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교육 : 과학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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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고전

- 과학의 대중화 vs 대중의 과학화
- 과학의 고전

철학과 문학은 '고전'(古典)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철학자들은 2,500년 전에 쓰여진 고전을 지금도 열심히 읽고, 외우고, 분석한다. 물론 당시 철학자들이 주장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래서 현대의 철학자들은 옛 선현들의 주장을 오늘날에 맞도록 다시 해석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철학자와 문학자의 말과 글은 영원히 남아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셈이다.
  과학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첨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자는 고대 과학자의 글을 읽지 않는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처음 설명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어본 과학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현대 지질학의 원조인 제임스 허턴이 1899년에 [지구의 이론]이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과학자도 많지 않다. 사실 과학자의 연구실에서는 20년 이상 묵은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본인이 대학 시절에 쓰던 교과서가 가장 오래된 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이 철학이나 문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통틀어 변화가 거의 없는 철학이나 문학과는 달리 과학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자연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과거에 알고 있던 현상이나 이론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린다. 과학적 해석은 철학과 달리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과거의 이론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새로운 이론이 밝혀진 경우에도 그런 이론을 소개하는 저작물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게 된다. 과학에서는 그런 이론을 밝혀내기까지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사고의 과정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론의 결론이 확인되고 나면 그런 이론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법도 함께 개발되기 마련이다. 어둠 속에서 진리를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일단 진리를 알고 나면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알면 보인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가 그런 경우다. 1859년에 발간되어 흔히 [종의 기원]으로 알려진 이 책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어 가장 널리 읽힌 과학의 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한 세기가 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진화론의 정체가 확인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론이 곧바로 확인이 되었더라면 [종의 기원]도 과학의 역사에 묻혀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과학에도 '고전'은 있다. 오스트리아의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대표적인 예다. 슈뢰딩거의 전공은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론물리학이다. 그 중에서도 양자역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고안해낸 20세기 초의 기념비적인 인물 중의 하나였다. 그런 그가 '생명'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과학 시대인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의 소박한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염색체가 48개이고 유전자는 단백질일 것이라는 그의 주장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소중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보기 드문 과학의 고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과학의 전혀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통섭'(統攝)의 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슈뢰딩거가 인류의 가장 궁극적인 의문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과 정신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통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섭만 이루어지면 곧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야단들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위한 통섭이고, 어떠한 통섭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슈뢰딩거가 그런 우리에게 등대가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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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T.S.쿤「과학혁명의 구조」, J.니덤「중국의 과학과 문명」, C.P.스노「두 개의 문화」,홍이섭「조선과학사」(1946), 전상운「한국과학기술사」(1966), R.카슨 「침묵의 봄」(1962), A.헉슬리「멋진 신세계」, G.오웰「1984년」, S.프로이드 「정신분석입문」(1941), 아서 케스틀러「정오의 암흑」, E.F.슈마허「작은 것이 아름답다」, D.H.메도우스외「성장의 한계」, S.호킹「시간의 역사」, 프리초프 카프라「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제임스 왓슨「이중나선」, 스티븐 와이버그「처음 3분간」, 스티븐 굴드「다윈 이후」, 일리야 프리고진「혼돈 속의 질서」.

과거, 그러니까 약 100년 전 무렵 까지는 인문학이 세상의 정신문화와 학문을 주도했었다. 그러나 지난 100-200 년간의 사회는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부수적인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삶의 내용과 모습에서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불과 35 세의 평균수명은 80 세에 이르게 되었고, 정보의 생산과 보급은 몇백배로 폭증했다. 사회의 복잡화, 노동과 직업의 다양화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도화 되었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정신현상을 진화심리학과 신경.뇌과학으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을 모르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 없었듯, 현대사회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낙후와 답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영역은 오늘날에 걸맞는 정신문화와 학문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천년 묵은 종교미신과 함께 오히려 미래적 비젼을 제시하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방해가 되고 있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몰이해와 반과학주의, 과학의 곡해는 특정 사상이나 제도의 병리적 증상이다. 과학앨러지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종교미신은 물론이려니와, 나치의 아리안 종족주의는 인간의 진화를 곡해했고 (인간이 영장류임을 거부),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는 유전학을 거부했었다. 포스트모던적, 퇴폐주의적, 초현실주의적, 신비주의적, 과거지향적, 유아적.자기중심적, 주관주적 사고방식 등 일체의 반동적 행태는 사회에 대한 몰각과 문제해결에 장애를 초래하는 골칫덩어리이다. 예술의 분야마저 클래식 이래로 답보,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정직성이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진지하게 배우는 태도를 말한다. 거짓으로 일관된 사회집단이 합리적 삶을 결코 도출해 낼 수 없듯, 정직성이 결여된 학문이나 정신의 영역은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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