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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


이화여대 이규진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불고기'란 단어가 표제어로 제시된 첫 사전은 1950년『큰사전』으로 뜻이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로 기록되어 너비아니의 뜻인 ‘저미어 양념하여 구운 쇠고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60년의 세월동안 편찬된 17권의 사전에서 너비아니는 그 의미에 거의 변화가 없이 뚜렷한 정체성을 갖는데 비해, 불고기는 시대에 따라 ‘구워먹는 짐승의 고기’부터 너비아니와 동일한 의미까지 그 의미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국물이 있는 육수 불고기를 언급한 것은 조사대상 사전 중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까지 조리서에서 발견된 최초의 ‘불고기’라는 단어의 등장은 1958년 방신영의『고등요리실습』에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속칭이며 상스러운 부름”이라는 글에서 볼 수 있다. 불고기는 1972년『생활요리:동양요리』에 비로소 독립된 음식명칭으로 나타났으며 1980년의『한국의 가정요리』에는 육수 불고기가 등장하였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주요 육류구이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1800년대 말의『시의전서』부터 1987년의『한국의 맛』까지 총 11권의 조리서를 선정하여 고찰한 결과, 가장 빈도수가 많은 대표적인 한국의 육류구이는 너비아니, 갈비구이, 제육구이였다. 너비아니의 주재료는 쇠고기 등심이 가장 으뜸으로 꼽혔으며 조사대상 조리서 에 나타난 보편적인 너비아니의 조리과정은 ‘고기를 얇게 저며 칼집을 넣고 양념에 버무려 굽거나 혹은 재웠다가 굽는 방법’이다. 양념은 ‘간장’을 기본으로 하여 ‘깨소금, 후추, 파, 참기름, 설탕, 마늘, 배즙’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갈비구이 양념에서『시의전서』의 새우젓국과『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간장을 쓰지 않고 소금을 사용한 ‘옛적 갈비 고명’ 외에 그 밖의 조리서의 갈비 양념은 간장을 기본으로 깨소금, 후추, 파, (참)기름, 마늘이 공통적으로 쓰였다. 조사대상 조리서에 나타난 보편적인 갈비구이의 조리과정은 ‘갈비를 잘라 칼집을 넣고 양념에 버무려 재워 굽는 방법’이다. 갈비구이의 양념은 ‘간장’을 기본으로 하여 ‘깨소금, 후추, 파, 참기름, 설탕, 마늘, 배즙’을 보편적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너비아니의 보편적인 양념과 같다. 제육구이 조리법은 대부분의 조리서에서 고기를 얇게 저며 잔칼질 후에 양념해서 굽고 있다. 조사대상 조리서에 나타난 보편적인 제육구이의 조리과정은 ‘고기를 얇게 저며 칼집을 넣고 양념에 버무려 굽거나 혹은 재웠다가 굽는 방법’으로 너비아니와 같다. 제육구이의 양념은 모든 조리서에 ‘간장’이 들어가며 『조선요리법』부터는 고추장이 사용되었다. ‘깨소금, 후추, 파, 참기름, 설탕, 마늘’이 들어가는 것은 갈비구이, 너비아니와 같지만 쇠고기에는 ‘배즙’을 쓰고 돼지고기에는 ‘생강즙’을 사용하였다.
