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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숭배 : 허구적 명성

- 비타민 숭배, 비타민 C 마저도 부작용이 있다
- 비타마니아를 만든 사람들
- 멀티비타민, 메가비타민 :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비타민의 위해 가능성은 잘 말하지 않는다
- 비타민 더 먹어야하나?,  비타민, 아스피린의 과용
- 이미 대부분의 항산화제가 생명 연장의 수단이 되지 못한 것을 밝혀졌다
- 식물은 단 1개의 비타민도 요구하지 않는다

비타마니아 열풍의 주역  

하비 리벤스테인 저/김지향 역 | 지식트리

필수 영양소 부족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질병에 관한 공포의 시작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타민의 발견과 이른바 ‘영양에 관한 더 새로운 지식’이 발표되던 시점이다. 비타민을 누가 최초로 발견했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새롭게 발견된 영양소에 비타민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비타민이 인체에 필수 영양소라고 주장한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젊은 생화학자 캐시미어 풍크라는 것이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화학자들은 건강한 신체는 ‘새로운 영양’의 3대 필수 영양소, 즉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11년 영국 리스터 연구소의 풍크가 부족할 경우 각기병을 유발하는 물질인 수용성 ‘보조 인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러한 생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당시 각기병은 동아시아에서 자주 발생하던 질병이었다. 비타민의 발견은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놀라운 일이었고, 풍크는 이 성분을 ‘비타민’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1915년 미국의 화학자 엘머 맥컬럼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부족하면 눈병을 유발하고,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성분을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맥컬럼은 처음에 이 성분을 ‘지용성 인자 A’라고 명명했으나 풍크의 ‘비타민’이 더 기억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비타민 A’로 바꾸었다. 풍크가 4년이나 앞서 발견한 ‘비타민 B’를 교묘하게 두 번째로 밀어낸 것이다. 이후 7여 년에 걸쳐 괴혈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C와 구루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D도 성공적으로 분리해 냈다. 미국 언론은 숨 가쁘게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당시 미국에서는 괴혈병이나 구루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덕분에 온 국민이 식품 건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타마니아’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1921년 초, 극히 일부의 비타민이 세상에 알려지고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거의 없던 시절, 저명한 의사였던 벤자민 해로우는 비타민이 부족할 경우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증상이 유발될 수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비타민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경고했고 대중들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중들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타민이라는 용어 자체에 의미가 함축돼 있다."는 해로우의 말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당초 비타민에 붙인 명칭은 ‘지용성 인자A’, ‘수용성 인자B’, ‘항괴혈병C’, 보조 인자 물질’, ‘식품 호르몬’등 무려 23개나 됐다. 이 이름들이 그대로 사용됐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비타민을 챙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타민’이라는 용어의 특별함은 단어 자체에 ‘인간의 삶과 활력에 필수적인 무엇’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는 데 있다. 일례로 맥컬럼은 비타민을 ‘활력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칭하며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관념에 견고한 과학적 근거까지 더해지자 미국인들은 다른 모든 식품을 제쳐 두고 비타마니아에 열광했다. 이 현상을 부추긴 장본인이 바로 서민 출신 화학자 엘머 맥컬럼이다. 맥컬럼의 명성은 대부분 비타민 부족이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비타민 부족으로 고통 받는 쥐 사진을 사용했는데 사진 속의 쥐는 기력이 없고 실명한데다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털이 다 빠져 버린 흉측한 모습이었다. 3000마리의 실험용 쥐가 있는 연구실로 저널리스트들도 초청했는데 이들에게는 실험 대상 쥐 그룹 중 비타민을 제거한 음식을 먹여 누가 봐도 병약해 보이는 쥐 그룹을 보여주었고, 이들이 작성한 기사는 대개 비슷했다. "비타민을 제거한 음식을 섭취한 쥐들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신경과민에다 성질이 급하고 초췌했으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실험군의 쥐들은 포동포동하고 건강했으며, 눈도 초롱초롱했다. 건강한 쥐들은 수명이 다할 대까지 평화롭게 지낼 것처럼 보인다." 이런 기사에는 맥컬럼이 제공한 건강한 쥐와 뼈만 앙상한 주의 비교 사진도 함께 실렸다. 언론 보도 덕분에 비타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영양소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콜리어스 매거진은 1922년 ‘얼마나 오래 살고 싶으신가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 ‘수명을 연장해 주는’영양소인 비타민을 소개했다.

