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지식 ≫ 편견과 차별

위선, 비일관성이 가장 인간적 모습

Some We Love, Some We Hate, Some We Eat
by Hal Herzog :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개를 대상으로 생체해부실험을 집도해 본 사람은 개가 자신의 손을 핥으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심장이 돌로 돼 있지 않는 이상 훗날 죽음을 앞두고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초판 (1871)

먼저 책 표지가 재밌다. 동물 세 마리의 실루엣 안에 들어있는 제목은 저자가 이 책에서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아마도 강아지)는 ‘some we love(사람이 좋아하는 동물)’을 대표하고, 쥐는 ‘some we hate(싫어하는 동물)’의 상징이고, 돼지는 ‘some we eat(잡아먹는 동물)’의 대명사기 때문이다. 저자 할 헤르조그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이를 ‘인류동물학(anthrozoology)’라고 부른다)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국 웨스턴카롤리나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 ‘Why it's so hard to think straight about animals(왜 동물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에서도 짐작하겠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보이는 모순에 찬 행동들을 다양한 실례를 통해 보여주며 궁극적으로는 왜 인간이 이럴 수밖에 없는가를 독자들도 공감하게 만든다.

●애완동물을 곁에 두는 유일한 동물!

저자는 먼저 미국의 어마어마한 애완동물 숫자를 언급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은 고양이로 8000만 마리다. 미국의 경우 애완동물에 들어가는 돈은 연간 420억 달러(약 47조 원)에 이른다. 이들을 먹이고 치료하고 가꾸는데 이런 천문학적 수치가 들어간다. 지구 건너편에는 수억 명의 사람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개나 고양이는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웰빙사료를 먹는 게 현실이다. 개 한 마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약 8000 달러(900만원)이고 좀 더 오래 사는 고양이는 1만 달러(1100만 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애완동물로부터 사람이 얻는 위안을 생각하면 이런 비용을 지불한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삶을 포기하려던 한 여성은 고양이를 식구로 맞은 뒤 남편이 있을 때보다도 쾌활해졌다. 도대체 애완동물이란 어떤 동물을 말하는 건가. 저자는 펜실베이니아대의 인류동물학자 제임스 셔펠의 정의를 소개한다.

“애완동물이란 뚜렷한 역할도 없이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삭막한 정의에 반발할 것이다. 사람과 애완동물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정서적으로도 강한 유대를 갖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이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 많은 경우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고 폭로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다보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애완견을 들인 뒤 개에게 시달리다 못해 이혼한 부부도 있다. 미국에서 매년 8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밟지 않으려다가 다쳐서 병원신세를 진다. 또 매년 450만 명이 개에 물리고 이 가운데 80만 명 이상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가 애완동물을 키우게 됐을까. 저자는 인류가 애완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건 3만~4만 년 전이라고 추측하면서, 이는 일종의 ‘밈(meme)’, 즉 문화의 유전 또는 확산이라고 주장이다. 즉 마을 주변을 떠돌던, 사람을 따르는 성향을 갖게 된 돌연변이 늑대를 사람들이 곁에 두고 키우다가 어느 순간 동물 이상으로 생각해 집에 들이는 일이 생겼는데 이를 모방해 급속히 퍼졌다는 것.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예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만 해도 20세기 초 개는 대부분 집밖에서 먹다 남은 밥을 줘가며 키웠는데,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의 애완견 문화가 소개되면서 급격히 애완동물화 됐다는 것.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이탈리아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의 ‘고양이를 괴롭히는 두 아이’. 저자는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 흉악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지나친 주장이라고 언급한다.한편 동물 역시 외모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세계야생생물재단(World Wildlife Fund)의 로고는 판다다. 멸종위기에 처한 65000여 종 가운데 사실 진짜 절박한 건 중국 도롱뇽 같은 동물임에도 이런 동물이 로고가 될 수 없는 건 어른 키가 되는 몸길이에 콩알만한 눈이 박혀있는 ‘징그러운’ 생김새 때문이다. 고지식하게 이런 동물을 로고로 했다가는 기부금이 급감한다고.

●고기 먹는 사회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급증함에 따라 동물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면 사정이 복잡하다. 채식주의를 택하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윤리적 결정이고 하나는 심리적 결정이다. 사실 채식주의자보다는 채식을 그만둔 사람이 더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 나빠져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도 고기를 ‘끊기’가 어려울까. 저자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답을 찾고 있다. 즉 과일을 주로 먹고 가끔 사냥을 해 고기 맛을 보던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사람으로 진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육식을 하게 됐다. 그 결과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함으로써 뇌가 급팽창하고 대신 턱이 축소됐다는 것. 오늘날 수렵채취인의 삶을 살고 있는 오지의 부락을 조사해보면 육류의 비율이 15% 이하인 곳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지성이 너무 발달하다보니 윤리의식이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진화를 한참 거슬러 채식주의를 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침팬지가 사로잡은 원숭이의 사지를 찢는 모습을 보면 일말의 동정심도 찾을 수 없다”며 “사람은 닭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먹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종”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서 1인당 섭취하는 육류의 양도 늘어났다는 것. 미국인들은 1년에 고기를 330억kg나 먹는다! 한 사람당 110kg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수십 년 사이 고기섭취량이 수십 배 늘어났다. 틸리(Tilly)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저자 역시 고기를 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애완용으로 키우는 동물은 뭐고 잡아먹는 동물은 또 뭔가. 이쯤에서 저자는 서구인들이 애완동물을 이야기할 때 단골메뉴인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연간 1인당 개고기 소비량이 80g에 불과해 중국이나 몇몇 동남아 국가보다 적다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사례를 들고 있다.