현재까지 찾은 문헌 가운데서 ‘불고기’라는 용어를 최초로 볼 수 있는 것은 1922년 4월 1일「개벽」제22호에 실린 빙허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墮落者)’이다. 여기에서의 '불고기덩이'는 너비아니류의 음식이라기보다는 ‘구운 고기 덩어리’의 의미로 보인다. 그 밖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불고기’라는 단어는 너비아니류의 한국음식(1926), 국밥집의 불고기(1927), 평양의 명물 석쇠 불고기(1935,1939), 경상도 술안주 불고기(1936)등이다. 그리고 대중가요에서 반찬으로서의 불고기(1938)가 등장하였다. 그 의미는 다르지만 '불고기'라는 단어가 이미 1930년대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통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일본의 야키니쿠(燒肉)는 그 유래를 1945년 이후에 일본에 살던 재일교포들이 만들어 먹었던 ‘호르몬 야끼’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불고기와 갈비구이를 먹었던 기록으로 보아 이런 과정을 통해 불고기가 부분적으로 일본에도 전파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평양식 불고기는 현대 일본 야키니쿠와 유사하여 일제 강점기에 평양지역 불고기가 일본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대적 배경이 1924년으로 밝혀져 있는, 1927년 2월 1일자「별건곤」에 실린 소설 “廢物(폐물)”과 1929년 9월 27일「별건곤」기사 등으로 보아 1920년대 중반쯤에는 갈비구이가 선술집이나 대중식당에서 상업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쇠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는 부위가 덜 분화되어 있었고 조리법도 다양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저육’과 ‘제육’이라는 단어가 모두 사용되었으며 제육구이가 가장 대표적인 조리법이었다.

육류구이 식문화 ‘발전기’인 1945년부터 1975년 사이의 시기에는 ‘한일관(1939년 창업)’, ‘우래옥(1946년 창업)’, ‘옥돌집(1948년 창업)’ 등 불고기 전문점이 형성되었다. 불고기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너비아니’를 계승하는 ‘석쇠 불고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육수 불고기’가 등장했는데, 첫 등장시기는 6.25 전쟁이후 1960년 이전이라고 생각된다. 1960년대 초반에 일본의 육절기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최초 불고기 불판 특허는 1962년에 ‘불고기 석쇠’라는 명칭으로 박영찬이 냈다. 수원갈비의 원조 ‘화춘옥’은 1945년에 창업했고, 대중적이고 저렴한 이동갈비도 포천군 이동면 일대에 1950, 60년대 사이에 생겨나 갈비구이 집단 촌락을 이루었다.
전통적으로 양념구이가 주류였던 우리의 육류구이 문화에서 생고기를 구워먹는 ‘로스구이’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인기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쇠고기 선호 성향이 뚜렷한 가운데 돼지고기 구이는 우리 식문화에 생소했지만, 1950년대 중반에는 돼지갈비를 주업종으로 하는 전문점들이 생겨날 정도로 점차 익숙해졌다. 육류구이 식문화의 ‘전성기’인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의 시기를 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1976년 9월 외국산 쇠고기가 첫 수입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육수 불고기가 우세해지면서 불고기는 가장 인기 있는 외식메뉴이자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굳건히 자리매김을 했다. 1980년 초반부터 강남지역에 대형 공원식 갈비집이 등장하였다. 이후 강북의 전통 있는 상권에서 강남의 개발지역으로 고객이 몰리게 되었다. 한편 수원, 포천지역의 갈비집들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번창했고 대형화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생등심, 생갈비 등 생고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불고기’ 자체는 쇠퇴가 시작 되었지만, ‘불고기의 후광’을 입은 ‘불고기 버거’가 개발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삼겹살 구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소주안주로 인기를 모았는데, IMF 당시 소위 ‘IMF 삼겹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더욱 대중화 되었다. 육류구이 식문화 ‘정체기’라고 볼 수 있는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량은 감소ㆍ정체되고 전시기의 다양했던 육류구이의 종류가 쇠퇴하고 거의 삼겹살 구이가 독주하는 ‘삼겹살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결정적으로 돼지고기 수요를 촉진한 것은 2003년 말의 미국발 광우병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냉장삼겹살’을 선호하게 되었고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으며 돼지고기의 브랜드화(化)는 대세가 되었다. 