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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사회 : 긍정의 과잉

피로 : 휴식
- 피로사회
- 후각의 피로, Satiety
- 경영이론의 피로감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 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겅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 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박정희, 전두환이 통치하던 독재 시절보다 사회는 자유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겐 엄격하다. 여기에서 엄격하단 이야기는 스스로 ‘할 수 있어’라고 채찍질하는 걸 말한다. 돈만 있으면 과외를 받아 성적을 올릴 수 있고(이것도 곧 바뀔지 모르지만), 해외연수를 다녀와 소위 ‘스펙’을 쌓을 수 있고, 노는 대신 공부해 성적을 관리하고 자격증 쌓아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고, 새벽잠 줄여 영어 공부하고, 시간관리 잘해 자기 계발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 활용해 온라인에서 경력 관리할 수 있고…. 나만 잘하면 못할 게 없다. 과거처럼 ‘안 된다’라고 하던 게 조금씩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과 달리 지금은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다니고, 신분의 귀천도 없다.

이 이야기에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이란 말도 등장한다. 어렵게 쓰였는데 ‘사회가 ‘불가능한 건 없다’라고 믿기 때문에 ‘난 할 수 없는데’라는 사람은 우울해진다’란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다. 남들 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달리는데 나만 ‘더는 못 뛰겠는걸’이라고 생각하면 낙오자, 패배자로 느끼게 한단 뜻이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지금 우린 ‘안 돼’ 대신 ‘할 수 있어’란 사회에 살고 있다. ‘된다’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된다’라는 힘은 너무 강하다. ‘안 될 거야’란 딴죽을 걸 틈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 꽃가루를 나르는 일벌, 끝없이 일하는 일개미처럼 바쁘다. 쉴 틈이 없다. ‘휴~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라고 돌아볼 틈도 없이 말이다. 잠깐 쉬었다간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할 틈에 바쁘게, 부지런하게 움직여 성공해야 한다. 나는 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된다’,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쉴 틈이 없다는 거다. 사람들이 심심할 틈이 없다.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짜증은 나지만, 분노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할 수 없는데도 된다고 말하는 것, 안 되는데 된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살펴볼 여유가 없어 화낼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도 ‘해냈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쉬지 않고 채찍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현대인의 병으로 우울증이 꼽히는 이유다.