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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식물곡류, 두류

메밀 :  평양 냉면, 막국수, 아니면 메밀국수

여름엔 역시 메밀, 까칠한데 부드러운 마성의 면발

한국일보 : 2017.08.11 04:40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맛 좋은 메밀의 조건
밀가루로 만든 면은 맛있다. 튼튼한 근육질 식감에, 밀가루의 단맛도 은근해서 좋다. 그 맛있는 밀가루 면을 두고 메밀을 먹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향이다. 고소하고, 살짝 쌉쌀한 여운도 남기는 잔망스러운 그 곡물이라니! 밀가루는 소금만 넣어도 탄력을 갖기 쉽지만 메밀은 워낙 탄력과 거리가 먼 조성이다. 반죽이 쉽지 않다. 기술과 노하우를 녹여 면을 만들어 둬도, 그래 봐야 툭툭 끊기고 질감도 거친 면이다. 그게 좋다. 매끈하게 훌훌 넘어가는 밀가루 면이 주지 않는, 까칠한데 부드러운 그 질감은 메밀만의 것이다.
메밀은 짙은 적갈색 겉껍질 속으로 초여름 메뚜기 같은 연둣빛을 띄고 있다. 이 신선한 색은 산소와 만나 우중충한 적갈색으로 금세 바뀐다. 슬쩍 연둣빛 띤 회색이 좋은 메밀의 지표다. 과하게 드러내놓고 연두색을 띄는 것이 아닌, 마치 광택 같은 오묘한 색이다. 이 색의 메밀이 가진 향도, 질감도 최상이다.
좋은 메밀로 잘 만든 면은 일단 육안으로 알 수 있다. 속살의 색과 같은 연둣빛 띤 회색이 나야 한다. 메밀면은 새카맣지 않다. 겉보리나 메밀 껍질을 섞어 탄 맛을 내고 전분을 잔뜩 넣어 쫀쫀하게 뽑아 낸, 한 때 유행을 타고 하향 평준화된 대량 생산 메밀면은 이제 분식집에서나 볼 수 있다. 메밀면은 기본적으로 회색에 가깝다. 밝은 것도 있고, 좀더 어두운 것도 있다. 겉껍질을 섞어 드문드문 까만 점이 박힌 것도 있는데 메밀이 가진 이로운 성분은 껍질에 더 많다.

메밀의 진짜 제철은?
좋은 메밀엔 아스라한 연둣빛이 살짝 돈다. 그런데 메밀 국수의 제철은 언제일까? 상식적으로 여름은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한 계절이 지금 이 여름이다. 소설가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하기로 이때에 콩잎이 포기로 자랐고 옥수수는 잎새가 푸르르다. 메밀은 씨앗이라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고, 그래야 씨앗도 턴다. 메밀의 시간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한다. 우리 입맛의 메밀 제철은 여름이지만, 메밀의 제철은 가을로 가는 것이 맞다. 메밀 수확기가 가을이라, 보통은 수확 직후 메밀이 제철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용적 측면에서 메밀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다. 메밀은 사실 아무 때나 심으면 추수할 수 있는 작물이다. 알다시피 춥고 메마른 지역에서 요긴한 식량이 됐던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2개월이면 다 자라 거둘 수 있다. 즉, 가을이 수확기라는 법도 없다. 국내산 중에서도 여름에 수확하는 것도 있다. 제주에서도 여름 메밀이 난다. 식당이 쓰기 곤란할 정도로 적은 것이 문제일 뿐이다. 강원 봉평군이 메밀 주산지로 꼽히는데 전국의 메밀을 모아 들이고, 수입 메밀을 가공하는 의미가 더 짙다. 좋은 메밀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닌 서울 서초구의 일본식 메밀국수 전문점 스바루의 강영철 대표도 “강원보다 제주 한라산 구릉에 보이는 메밀 밭이 더 많다”고 했다.

