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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은 문화적 이유가 있다

식품은 문화이다
- 자본주의는 이익으로 돌아간다
- 공짜 점심은 없다,  조미료 육수
- 문화이다 = 이유가 있다
- 무엇이 전통식품인가 ?

인간에게 음식처럼 미묘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음식은 사람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생존의 조건이다. 생존에 가장 시급한 것이 먹는 것이다. 체내에서 보관할 수 있는 용량은 한계가 금세 드러나니 우리는 먹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 욕구 가운데 가장 강한 것도 이 식욕이다. 유전자의 지고한 명령인 성욕도 식욕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자기 몸을 보존하고 지탱하는 것이 우선인 셈이다. 또 그래야만 그다음이 있을 수 있다.
음식은 생존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 관계에도 '밥'이 빠질 수 없고 조상이나 신과의 만남, 고향이나 모국의 추억, 그리움도 '밥'이 매개한다.
어릴 적 입맛이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 어머니의 손맛은 다시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입맛이다. 물론 자라나 외지에 나가 살기도 하면서 입맛이 변하기는 하지만 그 어릴 적의 입맛은 늙어 노인이 될 때까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맛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은 그치지 않는다. 가족이란 핏줄과 함께 입맛을 나눈 사이고, 그래서 명절이면 함께 모여 음식을 마련하고 정뿐만이 아닌 입맛을 나눈다.
입맛을 나눈다는 것은 가족만의 일은 아니다. 고향의 친구들과 동향 사람들은 대개 같은 입맛을 가지고 있다. 동향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은 고향의 옛일과 사람들의 친분으로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고향의 입맛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동향 사람들의 만남은 제 고장의 음식을 먹으면서 비로소 고향의 훈훈한 정감이 살아나고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평양냉면, 함흥냉면, 설렁탕과 같은 향토 음식을 파는 곳에는 노인들이 고향의 맛을 찾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다. 고향의 사투리로 이야기하며 고향의 음식을 먹는 귀소본능이라 하겠다.
사랑과 굶주림의 본능은 모든 생명체의 원동력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을 것을 찾고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때가 되면 '먹자고 하는 일인데' 하며 밥 먹자고 보챈다. 날마다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밥 먹었니"가 인사가 되고, 사람을 만나자는 이야기도 흔히 "밥이나 같이 먹자"라는 말로 대신한다.
밥상머리 마주하는 가족은 밥을 함께 먹는 '식구(食口)'가 되고, 이 외연은 더욱 넓어져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된다. 한솥밥을 강화하는 의미는 회식으로 이어지며,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로 진전된다.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의 사귐도 모두 밥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애인을 사귀는 것도 그러하다. 혼자 먹는 밥이란 쓸쓸하기 짝이 없고, 다만 배고픔을 면하고자 억지로 먹을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신과의 접촉에도 어느 종교, 어느 문화권에서나 음식이 함께한다. 굿판이 벌어지면 온갖 떡과 음식이 가득한 상이 차려지고 이 음식들로 신을 맞는다. 아무리 없는 살림에 보잘것없는 신과의 만남에도 밥 한 그릇이 없을 수 없으며, 하다못해 부녀자가 치성을 드리는 데에도 맑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빈다. 동물을 키우는 유목민은 주로 동물을 신과의 교통에 쓰이는 제물로 쓴다. 농사를 짓는 정착민도 동물을 희생으로 쓰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들의 농산물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오락으로 바뀌었다. 음식은 이제 생명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식도락이라는 즐거움을 찾는 하나의 오락으로 변모하고 만다. 로마시대의 귀족들은 한 끼에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게 아쉬워 식도락을 위해 입에서 맛만 보고 뱉어내는 극한의 방법까지 썼다. 전문적으로 음식을 하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나타났고, 이 요리사들은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요리법과 음식을 개발했다. 재료에 대한 수요도 끝이 없어 머나먼 곳의 희귀한 재료를 수입했으며, 많은 종자를 가져다 재배하기까지 한다. 로마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권력층들은 부를 이용해 식도락을 탐미했다.