이런 돼지고기 수요의 증가 원인은 경기의 불황, 쇠고기 광우병 파동 등이 영향을 주었다. 쇠고기 등심과 갈비는 고급화 경향을 보여 2005년 외식품목 중에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음식은 쇠갈비였다. ‘쇠고기삼겹살’이라는 새로운 부위도 소개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쇠고기 선호사상이 삽겹살 구이의 폭발적인 인기를 통해서 돼지고기 선호로 많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석쇠 불고기의 명맥을 잇는 언양ㆍ봉계식 불고기와 광양 불고기가 재조명을 받았으며, 불고기 자체는 쇠퇴경향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후광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불고기 특구”가 지정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구이는 꽂이에 꿰어 직화구이 하는 적(炙)과 꽂이를 쓰지 않고 철판이나 돌 위에서 간접불로 굽는 번(燔)으로 나누어진다. 적(炙)의 기원은 고구려 시대의 ‘맥적’을 들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서 ‘설야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조선후기 ‘너비아니’에서 현재 ‘불고기’로 연결되고 있다. 적(炙)인 너비아니를 계승하는 의미를 가진 불고기는 석쇠에 굽는 불고기였으나, 6. 25 전쟁 이후에는 육수 불고기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전철’에서 유래된 불고기 판에 간접불로 굽는 번(燔)으로 볼 수 있으며, ‘전골’ 등의 영향으로 국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불고기란 우리나라 전통구이인 적(炙)과 번(燔)을 모두 아우르는 대표 육류구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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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불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메뉴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데, 요즘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에게 인기일 정도로 쇠락했고, 최근 불고기의 어원을 두고 논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불고기(서울식)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것일까? 이화여대 이규진 박사 논문에 따르면 '불고기'란 단어가 표제어로 사전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50년 ‘큰사전’으로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로 되어있어 지금의 불고기와 많은 차이가 있다. 오히려 너비아니가 ‘저미어 양념하여 구운 쇠고기’로 유사하다. 그리고 지난 60년간 사전에서 너비아니는 그 정의가 별로 변화지 않았는데 불고기는 그냥 구워먹는 고기부터 너비아니와 비슷한 의미로 수시로 바뀌었다. 더구나 지금의 국물이 있는 육수 불고기는 언급조차 없었다. 불고기는 생각보다 현대적인 음식인 것이다.
불고기의 특징은 다른 고기구이에 없는 육수와 야채인데 이런 방식이 인기를 끈 것은 6ㆍ25전쟁 이후라고 한다. 쇠고기 공급량은 제한적인데 고기의 수요가 늘자 고기에 충분한 채소와 함께 달콤한 양념 국물을 추가하여 ‘양이 많은’ 육수형 불고기를 고안한 것이다. 그리고 1970∼198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불고기의 특징은 육수와 야채 말고도 녹아 버릴 듯이 얇고 부드러운 고기에 있는데, 거기에는 육절기의 보급이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는 고기를 얇게 썰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60년대 후반부터 고기를 살짝 얼릴 수 있고, 얇게 저밀 수 있는 육절기가 보급되면서 질긴 고기도 얇게 썰어 부드럽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식당과 손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혁신이었다.
식당은 고기가 얇아 양념을 오래 해두지 않아도 맛이 잘 스며들었고, 고기는 아주 빨리 익었다. 그럼에도 육수가 있어서 쉽게 고기를 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불고기 요리에 적합한 불판의 개발도 한 몫을 했는데 고기 불판의 가운데가 위로 볼록하고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멍 덕분에 위쪽에 올려놓은 고기가 흘러내리지 않고, 구멍으로 불꽃이 직접 닿아 육수를 품은 고기임에도 고온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이 충분히 일어났다. 또한 고기에서 배어나온 육수가 국물받이에 모여 야채에서 배어나온 글루탐산과 조화를 이루어 밥을 비벼먹기에 극상의 감칠맛을 제공하였다.
