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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의 역사

향료의 역사
- 향신료의 역사
- 향료의 도시

향료 역사의 시작과 고대 이집트
  
  향의 역사는 인류의 불의 역사와 함께 한다. 구석기 시대 고대인들은 우연히 산불 또는 낙뢰등에서 불을 발견하여 사용하게 되었고, 불을 돋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와 수지, 풀 등을 태웠는데, 그 중 어떤 것들은 타오르면서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향취는 고대 에트루리아인과 오스크인에게 신적인 감각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향료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었다. 향료를 나타내는 단어는 영어로 perfume, 불어로parfum,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profumo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라틴어 per fumum (through smoke)에서 유래하였는데, per는 ‘통하여’, fumum은 ‘연기’라는 뜻이다. 향기나는 수지나 나무, 풀을 태우는 것에서 향료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향료는 신과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종교적 매개체였다.   이렇게 향료는 종교적인 의식의 하나인 제물을 신에게 바치고 기도할 때 향을 피우는 훈증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향료에 향을 피웠으며, 그리스에서도 종교의식에 많은 향료를 사용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인류는 병이나 상처에 시달리면 주위의 식물이나 동물에서 약효가 되는 성분을 찾았다. 그 중에서 향기가 좋은 성분을 점차 식물성 또는 동물성 향료로 이용되었다.
  
    인류최초로 향이 발견된 것은 언제일까? 바로,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왕, 이집트 제18왕조 파라오(BC 1580~1314년)인 투탄카멘의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다. 석고로 만든 아라바스타 항아리에 채워진 향고는 20세기 발견 당시은은한 향기로 남아있어 전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향고는 손에 묻히면 녹는 끈적끈적한 물질로 냄새는 느끼한 느낌으로 마치 미타리과 식물의 냄새를 연상시킨다. 또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방부성을 가진 유향이나 보류성이 높은 방향성 수지를 사용하여 3000년 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는 의학, 약학, 향수 제조, 미용술을 포함한 과학의 발상지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향료 제조에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에게 바치고 미라를 만들기 위해 향료를 사용하였다. 모든 사원에는 방향제 물건이 놓여있는 조그만 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례의식에 향유를 다량 사용하여 훈향하고 방부하였다. BC 2세기경에 세워진 호루스 사원의 벽화에는 값비싼 향료의 처방 기록이 있다.   BC 1세기 클레오파트라 시대에는 나일 강변에 향료공장을 지었으며, 장미 꽃잎이 뿌려진 침실에 딸린 배를 향료를 뿌려 장식하였고 몸에는 시벳(Civet)이 조합된 향 연고를 발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의 향료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조합향료인 키피이다. 그리스, 로마 등에 수출되었으며 제조법이 복잡하여 500g을 만드는데 약1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키피의 조제법에 관해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6가지의 허브와 몰약, 헤나 카다멈, 주니퍼, 사프란, 벌꿀, 건포도등을 비롯한 수지들을 모두 포도주에 담가 놓는다. ”또한 그는 키피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이 물질은 사람을 잠에 빠지게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꿈을 생생하게 한다. 한밤에도 가장 환희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 키피는 이집트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신성한 향료로서 해뜰녘에는 신전에서 분향하고, 저녁에는 침실에서 사용하였다.

   클레오파트라에게 향이 없었다면... 로마에서 시저를 잃을 뒤 '심홍 돛을 단 카레선위에서 감송과 육계의 향기를 미풍에 실어 보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던 클레오파트라...그녀의 뛰어난 미모 뒤엔 언제나 향유와 향고가 있었다. 당시 그녀는 매일 시돈산 감송유를 몸전체에 바르고 양손에는 1번에 400데나리온의 향고를 발랐고 목욕후에는 장미, 수선, 백합 등의 향내가 담긴 향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집에는 46시간 동안 방향을 가득채워 늘 향으로 집안을 채웠고 향로가 들어있는 사탕과자나 음료수, 사벳트 등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한편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등지로 퍼진 향수는 귀족계급의 기호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만큼 원료재배와 제조기술이 일정지역에 국한 되어 향유와 향고는 고대 귀족들에겐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일반인들이 향을 갖는다는 건 꿈이었다고 한다.

