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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 그릇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시각
- 보면 먹고 싶다
- 눈으로 포만감
- 나는 왜 과식하는가

시각 : 보는 대로 맛이 난다
- 시각 : 색도 식욕을 좌우한다
- 시각 : 술잔의 형태가 술맛을 좌우한다
- 시각 : 그릇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 시각 : 눈으로 느끼는 포만감

 

출전 : 나 홀로 미식수업 chapter 12 미식과 식기

집에서도 식기를 갖추고 식사할 것

지금까지는 밖에서 하는 식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제부터는 집, 즉 일상생활 공간에서 이뤄지는 식사에 대해 생각해볼까 합니다. 물론 이 책은 사교적인, 즉 세상을 기운차게 헤쳐 나가려는 분들에게 먹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알려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어떤 식생활을 보내는지도 중요합니다.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인 식생활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활공간을 사교의 장으로 삼는, 다시 말해 손님을 집에 초대해 접대하는 상황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집으로 초대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 전에 먹는 것에 대한 일상의 마음가짐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반 조리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먹을 것이고, 또 그런 음식이 가끔 먹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릇입니다.
요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생각해봅시다. 실력은 물론이고 부엌의 설비와 각종장비를 감안할 때 둘의 요리를 질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덴푸라를 예로 들자면, 아무리 튀김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일류 가게에서 맛볼 수 있는 새우나 까치양태, 오징어 등에 필적할 만한 덴푸라를 일반 가정집에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덴푸라를 좋아한다면 집에서 튀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하는 식사의 묘미, 즉 외식에서는 맛볼 수 없고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락은 무엇일까요?  저는 다름 아닌 식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릇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집에서의 식사가 밖에서 하는 식사보다 훨씬 이점이 많습니다. 물론 술 역시 집에서 마시는 편이 자유롭습니다. 찌개에 게뷰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조합은 집에서밖에 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밖에서 마실 때보다도 다양한 와인을 거리낌 없이 딸 수 있습니다. 준마이주와 뉴질랜드의 샤르도네를 비교해가며 마시는 장난도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와인이 가진 매력의 진수를 맛보려면 오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자본과 면밀한 전략을 갖고 만든 와인리스트와 투명하게 잘 닦인 와인글라스, 디캔터, 그리고 탁월한 기량을 가진 소믈리에의 수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식기는 어떨까요? 질뿐만 아니라 미의식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가게에서 쓰는 식기는 상당히 한탄스러운 상태입니다. 도쿄에 있는 고급 일식당 중에서 요리의 가격에 걸맞은 식기를 사용하는 가게는 얼마나 될까요? 킷죠나 후쿠다야같은 가게를 제외하면, 상당히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요정에서조차 결혼식 답례품 수준을 겨우 웃도는 기성제품을 사용합니다. 유리그릇 역시 제대로 된 키리코나 다도용 바카라를 사용하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도예가의 작품과 골동품을 사용하는 가게가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들어서 가봤더니 전철역 근처에 있는 이상하리만큼 자기주장이 강한 선술집풍의 가게였습니다. 결국 맥락도 없고 취향도 별로인 단지 오래 묵혀둔 그릇에 식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좋은 그릇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는 쾌락은 집에서만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바로 마이센이나 로열코펜하겐 같은 식기를 세트로 사려드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건 집사와 가정부를 교용하고 난 후에나 할 일입니다. 일상에서 그런 식기를 전부 구비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말했나요? 하지만 손님용 그릇을 사기 전에 우선 자신을 충족시켜줄 그릇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가일지라도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소위 기도락가 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집이나 사무실에 갔을 때 차와 과자를 담아서 내오는 그릇이 다치키치인지 뭔지 공산품이라면 절망적인 심정이 듭니다. 작은 것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물건을 수집해도 소용이 없겠죠.
식기는 아무래도 일본 식기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중국 그릇도 괜찮지 않느냐는 분들도 계실 텐데,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중국 도자기의 매력은 거부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중국 식문화에서 식기에 대한 미의식은 꽤 이전에,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300년쯤 전에 없어졌습니다. 지금 중국에 있는 고급 식당에 가서 획일적인 식기들을 보게 되면 그들이 식기에 대해 아무런 취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홍콩이나 대만의 선진적인 가게에서는 웨지우드나 지노리Richard Ginori를 사용하거나 독창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담기도 하지만 여전히 세련과는 거리가 멉니다. 프렌치 요리를 혁신적으로 담는 방식은 일본요리의 임팩트에서 탄생했습니다. 우선 모든 것에서 일본적인 문맥을 갖고서 식기를 음미하고, 구하고,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일본 식기부터 사야 하나?

