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 영양 ≫ 에너지대사 ≫ 효능의 과장

미식 평론가의 역할   

미식 평론, 평론가
- 그루망디즈, 맛 컬럼리스트
- 미식 평론가의 역할
- 샤바랭 : You are what you eat 의미변질
- 미식의 단계, 맛집 = 맛쇼
- 한국 차문화가 중국에 밀리는 이유
- 신경미식학,  분자 미식학

맛 전성시대, 필요한 미식의 가치

출처 : 맛이야기, 최낙언  

미식과 미식가의 의미에 관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와인에 대해 가장 과학적이고 풍부한 경륜을 지니신 김준철 원장님의 글입니다.

와인 테이스팅은 미술관을 배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방 저 방 구경하다가 선호 여부를 떠나서 첫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결정하면 여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집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이 작품의 배경은? 어떻게 그렸는지?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좋아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나면, 이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와인메이커, 포도, 재배 지역, 블렌딩 비율, 그리고 환경까지. 좋은 와인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맛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테이스팅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즐거움을 주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와인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만남을 주선하는 사람으로서 미식가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_김준철 저술가, 김준철 와인스쿨원장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은 타는 듯한 갈증이 날 때 마시는 물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그 물을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무미무취의 동일한 물이라도 상황에 따라 우리의 쾌감은 완벽히 달라집니다. 맛에 절대적 기준이나 객관성을 찾는 것은 과한 욕심이고 상황에 따른 기준은 도전해볼만한 것이겠지요. 사실 요즘 음식은 굳이 맛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두 맛있습니다. 믿기지 않으면 3일 정도만 굶은 후에 먹어보면 됩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의 흔한 삶의 모습이고, 맛의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음식은 이미 충분히 맛있는데, 우리는 더 큰 자극을 쫓아 날마다 새로운 맛의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맛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해왔습니다. 가끔 미식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사실인 듯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맛은 절대성의 세계가 아니라 상대성의 세계이니 우열을 따지기보다 취향이나 의미를 존중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요? 사실 최고의 맛만 고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 맛도 평범해지고, 맛에 대한 미지의 기대도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의 쾌감 엔진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미식의 가치는 행복에 있지 건강에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도 미식가를 영양 감별사나 건강식품 감별사라고 하지 않죠. 따라서 미식이 절대적 가치를 가진 듯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입니다. 음악은 생존에 꼭 필요한 양식을 주거나 배부르게 하지 않지만 누구도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미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좋은 미식가나 미식 평론가가 있다면 그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혜택은 맛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먹어본 맛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생소한 것은 부정적으로 판단합니다. 우리의 미각은 원래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맛을 세심하게 먹고 관찰한 미식가는 우리를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맛과 다른 맛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음식의 의미나 맥락의 이해를 통해 우리가 그 음식을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재료보다 의미가 소중해졌다

앞으로 미식의 가치는 재료보다 의미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계 3대 진미로 캐비아, 푸아그라, 트러플(송로버섯)을 꼽았는데 캐비아는 멸종 위기라서, 프라그라는 잔인성 때문에 빛이 많이 바랬지요. 또 다른 진미인 상어지느러미 요리도 멸종 위기와 잔인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퇴출되고 있습니다. 상어를 통째로 먹으면 좀 더 논란이 적었을 텐데, 고기는 맛이 없다고 지느러미만 잘라낸 뒤 몸통은 다시 바다에 버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부레가 없는 상어는 수영을 못하고 결국 고통 속에 익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호소에는 별로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이 상어 속 수은이 보통의 음식의 47배라고 하자 주춤했다고 합니다. 바다 생선은 대부분 육식이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관계라서 육지의 육식동물보다 금속의 축적 비율이 높아지죠.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상어에는 당연히 수은 축적량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샥스핀은 콜라겐이 많아 영양적 가치는 별로 없고, 독특한 식감이 매력입니다.그러니 괜히 상어를 잡아 수은이 많은 지느러미를 먹을 것이 아니라, 젤라틴 같은 것으로 만든 대용품(모조 삭스핀)이 더 낫다고 해야겠지요. 잔인하지도 않고 수은도 없으니 영양이나 안전 면에서도 진짜보다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모조품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순식간에 입맛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똑같은 피카소의 그림이라도 진품의 아우라에 감동하고 가품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좋은 재료가 좋은 맛이고 미식의 기준이라면 좋은 재료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요? 나는 평범한 재료로 비범한 맛을 내는 것이 굉장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인간을 위한 음식으로 창조된 생물은 없습니다. 따라서 음식에는 항상 어느 정도 잔인성이 들어 있지요. 그래서 그것까지 고려한 음식은 더욱더 가치가 있는 것일 겁니다.

