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 감각

과소평가 : 억울한 저평가

공정한 평가
- 식품에 대한 공정평가
- 위험과장 : 미지의 두려움 vs  위험불감 : 일상적인 위험
- 고평가 : 건강 비결
- 저평가 : 기본 기능,  과학 공헌

- 옥수수
- 대장균
- 암세포




과학은 재현이 가능한 실험을 통해 발전한다. 그러나 사람의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웠다. 사람의 세포는 실험실에서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까다로운 배양 조건이 갖춰져야만 복제가 된다. 그나마도 50번 정도 복제가 되고 나면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고 사멸(死滅)해버린다. 세포의 핵에 들어있는 DNA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텔로미어’ 때문이다. 세포가 복제를 통해 분열을 할 때마다 텔로미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이상 줄어들 수 없게 되면 세포의 복제는 중단된다. 더욱이 과학자들마다 독특한 맞춤형 배양 조건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과학자의 실험을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웠다.

그런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준 것이 ‘헬라’(HeL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특별한 ‘세포주’였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의 배양액에서는 놀라운 속도로 분열을 계속하고, 냉동을 시켰다가 녹이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정상적인 인간 세포와 달리 분열을 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인간 세포에 대한 실험을 위해 더 없이 훌륭한 세포가 등장한 것이다.

헬라 덕분에 전 세계의 모든 생명과학자들이 규격화된 배양액을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냉동을 시켜서 실험을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할 수도 있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다른 과학자의 실험 결과도 독립적으로 재현하여 검증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생명과학이 본격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온전하게 헬라 세포 덕분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헬라 세포는 핵무기 폭발이나 우주 여행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실험에 사용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죽지 않은 ‘불멸’(不滅)의 세포가 현대의 의학 발전과 인간의 수명 연장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1951년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인간 세포에 대한 실험을 위해 복제된 헬라 세포의 양은 무려 5천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실험에 쓴 세포를 한 줄로 이어붙이면 그 길이가 무려 10만 7천 킬로미터를 넘을 정도라는 주장도 있다. ‘He’와 ‘La’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어느 환자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헬라 세포가 이렇게까지 놀라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단순한 정부 지원의 수준을 넘어 이익을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기도 했다.

헬라 덕분에 이룩된 성과는 대단한 것이다. ‘생명의 책’으로 알려지고 있는 DNA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낸 성과가 오히려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 사람의 세포 속에 들어있는 DNA가 48조각이 아니라 46조각의 ‘염색체’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 결과로 염색체에서 발생하는 이상이 유전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1번 염색체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다운증후군, X염색체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클라인펠터증후군, X염색체의 일부 또는 전부가 소실되어 발생하는 터너증후군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정체와 작동에 대해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파악하게 되었다.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백신의 개발이 가장 잘 알려진 성과다. 생명과 무생명의 경계에 해당하는 바이러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바이러스학’이 정립되었다.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던 암을 치료하는 기술도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모두 밝혀내기 위한 유전자 지도도 완성하였다. 앞으로 우리가 밝혀낸 생명과학 지식과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