앞에서 저는 식기에 관해서는 모두 일본풍으로, 즉 일본적인 취향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문화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본 식기는 식기에 관한 센스를 길러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 중 문화적으로 뛰어난 면이 식기에 담겨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식기 자체의 센스는 우선 제쳐두고, 상당히 격식을 갖춘 가이세키 요리의 코스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전체는 우선 가라쓰의 넓적한 접시에 담고, 두부를 히젠의 아키시메 그릇에, 무침 요리는 교야키 에이라쿠 같은 화려한 작은 주발에 담습니다. 연어 소금구이를 구슬 모양이 선명한 아가야키의 긴 사각접이에 올리고, 튼튼하고 넉넉한 보라색의 고치에 무코즈케를 담아냅니다. 오니하기의 주발에 절임 음식을 담고, 고소메쓰케의 숀즈이 술잔에 고후키의 작은 술병..., 이런 식으로 다양한 산지에서 다양한 제법으로 만든 그릇을 다양한 의장으로 요리와 조합해서 나오는 것이 정통적인 일식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그릇을 사용해서 요리를 연출하는 방법은 일종의 큐레이션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한 미적 감각과 교양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됩니다. 요컨대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과 조각품을 어떤 테마로 전시할 것인가와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하게 매뉴얼에 따라서 정해버리면 온천 여관의 연회 요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일식에서의 미의식과 교양의 기본이 다도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의 이에모토 제도에서의 다도, 특히 전후 여성의 사교적인 취미로 추락한 다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은 산더미 같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는 접어두겠습니다.
원래 중화문명에서는 나들이를 나가 찻잎을 맛보는 것이 끽다의 기본이었는데, 이것을 다양한 미술품과 조합해서 상당히 수준 높은 큐레이션 아트로 만든 건 아시카가 시대 후기부터 아즈치 모모야마의 대중들이었습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들어 센리큐와 그의 주변에 모인 민중과 다이묘들은 다기와 다도구의 수집에 그치지 않고 다실과 정원까지 다도 모임을 위해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시도를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도회를 얼마나 미적인 이상향으로 연출할 것인가 하는 의지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다실의 설계는 벽에 거는 족자, 꽃병, 깊은 산에서 어렵게 구한 들꽃, 진한 차를 담는 찻잔, 유서 깊은 차 수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품과 조화를 이뤄야 했기에 일시적인 취향을 연출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막대한 금전과 수고를 들였습니다.
현재 일식의 주류인 가이세키 스타일은 이런 다도에서 제공되는 요리가 모체가 됐습니다. 정통 교토 요리라고 자부할 만한 사가의 효테이에 가보면 누구나 쉽게 다도의 형식에서 유래한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가이세키의 요리와 그릇의 조합 역시 센리큐가 시도했던 종합 연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즈치 모모야마 당시 이미 다인들은 일본의 자기는 물론이고, 중국산 도자기, 조선의 자기, 인도네시아반도의 자기와 네덜란드 도자기까지 다도와 가이세키에 사용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식기를 다양한 요리와 조합했다는 점에서 일식을 이길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른 문화권에서 이렇게까지 광범위한 식기를 사용할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에 맞습니다.  국내외의 것을 한데 모아서 정리한다. 그것도 원래의 문맥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대담한 조합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대담함을 느낄 수 없는 통합 감각이 있다. 이 쯤 되어야 비로소 일본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 하지만 아무래도 자화자찬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힘들 것 같군요.