   ① 그리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방향제 오일과 연고의 이용하였으며, 오일은 단지 향료뿐 아니라 미용과 의료 목적으로도 사용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향료는 BC 10세기의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자주 언급되었다. 그리스인들은 향료를 신에게 바치기 위해, 요리를 위해, 의학적인 목적으로 또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향의 원료를 사용하였지만 특히 꽃으로부터 추출된 향료를 선호하였다. 바이올렛이 유행하고, 장미로 머리를 장식하고 박하 크림을 바르는 등 향료 소비가 많아짐에 따라 한때 아테네에서 칙령으로 향료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향료 사용이 일시적으로 금지된 적도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리스의 향료 제조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고 한다.

  ② 로마 :  로마인들은 호화로운 목욕문화와 더불어 매우 사치스럽게 향료를 사용하였다. BC 1세기경부터 로마인들이 향의 재료들을 남용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로마인들은 특히 신선한 장미꽃 잎을 좋아하였다. 네로 황제는 향료를 바른 새가 집안을 날아다니게 하였고, 장미 분수를 만들었으며, 호화로운 장미 목욕을 하였다. 또한 황후의 장례식에는 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향료의 10년치를 다 소비했다고 한다.

③ 인도와 중국 :  인도와 중국에서 향료를 사용한 것은 고대 이집트와 비슷한 시기라고 한다. 인도의 대표적인 향료로 백단향인 샌달우드가 있다. 현재 인도 남부 마이소르주는 세계 최대의 샌달우드 재배지이다. 중국은 사향을 향료와 의약품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사향을 탄 물에 목욕을 하고, 관료들을 사향먹을 최고의 선물로 주고 받았다, 또한 중국은 레몬, 오렌지, 만다린 등과 같은 감귤류의 원산지로서, 중국의 감귤류는 10세기경 아랍 상인들에 의해 지중해 지방에 소개되었다.

④ 아라비아
   그리스의 과학 기술을 전승한 아라비아 인들은 7~8세기경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고안된 증류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증류법은 향료 추출에 매우 중요한 기술로서 아라비아인들은 증류기를 만들어냈다. 아라비아는 동서 무역의 중계지로, 동인도의 육계(Cinnamon), 후추, 정향(clove), 육두구(nutmeg), 중국의 사향(musk), 장뇌(camphor), 인도의 백단향(sandalwood), 파출리(patchouli)등의 향료가 거래되는 장소였다. 아라비아인들은 고형 비누 제조에 뛰어난 기술을 보였으며, 향료를 농축시켜 에센스, 장미수, 팅크쳐(tincture) 등을 제조하였다. 무엇보다도 아라비아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세련된 기술과 문화를 중세의 유럽에 전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0 ~ 13세기 십자군기사와 향신료
   로마가 멸망한 후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카톨릭 교회의 엄격한 지배아래 향은 관능적이고 환락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부정적 비판을 받아 쇠퇴하였다.

   십자군기사와 향 투르크족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떠났던 십자군원정(1096~1270년) 7차례 일어난 십자군원정은 동.서유럽 무역의 활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 그리스, 이집트의 향을 서유럽에 소개한 중요한 계기였다. 되풀이되는 원정속에서 동.서의 교통도 점차 넓어지고 후추, 육계, CLOVE 등 향신료가 급속히 서유럽에 퍼졌다. 특히 1202년에 일어난 제 4차 십자군원정은 십자군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과 합세해 콘스탄니노플을 공격, 그 결과   동쪽으로 향한 지중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베네치아는 동방무역을 통해 동양의 비단과 자수품, 향료 등을 들여왔고 유럽에 향수와 화장품의 원료를 조달하는 창구이자 유럽에서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지탈환을 위해 떠났던 십자군기사. 바로 이들이 당시 종교적인 열망 만큼이나 유럽전체를 향료 내음으로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14세기 포도주와 향료

   오늘날의 향수가 발견된 것은 바로 포도주 때문이었다. 비법은 바로 '알코올' 어느 연금술사가 오랫동안 향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 비법을 발견한 것이다.  금을 만드는데 실패했던 그들은 포도주 증류과정 중에 알코올을 발견, 각종 향신료와 섞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의 물, 기름등에 의한 기체 보다 모든 방향물질을 용해하는 성질이 뛰어난 '알코올'은 휘발성향을 오래 유지시켜줄 뿐 아니라  원료로만 머물렀던 향료를 드디어 '향수'라는 개념으로 끌어올리게 했다. 한편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로즈메리(Rosemary)와 수지를 증류시켜 알코올을 뽑아내고 여기에 증류과정에서 나온 로즈메리의 잔여물을 첨가한 '헝가리워터(Hungary Water)'인데 오늘날의 오데코롱(Eau de Cologre)의 전신이기도 하다.  1370년 최초의 알코올 향수인 ‘헝가리워터’가 탄생하였다. ‘여왕의 물’이라 불렸던 헝가리 워터는 한 수도사에 의해 개발되어 당시의 헝가리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쳐졌다. 여왕은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결’로이 향수를 사용하였으며, 당시 72세의 늙고 추하던 여왕은 헝가리 워터의 도움으로 폴란드의 왕에게 청혼을 받아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최초의 헝가리워터는 로즈마리에 마조람, 박하류인 페니로얄을 혼합한 간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레몬, 라벤더, 오리스등이 더해졌다고 한다.

