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한계 : 감각 채움 F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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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한계 : 감각 채움 Filling

자연은 모듈, 패턴으로 만들어졌다
- 인간 감각 한계 : 감각 범위
- 모듈이기에 뇌는 예측가능하다 -> 정보가 없으면 채워넣는다 Filling in
- 패턴화 오류 : 이상한 것을 믿기고 한다

감각 채움 Filling in
- 시각 채움 : 맹점의 처리,  동영상의 처리

뇌는 예측기계이다. 없으면 채워 넣는다

- 정지화면이 동영상이 된다

영화는 정지화면이다. 초당 20장의 정지화면이 지나가면 동영상이 된다



- 채워 넣기 기능이 사라지면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다

1970년대 후반 취리히에 잉크리드ingrid 라는 여성이 흥미로운 사례를 보였다. 뇌졸중 이후 모든 시력은 정상이지만 움직임을 보는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움직이는 차를 뚝뚝 끊어지는 스냅사진으로 보이는 것이다. 마치 점멸하는 나이트 불빛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녀가 길을 건너려면 경악하는데 차가 얼마나 빠르게 접근하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전자를 몰을 따르면 물이 얼은 고드름처럼 보이고 언제 물 따르기를 멈춰야 할지 판단이 힘들어 물이 넘치기 일쑤였다. 정상인에게도 경두개자기자극기로 중간 측두 영역을 자극하면 나머지 시각기능은 멀쩡한데 움직임을 파악하는 기능은 사라진다고 한다.



- 소리도 채워 넣는다
일부러 앞에 기침소리를 넣은 후, eel 발음을 녹음해서 들려주되 문장 구성을 각각 달리해서
“The *eel was on the orange.” 이라고 들려주면 청자는 eel을 ‘peel’로 들었다고 하고,
“The *eel was on the shoe.”라고 들려주면 청자는 eel을 ‘heel’로 들었다고 답함.
만약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지각한다면 eel 이라고 대응했어야 옳음.

감각의 채워 넣기는 생각보다 방대하다

- 단맛이 사라지면 향이 사라진다

아래 그래프는 단맛과 향의 관계를 간단히 잘 보여주는 그래프다. 껌에 멘손이라는 향기 성분을 넣고 씹기 시작하면 2분이 지나면서 설탕의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실제 향(멘손)의 양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소비자는 향이 급격히 약해진다고 느낀다. 향의 강도가 향 자체 농도보다는 감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껌에 향기가 오래가게 하기 위해서는 향의 지속성보다 감미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더 핵심 기술인 셈이다.
당(감미)와 향에 산까지 추가한 실험을 통해서도 유사한 결과가 보고 되었다. 실험 시작에서는  딸기 향, 감미료, 산미료 모두를 혼합된 상태로 시료를 맛보게 하면서 어떤 순간에는 특정 성분의 공급을 차단하고 다시 원래대로 샘플을 공급하는 실험이다. 먼저 당과 산을 계속 공급하면서 딸기 향만을 차단하는 경우이다. 딸기향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도 딸기향이 없다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산만을 제가하여도 향이 40% 이상 약해졌다고 느낀다. 그런데 당을 제고하면 결과는 훨씬 심각하다. 앞에 실험처럼 향이 없어졌다고 느낀다. 향이 있더라도 당과 산 두 가지를 없애면 당, 산, 향까지 모두 없앤 것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향은 맛의 바탕 마련되어야 제 기능을 한다. 물론 향을 제거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향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고, 향의 농도가 아주 높으면 그래도 알아채겠지만 통상 우리가 음식으로 먹는 수준의 향 농도에서는 맛의 바탕이 필수 인 것이다.

 


- 겉면에 설탕을 뿌리면 양에 비해 맛의 유지가 길어진다

예전에 귀한 것은 찍어 먹었다. 조청이나 꿀에 떡을 찍어 먹으면 단맛이 연장되는 것이다.

 
소금 간은 먹기 직전에 - 우리는 혀로 음식 맛을 느낀다. 먹기 직전에 음식 표면에만 살짝 짠맛을 입혀도 입안에서는 충분히 짭조름한 맛을 느낀다. 생선조림할 때는 미리 간장을 넣지 말고 생선이 거의 익었을 때 넣어 생선 겉에만 양념이 살짝 묻게 한다. 맛은 큰 차이 없으면서 소금 섭취는 훨씬 줄일 수 있다.

- 왜 작은 양의 소스가 요리 전체의 맛을 좌우 할까?