비타민 열풍 : 슈퍼맘이 되라

거대 식품업체들이 이를 절호의 마케팅 기회로 판단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식품업체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핵심적인 필수 요소, 보이지도 않고 특별한 맛도 없으며 무게도 없는 특별한 성분이 자사 제품에 함유돼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의 수준은 어떤 식품에 비타민이 함유돼 있는지 파악할 수는 있었으나, 식품에 함유된 비타민의 정확한 양과 인체가 필요로 하는 양까지는 측정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식품 기업이 자사 상품에 비타민이 함유돼 있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그 후 과학자들은 대구 간유에 함유된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새로운 위험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과학자는 일반적인 질환인 감기 및 홍역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타민 A가 아이들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항감염 매개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제약회사 파크데이비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해 ‘대구 간유에 함유된 저항력을 강화해 주는 비타민 A가 백일해, 홍역, 수두, 볼거리, 성홍열에 대한 아이들의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홍보했다. 한편 비타민이 오유와 대구 간유 등 특정 식품뿐 아니라 함량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거의 모든 식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식품 가공업체들은 더욱 유리한 상황을 맞게 됐다. 1920년대부터 M&A로 몸집을 불린 식품업체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브랜드 상품의 홍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비타마니아는 유아와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던 기존의 슈퍼맘 시장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비타민 부족은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타민 시장이 성장하자 1921년 발견된 이후 수년간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던 비타민 C도 더불어 상승세를 탔다. 비타민 C는 미국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던 질환인 괴혈병을 예방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던 터라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과일 재배자 연합은 썬키스트 브랜드를 내새워 ‘건강에 좋은 비타민, 짠맛도 신맛도 거의 없는 오렌지’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식품 가공업체 중에는 스스로가 식품 가공의 주체이면서도 ‘현대의 식품 가공이 식품의 본래 함유된 필수 영양소를 파괴한다’는 주장을 내새워 공포를 조장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1920년 플라이시만 이스트의 이스트 케이크를 통해 비타민을 섭취하라. 원시시대에는 익히거나 조리되지 않은 음식과 잎이 무성한 녹색 체소를 통해 비타민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식품에 대한 정제와 조작이 끊임없이 이뤄지므로 필수 영양소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1922년에 게재한 한 광고에서는 "위대한 영양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가공식품을 먹고 있고, 이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가공식품은 편리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영양소가 파괴된다."고 강조했다. 한 대구 간유 생산 업체는 "겨울은 위험한 계절"이라며, 그 이유로 식단에 비타민 A와 D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이 회사는 "과학자들은 겨울철에 비타민A와 D가 부족한 것은 과일과 채소 통조림에는 여름철만큼 풍부한 비타민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맥컬럼은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을 별도로 구분하기 위해 ‘영양 식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영양 식품’이라는 새로운 식품은 우유와 잎이 무성한 녹색 채소들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은 현재 하루 0.5리터의 우유를 마시는데 이를 두 배로 늘려야 하며, 잎이 무성한 녹색 채소의 경우는 비타민이 풍부할 뿐 아니라 배설을 촉진시켜 ‘장을 깨끗하게’ 해주므로 하루 2번 샐러드를 먹는 것이 좋다."고 조안했다. 이는 당시 양상추 신품종 개발을 완료하고 기차를 이용해 전국에 공급할 채비를 갖추고 있던 캘리포니아의 기업형 농장주들에게는 실로 엄청난 호재였다. 맥컬럼은 확실히 1930년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바꿔 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맥컬럼은 "비타민은 약국이 아니라 시장, 식료품점, 우유 배달원에게서 구입하라, 그리고 정원에서도 얻을 수 있다." 고 주장했다. 거대 식품 가공업체들이 이런 메시지에 환호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업체는 제분업체들이었다. 1920년대에는 빵을 적게 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 때문에 제분업체들은 창고에 쌓여가는 재고와 가격 하락으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슬림한 체형이 인기를 끌자 중산층 사이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제분업체들은 초기에는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밀가루를 더 많이 먹자’는 슬로건을 내건 옥외 광고는 별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제분업계는 더욱 고도화된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맥컬럼은 1920년, "흰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뿐 아니라 비타민 함량도 통밀가루에 비해 떨어진다. 주부들은 흰 밀가루를 좋아하는 것은 밀가루의 흰색 때문인데 순수한 의미를 갖는 흰색에 현혹돼 영양도 좋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흰 밀가루를 굳이 찾을 이유는 없다. 흰 밀가루 수요는 제분업체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의학 전문가들도 ‘통밀빵은 흰 빵보다 소화가 어렵기 때문에 영양가도 더 적다’고 하였고, 미국 의학회는 해외에서도 ‘흰 빵은 보통 사람의 보통의 식습관에 적합한 영양소를 두루 갖춘 식품’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1930년 미국 농무부와 공중 보건국은 흰 빵과 통밀빵이 모두 똑같이 ‘일일 식사를 통해 섭취할 수 있는 에너지와 단백질의 원천’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언급된 모든 사건은 대공황기에 일어났다. 당시 정부에 소속된 영양학자들은 수백만의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더 새로운 영양’의 교훈을 활용했다. 그중에는 일부 성공한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중산층은 이런 종류의 식품 공포에 휩쓸리기보다는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중산층도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비타마니아의 끊임없는 주장, 즉 ‘현대의 식품 가공이 비타민을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1930년대 후반,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유명 전문가들은 식품 가공으로 인한 비타민 파괴가 국가의 생존마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런 불안감을 부추겼다.