15 ~ 17세기 : 향신료의 역사

   콜롬버스가 닻을 올린 이유 콜롬버스, 바스코다가마, 마젤란 등이 미지의 바다에 도전했던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향료군도를 찾기위해서였다. 단지 관세를 물지않고 인도나 동남아 등지로부터 향료를 마음껏 가져오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당시 후추, 계피, 전향유 같은 향료는 저장한 고기, 생선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좋게할 뿐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 등 전염병을 방지한다고 믿을 정도로 약품으로 이용되었고, 금은보화와 맞바꿀수 잇을 정도의 대단한 재화가치를 가졌던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몸을 던졌던 항해가들. 바로 그들뒤엔 항해권을 독점해 막대한 재산을 챙기려는 당시 포르투칼, 스페인왕의 야망이 깔려있었다. 한편 1508년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성마리베라의 도미니카회 수도사는 향료조제용 아뜨리에에서 '유리향수'를 만들어 당시 유럽상류 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533년 앙리2세때 파리 노트르담사원 근처에 제1호 향수전문점이 연 이후 향료의 메카는 이탈리아에서 비로소 파리로  옮겨졌다.
  
17세기 : 프랑스의 가죽 산업과 향료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향을 화장과 청결의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았다. 향의 사용은 아직까지 귀족계급의 전유물이었으나, 조금씩 일반 대중의 생활 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문명을 꽃 피웠으며, 향수와 화장품 문화를 주도하였다. 1533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드 드 메디치 공주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세련된 이탈리아 향문화를 프랑스에 가져왔다.   카트린드 드 메디치는 프랑스 향수산업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메디치 가문의 전속 조향사인 레나토 비앙코는 카트린느 공주와 동행하여 파리에서 가게를 열기도 하였다. 그녀는 또한 피혁산업이 발달한 남프랑스 그라스(grasse)지역에 향수산업을 일으켰는데, 이는 그 당시 향 산업이 발달된 아라비아를 의식한 것이었다.
  
  향수하면 프랑스 파리를 연상시킨다면 큰 오산이다. 오늘날 향수산업의 큰획을 그었던 곳은 파리가 아닌 [그라스]이다.  그라스 지방은 남프랑스 지방의 해발350m구릉에 위치한 지중해의 햇살이 따사롭게 빛나는 곳이다. 향료의 원료들이 풍부하게 자랄 수 있는 천연적인 기후 조건 아래 최초에는 가죽 냄새를 제거하는데 향을 사용하였으며, 곧이어 향수의 메카로 발전하였다. 12세기 무렵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가죽과 유리를 수출하여 공업과 상업이 번창하기 시작, 16세기말부터 복격적으로 향료산업에 뛰어들어 향기나는 장갑, 모자, 벨트 등 향료가 섞인 피혁제품을 유행시켰다. 이때 향기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루이 14세는 향료와 향수를 산업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17세기 중엽에는 여성들은 향냥이라는 향주머니를 즐겨차고 다녔으며 그 이후 파리에는 수많은 향료, 화장품전문점이 열기시작했는데 특히 '르네'점이 유명하였다.

