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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 : Good State - 보존성
매운맛 이야기
- 온각 : Vanilloid receptor
- 고추를 먹으면 땀을 흘리는 이유
-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매운맛
- 매운 것이 몸에 좋다?
- 매운 것이 몸에 나쁘다
- 향신료는 천연 보존료?
- 떡볶이의 산업화,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에 매운 음식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페이스북. 김영준님 글
이번 주의 돈슐랭은 떡볶이편입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불닭볶음면에 이어 매운맛 2편입니다 ㅎㅎ
떡볶이가 재미있는 점은 오래전부터 국민 간식이었지만 의외로 이 떡볶이가 산업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유라면 마복림 할머니의 고추장 레시피가 일반화 된 이후로 누구나, 심지어는 집에서도 만들기 쉽고 너무 저렴했다는 점이겠죠. 별도의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진입장벽은 거의 없다싶은 수준인데 가격도 매우 싸니 이걸 비즈니스화 한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떡볶이가 프랜차이즈 비즈니스가 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아딸이 등장하면서 부터로 다른 한식 아이템에 비해 한참 늦었습니다. 하지만 아딸도 사실 떡볶이가 메인은 아니었고요.
떡볶이가 처음으로 주인공이 됐던 것은 2009년에 죠스떡볶이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후 부터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떡볶이가 이전까지 10대의 간식이 불과했다가 비즈니스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본격적인 열광을 하기 시작한게 그 즈음부터란 얘기입니다.
죠스 떡볶이가 인기였던데는 불닭볶음면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운맛 트렌드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0년대 동안 비교적 덜 맵게 먹던 트렌드는 2010년부터 맵게 먹는 것으로 변화했고 2012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트렌드를 타고 매운 떡볶이를 내세운 죠스가 날아올랐던거죠.
한가지 문제라면 이 트렌드 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그리고 전에 없이 크게 변하여 죠스조차 못쫓아갈 정도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2011년부터는 고추소비량에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소비자들이 매운맛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죠스떡볶이가 인기를 끌었지만 소비자들이 죠스떡볶이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매운걸 찾기 시작했기에 그 이전까지 틈새 시장에 머물렀던 엽떡과 신전이 2011년부터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MB시절에 한식의 세계화를 사업으로 밀면서 떡볶이를 내세웠는데 잘 안된게 저는 이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엔 떡볶이가 이제 산업이 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거든요.
자, 매운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올 때마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매운 음식을 찾는다'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사실 떡볶이에 대한 해석도 이와 비슷합니다.
저는 매운 음식 트렌드와 사회적 스트레스를 연관짓는 것은 전형적인 '말은 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차원에서 스트레스를 매운 맛으로 해소하는건 말이 됩니다만 이걸 사회적인 트렌드로 바꾸는 건 무리라는 얘기죠.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사적으로 1인당 고추소비량의 평균은 2.33kg입니다. 이 평균을 넘어섰던 시기는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97년과 99년, 그리고 2010년대입니다.
전 국민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는 누가 뭐래도 98년 외환위기였죠. 하지만 이때는 오히려 평균 이하였고 97년과 99년 회복기의 소비가 더 많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과 2009년도 평균 이하고요.
2010년대 이전에 가장 소비가 많았던 해가 1976년인데 1976년에 전 국민이 받았던 스트레스가 과연 98년과 2008년보다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듯한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지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래서 '매운 음식의 소비가 느는 것은 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이다'라는게 내러티브 오류라고 생각하는거죠.
그냥 매운맛의 시대적 트렌드 변화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매운맛을 더 찾는 시기가 있고 덜 찾는 시기가 있다는거죠. 그 와중에 떡볶이는 산업이 되었고 틈새시장 아이템에 불과했던 엽떡과 신전은 떡볶이 시장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성장한겁니다.
매운맛의 효과
대장암 억제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의과대학 연구팀이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대장에 종양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위나 대장에 종양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쥐에게 캡사이신을 투여했다. 그 결과 대장의 종양이 감소했고, 또한 수명도 3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드종 박사는 “캡사이신이 세포 벽의 수용체를 자극해 대장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대장암 환자에게 캡사이신이 함유된 식단을 제공하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비록 생쥐에 그쳤으나, 추후 인간과 매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임상연구 저널(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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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억제
캡사이신이 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가 얼얼하다 곧 아무 느낌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때문에 캡사이신은 통증완화제로 개발돼, 현재는 크림에 캡사이신을 0.025%, 0.0175% 넣은 두 가지 제품이 나와 있다. 또 찜질용 파스에도 캡사이신 성분이 들어있다.
