에 있는 시상하부 쪽 ‘복측피개영역(VTA)’이 활성화되면 쉽게 잠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VTA는 뇌의 보상시스템의 중추로, 동물이 행동 할 때 도파민을 분비해 그 행동을 선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VTA의 도파민 분비 기능을 켰다 끌 수 있는 실험용 쥐를 만들었다. 이 쥐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도파민이 분비된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더 빨리 잠이 깼다. 반대로 도파민 활성이 억제된 쥐는 정상적인 쥐보다 더 늦게 잠들었다.

VTA의 활성은 쥐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도 관련이 있었다. 쥐의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실험한 결과, VTA 활성이 낮을수록 잠을 자기 위해 둥지를 짓는 경향이 있었다. 즉 VTA 활성이 높아지면  잠에서 깨어나고, 낮아지면 잠을 잘 준비를 하는 셈이다.

레샤 교수는 “25~30%의 미국인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면증 치료제 시장도 수조 원에 달한다”며 “이번 연구 성과를 이용하면 효과 좋은 불면증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 인생과 파킨슨병- 어느 신경과학자의 고백(완결판).

2013년 11월 8일 오후 1:28'


▶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나는 명사(名士)들과 부유층들로 가득 찬 근사한 디너파티에 참석했었다. 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 연구중심 대학의 젊은 교수로, 아내와 함께 파티에 초대되어 후원자들과 섞여 잡담을 나눴다. 어느 외부 사람들이 보더라도 나는 잘나가는 교수였다. 나는 성인이 된 후 열과 성을 모두 바쳐 연구에 몰두했고, 그 결과 꿈에도 그리던 일자리를 얻었다. 나는 그 대학에서 독립 신경과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한 사업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가족 중에 중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살며시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신경과학자시죠? 그러면 파킨슨병에 대해 잘 아시겠네요?" 순간 나는 움찔하며 아내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관심권에서 벗어난 나는 답변하기에 앞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무 동료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이 있었으니, 그건 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유능한 뇌과학자로서의 인생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뇌를 무력화시키는 질병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환상적이고, 놀랍고, 긍정적인 사건이었다. 파킨슨병은 내게 연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삶에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고, 예기치 못한 연구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1) 첫 번째 징후

나는 '뭔가가 잘못 되고 있다'고 처음 느낀 때가 언제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4년 전, 나는 새로운 실험 장비를 발주하기 위해 두꺼운 주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몇 페이지를 넘기는데, 손이 갑자기 굳어지며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걸음걸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나는 양손을 앞뒤로 흔드는 대신, 앞으로 뻣뻣하게 내밀어 셔츠자락을 부여잡곤 했다. 또 가끔씩 마지막 두 손가락이 씰룩씰룩 움직이는 증상을 경험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여섯이었는데, 그런 이상한 증상이 없더라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는 20년 동안 고대해 마지 않았던 직장을 구했고, 두 번째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며, 낯선 고장으로 이사와 실험실에서 혼자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도파민과 같은 신경조절물질들이 신경활성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내 자신의 뇌가 나에게 반란을 일으키다니...

나는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해 봤다. 뇌종양? 근긴장 이상(dystonia)? 운동신경 질환? 헌팅톤병? 다발성경화? 아니면, 단순한 스트레스?

내가 진단을 받은 것은 신경학을 연구하는 젊은 동료에게서였다. 그는 세계 톱클라스의 운동장애 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전문가라기보다는 동료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나처럼 기초연구와 논문출판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같은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학회 모임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첫 진단은 공교롭게도 동료를 통해 이루어졌다.

'파킨슨병'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은 "언제까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숨길 수 있을까?"였다. 만일 심사자가 나의 투자가치에 회의를 품게 된다면, 연구실에 지원되는 연구비는 중단될 것이 뻔했다. 나는 학생들과 포스닥 연구원들이 나와의 연구를 꺼릴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였다. 연구는 나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뻣뻣함, 떨림, 피로, 씰룩거림, 넘어짐, 침흘림, 언어장애, 그리고 표정없는 파킨슨병 환자의 얼굴... 이 모든 것이 내 미래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노래졌다.