좀처럼 반죽이 되려 하지 않는 메밀을 면으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반죽을 면으로 뽑아내자마자 끓는 물에 입수시키고 찬 물에 재빨리 헹구는 것도 금방 풀어지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산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며 “평양냉면 한 그릇이 1만원 넘는 세상에 중국산 메밀을 쓴다”고 펄쩍 뛰는 ‘면스플레인’(면+Explainㆍ냉면을 자꾸 가르치려 하는 태도) 부류도 있는데, 그게 정작 잘 몰라서 시끄럽게 하는 소리다. 국산이 다 좋으리라는 법이 이제는 없다. 일단, 우리가 먹는 메밀의 양도 너무 많아 수입산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지난해 여름 취재를 위해 찾은 신흥 평양냉면 전문점들 중에서 국내산 메밀을 쓰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다섯 곳 중 네 곳이 중국산, 한 곳이 미국산을 쓰고 있었다. 메밀을 다루는 이름난 집 중에 중국산과 수입산 메밀을 사용하는 곳들이 더 많다. 미간 찌푸리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입산이 나쁘다는 오해는 참 낡았다. 메밀은 원산지가 중국의 내몽골 어귀다. 중국에서부터 세계로 뻗어 나온 작물이다. 잘 키워 잘 수확해 잘 수입해오고 잘 보관하면, 국산 메밀 중 저급한 것보다 훨씬 낫게 쓴다. 100% 메밀 면을 뽑는 것으로 이름난 막국수 전문점 고기리 장원막국수 유창수 대표도 “어설픈 국내산보다는 수입산 중 좋은 것이 낫다”고 본다. 이 집도 시기마다 들어오는 메밀을 봐서 중국산 또는 미국산 중 좋은 것을 골라 받는다. 둘을 섞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어서, 절묘한 비율로 배합해 쓰기도 한다. 단가도 문제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국내산 메밀 단가는 두 배 가격까지도 나간다. 막국수 한 그릇에 7,000원에 팔자면 품질 좋은 수입산이 합당한 선택이다.
메밀의 제철을 따지려거든 수입산 햇메밀이 식당에 당도하는 시기가 언제인가도 봐야 한다. 늦다. 최대한 빨라도 1월 말이다. 스바루의 강 대표는 몇 해째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에 매주 나가 메밀을 사들이는데, “중국산 햇메밀은 1월 말부터 나오기 시작해 2,3월에 많다”며 “잘 보관하면 1년 내내 햇메밀 상태 그대로 싱싱하게 유지하는 비법을 아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강 대표는 가게를 넓혀 저온 보관 창고를 두는 것이 느릿느릿한 목표다.
아무튼 대부분 메밀로 만든 국수를 다루는 식당이 사용하는 수입산 메밀이 통관돼 시장에 나오는 시기를 가늠하자면, 메밀국수 제철은 단연 엄동설한이 한 풀 꺾인 늦겨울부터다. 가을 메밀 수확기부터 면스플레인 단골 레퍼토리로 ‘평양냉면 제철’이라는 한겨울까지는 정작 가장 오래 묵은 메밀을 먹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식 메밀면, 가장 맛 좋은 메밀 면의 비법
메밀로 만드는 면은 크게 세 갈래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그리고 일본의 메밀국수인 ‘소바’. 이 중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요즘 면이 통합되는 추세다. 원래 평양냉면 국수는 메밀가루에 전분을 더해 탄성을 보태 만드는데 메밀가루로만 만드는 ‘순면’이 고급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았다. 막국수도 원래는 밀가루를 혼합하지만 요즘 잘한다는 집은 메밀 100%를 내세우고 있다. 세계인이 면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공통적으로 압출면이다. 일정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길다란 통에 반죽을 넣고 위에서 누르는 힘으로 반죽이 면 모양으로 빠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재료로 똑같이 메밀가루 100%를 추구하니 막국수인지 평양냉면인지 아리송한 면들이 교집합을 이룬다. 어차피 평양냉면이나 막국수나 그 지역 흔한 곡물로 면을 만들고, 그 지역 흔한 재료로 육수를 내 차게 식혀 말아먹는 것이다. 이름이 다를 뿐 어쩌면 다르게 부를 필요도 없는 지역 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여 평양냉면과 막국수의 100% 메밀면은 하나로 설명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사례만을 든다.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물 막국수.
