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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로컬푸드, 다양성
로컬푸드 : 다양성의 의미
- 전통식품, 로컬푸드, 소울푸드
- 로컬푸드 슬로우푸드는 건강운동이 아니고 사회운동이다
- 지리적 표시제의 의미
- 제철음식이 맛있는 이유
전통식품이 무었인가
- 식품은 문화이다
- 우리가 먹는 것은 과거의 추억이다
- 익숙하여 편안한 음식이 로컬포드다
- 바나나 우유도 전통식품이다
- 콜라가 미군의 2차대전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 우주인도 찾는 것은 라면이다
- 한식이 패스트 푸드이다
다양성의 의미
서울대 : 문정훈 교수
- 로컬푸드란 무엇일까?
로컬푸드는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농산물의 이동을 줄여서 신선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면 소비자들의 식생활도 좋아지고, 또한 그 지역 농업인의 권익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의도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로컬푸드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국내에서도 많은 소비자 단체가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면 농산물이 어디까지 이동하면 로컬푸드이고 어느 이상 이동하면 로컬푸드가 아닐까? 어떤 이는 200마일 (약 300km) 이내로 이동하고 소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400마일 (약 600km)이내 이어야 로컬푸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몇 km이내이어야 하는 지가 중요할까? 서울을 중심으로 눈대중으로 대략 400마일을 재어보니 서쪽으론 중국 산동반도, 북으론 중국 만주, 남쪽으로는 제주도는 물론이고 일본 국토의 일부까지 들어온다. 음식이 이 안에서만 움직이면 좋은 음식이고, 이 밖으로 움직이면 나쁜 음식이라 말해야 하는 것일까?
- 로컬푸드의 가치는 무엇일까: 신토불이?
우리는 로컬푸드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어떤 이는 신토불이를 이야기하며 로컬푸드를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는 환경을 보호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한다. 로컬푸드의 진정한 가치가 신토불이와 환경보호에 있을까?
로컬푸드의 가치를 신토불이에서 찾는 이들은, 우리 지역의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우리 지역에서 먹어야 몸이 건강해 진다는 논리를 강변한다. 이 논리는 나아가서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몸에 좋고, 수입 농산물을 먹으면 몸에 나쁘다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선전도구로 활용되며 자국 농산물 마케팅의 주요 가치 제안으로 활용된다. 물론 로컬푸드가 몸에 더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자기네 나라 농산물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건강하게 살고 있고, 고향이 서울이 아닌 사람들도 서울에서 살면서 여러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지만 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는다. 식품안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보관 및 운송 기술이 충분히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식품 안전은 얼마나 가까운 데에서 생산되었냐 보다는, 온도, 빛, 산소 등 얼마나 적절한 환경에서 유통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요컨대 음식에 있어서 ‘건강의 문제’는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한 식재료로 구성한 균형 잡힌 식단과 섭취량이 핵심인 것이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느냐는 그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 로컬푸드의 가치는 무엇일까: 탄소배출 감소?