1939년 9월 유럽에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 내 영양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당겼다. 대공황 여파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과연 이들이 산업화나 병역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부에 소속된 영양 전문가들은 "전 국민의 3/4이 양적으로 충분한 식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건강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인체에 활력을 주는 비타민이 부족한 ‘잠재적 영양 불균형’상태에 놓여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잠재적’이라는 표현에는 겉으로 보이는 뚜렷한 징후가 없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었으므로 이를 주장한 영양학자들은 영양 불균형이 실제로 어떤 심각한 질병이나 죽음을 초래하는지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사례는 제시했는데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이 유발된다. 만약 비타민 A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군인이 전장에서 야간 순찰을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야맹증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다. 1940년 10월, 첫 징집자들에 대한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자 이런 우려는 더욱 확산되었다. 신체검사를 받은 징집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비타민 부족과 관련된 신체장애를 이유로 징집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뉴스의 헤드라인뿐 아니라 내용까지 읽었다면 징집 거부의 주원인이 충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았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징집위원회의 발표는 현대 식품 가공이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던 의구심을 사실로 입증하는 듯했다. 정부의 의학 및 공중 보건 담당자들은 미국이 식품 가공으로 인해 식품이 본래 갖고 있는 비타민이 파괴되는 ‘비타민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의학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발행하던 건강 매거진 <히게이아>에서는 "신선하거나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멀리하고, 저장 식품과 가공식품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미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도 "식탁에 먹거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 미국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식품에 대해서만큼은 과학과 기술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1941년 5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징집 거부가 증가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전국의 식품 및 영양 전문가 500명을 불러 워싱턴에서 ‘국민 영양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미국 국립연구회 식품과 영양위원회 회장 러셀 윌더 박사도 "75%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숨은 굶주림’, 즉 잠재적 영양 불균형으로 고통 받고 있다. ‘숨은 굶주림’은 먹거리가 풍부해 배는 부르지만 인체가 필요로 하는 필수 영양소는 부족한 상태이므로 언제든 건강과 질병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따라서 식량 부족이 주원인인 ‘속이 빈 굶주림’보다 ‘숨은 굶주림’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다른 발표자들도 ‘숨은 굶주림’과 싸우려면 미국인들의 식단에 비타민이 추가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잠재적 영양 불균형’에 대한 공포가 이때부터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주도한 인물은 미국 국립연구회 식품과 영양 위원회 회장 러셀 윌더였다.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새롭게 발표된 일일 권장량을 교묘히 이용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전 국민의 식단에 ‘활력 비타민’인 비타민 B1이 강화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외모에 의학 지식까지 갖춘 근사한 백발의 의사였던 윌더는 1941년 ‘국민 영양 콘퍼런스’에서 이미 ‘미국의 생존이 티아민 부족으로 위협 받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선도적인 영양학자들에게 충분히 각인시켰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4명의 젊은 여성 환자를 섭외해 인근 주립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후 극소량의 티아민이 함유된 식사를 제공했다. 그리고 5주가 지나자 여성들에게서 ‘거식증, 피로, 체중 감소, 변비, 종아리 근육의 극심한 변화’등 수많은 증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후 메이요 클리닉의 청소원으로 근무 중이던 6명의 여성 여성환자들을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진행해 6주 동안 동일한 식단을 제공한 결과, ‘쇠약, 피로, 무기력’증세가 나타났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우울증, 무기력의 일상화, 현기증, 요통, 거식증, 메스꺼움, 체중 감소, 구토’가 가장 심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후속 실험 대상자들은 ‘정신병적’ 증세뿐 아니라 신경 쇠약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정신적 문제도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연구팀이 언급한 신경 쇠약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정신적 문제도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연구팀이 언급한 신경 쇠약은 빅토리아 시대에나 유행했던 ‘어디에나 갖다 붙여도 상관없는’ 일반적인 수준의 가벼운 것들이었다. 실험이 중반쯤으로 접어들자 연구팀은 여성 환자 2명에게 티아민을 원래대로 보충한 식사를 제공했으며, 그러자 이들은 "전과는 다른 느낌의 이상하리만치 활력이 넘치는 행복감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험이 끝난 참가자들이 귀가 후 정상 식단으로 돌아가자 건강도 회복되었다고 덧붙였다.