고기리 장원 막국수에서는 겉껍질을 깐 ‘메밀쌀’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두고 쓴다. 주방에 제분기를 두고 하루에 8~10번 사이로 제분을 해 가루를 내는데 한 번에 10㎏씩만 제분해 바로 반죽을 만들어 1시간 이내에 면을 뽑는다. 이 모든 노고는 모두 메밀의 향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반죽할 때도 오직 찬물만 섞어 메밀의 온전한 향을 살린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 반죽하면 향이 일정 부분 날아간다. 애지중지 향을 아낀 메밀 면은 바다 같은 끓는 물에서 1~2분 사이로 그때그때 메밀의 상태에 맞춰 삶는다.

소바와 한국 메밀면의 가장 큰 차이는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다. 소바는 반죽을 얇게 펴서 칼로 자르는 도삭면이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면은 분창의 모양대로 둥글지만, 소바는 네 면으로 각이 진 이유다. 소바 면은 반죽이 쉽게 되지 않는 메밀을 효과적으로 반죽하기 위해 익반죽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바로 역사를 쓰고 있는 두 곳, 스바루와 미나미에서는 찬물로 반죽한다. 미나미 남창수 대표는 “쉽지 않지만 기술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미나미의 자루소바와 스다치 소바.
“일본에는 맛있는 소바를 만드는 3원칙이 있는데, ‘금방 제분한 가루로, 금방 반죽해 자른 것을, 금방 삶아낸다’라는 것이다.” 두 집 다 여건이 되는 만큼 최대한 지킨다. 일단 소바의 황금 비율은 오랜 시간 일본에서 판가름이 났는데 메밀이 8이요, 밀가루가 2인 ‘니하치(二八)’를 이상으로 친다. 두 식당 다 8대2로 가루를 섞어 찬물에 반죽한다. 식당마다 기술과 노하우는 다르다. 스바루에서는 껍질이 있는 메밀을 그대로 산다. 국내산 메밀도 쓰고, 수입산 메밀도 쓴다. 매주 양곡도매시장에 직접 나가서 그날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온다. 일본에서 가져온 맷돌로 제분하는 점이 특징이다. 1주일에 서너 번 맷돌을 돌린다. 면은 아침과 오후에 만들어 두고 18초~20초 삶는다. 미나미에서는 봉평산 메밀을 쓰는데 이틀에 한 번씩 제분한 가루를 받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반죽하고 면을 자르는 것이 유별난 점이다. 딱 15~20초 사이로 삶으면 다 익는다.

평양냉면이고, 막국수고, 소바고 간에 메밀로 면을 만드는 것은 원래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메밀이란 놈은 도통 결합하려 하지 않는 배타적인 조직이다. 100% 메밀면을 만드는 것은 신기에 가깝다. 잘하는 메밀 국수집들의 비법을 보니 이들은 기술자를 넘어 장인에 가깝다.

눈 앞에 펼쳐지는 라이브 소바 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의 소바는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와 함께 특급호텔 소바의 양대 산맥이다. 스시조는 봉평산 메밀로 만든 니하치 소바다. 한석원 주방장은 “소바는 메밀의 고소한 향으로 먹는 면”이라고 정의한다. 즉석에서 만들어 바로 먹으면 그 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스시조에서는 주말마다 ‘라이브 수타 소바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소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로 8월27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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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 종실과 식물체의 영양성분
기자명 식품저널   입력 2019.03.14 09:05  댓글 0

김수정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

메밀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으며,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물이다. 메밀은 마디풀과(Polygonaceae) 메밀속(Fagopyrum) 식물로, 재배종으로는 일반메밀(F. esculentum, sweet buckwheat, common buckwheat)과 쓴메밀(F. tataricum, bitter buckwheat, tartary buckwheat)이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돼 지금까지 재배되고 있는 종은 일반메밀로, 보통메밀 또는 단메밀로 불리며, 쓴메밀은 타타리메밀, 흑메밀 또는 달단종이라고 한다. 쓴메밀은 주요 기능성분인 루틴 함량이 일반메밀보다 70~100배 이상 많아 차, 국수, 가루 등 다양한 식품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메밀은 곡물에 속하지 않지만, 종실 용도가 곡물과 비슷해 흔히 곡물로 분류된다. 곡물은 주로 음식과 사료로 사용되고, 곡물가루는 부침개, 전병, 국수 등 요리 재료에 이용된다. 메밀나물은 소화가 잘 되고 영양소가 풍부해 옛날부터 밭에 메밀을 파종한 후 어린 싹을 새싹채소로 사용해 왔다. 