불고기는 이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는 생고기 선호 경향이 높아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육수불고기는 다른 나라에 없는 혁신적인 요리였고, 적은 고기로 만족을 주는 친환경이고 건강한 조리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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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불고기 때문에 크게 실망을 한 적이 있다. 외식이 거의 없던 때 인데 시내에 나가 불고기를 사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고기가 붉게 고춧가루 양념을 한 제육볶음 같은 것으로 기대했는데 고추장은 조금도 안 들어간 고기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외식이 일상인 아이들에게 하면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외식을 자주하여 온갖 음식의 종류와 이름을 알고 있지만 50년 전만해도 인구의 80% 이상이 시골에 살았고 시골에는 식당이 없어서 모든 밥이 집밥이었다. 음식을 사먹는 다는 것은 산업화 이후에 본격 등장하였고, 음식은 어머니들이 가 해주는 대로 먹는 것이지, 자신의 기분과 취향에 맞추어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사실 요리의 이름을 알 필요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야 음식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서로가 장점은 배우고 단점을 제거하여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맛이 비슷하지만 옛날에는 이름만 같지 지역과 사람에 따라 음식 맛이 천차만별이고, 지역마다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음식의 이름도 제각각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불고기 어원 논쟁이 있었다. 황교익 맛컬럼니스트가 불고기의 어원이 야키니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해서 발칵 뒤집힌 것이다. 한 동안 불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메뉴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데, 그것이 일본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비춰지니 많은 사람이 발끈한 것이다. 그런데 불고기가 일본에서 유래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데 불고기의 어원이 야키니쿠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즉각 오류라고 반박할 증거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과거의 음식이 사진이나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음식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커녕 소금에 대한 기록조차 별로 없다. 인류는 불고기도 김치도 없이 살 수 있지만 소금이 없이 살수는 없다. 사실 식재료 중에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가장 비슷하고, 생존에 절대적인 식재료가 소금이기 때문에 과거에 소금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제법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 소금의 기록은 고려시대 부터나 약간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의 음식과 식재료의 과거의 모습을 알기가 쉽지는 않다.
이화여대 이규진 박사 논문에 따르면 '불고기'란 단어가 사전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50년 ‘큰사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고기의 설명이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라고 되어있어 지금의 불고기와 차이가 있다. 오히려 너비아니가 ‘저미어 양념하여 구운 쇠고기’로 되어 있어 지금의 불고기와 유사하다. 더구나 지금의 국물이 있는 육수 불고기는 언급조차 없었다. 세상의 대부분의 나라에 고기를 구워먹는 요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불고기가 특징이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고기구이에 없는 육수와 야채 등의 양념이 조화롭게 사용되는 것인데 이런 방식이 인기를 끈 것은 6ㆍ25전쟁 이후라고 한다.
불고기는 1970∼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성기를 이룬 음식이다. 불고기의 특징은 육수와 야채 말고도 녹아 버릴 듯이 얇고 부드러운 고기에 있는데, 거기에는 육절기의 보급이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는 고기를 얇게 썰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60년대 후반부터 고기를 살짝 얼릴 수 있게 되고, 육절기가 보급되면서 고기도 얇게 썰어 부드럽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식당과 손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대 혁신이었다. 식당은 고기가 얇아 양념을 오래 해두지 않아도 맛이 잘 스며들었고, 고기는 얇아서 불판에서 아주 빨리 익었다. 더구나 육수가 있어서 고기가 쉽게 타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는 불고기에 적합한 불판의 개발도 큰 몫을 했는데 불고기의 불판은 가운데가 볼록하고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멍 덕분에 볼록한 위쪽에 올려놓은 고기가 흘러내리지 않고, 구멍으로 불꽃이 닿아 육수를 품은 고기임에도 직화에 의한 마이야르 반응이 충분히 일어났다. 그리고 고기에서 배어나온 육수가 국물받이에 모여 야채에서 배어나온 글루탐산과 조화를 이루어 밥을 비벼먹기에 극상의 감칠맛을 제공하였다.  