겉면에 소금을 뿌리면 오히려 소금 섭취량을 줄일수 있다

- 암점 채움
-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 p198~207

붕대를 제거한 첫날 밤, 오른쪽 눈으로 아메바 같은 검은 얼룩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이 얼룩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처럼 생긴 암흑으로 자리 잡았다. 태즈메이니아인가 싶은 동남부 모퉁이의 돌출부 방점까지 보였다. 첫날 밤, 천장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 얼룩이 사라져버려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위장했는지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말로 사라졌나 싶어서 테스트했더니, 아직 있었다. 블랙홀이 주변의 천장색깔을 덮어 쓰고 백색홀로 바뀐 것이었다. 그런데도 구멍은 구멍이어서, 손가락을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옮겨보면 보이지 않는 암점의 가장자리를 지나는 순간 손가락이 사라져버린다.
   암점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정상적인 지점으로 시각 신경이 모이는 곳인데, 그곳이 자동적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우리가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정상적인 눈의 암점이 아주 작다면 내 눈의 암점은 거대해서 오른쪽 눈 시야 전체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다. 그렇지만 하얀 표면을 1~2초간 바라보면 완전하게 채워져서 암흑이 하얗게 바뀐다. 다음날, 파란 하늘로 이 현상을 실험했더니 같은 결과가 나왔다. 암점이 하늘처럼 파란빛으로 바뀌었지만, 이번에는 그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어볼 필요가 없었다. 새떼가 암점으로 들어오면서 사라졌다가 몇초 뒤 다른 쪽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마치 투명 장치를 탑재한 클링온 전함(유명한 SF 시리즈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호전적인 클링온 족의 전함--옮긴이)이 은폐되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렇게 채워지는 현상은 지속적인 응시에 의해 나타나며 전적으로 국소적이다.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채워졌던 것이 바로 흩어져 그 흉한 검은 아메바가 돌아온다. 붉은 표면을 몇 분간 보다가 하얀 벽을 보았을 때는 그 벽에 커다랗고 붉은 아메바(혹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나타나 10초가량 지속되다가 하얗게 변한다. 그래서 지속적 응시에 대한 반응이며 국소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암점을 채우는 것은 색만이 아니며, 무늬도 같은 작용을 보인다. 내 눈의 암점이 어떤 힘과 한계가 있는지 실험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단순한 반복 무늬로 암점을 채우는 일은 간단했다(내 집무실의 양탄자부터 실험해보았다). 하지만 무늬는 색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10~15초간 응시해야 암점이 채워진다. 채워지는 과정은 가장자리부터 시작되는데, 연못이 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늬는 같은 간격으로 반복되어야 하며,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동일해야 한다. 나의 시각피질은 자잘한 무늬는 별 어려움 없이 채웠지만, 굵직한 무늬는 감당하지 못했다. 따라서 벽돌담에서 두어 뼘 거리에 섰을 때는 암점이 붉은빛으로 변했지만, 세부 요소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벽돌담에서 5~6미터 거리에 서면 고상한 벽돌 건축물로 채워진다.
   그 벽돌 건축물이 원래의 것과 정확히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진’담장을 그럴듯하게 그려냈다고 할 만하다. 체스판이나 벽지처럼 예상하기 쉬운 반복 무늬는 응시하기만 하면 동일하게 복제할 수 있다. 한번은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암점 안에 가늘고 성긴 구름이 떠 있는 ‘사이비’하늘이 떠올랐다. 시각피질이 개별 구름의 형태를 실제 모양 그대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해도, 최선을 다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의 비율을 본뜨거나 어림잡는 작업에 임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시각피질은 강직한 복제 장치가 아니라 일종의 평균화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시된 정보에서 표본을 추려내어 (사진처럼 정밀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통계적으로 타당한 현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장치가 아닌가 말이다. 이것이 바로 갑오징어나 문어가 주위의 식물이나 산호 혹은 해저의 빛깔과 무늬, 나아가서는 질감까지 취하여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천적이나 먹잇감을 속여 넘기기에는 충분히 그럴듯하게) 위장할 때 일어나는 작용이 아닐까?
   움직임도 어느 정도까지는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서히 소용돌이치거나 잔물결 일렁이는 허드슨 강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풍경도 암점에 의해 시야가 텅 비어버렸을 때는 거울 속에 내 두상도 채워 넣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하루는 한가롭게 암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눈으로 발을 보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자, 뭉툭하게 절단된 발목 부위가 반투명 분홍색으로 자라나면서 그 둘레로 휘미한 원형질 후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발가락을 계속해서 꼼지락거렸더니 그 원형질이 점점 형태를 갖추다가, 1분가량 지났을 때는 형태가 완전한 환족이 나타났다. 사라졌던 발가락이 내가 하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종의 시각적 유령이었다. 이 발은 표면의 세부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진짜 발로 보이지 않았고, 발의 견고한 느낌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손목 위쪽을 ‘절단’하는 암점 놀이를 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의 손으로도 같은 실험을 해보았지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내 발이나 내 손, 내 몸의 움직임과 감각, 내 몸의 이미지나 나의 직접적인 의도가 필요조건임이 분명했다.