(2)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그날부터 나와 뇌(腦)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20년 동안 인간의 뇌를 연구해 왔지만, 이제는 뇌장애가 무엇이고, 그 증상은 무엇인지를 몸소 체험하는 신세가 되었다. 파킨슨병의 특이한 증상 중 하나인 동결(freeezing)에 대해 한번 설명해 보겠다. 그것은 예컨대 손을 들어올리려고 할 때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 팔은 겉보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즉, 움직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움직이려면 엄청난 노력이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을 들어올리는 동작뿐만이 아니라, 나의 뇌가 하는 모든 행동(말하기와 생각하기 포함)을 실행하기가 너무 힘들어, 때로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가끔씩 -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 한쪽 손으로 다른쪽 손을 들어올려 움직이기도 한다.
신경과학자로서, 의지(will)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해석과 철학적 해석의 접점(接點)에 서는 것은 흥미로운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신경과학자들이 말하는 뇌난쟁이(homunculus) 개념, 즉 '뇌 안에 들어 있는 난쟁이가 투입신호(input)를 읽고 산출신호(output)를 내보낸다'는 생각을 부정하게 된다. '뇌는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기존지식은 무용지물이 되고, 이중성(dualism)이 나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나처럼 젊은) 파킨슨병 환자들은 주로 인지장애보다는 운동장애를 겪는다. 그러나 나는 - 비록 제한적이지만 - 간혹 "맛이 간 뇌에 심신을 지배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잃기 시작한다면, 또 세상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껍데기만 남아 버린 인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실, 내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파킨슨병은 정신질환이다'라는 낙인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킨슨병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것을 정신분열증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인지장애 질환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예전처럼 날카롭고 생산적인 인지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인지능력을 신뢰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파킨슨병 증상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직장에서도, 식료품점에서도, 내 집 앞마당에서도, 심지어 애들 앞에서도 나는 항상 내 움직임에 신경을 썼다. 신경과학회 모임과 같은 회의 장소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는 내 손이 어디에 있는지를 항상 체크했고, 때로는 증상을 숨기기 위해 내 손을 깔고 앉기도 했다.

파킨슨병이 연구자들의 연구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나의 경험담을 얘기하면, 그것은 실제로 연구자의 일상적 연구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 연구에서 사용되는 실험기법은 상당한 수준의 조작기술(motor skill)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나는 동작을 천천히 한다든가, 불편한 손 대신 덜 불편한 손을 사용한다든가, 실험기구를 쥐는 방법을 바꾼다든가 하는 등의 방법으로 당면문제들을 해결했다. 그 결과 나는 제법 유능한 연구자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는데,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실험기기를 조작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손놀림 능력보다는 경험, 집중력, 적응력이다'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내가 복용하고 있는 저용량~중간용량의 약물은 수면과 운동은 물론 연구 수행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든 점들을 감안할 때, 나는 향후 몇 년 동안, 어쩌면 평생 동안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파킨슨병으로 진단받고 나서 연구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았나요? 앞으로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파킨슨병 연구에 매진할 생각은 없나요?"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만일 누군가가 파킨슨병 관련 프로젝트를 내게 맡긴다면, 파킨슨병을 연구해 볼 의향은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나는 파킨슨병과 무관하게 내가 지금껏 계획했던 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또 혹자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파킨슨병 환자로서 신약개발이 늦어지는 데 불만이 있지는 않은가요?"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확고하다. 나는 환자인 동시에 신경과학자로서 신약개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신약이란 모름지기 수십 년의 기초과학 연구실적이 누적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요컨대, 파킨슨병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파킨슨병에 걸림으로써 연구활동에 더욱 더 열과 성을 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신경과학 분야의 톱클라스 연구자로서 누리고 있는 특권이 언제든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말할까, 말까?

다시 디너파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순간 주위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들은 파킨슨병에 관한 나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동료들에게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을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후원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제게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참 흥미롭군요. 사실 나는 신경과학자인 동시에 파킨슨병 환자이기도 하답니다." 나는 신경퇴행성질환에 대한 나의 견해를 웅변조로 역설한 후, 이런 멋진 말로 결론을 맺고 싶었다: "그래서 뇌에 관한 기초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냉정한 어조로 파킨슨병의 병리학과 특징적 증상을 나열했다. 그것은 이지적이고 깔끔한 '발언'이었는지 몰라도, 인간적으로 볼 때 최선의 '대화'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올해 초, 나는 내가 다니는 대학의 학과장에게 진실을 털어놨다. 그리고 며칠 동안 행정실 직원들, 실험실의 제자들, 많은 동료들에게도 차례로 사실을 고백했다. 고백은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것은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 내가 인생에서 내린 최선의 결정 중 하나였다. 많은 이들이 나를 지지해 줬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진실을 숨겨 왔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파킨슨병의 징후를 처음으로 느낀 이래, 동료들의 반응을 걱정하느라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가! 고백 후 몇 달 동안, 나는 동료들과 상호작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나를 '여러 동료들 중의 하나'로 대해 줬다. 이제 더이상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도 간혹 누군가에게 진실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있지만, 나는 이젠 뭔가를 숨기기 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관심을 받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드리고 싶다. 인생은 너무 짧아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여유가 없다고... 설사 장애를 가졌더라도, 당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마지막으로,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지금은 왜 익명으로 글을 쓰는 거죠?" 그건 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자'가 아닌 '파킨슨 가이'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난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인터넷을 뒤져 내 신분을 알아내더라도, 난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 글쓴이는 미국 주요 대학의 신경과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parklifensci.blogspot.com, 트위터 아이디는 Parklifensci, 이메일 주소는 parklifensci@gmail.com이다.

※ 출처: Nature 503, 29–30 (07 November 2013) doi:10.1038/503029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6-09-07 / 등록 2012-12-03 / 조회 : 14015 (584)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