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t ≫ 법칙 ≫ 단순함
단순화 효과
빌 게이츠
“일을 간단하게 만들어라. 워렌 버핏은 일을 간단하게 만드는데 천재이다. 그의 다이어리는 아주 단순하게 정리돼 있다‘ 누군가 그에게 어떤 사업이 매력적이라고 하면, 그는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잇는 몇가지의 숫자와 팩트를 조합해 단순화한다. 단순명쾌하게 한 다음 투자여부를 판단한다.
버핏은 어떤 사안을 보면 자신만의 모델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의 예측력과 내공으로 다져진, 오랫동안 작동하며 발전해온 모델이다. 그는 일을 압축할 줄 안다. 중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만 따로 떼어내서 이를 기준으로 사고한다.“
없애면 福이 온다?
한호택 IGM 교수 hthan@igm.or.kr
난해한 트리즈 쉽게 배우자 <2편> 제거/추출의 원리
보험회사에서 6시그마 프로젝트를 관리할 때였다. 본사 부서의 프로젝트는 어찌어찌 진행이 되는데 영업지점이 문제였다. ‘지점 매출 활성화’란 과제가 몇 번이나 일정을 미루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점장을 찾아가 물었다.
“매출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영업할 시간도 부족한데 자꾸 6시그마다 프로젝트다 해서 쓸 데 없는 일을 시키니까 매출이 안 오르는 겁니다.“
“......(난감했음)”
6시그마는 과학적 연구방법을 경영혁신에 접목한 훌륭한 방법론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숫자로 검증되는 근거를 중시하다보니 통계를 배우고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서비스업종의 경우 데이터가 자동 생성되지 않는 항목이 많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야 해서 어려움이 더 심했다. 무리하게 데이터를 확보하려 들다 “X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나?” 하는 불평도 많이 들었다. 프로젝트 추진 기간이 적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오래 걸리는 점도 문제였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는 기분이 드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제거는 개선에 앞선다
프로젝트 수행을 간소화할 수 없을까 해서 다른 경영혁신방법론을 살펴봤다. 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제약이론(TOC, theory of constraints)이 눈에 띄었다. 제약이론을 흔히 병목이론이라고도 한다. 병목이 교통정체를 일으키듯 제약이 발생하는 프로세스가 시스템 전체의 흐름을 좌지우지 하니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장님 문고리 잡듯 프로세스 전체를 더듬어 고치려하지 말고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라는 주장이 매력적이었다.
다음으로 도요타 생산방식(TPS, Toyota production system)을 들여다보다 7무다(むだ, 無駄)라는 개념을 알았다. 일본어 ‘무다’는 ‘쓸 데 없다’는 뜻으로 도요타에서는 원가를 높이고 프로세스를 복잡하게 만드는 7가지 낭비요소를(과잉생산, 재고, 공정, 운반, 대기, 생산결함, 동작의 낭비) 규정해놓고 불필요한 프로세스부터 제거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2001년, 6시그마의 화신 잭 웰치의 뒤를 이어 제프리 이멜트가 GE의 새로운 CEO가 됐다. 이멜트는 린 6시그마를 강조했는데 그가 6시그마 앞에 덧붙인 린(Lean) 또한 도요타 시스템을 미국식 환경에 맞춰 재정립한 것이니 생산흐름을 짧게 해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영혁신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제거’가 혁신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제거할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제거가 가져다주는 열매는 크다. 프로세스가 짧아지면 스피드가 향상되고 비용이 절감되고 불량 발생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줄어들어 품질까지 좋아진다. 한 마디로 제거는 스피드, 저비용, 고품질 등 기업목표를 한꺼번에 달성하는 핵심 수단이다. 도요타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삼성전자에서 꾸준히 실시하고 있는 '5S3정' 운동 역시 비효율과 낭비부터 없애려는 ‘제거’의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단순하면 경쟁력도 높아져
트리즈 해결원리 2번은 ‘제거’ 또는 ‘추출’이다. 유해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니 ‘제거’고 그래서 유익하고, 필요한 부분만을 남기니 ‘추출’이라고도 한다. 집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방향제도 바로 이 제거/추출의 원리를 활용해 만든다. 꽃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을 다 제거하고 향기만을 남긴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에어컨 실외기를 떼어내 바깥에 두는 것도 이 원리를 적용한 예다. 처음 세탁기가 나왔을 때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가정집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판매를 고민하던 회사는 여러 가지 세탁 기능 중에서 다른 기능을 다 없애고 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탈수기능만 남겨 싸게 팔았다. 중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하이얼이 만든 고구마 세탁기다. 이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품질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워지자 단순화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새로운 컴퓨터, TV, 휴대폰이 나올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얼마만큼 얇아지고, 가벼워졌나이다. 이렇다보니 제품의 본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까지 제거한 신제품들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다이슨이 만든 ‘에어 멀티플레이어’는 선풍기에서 날개를 제거했다. 둥그런 원밖에 보이지 않는데 거기서 선풍기처럼 바람이 나온다. 2010년 미국 얀코디자인에서는 공기를 흡입해서 물의 흐름을 바꾸는 덮개 없는 우산을 선보였다. 워낙 혁신적인 제품이라 글로 표현하려니 어려운데 지팡이처럼 봉만 남아있다. 이런 제품들은 간소하면서도 디자인이나 기술이 고급하게 보여 비싸게 팔린다.