많은 이들이 로컬푸드의 또 다른 가치를 탄소배출 감소에서 찾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 소비하니 운송거리가 줄어 들고, 그 만큼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줄어 들어 환경오염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효과는 미비하고, 비현실적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재화들이 도로를 통해, 기차 선로를 통해, 배를 통해, 또 하늘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농산물만 뺀다고 한들 얼마나 탼소배출량이 줄어들까? 미비하다. 그것보다는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부분이 환경을 보존하는 데에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또한 로컬푸드 운동에서 주장하는 운송의 거리를 줄일 것을 강조하면 강조할 수록, 오히려 우리의 식탁은 덜 풍성해지고 재미없어 진다. 제주도에서 수확한 감귤을 강원도로 가져와서 강원도 사람들이 먹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니 강원도에서는 감귤을 먹지 않는 것이 로컬푸드의 가치라고 이야기한다면 강원도 사람들을 얼마나 불행해 질까? 아삭함이 최고인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를 부산사람들이 먹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니, 로컬푸드의 관점에서 부산사람들은 고랭지 배추를 먹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로컬푸드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닐 것이다. 저 멀리 스페인에서 대륙과 대양을 건너 온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감칠맛 폭발 하몽은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한국에서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로컬푸드의 진정한 가치를 오히려 파괴하는 일일 것이다. 하몽이야 말로 가장 로컬푸드 정신이 부합하는 좋은 먹거리인데 말이다. 또한 역으로 로컬푸드를 이야기하며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우리 농산물을 수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관점에서 로컬푸드를 바라보고, 로컬푸드 운동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 새로운 관점에서의 로컬푸드: 다양성의 기반
미래 로컬푸드 운동의 방향은 획일화에 대한 저항의 운동으로 가야하며,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함에 대한 추구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여 생산된 농산물이 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와 만나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 지역의 음식을 지역의 사람들만 소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향토음식’이라는 개념을 로컬푸드가 끌어안고 나아가야 한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농산물 유통과 소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를 활용한 문화적 행동으로 발전해 나아갈 때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문화를 여러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올라간다. 이런 관점에서의 로컬푸드는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고, 더욱 즐겁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것은 즐거운 것이다.
고비, 두릅, 잔대, 단풍취, 모싯대, 기장, 수수. 오랜기간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재배해온 작물이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작물들이다. 우리의 식탁이 글로벌한 음식들, 표준화된 음식들로 채워질수록 이런 식재료들은 우리 식탁에서 밀려나고 각 지역에서도 재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이런 식재료들이 지역의 역사, 전통, 문화와 만나 좋은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면 좋겠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소비자들의 식탁에 순창의 두릅이 계속 올라오고, 또 3월이면 순창식 두릅 장아찌를 서울에 있는 좋은 식당에서 계속 사먹을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가면 좋겠다.
이런 새로운 로컬푸드 관점에서 좋은 음식을 소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컨대 공장에서 표준화된 레시피로 생산되는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마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또 지역적 특성이 녹아 있지 않은 막걸리를 마시는 것 보다는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지역의 식재료와 문화가 듬뿍 녹아 있는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런 지역적 특성, 즉 지역성의 강조가 없으면 다양성은 훼손된다. 지역성이 훼손된 막걸리는 그냥 막걸리일 뿐이다. 하지만 막걸리에 지역성을 입히면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와 울산 복순도가 막걸리는 다른 가치를 지닌 다른 막걸리가 된다. 가격이 덜 중요해지고, 문화가 더 중요해 지며, 내 취향에 맞는 막걸리를 찾아 마시게 되며, 다양한 막걸리를 먹어 보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 이런 소비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이고, 지역 특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소비이기 때문에 좋은 소비이다. 마찬가지로 획일화된 방식으로 생산된 고추장을 먹는 것보다 지역의 농가, 공장들이 지역의 문화를 바탕으로 만든 고추장을 먹는 것이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중요하며 그 농가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그런 고추장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소비이다.
수입식품을 먹는 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컨대 스페인에서 생산된 베요타 등급의 하몽을 먹는 것에 대해 수입식품을 먹는 매국행동(?)을 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베요타 등급의 하몽은 그 지역의 전통 품종의 이베리코 돼지를 전통의 방식으로 방목하여 2년간 키우고, 전통의 방식으로 2년간 염장한 생햄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 식문화가 녹아 있는 식재료이다. 우리가 이를 먹는 것은 로컬푸드의 중요함을 인정하는 일이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식문화를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며, 문화적 다양성, 나아가서는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소비이다.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마 지구상의 다양한 품종의 돼지들은 다 사라지고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사료 효율성이 좋은 백색 교잡돈만 남게 될 것이다. 종의 다양성이 훼손된다.
