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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없는' 바닐라라테?…한 잔 속 달콤한 과학
아스텍 제국부터 시작된 바닐라·당분 '달콤한 궁합'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2020-05-01 15:16 송고

바닐라 열매의 이름을 '바닐라 콩'이라고 부르지만 바닐라는 콩과는 관련이 없는 난초과의 덩굴식물이다. 바닐라콩에는 물 35%, 당 25%, 지질 15%, 기타 미네랄 6%, 그리고 셀룰로스 등 기타 물질이 들어있다.
당분이 많더라도 바닐라는 향만 더해줄 뿐 음식에 많이 들어가지 않는 '향신료'이기 때문에 바닐라가 들어간 음식과 단맛은 사실 큰 관계없다. 그런데도 바닐라 향을 '달콤한 향'이라고 표현하는 건 뇌의 착각 때문이다.
바닐라 향을 내는 물질은 달지 않지만, 바닐라 향을 맡으면 맛을 다르게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스위스의 데이비드 라베 연구진은 후각과 미각의 통합 작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쓴맛 나는 음료에 바닐라 향료를 조절해가며 피험자에게 맛을 평가하게 했다. 바닐라 향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코마개를 착용하게도 하고 그냥 마시게도 했다.
그 결과 코마개를 하면 바닐라 향 존재 여부에 관계없이 맛의 차이를 못 느꼈다. 반면에 코마개를 빼면 바닐라 향이 더해진 코코아 음료에서 쓴맛이 덜 나고 단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는 답변을 얻었다. 피험자들은 카페인을 섞은 우유에도 같은 실험을 했을때 코마개를 빼자 음료가 더 쓰게 느껴진다고도 답변했다.
바닐라 향과 단맛의 관계에 집중한 연구도 있다. 일본 히로시마 슈도 대학의 노부유키 사카이 연구팀은 바닐라 향을 더하고 빼며 피험자에게 아스파탐을 녹인 단맛이 나는 용액을 줬다. 바닐라 향이 더해질 때 피험자들은 더 달다고 느꼈다.
과학계에서는 이러한 후각과 미각의 연관성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핵자기공명장치(MRI)를 활용한 뇌 연구도 이어나가고 있다.
인류는 이런 바닐라 향과 단맛의 '과학적' 궁합은 일찍이 이용했다. 아스텍인들은 코코아에 꿀과 바닐라를 섞은 음료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1519년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테카 제국 침공하며 유럽에 카카오 콩과 함께 바닐라콩이 전해져 바닐라를 넣은 초콜릿 음료가 상류층에서 유행했다.
바닐라의 매력적인 향기는 16세기 유럽 뿐 아니라 현재에도 인류를 사로잡고 있다. 문제는 그 바닐라가 여전히 귀한 향신료라는 점이다.
세계의 주요 바닐라 빈의 생산지인 마다가스카르에 2017년과 2018년 태풍 피해가 크게 발생했다. 그러자 바닐라는 한때 킬로그램당 600달러를 넘는 가격에 거래돼 같은 무게의 은보다도 비싸지기도 했다. 바닐라 가격이 치솟자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바닐라를 둘러싼 절도·강도·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태풍이라는 변수를 제외해도 바닐라는 흔히 '사프란에 이어 두번째로 비싼 향신료'라 불린다. 바닐라 재배·가공이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이다.
바닐라의 꽃은 한 덩굴에서는 하루에 한 송이씩 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꽃은 그냥 떨어지고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자연 수분은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꿀벌을 매개로 이뤄지지만 그마저도 효율이 좋지 않다.
결국 꽃이 피는 시기에 사람이 덩굴들 사이를 오가며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를 옮겨야한다. 생바닐라 열매 1킬로그램을 얻기 위해서는 600송이의 꽃을 수작업으로 수분시켜 줘야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비교적 저렴하게 바닐라 라테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마시는 바닐라 라테나 아포가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는 바닐라 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바닐라 향은 대부분 '합성품'이다. 바닐라 특유의 향은 바닐라 콩에 2% 포함된 '바닐린'이 만들어 낸다. 바닐라콩에서 알코올 추출을 통해 발견돼 바닐라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바닐린 가루에 설탕을 더해 졸이거나 액상과당을 섞어주면 바닐라 시럽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1876년 독일의 칼레이머가 산업적으로 쓸 수 있는 생산법을 개발하며 바닐라향은 대량 생산을 통한 대중화의 길이 열렸다. 추산하는 주체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국제 바닐라 향 소비의 90%이상은 합성 바닐라로 이뤄진다.
현대의 바닐라 합성은 목재를 가공한 펄프의 리그닌이나 석유에서 추출한 구아야콜을 원료로 쓴다. 리그닌 이용 생산법은 펄프를 이용하기에 삼림 파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구아야콜을 이용한 생산법이 주를 이룬다.
근래에 들어서는 설탕을 넣어주면 바닐린을 생산하도록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연구도 행해지고 있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