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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측정 : 분자저울, 나노현미경, 라만신호

눈이라는 인식 수단은 0.1mm 이하를 구분해 내지 못한다. 이걸 가지고 최근 등장하는 나노 세계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까?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과학자를 위해 개발된 아주 혁명적인 도구가 있다. 바로 현미경이다. 눈의 한계를 극복해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장치다. 상상력을 더 붙인다면 ‘나노스페이스셔틀’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세계를 탐험하게 해주는 현미경은 1600년대 네덜란드의 얀센이 개발했다. 볼록렌즈 두 개를 겹친 단순한 형태의 광학현미경이었다. 그 뒤로 19세기 말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현미경은 인류 과학문명사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발명품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러스카(1906~1988)는 빛보다 파장이 훨씬 짧은 전자선을 광원으로 이용하면 물체를 더욱 더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1931년 최초의 투과전자현미경을 만드는데 성공하더니 개량을 거듭해 1933년에는 광학현미경의 분해능을 뛰어 넘는 전자현미경을 발표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낸 러스카는 198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원자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우리가 관찰하고자 하는 물질의 원자를 보려면 약 1500만배의 확대 배율이 필요하다. 지구에서 망원경으로 달에 있는 모래 한 알을 볼 때 사과 크기로 보이는 것과 같다. 초고분해능을 가진 현미경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초고분해능 성능을 가진 대표적인 전자현미경에는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이라는 매머드급 장비가 있다. 일반적인 투과전자현미경의 크기가 보통 2m, 무게는 2t 정도 되지만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은 크기가 14.5m로 4층 건물 높이에 달하고 무게는 약 360t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가속전압이 1300만V인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2003년 말 설치했다. 나노 및 생명과학 연구를 위한 국가 공동연구장비로 일본, 미국, 독일 등에 이어 설치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의식 작용만으로 우주에서 일어나는 물리 법칙을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190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오스트발트는 상상력을 활용해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구조의 변화가 속도론적인 전이 경로를 거쳐 열역학적으로 안정한 구조로 변화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던 그의 이론은 지금도 재료를 개발하는 과학자에게 널리 응용되고 있는 자연 법칙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 법칙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궁금한 걸 못 참는 과학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다양한 모델을 이용해 이 법칙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던 것. 그러나 모델은 모델일 뿐 실제가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작년에 희소식이 날라 왔다. 오스트발트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원자 수준에서 증명한 것이다. 원자를 볼 수 있게 해준 전자현미경과 끈기있는 현미경학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더 이상 오스트발트 이론의 사실 여부에 대한 과학자의 고민이 덜어지게 됐다. 나노과학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재는 나노시대이자 생명공학의 시대이다. 이들 기술의 융합에 의해 신기술이 계속해서 탄생되고 있다. 인간 생활의 유익을 위한 과학자의 노력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 저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전자현미경학자의 숨은 기여는 실로 위대하다. 정작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진정한 과학의 눈이 되는 것. 이 것이 그들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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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영덕 한국화학연구원 융합바이오센터 분자고등검지그룹장

