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다이어트 ≫ 비만의 진범
비만의 진범 : TV 맛쇼
맛집, 맛쇼의 시대
- 맛집 = 맛쇼
- 그루망디즈, 맛 컬럼리스트
- 절대 음감도 절대 미각도 없다
- 이미 맛과 영양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 간단히 만들었다고 다른 것이 아니다
- 분자요리 : 진짜 맛쇼 최고의 인기다.
일본 TV에서 한때 채널마다 '오이시(맛있네)'를 외치는 프로그램이 넘쳐나더니 요즘 우리 TV가 그걸 한창 흉내 낸다. 지상파 TV에 손님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서 "정말 끝내줘요" "정력에도 좋대요"라며 맛집을 치켜세우는 프로그램이 10개가 넘는다. 1년이면 줄잡아 수천개 맛집이 탄생하는 셈이다. 방송대로라면 우리는 '맛의 천국'에 사는 것 아닌가 착각할 만도 하다.
TV 맛집 프로 허구 다룬 영화 파문…음식, 손님, 반응 모두 ‘가짜’
고동우 기자 | kdwoo@mediatoday.co.kr
2011.05.09 11:37:22
수년 전 주요 방송사 맛집·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일제히 장식한 화제의 음식이 있었다. 이름하여 ‘캐비아삼겹살’. 온 국민이 사랑하는 메뉴인 삼겹살과 세계 최고의 진미로 꼽히는 철갑상어 알의 만남은, 이름 그 자체만으로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게 가짜였다. 지난 5월 6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제작인 <트루맛쇼>에 따르면, 음식도, 삼겹살 위에 얹어진 캐비아도, 이 음식을 만든 요리사(?)도, “맛있다”고 환호를 내지르는 손님도, 그리고 음식을 TV에 소개한 제작자도 모두 가짜였다. 영화에는 자칭 ‘메뉴개발자’이자 음식점 방송출연 브로커인 임모씨가 나와, 캐비아삼겹살의 탄생 배경부터 촬영 과정까지 모든 걸 낱낱이 털어놓는 장면이 담겨 있다. 방송에 나가려면 자신과 같은 브로커나 홍보대행사에 수백~수천만원의 돈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맛이 있든 없든 오직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특이한 메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씨는 삼겹살에 인삼을 얹은 ‘심봤다삼겹살’, 아구찜과 초밥을 결합한 ‘아초’ 등도 자신이 개발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물론 모두 TV 맛집 프로에 소개된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희귀한 음식이기도 하다. 한 방송사는 ‘캐비아삼겹살’에 “한식 세계화 가능성 확인”이라는 자막까지 붙였다.
모든 게 가짜인 공간에서 30여년을 산 한 남자(짐 캐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쇼>를 기억할 것이다. 이 제목을 패러디한 김재환 감독(42)의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는 <트루먼쇼>의 한국판 리얼리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캐비아삼겹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MBC·KBS·SBS 맛집·생활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모든 것이 대부분 ‘가짜’라고 주장한다. 이들 프로의 전형적인 형식인 연예인들의 맛집 소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는 지난 4월 방영된 MBC <찾아라 맛있는 TV> ‘스타 맛집’에 출연한 세 연예인이 나오는데, 이들은 처음 가본 식당에서 처음 먹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단골이다’, ‘맛있다’를 연발한다. 이렇게 저렇게 말하라는, 작가들의 주문도 이어진다. MBC PD 출신인 김 감독은 ‘의도적으로’ 최근 촬영한 이 장면을 넣었다고 말했다. 주요 방송사 PD들이 “다 과거의 일이고, 우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식당도 직접 섭외해, 1000만원이 넘는 돈까지 홍보대행사에 대신 내줬다. 식당이 위치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은 김 감독의 소속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트루맛쇼의 ‘폭로’가 강렬한 것은 바로 이렇게 ‘몰래카메라’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심지어 경기도 일산에 직접 식당을 차렸다. ‘오로지 몰래카메라에 친화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이 식당에서 홍보대행사도 만나고 브로커도 접촉하고 신메뉴도 개발하고 급기야는 방송 출연까지 했다.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방영된,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워서 죽든지말든지 돈가스’가 바로 이 식당에서 내놓은 회심의 메뉴(?)이다. 2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촬영 후 곧 문을 닫았다. 어차피 ‘가짜’들을 촬영하기 위한 ‘가짜 공간’이었으니까. 영화의 마지막,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 영화는 외주 제작사에 실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는 거대 방송사에 주요한 책임을 돌리지만, 맛과 정성에 신경쓰기보다 오직 손님의 눈길만 끌려는 식당들, 무조건 싸고 푸짐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만 찾는 소비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영화가 말하는 대로 “TV에서 맛집은 맛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TV에서 나오는 맛집들이 왜 맛없는지 알게 되었다”. 이래도 TV 맛집을 믿을 것인가? 우리가 믿지 않는 순간, 많은 게 변화할 수 있다. 방송제작 환경도, 식당 음식의 질도, 그리고 우리 미각의 수준도.