고추에서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 성분이 위염 등 각종 위 질환의 원인균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된 위 점막 세포의 염증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세대 의대 이용찬(소화기내과) 교수는 캅사이신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사람의 위 상피세포 염증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세포 수준에서 관찰한 결과 캅사이신을 많이 투여하면 염증이 강력하게 억제되는 것을 관찰했다고 2007.9. 12일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위 점막에 해롭다고 알려진 캅사이신 성분이 오히려 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음을 의미하며, 앞으로 캅사이신 성분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로 인한 위염 예방이나 치료에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헬리코박터’ 10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다양한 농도의 캅사이신으로 처리한 사람의 위 상피세포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시킨 뒤 이들 세포에서 염증 유발 물질인 ‘인터류킨-8(IL-8)’의 변화량을 비교했다. 그 결과 L당 50μmol(마이크로몰)의 농도로 처리한 위 상피세포에서는 IL-8의 생성이 캅사이신 처리를 하지 않은 세포보다 40.9% 감소했고 100μmol로 처리한 세포에서는 77.9%, 250μmol로 처리한 세포에서는 97% 감소하는 것이 관찰됐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캅사이신이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힌 것으로, 음식으로 캅사이신을 섭취했을 때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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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 경희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혹시 최근 점심 식사 메뉴가 냉면이었는지? 필자의 예측이 맞다면, 틀림 없이 톡 쏘는 겨자를 냉면에 곁들여 드셨을 것이다. 이젠 냉면에 겨자 치는 행동까지 진화적으로 분석할 작정이냐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다. 맞다. 오늘의 주제는 왜 사람들이 냉면에 겨자를 쳐 먹는가다. 정확히 말하면, 요리의 흥취를 더하기 위해 겨자처럼 맵고 자극적인 식물성 물질, 즉 향신료(spice)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다. 왜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무교동 낙지볶음을 이마에 땀을 송송 흘리면서까지 먹을까? 왜 양식당에서 스테이크나 수프가 나오면 '후추'를 탈탈 뿌려댈까? 왜 생선회 위에 '레몬즙'을 살짝 친 다음에 '고추냉이(와사비)'를 푼 간장에 회를 찍어 먹을까?
한국인은 고추장을 먹어야 힘을 내는 사람들인지라, 매운 맛이라면 입안을 순식간에 불태우는 고추의 매운 맛이 으레 연상된다. 하지만 후추, 생강, 마늘, 양파, 파, 계피, 강황, 파슬리, 레몬, 육두구, 고추냉이 등등은 매운 맛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후추는 코끝을 들쑤시는 알싸한 향을 낸다. 계피는 은은하고 향긋하게 다가온다. 고추는 혀를 얼얼하게 때리듯이 아프다. 이처럼 향신료가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는 까닭은 식물종마다 조금씩 다른 ‘피토케미컬(phytochemcial)’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피토케미컬은 식물이 초식 동물이나 초식 곤충, 곰팡이, 병원균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화학 무기다. 수십 가지의 피토케미컬들을 어떻게 잘 배합하느냐에 따라 각 향신료 고유의 매운 맛이 만들어진다. 고추에 들어 있는 물질인 캡사이신(capsaicin)은 대표적인 피토케미컬이다.
사실, 왜 맵고 자극적인 향신료를 쓰는가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 뻔하다. 향신료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니까. 좀 더 친절한 보충 설명은 이렇다. 피토케미컬이 만드는 매운 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 -endorphin)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근접 설명(proximate explanation)은 왜 우리의 뇌가 베타-엔도르핀까지 분비해가며 매운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게끔 진화했는지, 왜 어떤 향신료를 다른 향신료보다 더 맛있다고 여기게끔 진화했는지에 대한 궁극 설명(ultimate explanation)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사람들은 왜 매운 향신료를 좋아하게끔 진화했을까?
항신료는 자연 항균제
빌링은 그녀의 지도교수 폴 셔먼(Paul Sherman)이 왜 사람들이 향신료를 요리에 쓰는가에 대해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향신료가 음식물 속의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므로, 인간은 향신료를 일종의 항균제로 요리에 곁들이게끔 진화했다는 가설이었다. 즉, 양파나 고추 같은 식물들이 미생물을 막고자 개발해 낸 방어용 무기를 인간이 염치불구하고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것이다. 냉장시설이 잘 갖추어진 오늘날에도 여름철 상한 음식을 먹고 단체로 식중독을 일으켰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 판국이니, 인간의 오랜 진화 역사에서 대장균, 살모넬라 같은 세균이나 디스토마 같은 기생충이 먹음직스러운 요리 안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성은 언제나 높았다.