18세기 궁정의 향수
   18세기에는 프랑스 궁정을 중심으로 온갖 사치스런 향문화가 발달한 시기였다. 루이14세는 당시 최고의 향기를 풍기는 제왕이라고 불려졌으며, 루이 15세 시대는 프랑스 궁정은 ‘향기의 궁정’으로 불릴 정도로 향수를 많이 사용하였다. 18세기 대표적인 향수는 오 드 코롱이다. 이탈리아인 장폴 페미니스는 이탈리아에서 독일의 쾰른에 거주하면서, 레몬과 네롤리, 베르가못, 라벤더 등의 향료를 조합하여‘경탄할 만한 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세기 초에 페미니스의 후계자인 장 마리 파리나는 이것을 오드코롱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파리에서 제조,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곧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향수의 비법은 1862년 파리의 로제 앤 갈렛(Roger & Gallet)사에서 입수하여 ‘장 마리 파리나’라는 향수를 출시하였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연상시키는 향료와 향수의 사치품을 엄격히 금하였으며, 19세기 중반까지 향료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1세 황제가 되었으며 부인인 조세핀은 황후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아래 사치품으로 금기된 향료와 향수의 사용을 허용하였으며 향료산업은 다시 부활하였다. 황후 조세핀은 매우 사치스러운 여인으로 장미 재배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능적이고 섹시한 사향을 사랑하였다. 반면 나폴레옹은 청결을 중시했으며 상쾌한 감귤류 향수인 ‘오 드 코롱’을 특히 좋아하여 한 달에 60병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부인인 마리 루이즈는 바이올렛에 관심이 많았다. 1817년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과 결별한 후,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쪽의 파르마(parma)지방에 은거하며 바이올렛 향료산업에 전력을 다하였다고 한다.   프랑스 제 2 제정시대에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유제니(eugenie)는 프랑스 향수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1828년 향수의 명문가인 겔랑 가문을 창시한 피에르 프랑소와 파스칼 겔랑은 1850년 왕후 유제니를 위해 황제의 물이라는 뜻의 오드 코롱 엉페리얼을 창조하였다. 왕후 유제니는 고급스런 향기에 만족하여 피에르 겔랑을 황실의 조향사로 임명하였다. 이 향수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것으로서, 베르가못, 레몬, 네롤리, 버베나, 오렌지블로섬, 로즈마리 등과 다양한 종류의 꽃향이 조합된 향수이다.
  
19세기 : 합성향료의 개발

  천연향료에서 합성향료의 시대로.. 불과 150가지의 향과 향료를 오늘날 40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한 19세기. 바로 다양한 제조방법으로 비로소 향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특정계급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용했던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들 까지도 향수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유기 화학이 발전하자 19세기 중엽의 화학자들은 다양한 추출법과 조향기기를 만들어 원료로서의 향수보다는 제조기법을 발전시켰다. 아울러 화학적인 방법으로 식물, 동물 등의 미세한 부분까지 추출하는데 성공하여, 천연향료에서 동물성, 합성향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다양한 향수를 만들었다. 단순히 원료에 그쳤던 향수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한편 최초의 합성향료를 만든 프랑스 화학자, 모리나드(MOLINARD)는 귀족계급이라는 특정계급에 그쳤던 향을 대중들에게 퍼뜨리게 한 일등공신역할을 했다. 또한 근대 향수의 아저지로 불리는 겔랑의 유명한 조향사인 '자끄겔랑'을 시점으로 향수는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20세기 : 합성향료의 개발

  패션과 향과의 환상적인 만남 1921년 패션과 향수의 만남으로 향수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바로, 샤넬과 조향사 어네스트보우(ERNEST BEAUX)가 만든 [샤넬 NO.5]이 그것이다. 모스크바 화학자인 어네스트보우는 패션의 불필요한 요소를 없앤 'Less is More(덜함은 더함이다)라는 샤넬만의 독특한 패션스타일과 실루엣 칼라 등을 합성향료 수종의 알데히드를 조합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향산업은 패션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비로소 향수산업은 패션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향수와 유명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향수브랜드시대를 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샤넬을 비롯해 랑방, 장빠뚜, 피에르가르뎅, 크리스챤디올, 지방시, 이브생로랑 등이 있다

합성향료(원료)의 역사

- B.C. 484∼425 : Herodotus가 Terpentine oil 언급  
- A.D. 1100 : 북부 이태리에서 처음으로 알코올 증류 성공
-1370 : 알코올을 사용한 첫 향수  Hungarian Water 처음은 순수하게 Rosemary 증류물, 후에 Lavender 와 Marjoram을 포함시킴.
-1560 : 이태리인 Tombarelli는 Catherine de medici의 일행으로 프랑스에 왔고 화정유와 화장수를 Grasse에서 생산 시작
-1710 : Eau de Cologne이 처음 소개되었다
-1825 : Coumarine 발견
-1891 : Menthol 합성
-1926 : Muscone, Civettone 구조결정(Ruzicka)
-1928 : Exaltolide 등의 대환상 Lactone 합성(Ruzicka)
-1939 : Ruzicka 노벨상 수상
-1948 : Muscone, Civettone 합성
-1981 : α-Pinene으로부터 Linalool 합성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3-05-02 / 등록 2010-03-24 / 조회 : 22089 (891)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