   6월에 레이저 치료를 받은 뒤, 두 눈을 감은 채로도 팔이나 다른 신체 부위가 움직이는 모습을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움직이는 팔을 ‘보는 것’은 시각피질과 운동피질의 연결성이나 높아진 감각성을 입증하는 실험처럼 느껴졌다. 이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피질들 간의 상호 관계나 밀도 높은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2007년 6월에 레이저 치료를 받은 뒤로 하루 이틀 사이에 또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침실의 책꽂이를 몇 분 응시한 뒤 두 눈을 감았는데, 10초에서 15초 정도 책꽂이에 있던 수백 권의 책이 집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암점이 채워지던 기존의 경험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18개월 전 병원에서 겪었던 것으로, 세면대가 안대를 ‘뚫고’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던 상 존속 현상과 유사하다.
   아마도 오른쪽 눈의 중심시를 상실하는 것이나 수술 후 안대를 착용하여 시야를 가리는 것은 뇌로 가는 시지각 정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작용인 듯하다. 이제 시각피질이 순수하게 시각적 제약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강화된, 혹은 민감해진 상태라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자전거와 자동차, 버스, 인파가 사방팔방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복잡한 교차로를 걷는데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눈을 떴을 때 보았던 그 복잡한 광경 그대로 색깔과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보이는’것이었다.
   이 현상이 특히나 놀라웠던 것은 원래 나의 시지각 능력이 아주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얼굴이나 거실의 풍경, 아니 어떤 것이 되었긴 머릿속에 그리는 일이 힘겨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날 경험한 상의 존속은 풍부하고 무분별할 정도로 상세해서 어떤 자발적인 이미지보다도 강렬했다. 어느 정도로 상세했는가 하면, 자동차의 색상은 물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은 차량 등록 번호판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이날의 불수의적이고 비선택적으로 막을 길 없이 지속된 상은 직관적 혹은 사진적 심상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직관적 심상과는 달리 아주 또렷하지만 지속 시간이 짧아서 10초에서 15초가 지나면 서서히 사라졌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걷다가 하얀 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는데, 두 남자의 셔츠가 늦은 오후 햇빛에 눈부시게 밝았다.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떴더니 하얀 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간 데 없이 사라져서 깜짝 놀랐다. 물론 그들은 가던 길로 그대로 간 것이었지만, 내가 눈을 감은 채로 ‘본’곳, 즉 정지된 과거의 단편에 몰입하고 있었던 터라 갑작스러운 단절에 충격을 느낀 것이었다. 내가 ‘정지’라는 말을 쓴 것은 내가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남자는 성큼성큼 걷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눈에서는 걸으면서도 전진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러닝머신 위를 걷는 듯한 형상이었다. 이 움직임의 순간이 하나의 필름 릴처럼 포착되어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마음의 눈에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실제의 이동 없이 움직임을 보여주는 스냅사진의 역설 말이다.
   이러한 상 존속 현상은 꽤나 재미있어서, 색색의 조명과 번쩍번쩍 움직이는 광고판이 다채로운 타임스퀘어는 이 현상을 테스트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가장 강력한 시지각 자극제는 연속적인 이미지들이 활발하게 시야를 지나치는 광학적 흐름으로, 빠르게 달리는 차에 타고 있을 때 특히 더 재미있다.
   나는 암점의 채움 현상과 상 존속 현상 사이에 유사성, 어쩌면 어떤 친족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두 현상 모두 앞서서 암시되는 현상이 있으며, 중심시 상실 후에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2007년 여름에 두 달에서 석 달 동안 강력하게 유지되다가 서서히 약해졌다(약해진 형태로나마 현재까지 계속 나타나기는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재구성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때로는 일종의 걷잡을 수 없는 상의 확산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과정에 설명하기에는 ‘채움’이라는 용어가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이 현상도 6월 레이저 치료를 받기 전에 반실명 상태로 지낸 몇 주 동안, 사람 얼굴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처럼 돌출되고 확산되어 보일 때 이미 조짐이 있었다.)
   하루는 이 상의 확산 현상을 실험하기 위해 오른쪽 눈으로 아주 무성하고 환한 녹색 군엽을 응시했다. 금세 채움 현상이 발생하여 사라졌던 부위가 녹색이 되고 그 군엽에 필적하는 질감을 띠었다. 그리고‘부풀림’현상이 발생했는데, 군엽이 특히 왼쪽으로 확장되면서 엄청나게 경사진‘잎’더미가 되었다. 왼쪽 눈을 뜨고 나무의 실제 모양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상이 얼마나 기이하게 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맥도널드 크리츨 리가 반복시paliopsia와 환시적 상 확신이라고 명한 ‘시각적 보속증visual perseveration'의 유형을 기술한 옛 논문을 살펴보았다. 크리츨리는 이 두형상이, 하나는 시각적 보속증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 보속증으로, 유사성을 띤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이면 ‘병적’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모든 감각 기능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확장되고 번져나간다면 정상적인 시지각 기능을 사용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개별 감각기관의 능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억제 혹은 저해가 작동하는 명확한 경계선이 필요한 것이다.
   크리츨리의 환자들은 뇌종양이나 여타의 대뇌 장애가 있었지만, 나는 망막만 손상되었따. 그런데도 대뇌 관련 증상을 겪고 있다. 이는 망막 손상이 시각피질에 비정상적인 흥분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오래전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에서 기술했는데) 한쪽 다리의 신경과 근육에 부상을 당했는데 두정엽 장애가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이상한 대뇌 증상을 겪었다.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A. R. 루리야에게 편지로 이 증상에 대해 알렸을 때, 그는 “말초 질환의 중추적 반향”을 언급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은 ‘시각 영역’의 중추적 반향이다.