1940년 윌더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미국 의학회 저널은 편집자 칼럼을 통해 "미국이 침공 을 당하는 경우, 티아민 부족으로 인해 유발되는 우울증, 나태함, 무관심, 공포, 정신적 및 육체적 피로가 저항과 패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료들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잠재적인 활력 강화제’인 티아민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며 이에 동조했고, 이때부터 티아민은 ‘활력 비타민’이란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윌더의 연구 보고서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여성 환자 10명의 정신 상태 변화에 대한 실험을 통해 도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윌더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했다. 제분 과정에서 티아민이 파괴되므로 티아민이 파괴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 즉 티아민이 첨가된 밀가루였다. 연방 정부 이 방안에 대해 지지를 천명했고, 결국 제분업체들도 연방 정부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자 1941년 2월, 제분업체들이 제빵용 ‘강화’밀가루 생산에 함의한 것이었다. 한 기사에 다르면 제분업체들이 굳이 ‘강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보강’이라는 단어가 ‘기존에 판매되던 빵에 뭔가 문제가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4월, 윌더는 의사협회에서 "지난 60년 동안 미국인들은 ‘끊임없는 영양소 부족’에 시달려 왔다. 이 때문에 미국인의 2/3가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메이요 클리닉에서의 실험을 통해 티아민이 부족하면 ‘국가 의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이 사실로 이증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티아민 부족이 미국 산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할 때도 이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6월 열린 과학자 회의에서는 실험 대상 여성들에게 티아민을 제공하지 않자 ‘놀라울 정도로 인격이 망가졌고 작업 효율성도 떨어졌다’고 강조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수많은 여성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먹음직스럽고 맛도 좋아 보이는 식사에 만족했으며, 사회성도 충분했고 일에 대한 성취도도 높았다. 그러나 실험이 시작되고 몇 주가 지나자 걸핏하면 싸우려 들었고, 의기소침해졌으며, 쉽게 피로를 호소했다. 심지어 파업을 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티아민을 보충하고 48시간이 지나자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티아민이 첨가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특히 자주 사용했던 수법은 ‘비타민’이라는 명칭에 내포된 ‘활력’의 의미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었다. 비타민의 활력과 생기,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활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아 준다는 주장이었다.