생체물질에 레이저를 쏘면 내부에서 생체분자와 레이저의 광자가 부딪히는 비탄성충돌이 일어난다. 이때 생체분자는 진흙공, 광자는 당구공에 해당하는데 충돌 후 생체분자가 레이저의 에너지 일부를 흡수한다. 생체분자의 구조에 따라 충돌 전후의 레이저 에너지가 조금 달라지는데 이 차이를 측정하면 광자가 어떤 생체분자와 부딪혔는지 알 수 있다. 광자와 생체분자의 충돌 전후 에너지 차이가 바로 ‘라만신호’다. 즉 라만신호는 몸 안에 있는 생체분자를 자세하게 분석하는데 쓰인다.
분석할 생체물질의 크기가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수준이면 일반적인 원자현미경으로도 얼마든지 라만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이크로라만’ 신호만으로는 생체현상 연구에 한계가 있다.
생체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분해능이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크기 정도로 작아야 생체분자가 몸속에서 이루고 있는 화학결합이 무엇이며 얼마나 센지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나노반도체나 차세대휴대폰 동영상 장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나노 불순물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노라만 신호를 분석하려면 결국 직접 필요한 장치를 개발해야 했다. 말은 쉽지만 나노라만 신호라는 게 형광 같은 다른 분광 신호의 100만분의 일도 안 될 정도로 아주 미약하다. 세포에 레이저를 쪼면서 나노라만 이미지 한 장을 얻는 데 무려 9시간까지 걸리곤 했다. 그렇다고 성급한 마음에 레이저를 너무 강하게 쪼면 마치 라식수술 할 때처럼 세포가 벗겨지거나 더 심하면 까맣게 타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나노라만 신호를 분석하려면 세포를 중간에 두고 위에 있는 원자현미경의 탐침과 아래에 있는 레이저의 초점을 서로 1나노미터 정도로 아주 정확히 맞춰야만 한다. 그런데 레이저의 초점 크기가 약 200나노미터 내외로 워낙 작아서 이것을 10나노미터도 채 되지 않는 원자현미경 탐침 끝부분의 중심과 잘 맞아 떨어지게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마치 양궁경기에서 화살촉 끝부분을 과녁의 정중앙에 정확하게 맞히는 것과 같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발등에 떨어진 가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연구를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좀 더 빨리 나노라만 신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고안한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분자 나노현미경(MINE, Molecular Integration Nanoscope)’이다.
분자 나노경은 탐침 끝부분과 레이저 초점을 컴퓨터로 정확히 맞출 수 있고, 은나노 탐침을 써서 미세한 나노라만 신호도 획기적으로 증강시킬 수 있는 차세대 융합 장비다. 생체분자의 물리적인 3차원 나노 형상뿐 아니라 분자화학적 분광 정보까지도 얻을 수 있다. 분자 나노경의 등장으로 과학자들은 이제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나노 세계의 다양한 분자화학적 현상들을 선명한 컬러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쓴이가 분자 나노경(MINE)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 미세한 생체분자의 신호를 포착해 분자화학적 3차원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사진제공 한국화학연구원앞으로 분자 나노경은 알츠하이머병이나 백혈병 같은 난치성 질환의 근본 원인이 되는 유전체 또는 단백체의 병리현상 연구,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활용될 전망이다.
보통 10년 이상 걸리던 글리벡 같은 신약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시키고, 많게는 2조원까지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신약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현미경(왼쪽)과 분자 나노경(MINE)으로 본 유방암 세포. MINE으로 찍은 사진은 선명한 컬러로 나타나며 20nm 크기의 미세 구조까지 구분할 수 있다. 사진제공 한국화학연구원이제는 희미한 옛 추억이 됐지만 아내의 그 때 그 한 마디가 당시에는 분자 나노경을 개발해야만 했던 절박한 동기가 됐다. 현재는 분자 나노경에 이어 수 펨토초(1펨토초=10조분의 1초) 안에 일어나는 생체물질의 변화까지 볼 수 있는 성능을 연구 중이다. 또한, HD급 디스플레이소자에 대한 나노분석 기능 등을 결합해 새로운 첨단 나노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일에 몰두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이 보편화 되면 난치병 환자들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신약을 투여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만들어 낸 신기술이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과학은 언제나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과학이란 학문은 더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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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硏·서울대, 80년 난제 ‘라만 신호’ 실용화 돌파구 열었다
신약후보물질 찾는 시간과 비용 크게 줄일 듯
2011년 05월 30일

한국화학연구원 나노바이오융합연구센터 서영덕 박사팀과 서울대 화학과 남좌민 교수팀이 생명과학 및 의학 분야 진단기술에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살아있는 세포 하나하나를 최대 20가지 색으로 구별하면서 나노미터(10억분의 1m) 규모로 실시간 초정밀 분석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번 연구결과는 ‘라만 신호’를 둘러싼 학계의 오래된 이슈와 논란에 또 하나의 종지부를 찍는 성과로 평가 받는다.라만 신호는 어떤 물질에 쏜 빛이 물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빛 에너지가 달라질 때 나오는 신호다. 인도 출신 과학자 찬드라세카라 라만이 이 효과를 발견해 193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지만, 그 후 80년 가까이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호 크기가 너무 약해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고 반복적으로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만 신호는 물질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몸속 생체분자 같은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정확히 분석하고 검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실용화되면 생명과학 거의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성과가 된다. 이에 과학계는 미약한 라만 신호를 증폭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고 1970년대 이후 관련 연구결과가 몇 차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증폭된 라만 신호 검출이 반복 가능한지에 대해 최근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서울대와 화학연 공동연구진이 학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지난해에는 분자 하나 수준에서 약 100만~1조배 증폭된 라만 신호 검출이 실험실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게재했다. 이어 누구나 같은 조건 하에서, 증폭된 라만 신호를 정량적(定量的)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5월 30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한 것이 이번 연구결과다.