   2007년 6월에는 (외부 세계와는 아무 관련 없는 환영들이 불쑥 침몰하는) 급격한 환각 증상도 겪었는데, 이 증상은 어느 정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신경학에서는 단순 혹은 기본 환시와, 그와 반대되는 복잡 환시를 구분한다. 단순 환시는 색, 꼴, 무늬로 이루어지며, 복잡한 환시에는 인물, 동물, 얼굴, 풍경 등의 요소가 등장한다. 내가 경험하는 환영은 대부분 단순 환시다.
   다른 전조 현상 없이 바로 불꽃, 줄무늬, 빛 반점 같은 것이 시야에 나타나고, 악어 가죽 비슷한 복잡한 무늬도 등장한다. 가끔은 아무것도 없는 벽에 무늬나 결이 보이는 것 같아서 손으로 직접 만져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인지 확인해야 할 때도 있다.
   덤블 같은 작은 뭉치가 시야를 뒤덮는 경우도 적지 않는데, 두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이런 환영이 나타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체커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대개는 흑백이지만 가끔은 희미하게 컬러로 나타난다. 체커판의 크기는 내가 그 판을 어디에‘투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15센티미터 거리의 종이를 보고 있었다면 체커판은 우표만 해지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면 30제곱센티미터 크기가 된다. 길 건너 하얀 담장을 보았다면 체커판은 상점 진열장만 해진다. 직선 체커판, 곡선 체커판이 나타나는가 하면, 쌍곡선에 가까운 형태일 때도 있다. 체커판 하나가 분열을 일으키거나 증식해서 작은 체커판 열 몇 개가 종렬이나 횡렬로 늘어서는 경우도 있다. 복잡한 쪽매붙임 혹은 모자이크 환영도 흔히 나타나는데, 기본적인 체커판 형상이 변형되거나 정교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환영은 이 형상에서 저 형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만화경 같은 변화를 보인다.
   다각형(주로 6각형) 조각으로 이루어진 타일이나 바둑판 형상도 보이는데, 평면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벌집이나 방산층 같은 3차원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따금‘지도’도 보인다. 야간에 저공으로 비행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듯, 환형 도로와 방사형 바큇살이 불 밝힌 거대한 거미줄 같은 미지의 대도시 지도가. . . .
   이렇게 나타나는 많은 무늬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상세하다. 이 야간 도시들은 무수한 조명으로 환하다. 이러한 이미지 혹은 환영들은 지각되는 대상보다 훨씬 명징하며, 미립자로 존재한다. 나의 마음의 눈의 시력은 1.0이 아니라 5.0쯤 되는가 보다.
   가장 꾸준히 나타나는 무늬는 막대 같은 무늬이며, 이따금씩 문자나 숫자 비슷한 곡선 무늬도 꽤 꾸준히 나타난다. 가끔은 7이나 Y나 T나 델타처럼 알아볼 수 있는 문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알 수 없는 것이 룬문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난해한 패턴을 볼 때면 알파벳 상자가 떠오른다. 내 앞에 나타나는 문자들은 상당히 희미하고 두 줄을 이룰 때가 적지 않아서 돌 위에 새긴 문자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사이비 문자, 사이비 숫자는 시야 안에서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깜빡거리며 정렬되고 해체되었다가 재정렬되곤 한다. 내가 벽의 가로 부분을 보고 있을 때면 룬문자들이 장식 띠처럼 한 줄로 늘어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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