1941년 11월,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많은 응답자가 최근 가장 많이 들어본 비타민으로 비타민 B1과 비타민B2를 꼽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설문에 응답한 주부의 84%가 비타민과 에너지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비타민과 칼로리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군수업체인 프랫앤휘트니는 소량의 ‘비타민’이 함유된 초콜릿 케이크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자 항공기 공장 중 한 곳에서 생산성 33%증가했고, 부품 불량률도 대폭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 회사의 다른 공장 노동조합들도 비타민 농축제를 제공해 달라며 동일한 처우를 요구했고, 회사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았다. 육체노동이 비교적 덜한 산업의 노동자들도 비타민의 효과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CBS의 경우 전액 회사 부담으로 전 직원들에게 매일 비타민 정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42년 4월, 비타민 정제를 섭취하는 미국인은 무려 25%에 달했다. 티아민 부족으로 인한 활력 저하의 위험성에 대한 그의 경고는 끊임없이 계속됐지만 겉으로 보기에 미국인들의 활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메이요 클리닉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던 윌더의 연구를 반박하는 다른 연구 결과들도 속속 발표됐다. 더 많은 양의 티아민을 복용한다고 해서 특별히 활력이나 생기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1943년 중반에는 활력 충전과 관련해 티아민을 해법 중 하나로 제시하는 과학자가 거의 없었다. <윌스트리트저널>은 ‘제약업체들이 빵에 첨가되는 티아민 공급을 늘려 상당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인 각기병의 예방이 필요할 때 뿐’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티아민의 중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결국 정부 영양 자문 위원회도 티아민의 일일 권장량을 대폭 낮추었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비타민 B 복합체의 다른 성분이 주목 받게 되자 티아민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PABA : 젊음의 샘 열풍

1937~ 3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가정학자 아그네스 페이 모건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어떤 성분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나 비타민B의 복합체의 한 성분이 부족하면 쥐의 털이 하얗게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940년 초에는’흰머리를 억제하는 비타민’이 노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타민 업체들에게 이는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므로 이들 업체는 즉시 과학자들을 동원해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1941년 9월, 인터내셔널 비타민사 연구원이던 스테판 앤스버커 박사는 비타민 B복합체의 리주버네이팅 성분을 PABA라고 명명하고, 이 성분이 이미 하얗게 변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PABA가 ‘노화 예방’을 돕는 물질이며, 곧 정제 형태의 상품인 ’젊은의 샘’으로 출시된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자 엔스버커는 "3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PARA가 연령대 및 성별에 관계없이 흰머리 발생을 지연시켰으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성욕 증가’가 나타났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대해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의 과학 칼럼리스트는 ‘페니실린의 발견에 버금가는 올해 최고의 과학적 발견 중 하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2개의 대형 비타민 업체가 교도소에 수감된 백발의 남성 80명을 대상으로 직접 테스트를 수행했다. 이들 업체는 "실험 대상자들의 60%에서 백발이 원래대로 회복됐으며, 거의 모든 대상자들에게서 눈에 띄게 성욕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PABA시장 확대 조짐은 곧 수그러들었다. 1942년 말 약국에서 PABA판매가 개시되자마자 표면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이 원하는 정도의 효과를 보려면 PABA의 정제를 3-4개월간 하루 4-6회 복용해야 했고, 업체들은 이후의 효과에 대해서도 별다른 확신을 주지 못했다. 엔스버커 박사 자신의 흰머리도 거의 변화가 없었기에 상품 홍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엔스버커는 얼마 지나지 않아 PABA가 성욕을 자극한다는 주장도 더 이상하지 않았다.
이후 과학자들이 실명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비타민들이 주목을 끌게 되자 PABA에 대한 관심도 급속히 사라졌다. 낙관론을 견지한 과학자들은 비타민 섭취를 늘리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력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어리석은’것은 빈약한 식사와 비타민 부족 대문이므로 이러한 아이들의 비타민 섭취를 늘리면 지능이 높아져, 거짓말, 속임수, 도둑질 등 옳지 않은 행동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니아신은 펠라그라 환자의 ‘정신 착란’ 치료제로 알려져 있으므로 ‘정신분열증이 있는’사람들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려면 ‘지성을 향상시키는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도출된 결론은 하나였다. ‘미래의 비타민은 사람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 줄 뿐 아니라 활력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비타민 정제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갔다. 1944년 비타민 판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미국인 4명 중 3명이 비타민을 복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효과 없는 비타민 : 그래도 비타마니아는 건재