서영덕 화학연 나노바이오융합연구센터장과 남좌민 서울대 교수는 “이 기술을 활용하면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 약물 효과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신약후보물질을 찾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체내 이미징이나 체외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에 활용한다면 불순물을 빠르게 분석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전망했다. 영국 러더포드 애플튼 연구소의 파벨 마토섹 박사는 “포장을 뜯지 않고 가짜 약을 알아내는 새 분광기를 개발했다”고 네이처 온라인판 1월 26일자에 밝혔다.

진짜 약처럼 만든 가짜 약은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캡슐에 담겨 있거나 포장이 된 약을 일일이 뜯어 검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에 개발한 새 라만 분광기(spatially offset Raman spectroscopy, SORS)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분광기는 약 포장지에서 바로 튕겨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 외에 약의 내부에서 나온 스펙트럼을 읽을 수 있어 약 성분을 정확히 분석해 낸다.

분광기는 목표물에 레이저를 쏜 뒤 반사돼 나오는 스펙트럼으로 약에 들어있는 분자의 진동을 알아낸다. 화학 결합 방식에 따라 분자의 진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 분자를 구별해 성분을 분석한다. 하지만 기존 분광기는 약을 싸고 있는 캡슐 표면이나 포장지에서 나온 스펙트럼만 읽을 수 있어 캡슐이나 포장을 뜯지 않고는 가짜 약인지 분석할 수 없었다. 이 연구팀은 “새 분광기는 한 번에 많은 양의 약을 포장을 뜯지 않고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며 “이 분광기로 가짜 약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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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무게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진은 “한번에 분자 한 개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인 ‘분자 저울’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2012.8.26일자에 발표했다.
분자 하나의 질량은 매우 작아 하나만 따로 떼어내 무게를 재기는 무척 어렵다. 예를 들어 산소(O2) 분자 하나는 5.31×10-23g 정도다.
지금까지 분자 질량을 잴 때는 ‘질량분광학(mass spectroscopy)’ 기법이 주로 쓰였다. 분자 수천 만 개를 이온화시켜 이들이 전하를 띠도록 만든 뒤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측정해 질량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질량분광학으로는 바이러스나 단백질처럼 질량이 큰 분자는 이온화시키기가 힘들어 정확히 무게를 재기 힘들다는 것.
연구진은 다리(bridge)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장치를 만든 뒤 이 위에 분자를 올려 놓을 경우 다리에 진동이 생기게 했다. 분자로 인해 다리의 공진 주기가 바뀌면 이를 통해 분자 질량을 계산토록 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분자 저울’에 ‘NEMS(NanoElectroMechanical System·넴스) 공진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넴스 공진기’는 길이가 수 마이크로미터(μm·1마이크로미터는 100만 분의 1m) 정도다.
연구진은 인체의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면역글로불린 M(IgM)’ 분자 하나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해내 ‘넴스 공진기’의 성능을 입증했다.
특히 연구진은 ‘넴스 공진기’가 질병 진단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혈액 내 IgM의 분자량이 변하면 암의 일종인 ‘발덴스트룀 거대글로불린혈증(Waldenström macroglobulinemia)’이 걸린 것으로 보는데, ‘넴스 공진기’로 IgM의 양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면 발병 여부를 쉽고 빠르게 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책임자인 마이클 루크 칼텍 교수는 “‘넴스 공진기’는 12년간 연구가 완결판으로 생명공학 과 의학 연구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