최첨단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각축을 벌이는 IT분야에서도 역시 제거가 주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구글의 검색창을 보라. 다른 검색 사이트보다 간소하게 보이지 않는가? 온갖 블로그, 카페, 지식검색 사이트가 난무하는 가운데 제거를 통해 머리를 우뚝 세운 사이트가 있다. 바로 트위터다. 단지 글자 수를 140자로 제한했을 뿐인데 대단한 경쟁력이 생겼다. 제거를 하면 스피드가 생기니 바쁜 생활 속에서 빠른 대응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호응이 뒤따른다.
비용도 줄이고 돈도 벌고
제거/추출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똑같이 인기가 있더라도 메뉴가 많은 식당보다 한 가지만 파는 식당이(주문할 필요도 없는) 회전율이나 이익률이 더 높을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남자손님을 받지 않고, 욕실이나 샤워실을 없애고, 거울을 떼어내고, 운동기구까지 줄여 성공을 거둔 헬스클럽이 있다. 여성전용 헬스클럽 커브스(Curves)다. 전에 90분 걸리던 운동(량)을 30분 만에 할 수 있고 회비까지 싸니 성공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뺄셈마케팅’이 유행하고 있다. ‘뺄셈마케팅’은 쓸데없이 복잡한 기능이나 서비스를 제거하고 고객이 원하는 가치만을 제공하는 마케팅이다. 대표적인 상품이 소프트뱅크의 심플 휴대폰 MVP다. 2008년 일본 휴대전화시장이 전년 대비 -5% 감소하는 불황을 겪는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MVP를 앞세워 239만 건의 순증가를 기록했다. MVP는 TV, MP3플레이어, 카메라, 터치패드 등 부가적인 기능을 모두 제거해 가격을 내렸고 그 결과, 싸고 단순한 제품을 선호하는 고령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꼬치구이 체인점 토리키조쿠(鳥貴族)도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모든 꼬치구이가 획일적으로 2개에 280엔, 볶음밥이나 면류 등의 식사나 샐러드, 디저트, 맥주도 280엔에 판다. 저렴한 가격의 비결은 역시 단순함. 다른 꼬치구이 점포의 절반 수준으로 메뉴 수를 줄이고 직화구이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조리방법을 없애 회전율을 2배 이상 높였다.
토리키조쿠 같은 프랜차이즈체인 역시 제거/추출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다. 기획, 마케팅, 재료 구입, 공급 등은 본사가 도맡아 하고 영업점에서는 영업에만 집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티켓몬스터’, ‘원어데이(One a day)’처럼 하루에 한 가지 상품만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역시, 상품을 단순화시켜 성공한 기업들이다.
분할의 원리와 추출/제거의 원리를 결합하면?
트리즈 1번 원리는 분할이고 2번 원리는 제거/추출이다. 이 두 원리를 결합하면 더욱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예를 들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소득 수준으로 고객을 분류한(1번) 다음, 각 소득 수준에 맞는(2번 추출) 방식을 적용하는 식이다. 카드사, 백화점, 홈쇼핑 등에서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VVIP 마케팅을 실시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는 제품 가격을 낮추는 대신 박리다매 형태로 생산 규모와 소비자를 확대해 수익을 창출하는 BOP(Bottom of Pyramid)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필리핀 통신업체 ‘Smart Communications’는 저소득층 휴대폰 사용자 중 대다수가 해외근로자라는 것을 파악하고 휴대폰 송금 서비스를 실시해 급속도로 가입자 수를 늘렸다. 원치 않는 고객이라면 의도적으로 구매를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는 디마케팅(demarketing)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 채무 규모가 적정한도를 넘은 고객의 대출을 제한하거나 상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고객의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는 담배 판매대를 별도로 빼놓았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담배 손님 때문에 계산대가 붐비고...... 담배 하나 사러 와서 카드를 꺼내는 손님 때문”이란다.
칭기즈칸의 명재상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는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처음 GE의 CEO를 맡고 고민하는 잭 웰치에게 피터 드러커가 한 조언은 “1등, 2등하는 기업 빼고는 다 없애라”였다. 실패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도 그 동안 투자한 13억불이 아까워 위성통신망인 이리듐(iridium)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한 모토로라는 추가 20억불의 손실을 낸 반면, 회사를 일으킨 메모리칩 사업을 과감하게 접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역량을 집중한 인텔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거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고, 때로는 뼈를 깎는 고통이 될 수도 있지만 돌덩이를 떼어내지 않으면 아름다운 조각상은 탄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