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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PHILOSOPHY   

- 미학

 

자연 과학 철학: PHILOSOPHY OF NATURAL SCIENCE

2_과학적 탐구－발명과 시험
   과학적 탐구 과정의 한 실례
   가설을 시험하는 기본절차
   귀납이 과학적 탐구에서 하는 역할
3_가설에 대한 시험－시험의 논리와 힘
   실험적 시험 대 비실험적 시험
   보조 가설의 역할
   결정적 시험
   미봉 가설
   원리적 시험 가능성과 경험적 의미
4_확증과 승인 가능성에 관한 기준
   입증 증거의 양과 다양성과 정확성
   “ 새로운”시험
  명제에 의한 확증
   이론적 입증
   단순성
   가설의 확률
5_법칙과 과학적 설명에서의 역할
   과학적 설명의 두 가지 기본 조건
   법칙－연역적 설명  
   보편 법칙과 우연한 일반 명제
   확률적 설명의 기초 사항
   통계적 확률과 확률 법칙
   확률적 설명의 귀납적 성격
6_이론과 이론적 설명

7_개념 구성
   조작적 정의
   과학적 개념의 경험적 의미와 체계적 의미
   “ 조작적으로 무의미한 물음”에 대하여
  해석 문장의 성격
8_이론적 환원
   기계론과 생기론의 논쟁 201 용어의 환원
   법칙의 환원
   기계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심리학의 환원－행동주의


철학적 질문, 과학적 대답 [김희준, 생각의 힘] (과학과 기술, 2012.09)

      이덕환(서강대, 대한화학회 회장)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누구일까?’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을 ‘철학적’이라고 한다. 우선 이런 질문은 아무나 쉽게 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심오하다는 뜻이다. 정답이 있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설사 정답을 찾아내더라도 특별히 대단할 것 같지도 않은 질문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골치 아픈 문제는 넘쳐나지만 쉽게 떨쳐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철학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런 질문에 천착해서 애써 답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부른다.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 물론 수많은 답이 제시되었다. 황당한 궤변도 있었고, 정말 그럴듯하게 보이는 대답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된 철학적 대답 중에 시대와 문화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답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대답은 없었다. 결국 지금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적 대답을 찾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철학적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철학자들만이 아니다. 철학적 질문은 종교적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거의 모든 종교가 우리 자신의 기원과 정체와 운명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종교적 대답은 철학적 대답보다 명쾌하다. 모든 것이 ‘절대자’ 또는 ‘신’(神)의 뜻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문제는 모두가 종교적 대답에 만족하고 동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적 대답과 다른 종교적 대답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종교적 대답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과 다툼이 철학적 대답에 대한 종교적 대답 때문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7세기에 처음 등장한 ‘자연철학자’들의 후예인 현대의 ‘과학자’들도 근원적으로는 이런 철학적 질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사실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과학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철학적 질문은 ‘우주’, ‘자연’, ‘생명’의 존재와 운명으로 확장된다. 과학에서 추구하는 철학적 질문은 훨씬 범위가 넓고, 그래서 더욱 심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좁은 전공 분야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깊이 빠져드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현대 과학이 추구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제가 더 큰 시각에서의 철학적 질문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과학자들은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인 철학적 질문을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두면 되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에는 놀라운 성과가 있었다. 근대 과학 덕분에 정립된 객관적인 관찰과 합리성, 그리고 반증 가능성을 강조하는 현대 과학의 독특한 과학적 방법론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대단한 성과다.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은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현실을 떠난 탓에 소설과 같은 일시적 감동을 주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철학적 대답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차원의 대답이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현실에 근거를 둔 대답이고, 현실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대답이 쉽게 잊을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과학적 대답의 강력한 설득력은 과거에 등장했던 수많은 철학적, 종교적 대답들 중 어느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가려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인류의 궁극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2,500년 전의 종교와 동양철학이 현대의 과학적 대답과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137억 년 전 ‘빅뱅 우주’에서 왔다. 오늘날 우리는 크기를 이야기할 수도 없는 특이점에서의 대폭발로 시작된 우주는 빠르게 팽창하면서 쿼크와 보존을 비롯한 기본 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해서 오늘의 우주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이해하기까지 현대 과학자들의 비범한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빅뱅의 과정을 재현해볼 수도 없고, 별들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주의 진화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대답이 온전하게 과학자의 상상력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적 변환의 과정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아낸 덕분이다.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도 상당한 수준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결국 우리 인간은 137억 년에 걸쳐서 진행된 거대하고 장구한 ‘우주적 진화’의 결과다. 빅뱅의 과정에서 생겨난 기본 입자들이 모여서 수소와 헬륨과 같은 원소들이 만들어지고,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에 먼지처럼 떠돌던 원소들이 뭉쳐져서 밝게 빛나는 별들이 탄생하고, 그런 별들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등장했다. 초신성 폭발처럼 거대한 별들의 죽음 과정에서 더 무거운 원소도 만들어졌다.

그런 원소들이 뭉쳐져서 인간 출현의 근거가 된 화학적 진화가 시작되었다. 전자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원자들의 화학결합으로 우리 조상들이 궁금하게 여겼던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탄생하였고, 그 중의 일부가 정말 교묘한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스스로의 기원과 정체와 운명을 궁금하게 여기는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그 뿐이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세포, 조직, 장기는 물론이고 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배출하는 대사의 모든 과정에 관련된 거의 모든 화학적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도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를 닮은 자손이 탄생하게 되는 유전에 관련된 화학적 원리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효소의 기능도 이해하게 되었고, ‘DNA’라고 부르는 유전물질의 정체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우리 자신의 정체에 대한 과학적 대답에도 한계는 있다. 우리 자신이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를 떠나면 과학적 대답은 불가능해진다. 그런 뜻에서 우리의 정체에 대한 과학적 대답은 인간의 ‘몸’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마음’을 두뇌와 신경계 활동의 결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직접 관찰하고, 검증할 수 없는 ‘영혼’의 문제는 현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운명에 대한 과학적 대답은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의 태양과 지구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주의 팽창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우리 우주의 팽창 속도가 지금도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더욱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과학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스스로의 과거와 정체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