종의 다양성이 훼손되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1800년대 중반 유럽을 강타했던 감자 마름병에서 유독 아일랜드가 극심한 타격을 입고 전체 인구의 1/4을 잃었던 이유는 종의 다양성의 훼손 때문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은 당시 수익성이 좋은 양모 생산을 위해 경작지를 줄이고 양을 주로 키웠고, 주식을 다양한 곡류에서 감자로 바꾸었다. 게다가 그들은 큰 고민없이 생산성이 좋은 한 종류의 감자만을 심었는데, 그 감자가 감자 마름병에 유독 취약했던 것이다. 당시 아일랜드의 인구는 800만명이었는데 200만명이 감자 대기근 이후 사망하거나 아일랜드를 떠나야만 했고, 21세기인 지금도 당시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은 중요하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문화의 다양성, 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미래의 로컬푸드는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와 지식이 녹아 있는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조리하는 식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성의 기반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소비자들이 인정하고, 각 지역의 로컬푸드를 마트에서, 또 식당에서 500원 더 내고 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것이 가능해지려면 생산자나 제조자가 그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식재료와 음식에 지역의 스토리가 녹아 있고, 소비자들도 내가 먹는 식재료와 음식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 먹는 그런 식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
사실 이런 것까지 다 고려하려니 귀찮고 머리가 아프다. 그냥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안될까? 안된다. 절제 없는 칼로리의 섭취가 비만을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식품 포장에 찍혀 있는 식품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한다. 50년전에 우리가 이런 귀찮은 일을 했을까?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식품성분표를 보며 고민을 한다. 식품성분을 생각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먹으면 내 몸의 건강을 파괴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성과 문화,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면, 이는 결국은 우리의 식탁을 파괴하고, 농업을 파괴하며, 인류의 미래를 서서히 파괴하는 행동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로컬푸드 관련하여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식품성분표와 같은 지역성분표(?)가 등장해 주길 기대하며, 오늘 저녁에는 지역성과 문화가 녹아 있는 식재료를 구입하여 식탁을 준비해보자.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품종의 다양성과 우리의 식탁, 그리고 식문화
서울대 : 문정훈 교수
- 화려한 식문화 vs 검소한 식문화
지금까지 다녀 봤던 곳들 중에서 식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 번 생각치 않고 스페인이라고 답을 한다. 현란한 조리 기술로 따지자면 물론 프랑스가 우위이겠지만, 동쪽엔 지중해, 북서쪽엔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반도국가인 스페인은 언제나 신선한 해산물과 건강한 농작물이 넘쳐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식재료가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조리법을 만나 스페인을 말 그대로 ‘음식의 천국’으로 만든다.
음식의 천국 스페인은 예로부터 하루에 다섯끼를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 (Desayuno)을 일단 7시쯤 가볍게 먹고, 11시쯤 ‘아점 (Almuerzo)’을 먹는다. 점심 (Comida)은 보통 오후 두 시쯤 먹는다. 점심은 보통 전채, 메인, 그리고 디저트와 커피까지 주로 3품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6~7시에는 ‘점저 (Merienda)’를 먹는데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 (Tapas) 요리를 먹으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점저를 끝내면, 저녁 9시에 이제 본격적으로 저녁 (Cena)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통 11시나 자정 경이 되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2차로 술을 마시러 간다. 매일이 불금이고, 마치 우리에게 내일은 없는 것처럼 끝없이 음식과 술을 즐기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저렇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먹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토마토 요리만 하더라도 대단히 다양하고, 또 각 요리에 따라서 적합한 품종의 토마토를 먹는다. 예컨대 샐러드엔 토마테 엔살라다, 차가운 토마토 수프인 가스파쵸엔 토마테 페라, 빵에 토마토를 발라 먹는 판 콘 토마테엔 토마토 라마를 고르는 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토마토가 없다면? 화려한 스페인 식문화도 없다.