이는 나물반찬, 비빔밥, 샐러드, 주스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으나, 영양학적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재배종으로서 메밀은 크게 일반메밀과 쓴메밀로 나뉘지만, 보통 메밀이라고 말할 때는 일반메밀을 의미한다. 쓴메밀은 독특한 쓴맛을 가지고 있어 쓴메밀로 불리며, 루틴이 1% 이상 다량 함유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루틴은 모세혈관 강화, 뇌일혈 등 출혈성 병 예방효과와 혈압, 콜레스테롤 및 혈당 강하 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일반메밀의 단백질 함량은 종실 12.9%, 식물체 14.8%이며, 쓴메밀의 단백질 함량은 종실 10.9%, 식물체 17.7%이다. 메밀은 특히 단백질의 아미노산 중 아르기닌(arginine)과 라이신(lysine) 함량이 풍부하다. 라이신 함량이 높기 때문에 밀, 보리, 호밀, 옥수수와 같은 곡물 단백질보다 높은 생물가(biological value)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메밀 단백질의 소화율은 다소 낮은데, 이는 메밀의 높은 섬유질 함량(26.5~39.4%) 때문이며, 특히 쓴메밀 종실은 일반메밀 종실보다 1.4배나 높아 쓴메밀로 다이어트나 건강식품을 만들 경우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분은 메밀 종실의 주요 성분이다. 일반메밀의 종실에서 전분 함량은 건물 기준 66.4~79.0%까지 다양하며, 식물체보다 종실이 비교적 높다. 메밀은 감자나 쌀 등 다른 작물의 전분질과 비교해 소화가 서서히 진행되므로 당뇨병, 고지혈증 등 예방 효과가 있다.
메밀에는 칼륨, 칼슘, 비타민과 같은 무기질도 풍부하며, 헤모글로빈의 주성분인 철분, 골다공증과 혈압 조절에 필요한 칼슘이 87.5~684.2㎎/100g 함유돼 있다. 메밀에 많이 포함돼 있는 칼륨은 다른 주요 곡류에 비해 많은 편으로,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기대된다. 비타민 A, B1, B2, 니아신, C 등도 풍부하며 비타민 B1과 B2는 쌀에 비해 3배 정도 더 많은 양이 메밀 종실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폴리페놀도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혈관 질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플라보놀 디글루코시드(flavonol diglucoside)인 루틴(quercetin-3-rutinoside)과 퀘세틴(quercitin, quercetin 3-rhamnoside), 하이퍼린(hyperin, quercetin 3-galactoside)이 있다. 폴리페놀은 생체에서 과잉된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메밀과 쓴메밀의 영양성분 분석 결과, 다양한 영양성분과 항산화 활성을 지닌 폴리페놀, 식이섬유 및 비타민 등 기능성 물질이 다량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밀은 종실뿐만 아니라 식물체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현대인의 입맛과 기호에 맞고 상품성을 갖춘 영양식품의 소재로 이용될 수 있다. 메밀싹을 비빔밥이나 국수에 넣어 먹을 수 있으며, 재배 과정에서 이용하지 않았던 새싹을 활용함으로써 농가소득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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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 페이스북 2021.10.10

한국경제 신문 7000자 전면 칼럼 <문정훈의 푸드로드> 이번 주제는 메밀로 잡아봤습니다. 두어시간 후에 내릴 생각인데, 혹 잘못된 내용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좋은 말씀, 비판의 말씀, 언제나 너무 감사드려요. 언제나 힘이 됩니다. 함께 노력해 준 친구 진중현 교수와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려주신 김태현 한식백제(봉피양) 부회장님께 경의를 표하며. 이제 이 위기의 시기를 벗어나면, 다시 한번 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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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어 보자>
“예전엔 순면을 뽑아내고, 감칠맛 나는 육수를 뽑아내는 것이 굉장한 노하우였지만, 이젠 그 노하우들이 다 알려지고, 또 업체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다 비슷해 졌어요. 마음먹고 따라하려면 거의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게 평양냉면이 되어 버렸습니다.” 함께 냉면을 먹던 ‘봉피양’의 CEO가 고민을 토로했다. “저희가 만들어 냈던 차별화의 요인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어요. 뭘 해도 금방 카피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평양냉면의 기본적인 속성을 파괴하면서 차별화하는 것은 기존 고객에 대한 배신이라 더 고민입니다.” 나는 돕고 싶었다.