연예인 뺨치는 협찬받고 한 달 수천 만원 버는 블로거들…순수성 실종된 블로그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요리·맛집 분야 ‘파워 블로그’ 코너에 가보면 대개 하루 평균 방문객이 3만~5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키친(http://kitchen.naver.com)에서 매주 목요일 발행하는 ‘블로거, 맛집을 말하다’ 섹션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는 60만이 넘는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한 명의 블로거가 가진 영향력은 TV와 비교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의 파워 블로거가 형성하는 위력은 방송보다 오히려 클 수 있다”고 단언한다. 블로그의 상업화가 대세이긴 하지만 맛집 정보의 경우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맛집 정보의 주도권이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넷 창작집단으로 불리는 파워 블로그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보다 거대 미디어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상업화된 거대 미디어와 달리 블로그는 아마추어인 개인들의 순수한 경험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상 블로거가 쓴 글이 순수한 경험담인 경우는 드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유명 블로거들이 해당 식당으로부터 협찬이나 돈을 받고 후기를 쓴다는 얘기는 이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생계형으로 시작한 블로그 창작자들이 이제는 귀여운 경험담을 올리는 단순 블로거가 아니라 한 달에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형’ 블로거로 커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한 외식회사 마케팅 관계자는 “일부 파워 블로거의 경우 한 달에 수백 만원 상당의 협찬을 제공받고 관련업계 후원으로 초호화 해외여행도 다녀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영향력 있는 블로거와 음식점을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브로커’ 역할을 하는 블로그 마케팅 회사도 성업 중이다. 음식점 소개 글을 올리는 대가로 파워 블로거는 적게는 30만원에서 수백 만원, 이보다 영향력이 떨어지는 일반 블로거는 10만원 정도를 받는다는 게 블로그 마케팅 전문 업체들의 설명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블로거들에게 ‘후기를 몇 회에 나눠 시리즈로 작성할 것’, ‘포털에서 잘 검색되도록 상호 등 핵심 단어를 삽입할 것’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전달한다. 또 연결해 준 블로거들이 올린 글에 서로 다른 아이디로 10~20여 차례의 댓글도 달아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에 의해 기획되고 조작되는 건 맛집 TV 방송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블로그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요식업계 관계자들은 막대한 영향력을 무기로 횡포를 휘두르는 일부 블로거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일도 많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강남에 문을 연 한 고급 이태리식당 주인 A씨는 자칭 파워 블로거들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오픈식에 한 파워 블로거를 초청했던 게 화근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나도 파워 블로거인데, 왜 초대를 안 했느냐?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 레스토랑에 대해 악평을 쓰겠다”라고 협박하는가 하면 “일행과 함께 갈 테니 최고급 코스로 준비해 달라”며 노골적인 협찬을 강요했다. A씨는 하는 수 없이 이들이 원하는 대로 협찬을 해줘야 했다. 협찬이나 금품 요구에 응하지 않자 앙심을 품은 블로거들이 악평을 써서 실제 문을 닫은 음식점들이 있다는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특급호텔 출신 셰프 B씨도 블로거들로 인해 불쾌한 경험을 자주한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와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 식당이 망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블로거들이 꽤 있다”며 “이 집 음식 맛은 셰프인 내가 자신하고 전문가들도 인정하는데 아마추어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건 금품을 요구하는 은근한 압박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상업주의로 얼룩진 블로그에서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정보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희망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트루맛 쇼’에서 김재환 감독이 고발한 가짜 메뉴, 가짜 단골 같은 TV 맛집의 불편한 진실들은 블로그라고 예외가 아니다.