향신료가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주기 때문에 요리에 쓰인다는 가설이 맞다면 다음 예측이 도출된다. 인도나 브라질처럼 무더워서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의 요리법보다 더 많은 종류의, 더 독한 향신료를 요구할 것이다. 이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셔먼과 빌링은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전 세계 36개국의 전통 요리책 93권에 적힌 총 4,578개의 고기 요리법을 검토했다 (왜 고기 요리만 조사했는지는 아래에 이야기된). 이를테면 한국의 전통 요리 하나에 쓰이는 향신료의 가짓수는 평균 3.5개였으며 한국인이 가장 흔히 쓰는 향신료는 마늘, 양파, 고추, 참깨의 순서였다.
셔먼과 빌링이 예측한 대로, 더운 나라에서는 요리 하나에 대해 더 많은 가짓수의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1] 더운 곳에서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각각의 향신료가 여러 나라의 요리에서 쓰이는 빈도를 조사한 결과, 마늘, 양파, 칠리, 커민, 계피 같이 세균을 특히 잘 퇴치하는 독한 향신료들은 추운 나라보다 더운 나라의 요리법에 더 자주 등장했다. 반면에 파슬리나 생강, 레몬, 라임처럼 항균작용이 약한 향신료들이 쓰이는 빈도는 더운 나라건 추운 나라건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이는 더운 지역의 사람들이 순한 향신료보다 독한 향신료를 실제로 더 선호했음을 뜻한다.
셔먼과 빌링의 초기 연구가 고기 요리만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생고기는 꽁꽁 얼려 냉동실에 보관하고 생야채는 그대로 냉장실에 보관하는 습관에서 드러나듯이, 동물의 사체는 식물의 사체보다 상온에서 부패하기 쉽다. 죽은 뒤 무방비 상태로 미생물의 먹잇감이 되는 동물과 달리, 식물은 죽은 다음에도 단단하고 질긴 세포벽이 미생물의 침입을 상당부분 막아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식물의 대부분은 우리가 향신료로 쓰는 식물이 지닌 피토케미컬과 동일한 피토케미컬을 이미 갖고 있다 (양파와 칠리는 아예 향신료로도 쓰이고 음식의 주재료로도 쓰인다).
따라서 항신료를 항균제로 활용한다는 진화적 가설이 맞다면, 원래 항균력이 어느 정도 있는 야채를 요리할 때는 고기를 요리할 때보다 향신료를 적게 쓰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셔먼은 세계 각국의 야채 요리책을 조사한 후속 논문을 통해 야채 요리에는 실제로 고기 요리보다 향신료가 적게 쓰임을 입증했다. [2] 지금 당장 생각나는 매운 요리를 아무거나 꼽아 보시라. 아마 철판낙지볶음, 해물떡찜, 불닭, 떡볶이, 생태 매운탕, 육개장, 아귀찜, 버팔로 윙, 돼지고기 두루치기 등 주로 고기 요리일 것이다. 반면에 김치를 제외하면 매운 야채 요리는 얼른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시금치 매운탕이나 애호박 고추장 샐러드, 매운 청경채 볶음은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향신료가 항균제로서 기능한다면, 아예 더운 기후건 추운 기후건 여러 가지 향신료를 듬뿍 요리에 집어넣는 게 가장 안전한 방책이 아니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불행해도 향신료가 인간에게 항상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향신료 안에 든 피토케미컬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암이나 돌연변이, 혹은 태아의 기형이 초래될 수 있다. 그러니 어린이들이 매운 김치를 못 먹는다고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라. 다 그럴만한 진화적 이유가 있다.
일본의 전통 요리가 그리 맵지 않은 탓에 일본인들이 매운 음식이라면 질겁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의 매운 맛 사랑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사실은 폴 셔먼의 항균 가설에 치명타를 안기는 것 아닐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연평균기온이나 강수량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상온에서 미생물이 음식을 부패시킬 가능성, 그리고 그에 따라 향신료를 사용하는 전통 요리법을 발전시킬 필요는 역사적으로 비슷했을 터인데? 셔먼은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신선한 해산물을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는 전통 요리법이 발달했다 (암이나 돌연변이 등 향신료에 따르는 비용을 기억하라). 그러나 해산물이 장거리 수송되는 도중에 상할 위험이 높은 오늘날, 담백한 일본의 전통 요리법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실제로 1971년에서 1990년 사이에 일본의 식중독 환자수는 우리 나라보다 거의 세 배나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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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추의 캡사이신은 세균이나 곰팡이, 바이러스, 새,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물질이다. 그래서 이 성분은 졸음 방지뿐 아니라 통증을 완화시키는 연고나 소화장애 치료제에도 사용된다.