-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평양냉면
냉면은 매우 한국적인 음식이다. 우리가 즐기는 평양냉면은 이미 서울식 평양냉면으로 변형되었지만 그 본질적 특유함, ‘차가운 국물에 차가운 면’은 그대로다. 전 세계적으로 차가운 면을 먹는 식문화는 꽤 있고, 차가운 국물을 즐기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차가운 면을 차가운 국물과 함께 들이키는 문화는 한국식 냉면이 유일하다. 일본의 츠메타이 소바(冷たい蕎麦: 냉소바)가 그나마 비슷한 형태지만, 작은 그릇에 담겨 있는 차가운 액체는 소스이지 마시는 국물이 아니다. 츠메타이 소바는 면을 소스에 적셔서 간을 입혀 입으로 가져간다. 일본의 소바집에서 츠메타이 소바 그릇에 담겨 있는 액체를 들이키며 ‘국물이 왜 이리 짜?’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이 분명하다.
평양냉면의 국물의 원형은 차가운 동치미다. 이 동치미에 꿩, 닭, 소, 돼지 등의 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낸 육수를 적절히 섞어 맛을 만든다. 그러나 서울식 평양냉면의 최신 트렌드는, 동치미의 새콤한 맛은 사라지는 방향이고, 맑고 진한 고기 국물이 강조된다. 옛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서 따뜻한 소고기 요리인 어복쟁반을 먹다 남은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서울식 불고기에 면을 넣는 유행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메밀면을 말아 먹던 어복쟁반의 육수가 식으면 지금의 서울식 평양냉면의 국물과 비슷하다. 이 차가운 고기 국물에 툭툭 끊어지는 식감의 메밀면을 말아야 팬시(fancy)하고 힙(hip)한 서울라이트(Seoulite)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평냉’이 된다.
차별화된 평양냉면이란 무엇일까? 레시피를 바꾸어도 조리 기술이 발전한 지금 금방 비슷하게 따라온다. 그래서 육수 뽑는 기술이나 제면법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무엇을 차별화해야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 수 있을까? 사흘 밤낮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봉피양 CEO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메밀을 새로 육종해보실까요?” “네?” “진짜 끝내주는 메밀향을 가진 메밀 품종을 개발해서 그걸로 면을 만드는 겁니다. 레시피는 금방 비슷하게 카피하지만, 품종은 법으로 명백하게 보호되기 때문에 경쟁자들이 함부로 카피할 수 없어요. 누군가 비슷한 품종을 다시 개발한다고 해도 최소 7, 8년은 걸릴 겁니다. 그 때쯤 우리가 개발한 품종을 팔아도 되구요.” 정적이 흘렀다. 혹 이 무슨 해괴한 이야길 하느냐며 욕먹지는 않을까 심장이 두근거리는 찰나, 전화기 건너 편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이거 기가 막힌 아이디어인데요?”
- 메밀향이란 무엇인가?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의 모든 역량이 메밀향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곡물 육종 전문가인 세종대 진중현 교수도 이 산학협력 연구에 함께 뛰어들었다. “여러분, 메밀향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는 “아니, 그 메밀의 쌉사름한 향을 모르세요?” 다른 하나는 당황함의 침묵이다. 메밀면의 식감은 아는데, 그 면에서 나는 향은 명확히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메밀향이란 무엇인가?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아서 1년에 두 번 수확 가능한데, 메밀꽃이 폈다 진 자리에서 메밀 알이 굵어지면 수확한다. 메밀은 형태와 맛에 따라 크게 ‘쓴메밀’과 ‘단메밀’로 나누는데, 제면에 쓰이는 메밀은 기본적으로 단메밀이다. 쓴메밀은 알이 작고 겉껍질이 단단하게 붙어 있어 도정(搗精)이 불가능하여 주로 볶아서 메밀차로 쓴다. 제면에 쓰는 단메밀은 독특하게 생겼는데, 낱알의 모양이 동그랗지 않고 삼각뿔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삼각뿔 모양의 메밀은 짙은 색의 겉껍질로 둘러 쌓여 있고, 도정 과정을 통해 제거한다. 메밀면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면 거뭇한 티끌 같은 것이 보이는데, 도정 과정에서 혼입된 메밀 껍질이다. 그런데 면에 따라 이 껍질이 많이 보이거나, 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는 각 업체의 제면 의도가 담기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이 껍질이 많이 들어가 색이 어두운 면에서 메밀향이 더 진하다는 시각적 자극을 받는다. 실제 메밀의 겉껍질에는 루틴(rutin)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매우 높은데, 이 물질은 쓴맛을 느끼게 한다. 루틴의 쓴맛이 궁금하다면 사과 껍질, 은행, 아스파라거스에서 느꼈던 쓴 맛을 떠올려 보자. 