고심 끝에 산 식기는 매일 사용할 것

다양한 그릇들이 통일성 있는 테마를 가지고 조합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감각은 어떻게 해야 갈고 닦을 수 있을까요? 사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구입해서 스스로 사용해보는 것. 그것도 매일 사용할 것. 이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좋은 청자 바리를 사서 매일 사용해봅니다. 그러면 청자에 대한 감각이라는 것이 생기게 돼 있습니다. 청자의 창백한 깊음과 밝기, 유색이 빛을 발하는 방법이 어떤 건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사용해봐야 그 기준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런 기준을 한번 몸에 익히면 음식점이나 남의 집, 혹은 도예가의 개인전 같은 곳을 가더라도 청자를 보는 자기만의 기준이 생깁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청자라고 봤던 것이 상당히 다채롭다는 점, 색의 조합을 비롯해 발색 또한 정말로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점이 보이게 되고 또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면 북송 계통의 물건인지, 남송 계통의 물건인지, 아니면 일본의 분류로는 덴류지 청자인지 기누타 청자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이해를 통해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릇의 질적 차이도 알게 됩니다. 어디선가 내놓은 청자는 색의 깊이가 없어서 싸구려 같다든가, 기태의 성형도 엉망인 것 같다든가, 이 그릇은 내가 갖고 있는 것과는 격이 다르게 멋지다든가 하는 점들도 알게 됩니다.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고미술상을 열심히 다니며 좋은 청자를 구입했다면 이제는 박물관에서 도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막연하게 보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흥미를 갖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호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미적 감각을 키우려면 무조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든 간에 자신의 생활 속에 그릇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돈을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즘 세상은 100엔 숍은 물론이고 가게의 경품으로 그릇이나 접시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 천 엔, 몇 만 엔을 들여 그릇을 사야 합니다. 사고 나면 그 이후에는 마음이 가질 않는다는 대범하고 품위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 그릇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관심, 아니 오히려 불안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릇을 대충 어설프게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써봐야 합니다. 좋은 그릇일수록 되도록 일상에서 사용합니다.
사용을 해봐야 그 그릇의 맛이나 미관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릇의 무게, 감촉, 젓가락이 닿았을 때 나는 소리, 상아 젓가락과 부딪혔을 때의 울림, 뜨거운 음식을 부었을 때 퍼지는 온기, 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음식을 담아보고, 그것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봅니다. 그릇들끼리의 궁합도 살펴봅니다.
저는 심각할 정도로 물건에 구애돼서 살아가는데, 긴 여행 동안 매일매일 재미없는 그릇에다 밥을 먹다 보면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중국 여행을 할 때 멋진 요리가 비루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을 보면 집에 가서 그릇을 가져와 새로 담고 싶을 정도입니다.골동품 수집가이자 북디자이너였던 아오야마 지로 씨는 여행을 할 때 늘 자신이 쓰는 그릇 세트를 들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귀찮아서 실천에 옮기지 못할 뿐입니다.
이 얘기는 사실 그릇뿐만 아니라 미술품에도 적용됩니다. 그림을 좋아한다면 어느 정도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가격의 그림을, 이 정도 가격이라면 무난할 것 같다는 그림을 한번 사보시길 바랍니다. 시장가격으로 따졌을 때 그런 구매가 이득일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에서는 상당히 유효한 투자입니다.
적어도 미적인 것이나 세련된 것에 흥미가 있다면 구입해서도 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진심일 겁니다. 사고 싶은 마음이야 있겠지만 자신이 정말 만족할 만한 구매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말이죠.
도예가의 개인전 같은 곳에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을 가면, 특히 아는 사람의 초대전에 갈 때는 의리와 허영에 발목이 잡혀 구매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정말 자신이 좋아서 고른 건지 알 수 없는 미덥지 않은 경우이지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구매를 해버리면 두 번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서 창고 깊숙한 곳에 방치해둡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대체 뭘 위해 그 큰돈을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릿집 주인에게서 구입 방법을 배운다.

그럼 그릇은 대체 어떻게 구입하면 좋을까요?
제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요리사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즉 식사를 한 다음에 마음에 든 그릇이나 식기에 대해 물어봅니다.
저는 20대 후반부터 니혼바시의 덴푸라 가게 하야시를 다니며 식기 공부를 했습니다. 하야시의 선대 주인은 전쟁이 났을 때 가족보다 식기를 먼저 챙겼다고 할 정도의 전설적인 식기 수집가입니다. 그 그릇들을 현재의 주인이 이어받았고 나아가 보충해서 컬렉션에 충실함을 갖췄습니다. 하야시는 정말 수준 높은 그릇에 덴푸라를 주는 가게입니다. 초고가 식당을 제외한다면 도쿄에서는 최고라고 말해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물론 덴푸라도 일본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하야시 주인이 알려줘서 교토의 유명한 요릿집인 가와카미를 방문했습니다. 가와카미는 공공연하게 요 몇십 년간 교토를 대표하는 유명한 가게입니다. 그릇 역시 훌륭합니다. 훌륭하긴 하지만 하야시에서 사용하는 골동품은 아닙니다. 저도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물론 새 물건이지만 그 근방의 도자기 가게나 백화점에 놓여있는 물건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매우 단정하고 값이 나가보였습니다. 직원에게 “실례지만 이 그릇은 어디 것인가요?”라고 물어봤더니 주인이 교토 고조에 있는 도자기 도매상을 가르쳐 줬습니다. 친절하게도 “가와카미에서 얘기를 들었다고 말씀해보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찾아가봤습니다. 저 같은 도쿄 사람이 상상했던 가게는 아니었습니다. 미닫이문을 열었더니 남자 직공들이 흙바닥에서 그릇을 하나하나 싸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와카미의 주인 이야기를 했더니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다다미방으로 안내를 받아 차까지 얻어 마셨습니다. 그래도 긴장은 됐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이 어떤 물건을 원하느냐며 물어보기에 술잔과 작은 접시, 중간 크기의 접시라고 말했더니 책장위의 다양한 그릇을 죽 늘여놓고 보여줬습니다. 그 안에는 가와카미에서 사용하는 물건도 있었고 그 전에 갔던 요릿집에서 보았던 물건도 있었습니다. 물어보니 한 점에 얼마라고 해서 원하는 물건을 네다섯 장 살 수 있었습니다. 술병이면 몰라도 접시를 한두 장 사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도쿄의 백화점에 가서 여기서 만든 물건을 봤는데 가격이 거의 배나 됐습니다. 물론 백화점에서 가볍게 구입하는 것에 비해 직접 도매상에 가서 구입하면 긴장은 되지만 물건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교토의 식문화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식기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그곳에서 산 그릇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 몇 년간 발품을 팔며 그릇을 구입했고, 그 그릇을 매일 사용함으로써 제 나름대로의 식기에 대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의 기호를 알아가게 됐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에게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도예가의 작품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골동품이 아니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작품보다는 통일된 취향 혹은 감각입니다. 통일된 감각을 전제로 해서 그릇을 사기 위해서도 요릿집 주인이 들려주는 충고는 소중합니다.