비타민 정제가 활력과 건강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은 전후에도 몇 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 이후 1946년이 되어서야 오랜 연구 끝에 비타민 효능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실험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캘리포니아의 비행기 공장노동자 250여명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비타민 보조제를 복용하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두 그룹의 작업 습관과 건강 상태에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비타민은 곧 활력’이라는 사람들의 확고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고, 이는 게이로드 하우저 같은 전후 건강 식품 전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하우저는 현대의 식품 가공 프로세스가 식품에 본래 내제된 영양소를 파괴한다고 맹비난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인물이었다. 그는 맥아에 함유된 비타민 B군이 활력을 불어넣고, 질병을 예방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 질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윌더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1969년 FDA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가 여전히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면 더 많은 활력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들은 또 비타민이 많은 종류의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 하거나 적어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실제로 1973년 FDA가 비타민 업체들이 광고에 비타민의 건강상 이점을 명시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분노한 시민들은 엄청난 양의 편지를 의회 의원들에게 보냈다. 당시 의원들의 책상에 쌓인 항의 편지는 동시에 최대 스캔들로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스캔들 때보다 많았다. 1976년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섭취와 관련해 자신들이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수백만 미국인의 권리’를 정부가 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법도 통과시켰다. 이후 몇 년 동안 비타민 업체들에 대한 규제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특히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더욱 약화되었다. 미국 국립 보건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까지 미국인들은 성인의 절반 이상이 ‘기분이 나아지고 활력이 솟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더불어 질병의 예방과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종합 비타민제를 챙겨 먹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합 비타민제를 복용한 사람들은 여성들 가운데서도 특히 상류층, 고연령, 고소득자, 그리고 웨스트코스트에 거주하는 교육 수준이 높고 마른 체형의 사람이 많았다. 보고서에서는 또 "영양 결핍이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생각되는 저소득층이 비타민을 거의 섭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상당한 아이러니"라고 언급했다.
이후로도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수많은 미국인들이 비타민 보조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다’는 보고서의 결론을 뒷받침해 주었다. 2008년 말 <뉴욕타임스>는 ‘비타민 관련 최신 보고서로 비타민 입지가 더욱 축소되다’라는 제목으로 "비타민의 건강상 이점을 입증하려는 과학계의 노력이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2개월 후"미국 성인 인구 중 약 절반 정도가 매년 230억 달러를 특정한 형태의 식이 보조제 구입에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진행된 수준 높은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정제 형태의 비타민을 많이 복용한다고 해서 만성 질환이 예방되거나 수명이 연장된다는 주장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런 보도가 나왔다고 해서 비타마니아 열풍이 수그러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활력 비타민’으로서의 티아민에 대한 관심의 시작과 소멸은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식품 가공 과정에서 파괴되는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밀가루에 티아민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대의 식품 가공 기술이 식품에 본래 내재된 필수 영양소를 파괴한다는 대중들의 공포가 확산됐고, 이는 자연식품과 유기농 식품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데 중요한 촉매제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