“버터는 혀끝을, 홍차는 역사를 바꿨다”

“서양 중세가 후추의 매운맛을 선호한 신료(辛料)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버터나 허브 등 부드럽고 순한 맛 위주의 음식이 널리 퍼진 향료(香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요리로 대표되는 부드럽고 섬세한 맛, 달리 말하면 ‘느끼한’ 맛의 정점에 버터가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인들이 중세 때마다 거의 끼니마다 맥주를 마셨던 일차적 이유는 위생 때문이었다. 오염된 식수 때문에 질병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에 맥주는 건강음료였던 셈이다. 그러나 과다한 알코올 섭취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맥주 대신 중동과 극동 지역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맛의 커피와 홍차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18세기 서구인들의 혀끝을 사로잡은 맛은 무엇일까. 주경철(서양사학)·민은경(영어영문학) 서울대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열린 한국18세기학회(회장 안대회) 주최 가을 학술발표회에서 각각 버터와 홍차를 18세기 유럽인들의 미각을 유혹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들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지난 5월에 이어 미각이란 키워드로 18세기 동서양의 문화현상을 보는 ‘18세기의 맛’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모임이었다.
오늘날 서양 요리 대부분의 소스에 사용되는 버터는 우리 음식에 들어가는 장(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날 ‘버터, 섬세한 맛의 승리’란 주제로 발표한 주 교수에 따르면, 맛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 사회의 사람들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배하는 실체다.
역사가들이 ‘미각의 구조’라고 부르는 것으로, 한국과 태국, 프랑스 등 각 나라마다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나름의 특이한 미각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어 공동체 구성원들을 구속하고 지배한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개발·전파한 버터가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만 인기를 누리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6∼17세기 들어 남쪽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한 주 교수는 “인간의 욕망이 사회구조(여기서는 ‘미각의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하며 맛이라는 게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것만 아니고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맛을 평가하고 요리법을 퍼뜨리는 주역은 대개 상류층 인사들인데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음식의 독점, 즉 희소성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중세 유럽에서 매운맛이 그토록 고귀한 지위를 누린 것은 천국(지상낙원)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얻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후추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직항로가 개척되고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가격이 하락해 모든 사람이 후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상류층은 그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며 최대한 섬세한 맛을 내는 버터에 주목하게 됐다.
주 교수는 “유럽 음식의 역사를 장기적 시각에서 고찰한다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중세의 매운맛에서 근대의 부드러운 맛으로 이행한 것이고. 그 정점을 차지한 것이 18세기 프랑스 요리였다”고 밝혔다.
민 교수는 ‘홍차에 목숨을 걸다’라는 주제발표에서 17세기 만해도 차하면 주로 녹차를 마시다가 18세기 들어와 영국에서 홍차가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된 이유에 주목했다. 석회염 등의 미네랄이 다량 포함된 영국의 경수(硬水)에 홍차가 진하게 잘 우러났다는 것. 이와 함께 일 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계속된 영국에서 홍차는 추위를 덜어주고 위생적인 식생활을 보장해줬다.
그 결과 1741년 80만 파운드의 차를 소비했던 영국인들은 1750년 250만 파운드, 1784년에는 1100만 파운드에 가까운 차를 소비했다. 1693년과 1793년 사이 차 수입이 400배나 증가했다는 놀라운 통계도 있다.
하지만 차 소비의 증가는 영국 경제에 갈수록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면, 중국은 영국의 상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영국은 갈수록 심각한 무역적자를 떠안게 됐다. 이에 영국은 차를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했고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팔아넘겨서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고자 했다.
민 교수는 “19세기 아편전쟁은 사실 차 전쟁인 셈”이라며 “우아한 홍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사고 팔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불사한 영국을 생각하면 실로 홍차는 목숨을 걸고 마신 음료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창숙(중어중문학) 서울대 교수는 1783년(건륭 48) 1월 1일(양력으로 2월 2일) 설날 점심 연회에 만한전석(滿漢全席)과 술안주 등으로 총 153종의 음식이 올라간 중국 청나라 건륭황제의 설날 상차림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