옷을 모으듯 식기를 모아라

제가 찾아갔던 도매상은 기본적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내놓는 교토의 요릿집에 납품하는 걸 기준으로 삼아 유행을 타긴 했겠지만 기온의 고급 요릿집에서 사용되는 틀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일관된 미의식이 있고 그릇의 품질도 일정 수준에 달해 있어 오히려 무난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릇에 입문할 때 기본적인 아이템을 갖춰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마치 옷장 속에 기본적인 아이템을 준비해놓는 것처럼 말이죠.
식사란 것은 일련의 흐름으로 구성돼 있어서 기본적인 토대가 우선 만들어져야 합니다. 와인으로 말하자면 맨 처음에 샴페인을 마시고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달콤한 와인을 마심으로써 전체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특히 그릇에 관해서는 이런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샴페인만을 준비하거나 레드와인은 엄청나게 좋은 그랑 크뤼인데 화이트와인은 양판점에서 파는 싸구려를 버젓이 내오고, 그런 부조화를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잡지 기사들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기사나 사진으로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그릇을 하나하나 강조해서 어필한 탓에 전체의 균형을 무시합니다. 그런 기사를 접하다 보면 꼭 그릇을 하나하나 강조해서 어필한 탓에 전체의 균형을 무시합니다. 그런 기사를 접하다 보면 꼭 그릇을 단품으로 사게 됩니다. 이따금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집에서 잡지 기사에 등장한 것처럼 화려한 식기만을 모아놓은 코디네이션을 보고 정말 그 피해의 크기에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상당히 화려한 그릇이나 격조 있는 그릇을 사용하려면 그런 힘이 넘치는 그릇을 수용할 만한 보조 역할을 해줄 그릇을 구비해야 합니다.
도쿄의 요릿집에 대한 얘기인데, 그곳 주인은 골동품 마니아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그릇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균형 감각이 치명적일 정도로 결핍된 사람입니다. 어느 날은 백합 뿌리로 만든 완자 위에 팥고물을 올린 요리를 초기 이마리의 뚜껑이 달린 그릇에 내왔습니다.
요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으니 우선 제쳐두지만, 이마리 그릇은 주인이 자랑할 만하고 확실히 기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나온 소메쓰케의 수저가 좋지 않았습니다.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것이 아무리 봐도 전기 가마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입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뚜껑이 달린 그릇이나 숟가락 모두 쏘메쓰케로 맞췄다고 생각했겠지만 시대도 다를뿐더러 발색도 다릅니다. 그릇은 결이 부드럽고 반탁을 한 듯한 기태에 연하게 양각을 한 쏘메쓰케의 남색이 초기 이마리의 우아한 자태를 돋보이게 합니다. 이에 비해 숟가락은 하얀 페인트칠을 한 듯한 자기에다 독성 물질이 배어나올 것 같은 화학 염료로 남색 칠을 했습니다.
이래서는 초기 이마리를 능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잔느의 진품 옆에 라센의 포스터를 나란히 붙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은 전혀 눈치 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말고도 아는 척을 하는 가게들은 많이 있습니다. 아는 척을 하는 장본인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저로서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워집니다. 이런 문화 파괴적인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역시 그릇 전체의 수준을 일정한 레벨로 만들어 놓고, 그 레벨에 걸맞도록 식기에 관한 전반적인 감각을 가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훌륭한 그릇을 손에 넣어서 사용하는 즐거움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번거롭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귀찮다. 사고 싶은 것을 사면 됐지 뭘 그렇게 귀찮게’라고 말이죠.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릇이라는 것 그만큼 밑바탕을 구축해서 즐길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럴 만한 취미이자 즐거움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패션에 관해서는 옷장 속 전반적인 균형을 맞추거나 충실한 아이템을 갖추려고 상당히 신경 쓰고 계시지 않나요? 옷이나 물건에 대한 취향이 학창 시절과 바뀌었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구두, 시계, 가죽에서 보석류까지 전체적인 패션 아이템을 어느 정도 잘 갖춰놓았는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몇 년에 걸쳐 구입했더니 어느새 충실하게 갖춰졌다고 말씀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 발상을 왜 식기에는 적용하지 못할까요? 더군다나 식기 컬렉션은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취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즐거움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기초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기본적은 그릇의 라인업을 갖추면 이제 드디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개성 강한 그릇을 사는 즐거움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그릇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골동품과 도예가의 작품입니다. 도예가의 작품을 골동품상이 취급하는 것도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이라면 현재 살아 계신 분, 그것도 가능하면 젊은 사람이 좋습니다. 도예가들은 60대라도 젊은 축에 끼니 상당히 폭이 넓습니다. 이렇게 추천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젊은 사람은 질에 비해서 가격이 쌉니다. 도예작품을 일본문화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경향이 있으니 그 점에서 젊은 사람이 이득입니다.

