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 두뇌 ≫ 기억
모듈성 : 시각은 30가지 이상 모듈로 작동
모듈화 : 공동 부품의 경제성
- GPCR
- Fiber
시각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고 뇌에서 뭔가를 처리하여 결과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뇌는 어떤 처리를 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시각은 여러 모듈로 나뉘어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뇌에는 30여개 이상의 시각 처리용 모듈이 있다. 이중에서 3가지만 살펴보아도 시각이 언뜻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면인식 모듈: 방추상얼굴영역(FFA, Fusiform face area)은 얼굴 부위를 볼 때 반응하는 부위이다. 실제 얼굴에 반응하고 흐릿한 경우(얼굴이 존재할 것이라는 암시)에도 반응하지만 얼굴 부위를 가리면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에 반응하는 부위도 있다. 이 부위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안면인식 부위가 따로 있는 것을 보면 뇌가 유난히 얼굴 인식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얼굴은 다른 부위보다 감각 수용체도 많고 미세한 근육의 종류도 많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 아주 세밀하게 움직여 얼굴 표정으로 많은 정보를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외모 중에서 얼굴을 중시하는 이유가 시각이 가장 오래 머무는 부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인식 모듈: 해마주변위치영역(PPA, Para-hippocampal place area)은 건물 안 배치도나 풍경 자극 같은 공간 정보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부위이다. 결국 우리는 공간을 따로 인식하고, 그 공간에서 사람을 따로 인식하며, 사람에서는 얼굴을 따로 인식하는 셈이다. 공간의 크기와 무관하게 우리는 원하는 정보량에 비례하여 뇌의 영역을 할당하는 셈이다.
색상인식 모듈: 측두엽에 V4라는 색을 처리하는 전문 모듈이 있다. 이 영역이 손상되면 세상에서 색은 사라지고 흑백만 남게 된다. 다른 모든 부위가 멀쩡하여 글을 읽고 세상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도 V4가 손상되면 순식간에 흑백 TV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이 부위가 손상된 환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정상적 사람도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 이곳을 마비시키면 쉽게 일시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부위는 색을 인식하는 부위라기보다는 색을 칠하는 부위라고 해야 한다. 원래 자연에 색은 없는 것이고 뇌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모듈이 연합하여 작동하는 것이 시각이다. 이런 모듈성이 시각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뇌로 보는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요즘 카메라는 안면인식 기능이 구현된 것이 많다. 예전의 카메라는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도 대단한 기술이었지만 요즘은 안면을 인식해 사람 위주로 초점을 맞추고, 표정에 반응하여 자동 촬영하는 기능도 구현되었다. 심지어 눈 깜박임을 인식하여 피하는 기술, 역광에 얼굴이 어둡게 나오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속속 구현되고 있다. 카메라와 렌즈와 센서 등 하드웨어는 그대로인데 소프트웨어 모듈이 추가되어 점점 우리의 시각과 비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최신 카메라에 겨우 등장하는 기술들이 우리의 시각(뉴로그래픽)에서는 이미 매우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단지 그런 사실을 최근에야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시각의 모듈성을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은 특별한 환자들이다. 환자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각 모듈의 일부가 고장 난 경우가 있었고 그러면 환자는 일반인이 전혀 상상하기 힘든 체험을 하게 된다.
- 모듈이 손상된 환자의 사례로 시각의 모듈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각의 모듈이 손상되면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색상 영역(V4)이 손상을 입으면 컬러는 사라지고 흑백이 된다. 안면인식부위(FFA)가 손상이 되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실인증에 걸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멀쩡히 보여도 아는 사람 얼굴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에 이런 사례가 많이 나오지만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시각이 멀쩡한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매일 보는 자신의 아내를 알아보지 못해 특별한 머리핀을 꽂게 하고, 그 머리핀을 보고 아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머리핀 모양은 알아채는데 왜 아내 얼굴은 알아채지 못한단 말인가.
실독증을 이해하면 실인증이 어느 정도 이해되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무당벌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무당벌레가 똑같아 보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무당벌레는 지구상에 가장 다양한 무려 30만 종인데도 말이다. 개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모든 개가 똑같아 보이고, 개에 특별한 옷을 입히거나 명찰을 붙이면 개의 얼굴은 구분 못해도 명찰이나 옷으로 금방 구분하는 것 같은 현상이다. 사실 예전에 서양인을 처음 본 우리나라 사람에게 서양인은 모두 똑같이 보였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얼굴은 인체에서 나름 특별한 부위이다. 사소한 표정의 변화로 감정을 읽고, 사람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부위이다. 그래서 얼굴 성형수술이 가장 많기도 하다. 많은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은 안면인식부위(FFA)라는 특별한 모듈이 있어서 쉬운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쉬운 것은 아니다.
얼굴에 실인증이 있다면 언어에는 실어증이 있다. 실어증도 생각보다 아주 다양하고 기묘하다. ‘브로카(Broca)’ 실어증은 적당한 문법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단어만 뜨문뜨문 표현한다. 그래도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아는 노래는 가사를 정확하게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참 기이하다. ‘베르니케(Wernicke)’ 실어증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말은 유창하나 전혀 의미 없는 단어를 매끄럽게 잇는 현상이다. 문법적으로는 맞는 것 같으나, 의미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 실어증 보다 이해하기 힘든 것이 실독증이다.
“난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어. 하지만 읽을 수는 없다네. 책을 쓸 수 있겠지만 퇴고는 못한다네.” 시각은 멀쩡한데 글만 읽을 수 없다. 쉽게 납득이 가능한가? 『책, 못 읽는 남자』로 출간된 하워드 엥겔 이야기이다. 그는 어느 날 아침처럼 신문을 가지러 갔다가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은 푸르고 태양도 밝게 빛났으며 세상은 멀쩡한데 책을 읽으러 고개만 처박으면 파탄이 나는 것이다. 이런 실독증은 19세기 후반 신경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이후 줄곧 관심을 끌어온 병이다. 보통은 쓸 줄 알면 읽을 줄 안다. 그런데 글을 쓸 수는 있으나 그 글을 전혀 읽을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직관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하워드 엥겔은 글자를 완벽하게 잘 볼 수는 있었다. 단지 글자를 특별한 문양 보듯이 하여 머릿속에 존재하는 언어(단어)와 매치시키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실독증은 보기 능력이나 지능, 다른 부위의 뇌 손상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는 현상이다.
성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실독증도 문제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게 된 실독증은 더 문제다. 색맹을 검사하기 전에는 자신이 색맹인지 모르는 것처럼 실독증이라는 질병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오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저학년의 실독증은 읽기가 어려우니 공부가 잘 될 리 없고, 그래서 우울하고 학교나 집에서 문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나 공부가 싫은 것인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여러 이해하기 힘든 장애를 가진 사람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도 시각이라는 현상이 여러 모듈로 만들어진 뉴로그래픽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고,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감각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