그런데 유럽이라고 모두 식문화가 화려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가장 균형 잡힌 식단으로 유명하다. 이 결과로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먹는 나라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식탁은 대체로 단촐하고 검소하다. 같은 유럽인데도 왜 이리 큰 차이가 날까? 물론 농업 생산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 (로만 카톨릭, 그리스정교, 이슬람 등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던 지역이 단촐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당시 프로테스탄티즘은 검소와 금욕이 중요한 가치였으므로,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하고, 영양 공급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것은 지양하였다. 반면에 카톨릭 영향권에 있었던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려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태리, 그리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카톨릭 문화권 지역의 경우는 다양한 식재료와 함께 화려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딱 한 곳이 예외인데 카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이다.
- 깜짝 놀란 아일랜드의 식탁
출장으로 아일랜드에서 머물렀던 일주일은 음식의 관점에서 충격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영국보다 심하다. 이보다 심한 말이 있을까! 주식은 감자튀김이고 먹는 생선은 대부분 두 종류로 요약된다. 대구와 연어. 그래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영국과 마찬가지로 ‘피쉬 앤 칩스’이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 대표 음식인 나라들에서는 미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일단 ‘밑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감칠맛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간은 소금과 식초로 조절한다. 양념과 소스는 그레이비와 마요네즈를 빼면 뭐가 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10년 묵은 겹간장 맛을 이들에게 보여주면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일랜드의 주요 산업은 농업, 특히 목축업이다. 전체 면적의 80%가 농지와 목축지이며, 육류 수출대국이다. 축산업이 국민소득의 7%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많은 방문객들은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데, 불행히도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는 육류 근섬유에 대한 인간의 저작력(咀嚼力)의 한계치를 테스트하는 용으로 매우 적합하였다. 기대하였던 아일랜드 전통의 콘드 비프(Corned Beef)를 비롯한 양고기 요리 등도 단지 삶거나, 끓이거나, 오븐에서 로스트해서 꺼낸 다음 나이프로 잘라먹는 것 이상의 조리법은 없었다. 곁들어 먹는 야채도 그냥 익혀서 내놓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식당에 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재료도 다양하지 못했고, 조리법도 단순하고, 양념도 단순하며, 발효의 개념은 찾기 조차 힘들었다. 아일랜드의 식문화는 왜 이리 뒤쳐져 있을까?
-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아일랜드는 오랜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0,000년전부터 인간이 거주하였던 아일랜드 섬의 거주민들은 바이킹족들과 함께 섬에서 공존하였으나, 1172년에 영국에 지배당한다.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 국민들은 수 차례 봉기하였으나 독립하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1912년에 이르러 독립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845년부터 5년간 일어났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건이다. 이 감자 대기근이 얼마나 참혹했었는지, 당시 850만명의 인구에서 100만명이 굶어 죽고, 100만명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신대륙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아일랜드의 인구는 600만대로 줄어 들었고, 그 때 이후로 인구가 계속 줄어들었으며, 게다가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빼앗긴 채, 지금의 인구는 그 때의 반토막이 된 490만명이다.
그런데 당시 아일랜드를 초토화시켰던 감자 마름병은 아일랜드에서만 유행했던 것이 아닌 전 유럽의 문제였는데, 특히 아일랜드가 치명적 타격을 입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배 국가였던 영국의 착취였다.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밀 등의 농산물은 지주였던 영국인들에게 수탈되고, 싼 가격으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아일랜드 국민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수출하는 항구에는 많은 양의 곡물들이 배에 실려서 영국으로 나갔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이유 이외에도 인간의 선택에 의한 생태계 왜곡이 이 문제를 걷잡을 수 없는 큰 재앙과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증거가 있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주식으로 신대륙에서 들어온 감자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감자 수확이 감자 마름병으로 급감을 하게 되니 먹을 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감자 마름병은 진균류의 곰팡이였고 유럽 전역에 퍼졌으나 유독 아일랜드의 감자 농사만 전국적으로 심하게 망치도록 만들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재배하던 감자의 품종은 다양하지 못했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선호하여 전국에 심었던 그 감자 품종이 유독 감자 마름병에 약했던 것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일랜드는 이 기근으로 많은 인구를 잃게 되며 아직도 당시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품종의 다양성이 훼손되었을 때 어떠한 재앙이 생길 수 있는 지에 대한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강 한 켠에는 당시의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에 나타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처참한지, 이 옆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일랜드가 그들의 음식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우기에는 이 역사적 대기근은 아일랜드에 너무나 큰 생채기를 냈고, 이 대기근은 품종의 다양성 훼손에 기안한다.