골동품으로 저축하는 법

젊은 도예가도 다양한데, 만약 구입을 할 생각이라면 본격파와 사귀는 편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본격파인가 하면, 우선 도자기가 생산되는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가마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스스로 가마를 건축할 정도의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굴가마나 대포가마 같은 가마를 직접 설계해서 건축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래야 역시 그만큼 연소나 요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을 가지는 만큼 당연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집착합니다.
요즘 세사에서 가마를 짓는다는 건 분명히 힘든 일입니다. 도예가인 요시다 아키라 씨처럼 신문지를 쌓아서 가마를 만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꾼을 여러 명 동원해서 인적이 드문 변두리에 만드는데, 이게 한 번 만들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몇 차례 수선을 거쳐야 겨우 쓸 만한 가마가 됩니다. 돈도 들고, 품도 들고, 무엇보다 견식과 의욕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변방의 도예가라는 존재는 영화감독과 비슷합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금을 모으고 수많은 스태프를 동원합니다. 그리고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 다음 가마에 넣고 며칠에 걸쳐 구워냅니다. 전시회에서 잘만 팔리면 한 가마에 몇천만 엔씩이나 벌 수 있지만 반대로 빚을 지기도 합니다. 보통내기가 아닌 인물이 배출되는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미대를 나와 도심 속 빌딩에 아틀리에를 마련해서 전기제어 방식의 가마로 구운 것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저는 도예가라고 부를 마음이 없습니다. 물론 단순히 전기 가마라서 안되고 가마에서 구우면 괜찮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 가마로 멋진 소메쓰케를 굽는 작가도 알고 있으며, ‘이래서야 굳이 가마를 만든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그릇을 굴가마에서 굽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들이 어렵습니다. 도에 관련된 재료상이나 가마 제조업자들이 상품을 개발해준 덕분에 흙의 안배에서부터 유약의 조합, 전기와 가스로 작동하는 가마의 컨트롤 등 기본적인 작업들은 날이 갈수록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굳이 수련을 거치지 않아도 그럴싸한 그릇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전문가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 작가의 작품을 사면 작가 본인과 사귈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물건을 뭐라도 하나 사면 개인전 안내장 같은 것도 날아옵니다. 개인전에 가봐서 죽이 잘 맞겠다 싶으면 공방에 놀러가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혼자 가기가 어색하신 분은 친구나 연인을 데리고 가면 좋겠지요. 도예가들은 직업상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 수가 늘어났다고 해서 불평할 사람들은 없습니다. 물론 친분에 얽혀서 원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버리게 될 위험성은 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도예가들은 그다지 유복한 편은 아니라서 사귈 때도 별 긴장감이 들지 않습니다. 어쩔 때는 후원자가 된 느낌을 손쉽게 맛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분이라면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사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도예가들 중에는 요리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방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릇의 사용법을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