이 쓴맛이 주로 루틴에서 오는 쓴맛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메밀향에서는 쓴 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맛과 향은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메밀의 딱딱한 겉껍질을 벗겨내면 속에 얇은 피막처럼 보이는 내피가 있고, 내피가 붙어 있는 초록 빛깔의 호분층(糊粉層)이 보인다. 색이 초록색이라 ‘녹분’, ‘녹살’이라고고 불린다. 그리고 이 호분층 안쪽 중심부에는 하얀색의 배유부(胚乳部)가 있고 그 속에 배아(胚芽)가 함께 분포하고 있다. 구성비로 보자면, 바깥 껍질이 전체 중량의 20% 정도고, 내피와 호분층이 12%, 중심의 배아가 포함된 배유부가 68%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배유부에는 주로 전분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향이 별로 없다. 면을 만들면 면의 몸체와 식감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메밀의 향은 내피와 호분층에 집중되어 있다. 이 층에 어떤 향미 물질이 들어가 있는지를 보면 메밀 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메밀의 호분층에는 다양한 향미 물질이 들어가 있는데, 주로 노나놀(nonanol) 계통의 향미 성분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이어서 옥타놀(octanol), 헥사놀(hexanol) 계통의 향미 성분이 감지된다. 인간은 노나놀과 옥타놀 계통에서 주로 오이, 꽃, 과일, 감귤 등에서 나는 싱그러운 향을 주로 느끼고, 헥사놀에서는 주로 풀향, 풋과일의 풋내 등을 느낀다. 메밀의 향은 이런 복잡한 향의 복합체다. 이것이 메밀 향의 정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메밀면에서 미묘한 과실향을 느낀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때론 비린취가 난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성분들은 휘발성인데다가 열에 매우 취약하다. 메밀을 실온에서 오래 두면, 특히 도정한 메밀에서는 더 급격히 그 향이 사라진다. 도정 및 제분 과정에서도 쌀가루를 내듯 작업을 하면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열로 인해 메밀향이 빠르게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열풍 건조시킨 후 매대 위에서 오래 보관한 메밀 건면을 활용한 음식으로 메밀의 향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메밀 도정 후 최대한 빨리 제분, 반죽, 즉시 적당한 온도의 물에서 짧게 익혀내는 평양냉면식 제면법에서 메밀 본연의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물론 철저한 온도와 시간 관리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메밀, 정말 까다로운 친구다.
자, 그럼 면을 입안에 넣었을 때 메밀향이 폭포수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기 위한 메밀 육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나는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연구 중인 진 교수에게 “진 교수, 호분층이 지금보다 훨씬 두꺼운 메밀을 육종해줘.”라고 무덤덤하게 이야기 했고, 학창시절 룸메이트였던 진 교수는 “야! 육종이 메뉴 주문처럼 그렇게 단순한 건 줄 알아? 굉장히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걸리는 정교한 작업이라고!”라며, 이에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작물의 ‘재배적성(栽培適性)’에 대해서 설명할 땐 아찔함까지 느꼈다.
재배적성은 바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인데, 똑같은 품종의 작물이더라도 재배 토양과 환경이 달라지면 그 결과물이 전혀 다른 표현형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새로 육종할 메밀 품종을 어떤 토양과 환경에서 재배할 것인지를 사전에 고려하여 전국의 여러 후보 재배지에서 시험 재배하며 품종과 토양 및 환경의 궁합까지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 봉피양의 CEO는 기업의 미래를 걸고 연구개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외식업체로서 매년 억대의 비용을 장기간 투입하는 것은 보통 결단이 아니다. 우리 연구진은 이어서 우리는 전국의 매밀 재배 및 사용 현황,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양냉면 식당의 면의 맛, 향, 식감 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또 진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현재 존재하는 메밀 품종을 전부 수집해서 분석에 들어가기로 했다.