- 품종의 다양성과 우리의 식탁
먼지 바람만 남고 대부분의 농작물은 사라진 황량한 지구의 모습을 그린 영화 ‘인터스텔라’는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미래판을 그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작물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의 손에 의해 계량이 되어 왔다. 단 하나도 자연 그 상태인 품종은 없다. 그리고 이 계량의 방향은 주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실은 품종만이 문제가 아니다. 종의 다양성도 줄어 들고 있다. 고작 12종의 작물과 5종의 가축이 인간이 소비하는 음식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산되는 대부분의 작물들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는 보다는 다수확을 통한 농가 소득 증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나라 농정의 방향도 지금까지 그러했다. 양돈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 개체 수의 대부분이 생산성이 좋은 하나의 품종으로 맞추어져 있다. 새끼를 많이 낳고, 사료효율성이 좋은 돼지로 통일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과는 어떠한가? 후지(부사)와 홍로 이 두 품종을 합치면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의 80%를 차지한다. 새콤달콤한 홍옥은 저장상이 나쁘다는 이유로 이제는 마트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기후의 변화로 사과 재배 지역과 면적 역시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소수의 품종들이 미래의 환경 변화와 새로운 질병에 취약하다면, 우리는 또다시 재앙에 빠지게 되고,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보다 더 혹독할 것이다.
최근들어 주위에서 좀 더 자주 듣게 되는 ‘로컬 푸드’, ‘슬로우 푸드’의 가치는 실은 육체적 건강함에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 치킨과 같은 표준화된 식단 – 즉, 글로벌 푸드와 패스트 푸드 자체가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글로벌 푸드와 패스트 푸드는 표준화가 핵심이고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므로 품종의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는 전 세계 어딜 가도 똑같다. 그 것이 그들의 핵심역량이다. 반면에 로컬 푸드와 슬로우 푸드는 품종의 다양성, 식문화의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야 말로 로컬 푸드와 슬로우 푸드의 진정한 가치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프렌치프라이는 ‘러셋’이라는 품종의 감자로 전 세계가 통일되어 있다. 하지만 슬로우푸드인 감자탕은 ‘남작’과 같은 당함량이 높은 품종의 감자로 끓여 맛있고, 또 들기름으로 달달 볶는 또 다른 슬로우푸드인 감자볶음은 ‘수미’로 해야 좋다. 로컬푸드와 슬로우푸드는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로컬 푸드와 슬로우 푸드에 관심을 가질수록 인터스텔라의 재앙,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재앙을 우리로부터 떨쳐 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음식과 관련하여 함께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인지도 모르겠다.
- 바나나의 맛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까?
바나나맛 우유, 바나나맛 젤리 등을 먹어보면, 그 맛이 실제 우리가 먹는 과일 바나나의 맛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이 맛이 바나나맛일까? 1950년대까지 서구에서 먹던 바나나는 지금과 좀 다른 바나나였다.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품종의 바나나였는데, 이 품종의 맛이 지금 우리가 바나나맛 가공식품에서 맛보는 바로 그 바나나맛이다. 그로 미셸은 단일 품종으로 전 세계에서 재배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파나마 병’에 취약하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따라서 그로 미셸 바나나는 멸종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 그로 미셸의 맛을 이제는 가공식품의 맛으로만 느낄 수 있다. 다행스럽게 당시 파나마병에 내성이 있는 품종을 하나 찾아내는데 그게 지금 우리가 먹는 맛없는 바나나인 ‘캐번디시(Cavendish)’이다. 그러나 파나마병의 변종이 발견되었고, 이 변종은 전 세계 바나나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캐번디시를 다시 멸종시키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바나나의 맛을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