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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 위스키에 세계가 반하다
섬나라 특유의 장인정신에 부드러운 블렌딩…
"상상 그이상 독창적인 맛" 세계적 위스키평론가 짐 머리
전지현,서진우 기자입력 : 2015.12.12 04:01:04   수정 : 2015.12.14 08:13:04

파죽지세 日 '위스키 강국' 도약 비결

 
사진설명(왼쪽부터) 산토리 위스키 '야마자키', 니카 위스키 '다케쓰루'

장인정신으로 빚은 일본 위스키가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산토리와 니카 제품이 국제 품평회를 휩쓸면서 '품귀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산토리는 그 여세를 몰아 미국 위스키업체 '빔'을 인수·합병해 세계 4위 위스키 제조사로 도약했다. 그러나 한국 위스키는 '세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두 나라의 위스키산업 격차를 벌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해봤다.

"수입되는 물량 전량을 공급해주면 바로 결제해드리겠습니다."

요즘 국내 주류 도매상들은 일본 산토리 위스키 확보 전쟁을 치르고 있다. 레스토랑과 이자카야(일본 선술집) 등의 수요는 급증했는데 공급량이 적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산토리 위스키 수입사 선보주류 측은 "수입량이 국내 도매상 주문량의 10%밖에 안 된다"며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판매량이 급증해 국내 수입량이 줄어 물량을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없어서 못 파는 산토리 위스키 '야마자키 2013년산 쉐리 캐스크'는 지난해 영국의 권위 있는 위스키 가이드북 '위스키 바이블'이 선정한 세계 최고 위스키가 되면서 몸값이 치솟았다.
세계적인 위스키 평론가 짐 머리는 '야마자키 싱글몰트 2013'에 대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라며 100점 만점에 97.5점을 줬다.

 
스코틀랜드 전통에 동양의 맛을 가미한 산토리는 지난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세계 4위 위스키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짐빔과 메이커스마크, 캐나디안클럽 등 유명 위스키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위스키업체 '빔'을 160억달러(약 18조4608억원)에 인수했다. 세계 1위 영국 디아지오, 2위 프랑스 페르노리카, 3위 인도 ABD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산토리의 라이벌인 일본 니카 위스키 '다케쓰루 17년산 퓨어몰트'도 그 못지않게 명성을 날리고 있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위스키 국제품평회에서 2년 연속 최고상을 휩쓸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짝퉁'이라고 무시당했던 일본 위스키는 어쩌다 '귀한 술' 대접을 받게 됐을까. 그 비결로 장인정신과 품질 제일주의, 정부 규제 완화를 꼽을 수 있다.
산토리와 니카는 스코틀랜드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스키를 만든다. 스코틀랜드조차 포기하기 시작한 석탄 증류 방식을 고수해 위스키 향이 좀 더 풍부하며 목넘김이 부드럽다.
양조장 입지까지 스코틀랜드 지형이나 기후와 비슷한 곳을 골랐다. 니카 위스키를 만든 화학자 다케쓰루 마사타가(1894~1979)는 홋카이도에 요이치 증류소를 만들었다.

일본 위스키 역사 중심에는 다케쓰루와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1879~1962)가 있다. 1918년 스코틀랜드에서 양조법을 공부한 다케쓰루는 귀국 후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와 손잡았다. 두 사람은 1923년 오사카 야마자키에 증류소를 세워 위스키 개발에 전념했다. 당시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건물 안에 보리만을 먹고 사는 괴물 '우스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보리를 운반하는 우마차가 끊임없이 들어가고 건물 지붕에서 계속 연기를 뿜어내지만 몇 년을 기다려도 밖으로 나오는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년 동안 매진한 끝에 1929년 일본 최초 위스키이자 산토리의 첫 위스키인 '시로후다'가 탄생했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일본인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 스모키한 풍미가 문제였다.
도리이는 모방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일본 소비자들의 식생활과 입맛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스카치 위스키를 넘어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첫 실패에 굴하지 않고 동양인 취향에 맞는 부드러운 맛 블렌딩을 연구한 결과 1937년 출시한 '가쿠빈'이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산토리 올드' '산토리 로열' '히비키', 일본 첫 싱글몰트 위스키인 '야마자키' 등을 발표했다.

일본 경제 성장과 맞물려 승승장구한 산토리는 현재 자국 위스키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도쿄에 클래식 음악당 '산토리홀'을 짓는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힌다. 주류회사이지만 일본인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다.
2위는 다케쓰루가 1934년 독립해서 만든 니카 위스키다. 도리이와 위스키 철학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에서 배운 양조 방식을 토대로 독창적인 위스키를 만들었다. 지금은 아사히로 인수됐지만 그의 위스키 정신은 최근 들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사케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 여인 리타와 결혼으로 이어진 개인사를 담은 NHK 아침 드라마 '나상'(2014년 9월~2015년 3월 방영)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위스키 붐을 일으켰다. 일본 내에서도 공급 물량이 달려 수출이 어려울 정도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 무대를 제패한 배경에는 음주 문화와 정부 지원도 뒷받침됐다. 5년 전부터 긴 글라스에 칵테일 얼음과 소다를 넣어 마시는 '하이볼 프로모션'이 먹혀들어 위스키 판매량이 급증했다. 물을 타면 도수가 낮아져 반주로 쉽게 마실 수 있는 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탄탄한 내수를 기반으로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정부 지원도 위스키에 날개를 달아줬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양조산업이 큰 타격을 받자 제조·유통 면허 조건을 완화했다.
기본적으로 일본 주류 정책은 주류산업 육성과 조세 확보 차원에서 만들어진다. 주류 행정 대부분이 주류업체 단체인 조합을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국세청 주류정책 담당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장기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쌓는다. 수시로 정책 담당자가 바뀌는 한국보다 더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지현 기자 / 서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