- 얼마만큼 먹어봤니, 평양냉면?
며칠 간 우리나라 평양냉면 리더 업체들의 냉면부터 다양한 국가와 재배환경에서 재배한 메밀로 제면한 평양냉면까지, 대략 40여 그릇 정도가 넘어갈 때였다. 우리는 속으로 우리 랩의 구호 ‘누가 좋아서 먹나? 일이니까 먹지!’를 끊임 없이 외치며 사명감을 가지고 시식을 했다. 그리고 몇가지 흥미로운 패턴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평양냉면의 메밀면은 크게 네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번째 그룹은 면이 굵고 높은 탄력성이 특징인 집단이었고, 여기에는 예컨대 서북면옥, 을밀대, 평택고여사집냉면 등의 냉면이 포함된다. 두번째 그룹은 면의 경도가 높고 표면이 거친 것이 특징인 집단이다. 면의 표면이 거칠면 국물이 면발에 잘 배어들어 면에서 감칠맛과 염도가 잘 느껴진다. 우래옥, 정인면옥, 판동면옥의 면이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 세번째 그룹은 면의 색이 짙고 루틴의 쓴맛이 진하고 뚝뚝 끊어지는 식감을 지닌 집단이다. 서관면옥, 평양옥, 봉피양, 정인면옥 등의 면이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마지막 네번째 그룹은 면발이 가늘고 하늘거리며 탄성도가 비교적 높은 특성을 지닌 면으로, 장충동 평양면옥, 도곡동 평양면옥, 필동면옥 등이 그러했다. 물론 이 네 그룹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특성의 면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각 업체가 제면에 사용하는 메밀을 국내산, 미국산, 중국산 중 어느 것을 사용하는지, 면에 사용하는 메밀의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어떻게 되고, 또 네 그룹 별로 재무적 성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지 등 다양한 측면의 검토를 거쳤고, 그 분석 결과를 육종의 방향, 제면의 방향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또한 중국과 미국의 메밀 품종의 특성, 또 이 품종들을 각 다른 재배지에 재배했을 때 다르게 발현되는 면발의 특성까지 분석했다. 그 결과 역시 미래의 초격차 냉면을 위한 육종 방향에 반영하였다. 메밀 전분 내 아밀로스 함량 조정, 제분 수율을 올리기 위한 종실 크기 조정 등 다양한 요인들이 고려되었다.
이리하여 메밀 신품종 육종을 통해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기 위한 기본 전략이 세워졌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육종 연구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업 타당성을 조사해보니, 향후 투입될 연구개발 비용대비 국내 메밀면 제면 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국내에서 단메밀이 제면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는 메밀전을 부치는 메밀가루 시장 말고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품종 메밀로 평양냉면 말고 어떤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까? 그래서 국내에서 새롭게 열수 있는 시장에 대한 논의와 시장 조사를 추가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메밀의 펫푸드로서의 가능성까지 조사를 했는데, 메밀의 특성상 돼지에게 먹이면 오히려 체중 증가가 정체되는 현상이 관찰되어 사료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해외 보고서를 발견한 직후였다. 흥미롭다. 경제성 동물은 살을 빨리 찌우는 것이 중요한데, 비만에 시달리는 반려동물에겐 메밀 사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개와 고양이들은 메밀의 맛과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메밀로 펫푸드를 만들려면 개와 고양이가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가공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갈길 또한 멀다. 다른 기회를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메밀 품종으로 해외 시장 공략 가능성을 조사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전혀 알지못했던 메밀 수요가 해외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 내렸을 때쯤, 코로나가 국내에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외식업체들이 위기에 처했다. 수 십개의 지점을 가진 봉피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직원은 내보지 않아야겠다는 CEO의 결정을 우리는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와있다. 잠깐 정지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혁신은 진행 중이다. 냉면의 맛은 장인의 손맛이 아니라 과학 기반 하이테크의 맛이고 연구개발 투자의 맛이다. 비단 냉면뿐이겠는가. 두부도, 떡볶이도, 막걸리와 순대도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연구로만 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21-10-10 / 등록 2017-08-12 / 조회 : 1239 (117)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