불고기는 이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는 생고기 선호 경향이 높아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육수불고기는 다른 나라에 없는 혁신적인 요리였고, 나는 불고기야 말로 마블링도 필요 없고, 많은 고기도 필요 없는 가장 친환경이고 건강한 고기의 조리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처럼 음식은 항상 변하는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요리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음식의 어원 또는 유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내가 최근에 들었던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고추의 일본 유래설이 틀렸다는 것이다. <한식 인문학>을 통해 권대영 박사가 일본 유래설이 틀렸다는 주장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권박사님은 일본에는 고추로 만든 음식이 없는데 임진왜란 때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에 고추를 갖고 들어왔을까 부터가 의문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고추가 들어오자마자 김치와 고추장이 만들어질 정도 빨리 정착이 되었냐는 것도 의심스러운데, 결정적으로 1990년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식품원료학>책을 봤는데 그 책에 ‘고추는 조선으로부터 가토 기요마사가 가지고 들어 왔다’는 내용을 보고 고추의 일본 전래설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수많은 문헌의 조사를 통해 고추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되었고,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고추를 이용하여 고추장 등을 제조해 먹어왔다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무학대사와 함께 순창군에 들러 만일사의 고추장을 맛보고 그 맛이 매우 좋아 나중에 왕이 된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고추장을 진상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의 건국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이다. 우리나라에 ‘고추 일본 유래설’이 시작된 것은 한양대 이성우 교수가 1984년 《고추의 역사와 품질평가에 관한 연구》에서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고추가 서인도 제도에서 포르투갈로 들어갔다가 100년 동안 인도 등을 거쳐 일본을 통하여 임진왜란(1592년)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한 이후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고추의 품종이야기를 듣고는 설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추가 콜럼버스가 가져온 것이라면 포르투갈, 일본, 그리고 우리가 먹고 있는 고추는 같은 품종이어야 하는데 다르다는 것이다. 고추의 모양과 길이, 매운맛의 차이 등이 속명이 다를 정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 분석의 결과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유전자 추적의 결과로는 지구상에 가지과Solanaceae 식물이 나타난 것은 약 2500만 년 전이다. 보통 풀이 먼저 등장하고 나무가 나중에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구상에 나무가 훨씬 먼저 등장했고, 풀은 고작 3000만년 전에나 등장했을 정도로 식물의 최신의 진화물이다. 하여간 가지Solanum와 고추Capsicum가 분화된 것은 약 1960만 년 전이고, 가지과에서 토마토Lycopersicon와 감자Tuberosum가 분화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694만 년이라고 한다. 고추는 1960만 년 전에 등장했지만 큰 변화가 없다가 최근 300∼200만 년 전부터 활발히 다양한 품종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추로 대표되는 매콤달콤한 고추Capsicum annuum와 중남미의 아히로 대표되는 매운 고추Capsicum baccatum가 분화된 것은 174만 년 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추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매운 고추Capsicum baccatum는 훨씬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남미 또는 멕시코 고추가 우리나라에 몇 백만 년 뒤에 만들어진 최신 품종인데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금의 고추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은 이치에 안 맞다는 이야기다. 사실 중남미의 고추와 우리의 고추가 확실히 다르기만 해도 일본 유래설은 맞지 않다. 과거에는 지금 같은 교잡과 돌연변이 육종도 없었는데 맥시코의 고추가 들어와 불과 500년 만에 지금의 우리나라의 고추처럼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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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부분)
사실 내가 이 주장을 보고 가장 반가웠던 점은 식품의 기원의 추적에도 유전자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고고학이 화석의 탐사였다면 지금의 고고학은 유전자의 탐사라고 할 만큼 유전자의 추적이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권대영 박사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또한 유전자에 기반한 주장이다. 고추 야생종 26종의 자생지는 모두 중남미이고 C.baccatum, C.annuum, C.chinense의 가까운 친척이 각각 남미에 있다는 것이다. Capsicum annuum종이 중남미에 없다면 확실하게 일본(중남미) 유래설이 틀린 것인데 콜롬버스나 다른 사람이 중남미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품종 중에 일부만 들여와서 그것이 세계로 점점 퍼져나간 것이라면 이성우 교수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니게 된다.
고추를 남만초 등으로 부르는 것을 봐서 꼭 임진왜란이나 일본이 아니더라고 동남아 등에서 들어온 품종이지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자생하던 식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럼 태조 이성계가 먹었다는 고추장은 초피나 산초로 만든 다른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전자적 검토가 전문가적 레벨에서 확실하게 매듭이 지어지면 전모가 밝혀질 것 같다.
음식의 이름과 내용물은 딱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이라, 최초에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계속 가꾸어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