아마도 한국처럼 다른 면에서는 꽤 선진화된 나라가 유독 서구인이 민감한 문제에 꿋꿋하게 버티는 게 흥미로워서일 것이다.저자의 인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55%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75%는 개고기를 먹는 걸 법으로 막는데 반대한다고 한다. 나는 찜찜해서 안 먹지만 우리 문화를 두고 뭐라고 하는 건 무례하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식용으로 삼는 개는 ‘nureongi(누렁이)’라는 중간 크기의 털이 누런 개라고 소개하면서, 누렁이는 애완견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장 한쪽에서는 애완견이, 길 건너에서는 개고기가 팔리는 ‘이색적인’ 풍경을 언급한다. 아무튼 저자는 여기서 애완동물과 식용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를 언급한다. 즉 이름이 있느냐 여부다. (아마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누렁아~’하면서 키우던 누렁이를 복날에 잡아먹는 다는 건 모르나보다!) 사람들이 동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그 동물은 가족이 된다. 반면 가축은 이름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농장의 경우). 아니면 양계장의 닭들처럼 아예 번호조차 없다. 이런 익명성이야말로 사람들이 ‘무심하게’ 동물을 잡아먹는 배경이 된다.

●투계는 동물학대인가

한편 저자는 동물에 대한 잔인성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적’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의 경우 많은 주에서 투계가 불법인데 이는 도박성 때문이 아니라 동물학대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는 직접 불법으로 열리는 투계장을 방문해 취재를 한 뒤 투계가 정말 식용 닭보다 더 잔인한 취급을 받느냐고 반문한다. 투계의 삶을 들여다보자. 알을 깨고서 6개월 간 병아리는 마음껏 뛰어다닌다. 그 뒤 투계로서 변모하는 과정에서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좋은 음식을 먹으며 때로는 벌레도 잡아먹고 짝짓기도 한다. 그리고 체력이 최고조에 이른 두 살 무렵, 며느리발톱에 쇠발톱(gaff)을 차고 경기장에 나간다. 여기서 살아날 확률은 50%. 그렇다면 식용 닭의 운명은 어떨까. 알에서 나온 병아리는 곧바로 양계장으로 옮겨져 속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합사료를 먹는다. 벌레는커녕 진짜 햇빛도 쬐어보지 못한다. 몸집이 커짐에 따라 닭장이 너무 좁아져 제대로 서있지도 못한다. 주위는 온통 배설물 범벅에 암모니아 악취로 눈과 폐는 염증으로 시달린다. 42일이 지나 최적의 조건이 되면(투입 사료당 최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수만 마리가 들어있는 건물 안에 사람들이 투입돼 닭들을 닭장차에 옮겨 싣는다. 이 과정에서 약 25%가 다친다. 공장에 도착한 닭들은 거꾸로 매달려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동하고 머리가 물에 잠기면 전기쇼크로 죽는다. 그 뒤 돌아가는 톱날이 목을 자르고 뜨거운 물에 담겨 털이 뽑히고 배를 째 내장을 거둬내면 생닭 한 마리 ‘완제품’이 나온다. 이런 운명을 겪는 닭들이 미국에서만 매년 ‘90억’ 마리다. 내가 닭으로 태어난다면 어느 쪽을 택할까.

실험동물 역시 이 책에서 비중에게 다룬 대상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근거로 그 많은 동물을 실험으로 희생시키는가. 정신 능력의 차이인가? 그렇다면 백치인 사람은 왜 실험대상이 되면 안 되는가?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실험동물은 생쥐(mouse)다. 저자에 따르면 생쥐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1902년부터다. 1909년 최초로 독특한 유전자 변이가 있는 품종이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그 뒤 수많은 돌연변이 쥐들(다수가 선천성 질환에 걸린)이 공급돼 생명과학 연구에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조차 실험동물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가 없는데, 저자는 미국에서만 매년 1억 마리가 ‘소모’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20년 동안 연구한 결과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기름유출 현장에서 시커먼 기름범벅이 된 바닷새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면서도, 배달된 프라이드치킨을 우적우적 씹으며 맥주를 들이키는 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류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이런 모순들이 비정상이거나 위선은 아니라고 믿게 됐다. 오히려 불가피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인간임을 보여준다.”

► 비일관성 : 육식 채식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사고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비일관성"이라고 지적한다. 모피코트를 입은 채 강아지를 안고 가는 여성을 생각해보라. 헤르조그는 "이런 비일관성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한때 헤르조그는 보아뱀을 키웠다. 고양이 애호가인 이웃이 "헤르조그는 보아뱀에게 고양이 사체를 먹인다"는 루머를 퍼뜨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보아뱀에게 고양이 사체를 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보아뱀은 1년에 고기 2㎏을 먹고 고양이는 21㎏을 먹는다. 생쥐 입장에서 보면 보아뱀보다 고양이가 10배 이상 나쁜 동물이다. 하물며 미국에서는 매년 200만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주인 없이 버려져 안락사된다. 헤르조그는 "그렇다고 내가 정말 보아뱀에게 고양이 사체를 먹인 적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참고로 국내 동물원은 사자·호랑이에게 마리당 하루 5~6㎏씩 살코기를 준다. 에버랜드 사파리 측은 "배가 부르거나 몸이 아파 덜 먹는 맹수는 봤어도 도덕적으로 괴로워서 덜 먹는 경우는 못 봤다"고 했다. 인간은 죄 많은 동물이지만 자기가 죄 많은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