---------

 

최근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에 비해 정말 다양해졌고, 미식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많아진 것 같지면 현실을 여전히 싸고 푸짐한 품목 즉 가성비 높은 메뉴만이 살아남는 다양성의 상실 시대 같다. 경쟁이 심하니 외식업체는 고단하고 항상 인건비 적게 들고, 회전율 높으면서, 유행을 적게 타는 품목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형성되기는 척박한 환경이다.
몇 년간 한식의 세계화가 이슈화 되었지만 그 안에 콘텐츠는 별로 많은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이 불과 몇 십 년에 사이에 일어난 것이니, 한식을 상품으로 내세우기에는 아직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콘텐츠가 부족한 것은 시간이 부족한 것 말고도 그동안 언론과 전문가의 형태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료 근본주의와 영양 제국주의 같은 것이다. 재료 근본주의의 대표적인예가 먹거리X파일이란 방송의 ‘MSG 소동’ 같은 것이었다. MSG는 소금보다 40배 안전하지만 음식에서 역할은 소금보다 훨씬 부족하다. 나머지 갖출 것은 모두 갖추었는데 감칠맛만 살짝 부족한 음식에 MSG를 조금 넣으면 맛이 놀랍게 좋아진다. 그래봐야 소금의 기적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데 익숙한 소금보다는 생소한 MSG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든 음식도 간이 부족하면 맛이 없다. 거기에 소금을 살짝 넣으면 놀랄만한 맛의 기적이 펼쳐지는데 우리는 소금의 기적은 무시하고 훨씬 사소한 MSG에만 주목했다. 과학도 없고 균형 감각도 없었던 것이다.
먹거리X파일은 MSG에 민감한 점에 착안하여 아무리 열심히 잘 만든 음식도 ‘다 좋은데 MSG를 사용해서 안타깝게 착한 식당에서 탈락’ 이라는 식으로 음식의 0.5%도 차지하지 않는 MSG로 음식의 가치를 평가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그 방송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맛에 대한 평가가 재료 근본주의에 바탕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재료로 비범한 맛을 내는 요리사의 창의력은 무시되고, 음식은 무조건 좋은 맛의 재료를 사용하여 본연의 맛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 다 쏠려있었다. 그리고 좋은 재료라는 것의 평가에는 과학이나 환경은 없고 오로지 천연인지 가공인지 여부였다. 그래서 천일염은 선이고 정제염은 악이며, 유기농은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고, 인간이 손을 대지 않는 순수한 천연의 재료만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최고의 음식 재료이고 최고의 맛의 재료라는 것이다.
음식에서 요리사도 지워버리고, 먹는 사람의 행복도 지워진 체 재료에 대한 찬양만이 넘쳐났다. 그리고 먹거리는 약식동원 즉 너가 먹는 것이 바로 너가 될 것이니,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 신선한 몸이 될 것이고, 어린 것을 먹어야 어려질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풀(채식)을 하면 풀이되거나 소가 될 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이 ‘임신 중 닭 먹으면 닭살의 아이가 태어난다’. ‘자라는 오래 사니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다고 하면 비웃으면서 최근까지는 ‘야생동물 먹으면 야생의 힘을 얻는다’, ‘해구신 먹으면 정력이 강화된다’, ‘호랑이 뼈, 코뿔소 뿔 먹으면 힘이 세진다’를 믿었으며 지금도 ‘콜라겐이 먹으면 콜라겐 늘어난다’, ‘지방을 먹으면 지방이 늘어난다.’, ‘콜레스테롤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증가한다.’ 같은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니 ‘유전자 변형 작물 먹으면 유전자가 변형된다’를 믿을 수밖에 없다.
과학을 빙자한 건강프로그램은 항상 영양 제국주의로 물들여 있다. 어떤 음식이던 특정 성분으로 효능을 과장한다. 예전에는 산삼, 녹용이 최고의 건강식이었는데 요즘은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제를 들먹이면 음식의 평가는 끝이다. 한국에는 전혀 맞지도 않은 미국의 영양 이론을 들이대며 음식을 평했고 (생략). 그래서 방송에서 뭐가 몸에 좋다고 하면 슈퍼에서 그 음식이 순식간에 동이 나고는 했다.
음식에서 맛도, 먹는 이도, 만드는 이도 모두 지워버린 프로그램들이 항상 최고의 인기인데, 우리의 미식 수준이 어찌 남다르게 발전했을 수가 있겠는가? 소비자가 곧 생산자이다. 생산자는 팔리는 상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 번도 진지하게 음식의 진짜 가치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우리에게 바람직한 미식의 방향을 논의해 본 적도 없다. 소비자의 트렌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전문가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한 적이 없는데 음식이 홀로 잘 발전했을 리가 별로 없다.  
나는 음식에 불만이 없다. 음식을 함부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만 불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