캡사이신이 우리 몸에 들어간 직후에는 강한 자극을 준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통증전달 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막아 진통 작용을 한다. 이 점을 이용한 캡사이신 연고는 당뇨병이나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통증을 완화한다. 처음에 이 연고를 바르면 화끈거리고 따갑지만 2~3일 후부터는 통증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매운맛은 위를 자극한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소량의 캡사이신은 위 점막을 자극하지 않고 위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위염 같은 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된 위 점막 세포의 염증을 고추에서 추출한 캡사이신이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내과 이용찬 교수는 2007년에 이런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헬리코박터’에 발표하기도 했다.
캡사이신이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팀은 피부암 세포를 주사한 쥐에게 캡사이신을 발라 캡사이신의 항암 효과를 증명했다. 캡사이신을 바르지 않은 쥐는 100% 피부암에 걸렸지만, 캡사이신을 바른 쥐는 60%만 피부암으로 발전했던 것. 이 연구결과는 2003년 ‘네이처’에 실렸다. 미국에서는 전립선암 세포를 가진 쥐에게 캡사이신을 주사해 암세포의 80%가 줄어들고 종양이 축소된 실험결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매운맛 성분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건국대 생명공학과 이기원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 캡사이신이 암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암 발생에 중요한 단백질 발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암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암 연구(Cancer Research)’ 2010년 9월호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캡사이신이 최루탄의 원료로 이용되고, 염증이나 지극을 유발시키는 물질이라는 데 주목했다. 정상세포에서 캡사이신이 암을 억제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는 없었던 것이다. 또 기존에 밝혀진 캡사이신의 항암효과들은 모두 암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결과였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연구팀은 쥐를 이용해 캡사이신이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그 결과 캡사이신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라는 단백질을 활성화시켜 염증을 유도하고, 피부암을 일으켰다. 원래 캡사이신은 TRPV1 단백질이라는 수용체를 통해 진통제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피부암 발생과정에서 캡사이신이 EGFR 단백질과 결합돼 암 발생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캡사이신을 다량으로 주입했을 경우 암 억제 물질인 TRPV1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캡사이신이 EGFR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확인됐다. TRPV1 단백질 같은 암 억제 물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캡사이신을 다량 섭취했을 때 암 발생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없이 캡사이신만 단독으로 주입했을 때는 암이 발생하지 않았다.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만 보고 고추 섭취를 피할 일은 아니지만 과도하게 매운 고추를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전했다.
비록 캡사이신이 암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캡사이신의 장점이나 고추 자체의 영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캡사이신은 여전히 몸속 지방을 분해하고, 장내 살균 작용을 하며, 식욕도 좋게 한다. 젖산균의 발육을 도와 김치에도 이용된다.
고추에는 비타민 C를 비롯해 비타민 A, 비타민 P(바이오 플라보노이드) 같은 각종 비타민도 풍부하다. 풋고추 하나에 들어 있는 비타민C는 귤의 2배, 사과의 30배 정도 되는데, 비타민C는 피로회복과 괴혈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 비타민A는 호흡기 계통에 대한 감염에 저항력을 높이고, 야맹증과 냉방병을 예방하는 데 좋다. 비타민P는 노화를 막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며,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돕는다.
결국 캡사이신도 항상 위험한 것만은 아니고, 고추 자체에도 유익한 영양성분이 많다. ‘캡사이신이 암을 촉진한다’는 결과 한 줄이 아니라 이런 결과가 나온 맥락을 살펴야 한다. 고추뿐 아니라 다른 천연물도 각각의 성분이 특정 질병에 대해 각각 다른 작용을 해 기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겨야 할 것은 천연물의 성분을 이용한 기능성식품이나 화장품, 신약 연구에 있어서 각 성분이 다른 질병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매운 음식 자주 먹으면 조기사망 위험 낮아져
입력 : 2015.08.05 16:18
국제연구팀, 중국인 4만8천명 대상 연구
고추 등 매운 음식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먹으면 조기 사망 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더타임스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의학원과 하버드대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국제연구팀은 30∼79세 중국인 48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분석해 영국의학저널(BMJ) 최신호에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일주일에 1∼2번 매운 음식을 먹는 사람은 1번 미만으로 먹는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10% 낮았으며, 3∼7번 먹는 사람은 조기 사망 위험이 14% 낮았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없었으나, 음주를 하는 사람에게서는 매운 음식이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마른 고추보다는 신선한 고추를 먹는 경우에 암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사망 위험이 더 낮아졌다.
연구진은 "신선한 고추에 캡사이신, 비타민C 등 생리활성물질이 더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이번 연구결과를 매운 음식 섭취 권고로 연결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지적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니타 포루치 박사는 "사망률을 낮춰주는 것이 매운 음식 자체인지 아니면 매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다른 특성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며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을 향상시키고 사망률을 직접 낮춰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의 지표인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