음식 평론가이면서 블로거로 활동하는 황교익 씨는 엉터리 맛집 평가 블로거들의 실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황씨는 “돈을 받고 글을 올린 블로그는 딱 보면 표가 난다. 음식에 대한 비평은 한 마디도 없고 식당 간판에서부터 메뉴판, 음식 등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찾아가는 길, 연락처, 메뉴 같은 식당정보를 자세하게 알려주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블로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맛없는 음식점들만 골라 올린다”면서 “아무래도 상업적 지원 여부가 식당 선택의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파워 블로거들의 빈약한 전문성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황 씨는 “음식평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워야만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음식점을 섭렵한 일반인들이 자칭 ‘음식의 달인’이라며 하루에도 몇 건 씩 음식점 이용후기를 올리고, 이것이 우리의 식도락 문화를 좌우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엉터리 식당 이용후기 사례로 수많은 블로그에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식당이라고 소개된 한 유명 국밥집을 언급했다. 그는 “얼마 전 그 집에 갔었는데 주인이 ‘10년 전부터 화학조미료를 쓰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입맛이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져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사하기 어렵다’고 실토했다. 주방에서 조미료를 쳤는지 확인도 해보지 않고 제멋대로 쓴 블로그 글들이 객관적인 정보인냥 전달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음식 맛도 모르고, 조미료를 쳤는지 안 쳤는지도 모른 채 한 마디로 음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식과 안목도 없이 활동하는 블로거들이 너무 많다.” 고 개탄했다.
엉터리 맛집 블로그 전성시대, 책임은 미개한 네티즌 입맛
맛집 블로그들의 ‘불편한 진실’을 논하다 보면 네티즌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황씨는 미식담론(美食談論)을 이끌지 못하고 ‘쓰레기’ 정보를 양산하는 엉터리 블로거들에게 놀아나 허접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대박을 내는 일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음식 평론가들이 비싸고 맛없다며 외면한 음식점들도 일단 인기 블로그나 파워 블로그에 소개되고 나면 갑자기 매출이 상승하는 일도 생긴다고 게 그의 전언이다. 이들 식당 가운데는 호텔 등 일반인들이 잘 가지 못하는 특히 비싼 음식점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네티즌들이 그만큼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이 같은 세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상업주의에 물든 블로거들뿐만 아니라 미개한 입맛을 가진 네티즌들도 일부 나눠져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싸구려 취향을 가진 시청자들이나 네티즌들 덕분에 천박한 음식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듯이 블로거들이 형편없는 식당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엄청난 호응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것은 네티즌의 미개한 입맛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네티즌의 미각 수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음식평론가는 황씨만이 아니다. 또 다른 음식 전문가는 윙버스, 블루리본, 메뉴판닷컴 등 네티즌의 평가로 이뤄지는 인터넷 외식 정보 사이트에 가보면 네티즌의 미각수준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외식 정보 사이트의 이용자는 대부분 20, 30대 젊은층. 미각 경험이 짧은 이들은 대체로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 좋은 평가를 주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40, 50대가 소외되다 보니 이들 사이트가 과연 객관적인 음식과 식당 문화의 가늠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적으로 자극성이 덜한 전통 한식 등은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음식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물든 블로그들의 자중자애(自重自愛)나 자기규제도 필요하지만 네티즌 스스로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식당과 좋은 식당을 구별하는 식견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 않는 이상 모처럼 맞은 한국 음식문화의 중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맛집 평가의 주도권이 기존 신문과 잡지에서 TV로, 나아가 인터넷 블로그로 넘어온 지금, 음식 문화 발전을 위한 궁극적 책임은 이른바 매체들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고 소비하는 집단지성의 상징인 네티즌이 함께 나눠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